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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사회문제를 보면서 가장 크게 고민하게 되는 것은 역시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한 것이다.
학문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양적(quantitative) 접근법이며, 다른 하나는 질적(qualitative) 접근법이다.
이 가운데 현재 학계의 주도적인 방법론은 양적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양적 접근법은 3개의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데, 우선 연구자가 세운 가설에 대하여 해당되는 범주별로 연구대상의 특성을 일반화하는 변수를 설정한다.
다음으로 이들 변수에 대한 직접 조사 또는 기존 조사(센서스, 각종 정부 조사) 자료를 수집하여 dataset을 구축하고,
마지막으로 통계분석을 통해 가설의 채택/기각 여부를 결정한다.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에서 양적인 접근방법은 강력한 힘을 가진다. 물론 통계적 방법이 점점 엄정해지고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그렇지만 이런 통계적 방법을 밥벌이로서(!!!) 거의 매일 사용해야 하는 나 스스로도 이런 통계만능주의와 자료만능주의는 때로 갈등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이 접근은 기본적으로 ‘확률’이라는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밀한 가설을 세우고 좋은 데이터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 결론에는 최소 1%에서 최대 10%까지의 오류가 나타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양적인 접근법에서는 100명 중 대략 5명 정도는 결론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차이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을 활용한 논문은 전문적인 훈련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어려운 수학기호와 통계적 방법은 그 형태만으로도 독자들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은 이러한 양적 접근법에 반기를 든 사회학적 연구성과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머리 아픈 통계적 기호들도 찾아볼 수 없고, 안드로메다 언어를 옮겨 쓴 듯한 수학 공식도 없다.
학자로서 벤카테시가 갖춘 최고의 미덕은 손쉽고도 편안한 방법으로 자신의 학위를 준비할 수 있었던 조건을 과감히 포기하고 직접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선택한 점에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역시 도시 빈민들의 생활에 대한 기존 자료와 데이터를 모아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린 후,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다/없다’라는 기준으로 프로그램 결과를 해석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쉽고 편안한, 그러면서도 시간이 절약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시카고 슬럼가로 들어가 몸으로 부딪쳤다. 그는 거기서 갱단과 마약중독자, 매춘부, 경찰 등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았다.
이런 그의 열정과 열심이 [괴짜 사회학]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작성 과정이면서 동시에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책은 흔히 학회지에 발표되는 논문이 가지는 딱딱함과 전문성을 걷어내 버렸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벤카테시와 함께 흑인 빈민촌의 생활을 그대로 경험하고, 그 곳 사람들과 함께 그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된다.
[괴짜 사회학]이 주는 매력에는 방법론의 새로움 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내용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부한 내용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흑인 빈민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또 하나의 권력구조와 사회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가 구축한 권력구조와도 유사한 이중적 착취구조였던 것이다.
흑백 인종차별이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은 상대적으로 백인들에 비해 사회의 하층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은 경제적 차별과 교육기회에서의 차별을 낳았고, 미국 대도시에는 거의 예외없이 이들의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마약판매와 총기사고, 매매춘 등 각종 범죄 및 일탈행위들은 미국 복지정책과 도시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시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부 관리들이나 대학의 학자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마약거래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을 주장하고, 지역을 개발함으로써 거주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슬럼가를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은 이런 ‘교과서적인’ 해결방법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제도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겨서 신고해도 이들에게는 경찰이 오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있어서 연락해도 이 지역에는 구급차가 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힘을 지닌 조직은 경찰이나 의료조직이 아니라 지역의 갱단들과 범죄조직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범죄조직은 주민의 보호자로서의 선한 사마리아인같은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마약을 팔고 경제활동에 대한 세금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폭력을 앞세워 응징하거나 지역에서 살지 못하도록 쫓아 버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부패한 주택공사나 경찰들과 결탁하여 부당한 이익을 편취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인 권력관계,
즉, 공식적인 국가권력과 사회조직은 공공연히 빈민층을 방치하고,
자경주의(自警主義)를 내세우는 지역 내 조직이 빈민층으로부터 대가를 얻어 기생하는 관계는 도시빈민을 연구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파악해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드르르한 복지정책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책의 혜택이 가로채어지지 않아야 한다.
경제위기로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고, 주위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사회와 같은 인종차별이 언젠가 나타나지 않는다거나 할렘과 같은 지역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이미 서울의 가리봉동이나 경기도 안산에서는 이러한 지역이 현실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또 한가지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것이 있었는데,
빈민가를 지배했던 갱단인 ‘블랙 킹스’의 조직원이었던 티본의 일생과 죽음이었다.
티본은 다른 갱단 조직원들과 달리 하루라도 빨리 재산을 모아 손을 씻고 공부를 하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였다.
생활 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티본은 결국은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죽는다.
‘다른 조직원들의 이름을 팔아 넘기지 않았다’라는 허울뿐인 칭송을 들으면서....
티본의 삶은 가슴 아프면서도 허술한 미국식 사회정책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도 엄연한 인종차별 속에서 좌절하고 결국은 갱단에 들어와 마약판매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던 흑인 청년.
갱으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자 열심히 일했으나, 그 일이란 것이 사실 사람들을 마약중독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청년.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제2, 제3의 티본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얼마든지 나오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