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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공장
이언 뱅크스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부커상 후보작품으로까지 올랐다고 하니 나름대로 인정받는 작가와 책이긴 하였으나,
아동학대, 성도착, 가학적 혐오의식, 동물학대, 살인, 방화...
하여튼 인간의 상식으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소재들이 버젓이 소재로 쓰인 책이다.
네이버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보니 역시나 불쾌하다거나 혐오스럽다거나 구역질이 난다거나 하는 평가가 많았다.
책이 출판된 영국에서도 ‘영문학사에 남을 걸작’이라는 찬사와 ‘쓰레기’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으니, 영국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느끼는 것은 비슷했나 보다.
[말벌 공장]은 스코틀랜드 외딴 섬에 사는 프랭크와 그 가족의 이야기이다.
프랭크는 한 마디로 말하면 어린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일상생활이란 누군가 집과 섬을 침범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매일매일 섬을 순찰하고,
갈매기, 쥐,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들의 머리를 잘라 내어 해안가 기둥에 걸어 놓는 따위의 일이다.
높이 매달린 머리들에 섬을 경비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부여하는 행동인 것이다.
프랭크는 이미 어린 나이에 3건의 살인을 교묘하게 저지른 전력을 가지고 있는데,
악마와 같은 살인의 대상자가 된 아이들이 자신의 친동생과 사촌들이다.
프랭크의 가족도 만만치 않은 엽기성과 잔혹성을 보인다.
아버지를 오토바이로 깔아 뭉개어 불구로 만든 채 달아나 버린 어머니.
개의 몸에 불을 붙이고, 동네 아이들에게 구더기를 먹이고 다니던 형 에릭.
뭔가 큰 비밀을 간직한 채, 집안 모든 물건의 크기와 용량에 집착하는 아버지.
프랭크의 엽기적인 행각과 오컬트적 주술은 그가 다락방에 만들어 둔 신전(神殿)인 ‘말벌 공장’에서 절정에 이른다.
큰 시계 원반 위에 12군데의 통로를 뚫어두고 잡아온 말벌을 그 위에 둔다.
말벌은 12개의 통로 중 하나를 선택하여 들어가게 되고 그 끝에서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
불에 타 죽거나, 화학약품에 녹아 내리거나, 전기충격에 튀겨지거나, 거미를 만나 먹이가 되거나, 개미들을 만나 뜯어 먹히거나....
말벌은 제단 위의 희생제물이 되는 셈인데, 그리고 나서 프랭크는 제물이 된 말벌의 운명에 스스로를 교감시키면서 자신의 앞날을 점치는 것이다.
프랭크의 인생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의 아머지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어떤 왜곡인지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반전이므로 여기서 밝힐 수는 없겠지만,
“정해진 운명과의 마찰”이 그의 사이코패스적 행태의 원인이라는 정도만 적어 놓는다.
(그런데 먼저 서평을 쓰신 분들이 여기저기 그 결말을 다 적어 놓으셨더란 사실... -_-;;;)
어쩌면 프랭크는 말벌 공장에 자기 자신을 투영해 놓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프랭크에게 잡혀서 말벌 공장의 원반 위에 내려졌을 때부터 이미 그 말벌은 죽을 운명이다.
다만 말벌이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죽음이냐는 것 뿐.
그나마 자기가 선택한 죽음이 어떤 것인지도 실제 죽음을 맞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
프랭크는 정해진 운명 속에서 정해진 선택만을 해야 할 말벌과 자신의 삶을 부지불식간에 일치시켜 온 것 같다.
절대 되돌아 갈 수 없는 말벌 공장의 죽음의 통로에 놓인 말벌처럼, 자신의 인생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학대와 도착으로 풀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희생제물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자로 전환시킴으로서 스스로의 만족을 얻는다.
프랭크가 구축해 놓은 ‘말벌 공장’은 그의 의지로 모든 것이 가능한 그의 왕국이며,
희생제물인 말벌에게 프랭크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불운과 아픔과 희생으로 프랭크의 가슴속에 들어차 있던 울분은 생사여탈권을 가진 신과 같은 전제(專制)의 위치에 올라감으로서 비로소 보상받고자 한다.
한 마디로 [말벌 공장]은 자극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소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신병원을 탈출한 그의 형 에릭을 자기의 무릎 위에 눕게하여 편안히 잠들게 하는 데에서 다소간 안정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 소년의 비뚤어진 성장기는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불편함이 크면서도 사실 ‘재미’로 승부하는 책도 아니다.
동물들을 학대하는 장면이나 동생과 친척들을 살해하는 장면, 에릭이 왜 미쳐버렸는지를 알려주는 장면, 마지막의 반전은 읽는 속도는 높여 주었지만, ‘재미있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불편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내용이 추악한 인간본성의 진실에도 닿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책을 무조건 평가절하하기도 어려울 듯 하다.
과연 인간 심리 깊은 곳에는 사디즘과 잔혹성, 약한 자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본성이 자리잡고 있어서 누구든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뱀꼬리
풍광이나 사건들에 대한 묘사, 심리적 불안정성을 표출시키는 서술만 본다면 이언 뱅크스가 무척 뛰어난 작가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건 번역자의 역량과도 관계된 것이긴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를 보면 역시나 영어권에서 왜 그를 촉망받는 작가의 대열에 올려놓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화끈한 논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 책, [말벌 공장]을 처녀작으로 발표했다니...
이 작가도 만만치 않은 사디즘을 가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