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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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사회문제를 보면서 가장 크게 고민하게 되는 것은 역시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한 것이다.
학문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양적(quantitative) 접근법이며, 다른 하나는 질적(qualitative) 접근법이다.
이 가운데 현재 학계의 주도적인 방법론은 양적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양적 접근법은 3개의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데, 우선 연구자가 세운 가설에 대하여 해당되는 범주별로 연구대상의 특성을 일반화하는 변수를 설정한다.
다음으로 이들 변수에 대한 직접 조사 또는 기존 조사(센서스, 각종 정부 조사) 자료를 수집하여 dataset을 구축하고,
마지막으로 통계분석을 통해 가설의 채택/기각 여부를 결정한다.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에서 양적인 접근방법은 강력한 힘을 가진다. 물론 통계적 방법이 점점 엄정해지고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그렇지만 이런 통계적 방법을 밥벌이로서(!!!) 거의 매일 사용해야 하는 나 스스로도 이런 통계만능주의와 자료만능주의는 때로 갈등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이 접근은 기본적으로 ‘확률’이라는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밀한 가설을 세우고 좋은 데이터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 결론에는 최소 1%에서 최대 10%까지의 오류가 나타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양적인 접근법에서는 100명 중 대략 5명 정도는 결론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차이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을 활용한 논문은 전문적인 훈련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어려운 수학기호와 통계적 방법은 그 형태만으로도 독자들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은 이러한 양적 접근법에 반기를 든 사회학적 연구성과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머리 아픈 통계적 기호들도 찾아볼 수 없고, 안드로메다 언어를 옮겨 쓴 듯한 수학 공식도 없다.
학자로서 벤카테시가 갖춘 최고의 미덕은 손쉽고도 편안한 방법으로 자신의 학위를 준비할 수 있었던 조건을 과감히 포기하고 직접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선택한 점에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역시 도시 빈민들의 생활에 대한 기존 자료와 데이터를 모아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린 후,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다/없다’라는 기준으로 프로그램 결과를 해석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쉽고 편안한, 그러면서도 시간이 절약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시카고 슬럼가로 들어가 몸으로 부딪쳤다. 그는 거기서 갱단과 마약중독자, 매춘부, 경찰 등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았다.

이런 그의 열정과 열심이 [괴짜 사회학]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작성 과정이면서 동시에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책은 흔히 학회지에 발표되는 논문이 가지는 딱딱함과 전문성을 걷어내 버렸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벤카테시와 함께 흑인 빈민촌의 생활을 그대로 경험하고, 그 곳 사람들과 함께 그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된다.

[괴짜 사회학]이 주는 매력에는 방법론의 새로움 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내용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부한 내용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흑인 빈민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또 하나의 권력구조와 사회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가 구축한 권력구조와도 유사한 이중적 착취구조였던 것이다.

흑백 인종차별이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은 상대적으로 백인들에 비해 사회의 하층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은 경제적 차별과 교육기회에서의 차별을 낳았고, 미국 대도시에는 거의 예외없이 이들의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마약판매와 총기사고, 매매춘 등 각종 범죄 및 일탈행위들은 미국 복지정책과 도시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시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부 관리들이나 대학의 학자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마약거래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을 주장하고, 지역을 개발함으로써 거주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슬럼가를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은 이런 ‘교과서적인’ 해결방법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제도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겨서 신고해도 이들에게는 경찰이 오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있어서 연락해도 이 지역에는 구급차가 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힘을 지닌 조직은 경찰이나 의료조직이 아니라 지역의 갱단들과 범죄조직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범죄조직은 주민의 보호자로서의 선한 사마리아인같은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마약을 팔고 경제활동에 대한 세금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폭력을 앞세워 응징하거나 지역에서 살지 못하도록 쫓아 버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부패한 주택공사나 경찰들과 결탁하여 부당한 이익을 편취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인 권력관계,
즉, 공식적인 국가권력과 사회조직은 공공연히 빈민층을 방치하고,
자경주의(自警主義)를 내세우는 지역 내 조직이 빈민층으로부터 대가를 얻어 기생하는 관계는 도시빈민을 연구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파악해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드르르한 복지정책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책의 혜택이 가로채어지지 않아야 한다.
경제위기로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고, 주위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사회와 같은 인종차별이 언젠가 나타나지 않는다거나 할렘과 같은 지역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이미 서울의 가리봉동이나 경기도 안산에서는 이러한 지역이 현실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또 한가지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것이 있었는데,
빈민가를 지배했던 갱단인 ‘블랙 킹스’의 조직원이었던 티본의 일생과 죽음이었다.
티본은 다른 갱단 조직원들과 달리 하루라도 빨리 재산을 모아 손을 씻고 공부를 하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였다.
생활 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티본은 결국은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죽는다.
‘다른 조직원들의 이름을 팔아 넘기지 않았다’라는 허울뿐인 칭송을 들으면서....
티본의 삶은 가슴 아프면서도 허술한 미국식 사회정책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도 엄연한 인종차별 속에서 좌절하고 결국은 갱단에 들어와 마약판매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던 흑인 청년.
갱으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자 열심히 일했으나, 그 일이란 것이 사실 사람들을 마약중독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청년.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제2, 제3의 티본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얼마든지 나오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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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 Mr. Know 세계문학 15 Mr. Know 세계문학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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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름휴가 정도의 여유가 아니라면 언제 움베르토 에코 아저씨의 책을 정독해보겠는가.
이번 휴가에 인적 드문 산골 마을에서 에코 아저씨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다.
이번에 세 번째로 읽은 [장미의 이름]은 무척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사실 [장미의 이름]은 반복하여 읽은 몇 안되는 책 중 하나이다.
한참 스릴러물을 찾아다니던 때에 ‘수도원에서 묵시록의 예언대로 일어나는 연쇄살인’이라는 책표지의 문구에 혹해서 처음 접했지만,
그 때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글자만 따라가는 데 급급했던 책이었다.
두 번째 읽을 때에 겨우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그 해결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이 때에도 사건의 줄거리 외에는 지루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세 번째 읽으면서 겨우 에코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만화경처럼 벌여놓은 중세의 종교, 문화, 세계관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지식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적 독단의 의미, 이성과 과학, 기호와 상징 등에 대한 여러 생각도 정리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과연 여러 사람들이 평가하는 대로 왜 에코의 책에 ‘아는만큼 보이는 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도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 호이징하는 중세가 끝나가는 시기를 일컬어 <중세의 가을>이라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낙조(落照)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것은 결국 종말의 숙명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가을빛이 쓸쓸하다는 것은 모든 걷이가 끝난 후 다가올 죽음의 계절 겨울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4세기 초, 중세시대는 낙조를 비치면서 가을로 달려가고 있었다.
길었던 한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는 변화에 대항하여 기존의 가치를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 새로운 가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카놋사의 굴욕’ 사건으로 만방에 그 힘을 과시했던 교황청.
그러나 그 후 300년 만에 교황은 프랑스 국왕의 압력에 굴복하여 로마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권위에 큰 타격을 입는다(아비뇽 유수).
세속 권력의 도전에 직면한 교황청은 자신들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 수도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하였지만,
성(聖) 프란체스코에서 비롯된 ‘청빈(淸貧)’ 운동은 교회의 재산 소유를 비판하는 등 내부로부터 교황청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교황 요한 22세는 교회의 청빈을 주장하던 수도사들을 파문하고 종교재판, 화형을 동원하여 이와 같은 반발을 무마하려 하였다.

중세는 정신적 지주였던 교회 내부의 변화와 경제와 사회사상에서도 큰 변화를 겪는다.
개별화된 봉건적 촌락과 대지에 귀속된 농노 중심의 생산양식은 이제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시장 중심의 생산양식과 화폐경제에 뒤처지기 시작한다.
도시를 중심으로 성장한 대학은 기존 수도원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의 독점권을 해체하였고,
신앙과 교리가 지배하던 사고방식은 이성과 경험의 힘을 통하여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중시하는 ‘과학’의 지배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중세를 규정짓던 생산양식과 생활양식과 사유방식이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이다.

[장미의 이름]의 배경에는 표면적으로는 황혼을 맞은 중세의 이중의 갈등 구조,
즉, 교회 외부의 갈등이라 할 수 있는 교황과 황제의 대립과
교회 내부의 갈등이라 할 수 있는 교황과 일부 수도사들(청빈파)의 대립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흐르는 보다 본질적인 갈등구조는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와 기존 시대의 고수 사이의 갈등이라 할 것이다.
이는 중세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호르헤 수도사와 그 반대편에서 이성과 경험, 합리적 추론으로 진리에 접근하는 윌리엄 수도사와의 대립으로 잘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에코의 작품이 가지는 매력은 오래 전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장미의 이름]의 주요 등장인물인 호르헤 수도사는 독단적 진리관을 대변한다.
그가 보기에 진리란 인간의 이성의 힘으로 찾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진리란 이미 신이 완성한 것이기 때문에 성서가 천명한 진리의 보존만이 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호르헤 수도사에게 성서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것이며,
그런 맥락에서 ‘웃음’을 통해 신의 세계를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치고, 진리라 일컬어지는 것을 비웃음으로써 새로운 진리를 얻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은 그에게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호르헤 수도사에게서 종교근본주의자, 맹신론자, 맹목적 반공주의자, 파시스트와 같은 지긋지긋한 자기 중심의 독단주의의 뿌리를 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것, 자신이 말하는 것만이 진리이며, 여기에 반대하거나 의심을 품는 것은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진리를 거부하는 자는 설령 죽음을 당한다 해도 당연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수도원과 장서관은 화재로 무너져 내린다.
이는 중세적 세계관의 종말과 앞으로 긴 세월동안 근대적 세계관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도원은 무너지고 장서관의 책들은 모두 불에 탔음에도 불구하고,
호르헤 수도사의 독단주의는 그 얼굴만 달리한 채 현재까지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하나 중세의 모습에서 떠올릴 수 있는 현대의 모습은 종교가 가지는 세속적 권한과 재산의 문제이다.
사실 [장미의 이름]을 읽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의 청빈을 둘러싼 지루해 보이는 논쟁인데,
‘그리스도가 재산을 소유했는가?’라는 논쟁은 지금 보기에는 그다지 중요할 것이 없는 문제일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교회 내부의 입장차이 뿐만 아니라 교회와 황제와의 권력 쟁탈이 걸린 문제였고, 따라서 [장미의 이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장미의 이름]에도 등장하는 교황 요한 22세는 교회사에서 교황청의 재정을 튼튼히 한 능력있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축재(蓄財)에 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도 등장하는 체제나의 미켈레나 카잘레의 우베르티노와 같은 수도사들은 그리스도가 재산을 소유하지 않았므로 교회도 청빈(淸貧)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한 교황청의 답변은 파문, 화형, 암살 사주였다.

종교의 재산을 둘러싼 중세말 모습은 어딘지 지금의 모습과 맥락이 닿아있지 않은가?
성장만을 중요하게 여긴 사회 속에서 종교 역시 양적 성장을 최우선의 목표에 두었고,
이것이 신도의 수와 건물의 규모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왜곡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개혁을 통한 중세의 정신의 몰락은 결국 로마 카톨릭의 쇠퇴를 의미한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교황청이 보여준 구원에 대한 독단(면죄부)과 성직자 집단의 부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는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삼아,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가지 읽으면서 메모해 둔 것을 여기에 남겨 두고자 한다.

1. [장미의 이름]의 제목의 의미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Stat rosa pristina nomina nuda tenemus)

에코가 창작노트에서 말했듯이 제목의 의미 간취는 독자들의 몫이라 했지만, 나는 기호학자로서 에코의 생각이 반영된 제목이라 생각한다.
소쉬르는 언어를 나누어 의미를 담지하는 ‘기의’와 문자로 표기되는 ‘기표’로 구분하였다.
이는 기호학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장미의 이름>에서 중요한 단어는 ‘장미’보다는 ‘이름’ 쪽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 중에서 윌리엄 수도사의 말을 빌려 ‘이름은 사물의 궁극(nomina sunt consequentia rerum)'이라고 칭하였다.
그리고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후 땅의 지배자로 세운 아담에게 처음으로 맡긴 일이 동물들의 ’이름‘을 붙이도록 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름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며, 존재를 존재하게끔 하는 힘을 가진다.
윌리엄 수도사가 결국 ‘피니스 아프리카에’로 들어가는 암호의 해답을 찾은 것도 이름이 의미하는 바(기의)가 아니라 ‘이름 그 자체(기표)’에서이지 않은가?
밀실로 들어가는 키워드인 ‘프리뭄 에트 셉티뭄 데 쿠아투오르(Primum et septimu de quatuor)’에서 ‘넷’이란 어떤 사물을 가리키는 것(de re)이 아니라 ‘넷’이라는 말 그 자체(de dicto)였던 것이다.

따라서 책의 제목을 담고 있는 마지막 어구는 죽음이라는 인생의 종착역에 거의 다다른 아드소가 자신이 겪었던 한 시대의 종착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변하지 않는 궁극의 관념인 말, 또는 언어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다.

2. 번역에 대해서
[장미의 이름]을 읽기 힘들게 만드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번역의 문제를 든다.
이윤기씨의 번역이 너무 어렵고, 그래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중세의 언어구사 자체가 수식이 많고 화려하다는 점, 그리고 당시 수도사들이 즐겨 쓰던 라틴어는 일종의 고어(古語)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이윤기씨의 번역이 읽는 맛을 더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미의 이름]을 현대어로 번역했다면 의미 전달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작품 자체가 가지는 특징은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번역의 첫 번째 목표라고 할 때 [장미의 이름]은 분명 좋은 번역이라고 여겨진다.
오히려 번역과 관련하여 우리 출판계에서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문학과 인문과학의 아름다운 번역 협동작업이다.
이윤기씨도 지적했듯이 그는 철학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용상의 오역이 있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강유원 박사는 3백여 군데를 고친 원고를 보내오게 된다.
번역자와 출판사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새로운 개정판을 낸 것이 현재의 [장미의 이름]이 된 것이다.
꼼꼼한 의견으로 작품의 정확도를 높인 강유원 박사와 열린 마음으로 이를 수용한 번역자 및 출판사에 독자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3. 아드소의 마지막 행위
이번에 읽으면서 아드소의 마지막 행동이 왠지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도원에서의 일주일을 보낸 아드소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수도원 폐허를 찾아 사그러진 양피지 조각을 모은다.
그리고 이따금 모아온 한 조각 양피지를 읽은 후, 그 원본이 되는 책을 찾아 앎을 완성하고, 그 서책이 그리고 있던 세계를 복원한다.
조각으로부터 진리를 복원하는 것, 작은 단서들을 보아 진리를 추론하는 것.
이건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과학의 특징이면서, 또한 보르헤스가 말한 자기만의 도서관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서 책을 모두 읽은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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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의 도시
데이비드 베니오프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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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모두를 변화시켰다.” (p.362)

그렇습니다. 정말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전쟁은 한 가정의 좋은 남편, 자상한 아버지로 하여금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유대인들을 학살한 독가스 버튼을 누른 전범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쟁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총화단결’을 최상의 모토로 삼도록 하였고, ‘정부 비판=적(敵)’라는 단순한 논리를 내재화하여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전시에는 평화로울 때에 쉽게 나타나지 않을 잔인함, 폭력성, 이기성이 미덕이 되며,
화해와 이해는 ‘이적행위(利敵行爲)’로 간주되어 반국가적 가치로 전락합니다.
전쟁은 가치를 전도시킵니다. 인간의 가치는 먼 발치로 밀려나는 대신, 표면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내부적으로는 지배층의 이해관계라는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1942년 겨울.
900일간 독일군에 포위된 레닌그라드는 굶주림과 절망의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누구보다 레닌그라드를 사랑하고 조국을 위해 용기있는 행동을 할 자신이 있었던 소년 레프는 친구들과 우연히 낙오한 독일군 병사를 ‘털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고, 감옥에서 탈영병 신세로 들어온 콜야라는 병사를 만나게 됩니다.
죽음을 기다리던 그들에게 내려진 거부할 수 없는 그레치코 대령의 제안.
대령의 딸의 결혼식 케이크에 들어갈 계란 12개를 찾아오면 석방하겠다는 제안을 듣고 목숨을 걸고 최전선으로 향합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룬 책과 영화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들의 도시]에서 다시 한 번 분노를 금하기 어려운 장면들과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전체’나 ‘국가’, ‘민족’이라는 절대 가치 앞에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수단화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그 신성한 제단에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병영 문화가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는 장면들입니다.
이는 파시스트들은 물론이고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존재한다는 소련의 붉은 군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런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켜 수많은 민중과 병사들을 전선으로 내몰고 아사 직전의 상태까지 몰아간 소위 ‘윗대가리’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들입니다.
순결한 아리안 민족이나 국가사회주의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나 스탈린 등 최상층 ‘윗대가리’들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갈 때 안전한 후방에서 호의호식했겠죠.
겨우(!) 자기 딸의 결혼식에 쓸 계란을 구하기 위해 두 생명을 전선으로 몰아대는 소련군의 그레치코 대령과 러시아 소녀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도망치려는 소녀의 두 발목을 톱질해 버리는 독일군의 아벤드로트 등 말단 ‘대가리들’.

그런데 [도둑들의 도시]를 보면서 전쟁으로 인한 이와 같은 ‘가치의 전도’가 2009년 현재 한국에서도 이런 병영문화의 잔재로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병영문화는 권위에 대한 복종과 희생을 의미하며, 지식의 전제(專制)와 독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리고 개인은 전체를 위하여 희생될 수 있다는 논리로 지탱됩니다.
해병대 체험이니 전방입소교육 체험이니 하는 것들은 ‘고통을 통해 자신을 이길 정신력을 신장한다’는 이상한 논리 하에 개인의 육체에 대한 학대를 미화시킵니다.
사회의 질서와 조화, 안보가 강조되지만 그 속에는 불공평한 관계에 처한 개인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개인은 국가에게, 학생은 교사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아이는 어른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권위’에 따른 복종은 계급에 대한 복종이라는 병영 문화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리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도둑들의 도시]는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었지만,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쓴’ 소설이었습니다.
레프는 결국 계란 12개를 얻어 생명을 건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미국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계란 12개 때문에 당한 콜야의 죽음은 어이없는 개죽음(!!)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를 기다렸을 소냐의 슬픔이 언급되지 않은 것이 더욱 슬프게 합니다.
독일군의 시달림에서 벗어나 탈출한 소녀들은 혹독했던 기억과 그보다 더 혹독할 사회적 편견 및 경제적 어려움에서 어떻게 살아갔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도둑들의 도시]에서 나오는 참상은 2차 세계대전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쓴 맛을 더하게 합니다.
전쟁의 명분은 늘 그렇듯이 뭔가 멋진 말들로 치장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이라크 국민의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명분으로 걸었지만, 진정한 목적은 석유의 안정적 확보와 친미정권 수립에 따른 이란 등 중동국가들 견제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픈 눈빛과 참상들, 워싱턴에 앉아 ‘신이여! 미국을 구원하소서!’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도둑들의 도시]에 나오는 장면들과 시대와 배경만 조금 달라졌을 뿐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나찌의 인종주의는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이들의 현실은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능가합니다.

이 책을 비롯하여 전쟁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국가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롭게 살기를 갈구하고, 전쟁으로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은 날로 진보해 나가는데, 왜 가장 야만적인 행태인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파병하게 되었을 때, 그 불가피성을 역설하던 말, '국익 때문에...'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바르지 않은 전쟁에 참가하여 그들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 과연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는지 의문이 갑니다.

67년 전 레닌그라드를 사이에 둔 소련군과 독일군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레닌그라드의 민간인들이 경험한 처참함은 더욱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전쟁 후에 그들에게 돌아간 보상이나 위로는 거의 없었습니다. 전후복구라는 더 피폐한 삶을 참아야 할 의무만 주어졌을 뿐입니다.
평소에는 레닌그라드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것처럼 말하던 레프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자 '살고 싶다!'라는 순수한 소원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가치를 존중하고, 이 소원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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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 평전 -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옌리에산.주지엔구오 지음, 홍승직 옮김 / 돌베개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지(李 贄). 호를 탁오(卓吾)라 했던 그의 평전의 원래 제목은 [중국제일 사상범(中國第一 思想犯: 이지전(李贄傳)]이다.
사상범! 우리 현대사에서 무척이나 익숙한 단어이다.
군사독재시설,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사상범’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탄압한 것이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단어가 지금부터 400여년 전인 중국 명(明) 말기 이탁오라는 사람에게 붙여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기에?

"나는 어릴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정작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공자를 존경하지만, 공자의 어디가 존경할 만한지 알지 못한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가 짖은 까닭을 묻는다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쑥스럽게 웃을 수밖에..."

“나는 따라짖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이탁오의 통렬한 자기반성이자, 현대의 ‘나’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온 말이었다.
공자에게서 시작한 유학은 맹자를 거쳐 정호‧정이 형제를 거쳐 송(宋)의 주희에 의하여 집대성된다. 그리고 이탁오가 살았던 명나라 말기. 주자학은 정통성을 독점하고 주자와 다른 해석들은 모두 이단으로 배척하는 지위에 오른다.
이탁오는 이러한 앎의 독점과 사상의 교조화에 따른 편협한 정통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였고, 이 때문에 혹세무민의 죄목을 얻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격렬하고 치열하게 살아서였을까.
그가 남긴 책 제목 역시 보통 비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격한(?) 주장을 담은 책들로 인해 피비린내가 일 것을 예상했는지, 그는 자신의 책에 ‘불태워 버릴 책’이란 뜻의 ‘분서(焚書)’, ‘숨겨야 할 책’의 ‘장서(藏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책은 명, 청 시대에 가장 유명한 금서였고, 신해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논란 가운데 정당한 평가를 얻는다.

[이탁오 평전]은 중국 사상사의 이단아였던 한 개인의 평전일 뿐만 아니라,
쇠락해 가던 대제국 명나라의 사회상과 당대 지성의 실상을 아는 데에도 유용하게 읽힌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말단관료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했는지, 당시의 지배적 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민중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었는지, 그래서 그 지배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무기력하면서도 잔혹했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송나라 주희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유학과 그 이후의 유학을 나눌 정도로 유학사상사에서 주자의 사상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격물치지를 통해 얻은 사물의 이(理)를 인간의 본성(性)으로 환원시킨 ‘성즉리(性卽理)' 주장은 ’사물의 이치=마음의 본성‘으로 이해되면서 일원적 관념론으로 빠져든다.
이것이 그냥 한 명의 학자, 또는 하나의 학파의 사상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리라.
문제는 이 일원적 관념론이 절대화되어 다른 사상은 모두 천박하고 저질이며, 오직 주자의 사상만이 고귀하여 유학의 정통성이 주자에게 계승되었으므로 그 정통성을 고수해야 한다는 소위 ‘주자도통주의(朱子道統主義)’로 발전하여 사회를 장악했다는 점이었다.
주자를 비판한다는 것은 곧 그 사회를 부정하는 큰 일탈이었으며,
주자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은 곧 ‘혹세무민’의 죄를 의미했다.
수많은 학자들이 단지 ‘주자와 다른 주장이다’라는 이유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배척을 당해야 했고,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놓아야 했다.

나는 이 책, [이탁오 평전]을 보면서 그가 당시 사회체계와 지성계의 어떤 점을 그렇게 맹렬하게 비판하였는지, 또 왜 그에게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란 호칭이 붙었는지 어렴풋 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이탁오는 무엇보다 앎의 전제(專制)를 비판했다. 앎의 전제는 하나의 앎, 하나의 해석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그 이외의 앎과 해석은 배척하는 사상의 독점인 것이다.
물건의 독점은 필연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품질을 낮춘다.
마찬가지로 사상의 독점은 앎의 생명력을 죽이고 지식을 교조화시킴으로서 다양한 입장의 존립 자체를 거부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앎의 독점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와 손쉽게 결합하여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세뇌시킨다는 점이다.
앎의 독점이란 결국 획일화가 아닌가. 지식의 획일화는 사람들을 통치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삶에 만족하게 하는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지배층은 절대 권위의 지식을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외우고 따르기만 할 것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 시대처럼 절대 권위의 지식이 ‘과거(科擧)’란 이름으로 출세의 수단이 되어 버리면 소극적으로는 ‘정답을 달달 외워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포장된’ 허울뿐인 지식만이 남게 되거나, 적극적으로는 어떤 반대편의 주장, 어떤 다양한 생각도 인정하지 않는 ‘낙인찍기’의 도구로 변질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성인의 말씀’이란 허울 속에 교조화되고 전제화된 앎에 대해 이탁오가 얼마나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지 보자.

“만약 반드시 공자로부터 모든 것을 취해야 한다면, 천고 이전 공자가 없을 때는 끝내 사람이 될 수 없었단 말인가?”
“하늘이 한 사람을 태어나게 했으면 당연히 그 사람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폐기하고, 모두가 공자에게 복종케 하고, 그를 따라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하는가?”

이탁오 사상의 비판지점으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앎의 무용성이다.
이는 아마도 이탁오 본인의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그는 어릴 때부터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 추위 속에서 살아야 했고, 말단 관리 생활 가운데 뇌물이나 청탁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급기야는 3남 4녀 중 딸 하나를 남기고 모두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떴으며, 특히 둘째 딸과 셋째 딸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비극을 맞았다.
(칼 마르크스와 무척이나 비슷하지 않은가!!!!!)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그에게 현실 생활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앎은 단지 화려한 언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기존 지식을 달달 외워 출세한 관리들의 무능함과 부정부패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입으로 ‘인의’와 ‘도덕’을 내세우는 자들은 오로지 입만 살았을 뿐,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 한끼 해결해 주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을 실제 몸으로 겪은 이탁오는 철저하게 ‘공리주의’ 입장에서 허울뿐인 도덕론을 공격한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이 인륜이요 만물의 이치이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을 제외한다면 인륜도, 만물의 이치도 없다.” 
“‘천리(天理)를 보존하고 인욕(人慾)을 억누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입고 먹는 것을 떠나 ‘인륜 물리(人倫物理)’가 어떻다는 둥 논하는 것은 바로 세상을 속이고 명성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기존 지식의 무용성에 대한 비판은 무능한 관료집단 및 지배집단인 향신(鄕紳)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주희의 주장대로) 하늘이 곧 이라고 치자(天卽理).
그러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은 바로 ‘이(理)’에 제사 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理)’는 사람마다 똑같이 지니고 있는데, 왜 오직 황제만 ‘이(理)’에 제사 지낼 수 있다는 것인가? 일반 백성은 왜 ‘이(理)’, 즉, 하늘에 제사 지낼 수 없나?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은 국가의 대규모 제사 규범으로 백성의 재산을 크게 축내고 백성의 노동력을 동원한다.
만약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이 곧 ‘이(理)’에 제사지내는 것이라면, ‘이(理)’가 있는 것이 ‘이(理)’가 없는 것만도 못하지 않은가!”

황제는 곧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로 자처하던 시대.
지금 봐도 위험천만해 보이는 이런 주장을 이탁오는 당시 지배계급 앞에서 서슴지 않는다.
하늘이 있어 백성의 재산을 축내고,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라면 그 하늘은 차라리 없다는 것이 낫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대역죄에 해당할 위험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이탁오를 위해 변호하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그를 ‘극단적 개인주의자’, ‘이기주의자’로 보는 입장이다.
이런 비판의 근거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자기의 길을 고집하는 것, ‘자기를 위하는 것’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비판은 이탁오의 주장 표면만을 파악한 것이다.
사실 유교 문화가 뿌리내려 온 중국 사회는 줄곧 사회 질서를 강조하여 개인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나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은 사회 질서를 위한 윤리 관계 내에서 생활하면서, 이 관계 준칙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천리에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윤리 관계라는 것이 공공연한 불평등원칙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 질서를 수호하고 조화와 안정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오직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여기서 개인은 ‘낮은 지위’, ‘억압받는 지위’에 있는 개인이란 점이 문제이다.
부모관계에서 (부모가 아닌) 자식, 군신관계에서 (군주가 아닌) 신하, 부부관계에서 (남편이 아닌) 아내, 형제관계에서 (형이 아닌) 아우,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관리가 아닌) 백성이 희생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군주, 부모, 남편, 형, 관리의 압박을 순종하며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윤리 관계와 사회 질서 뒤에 숨겨진 논리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지향’은 실상 엄청난 허위성과 잔혹성을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 길을 가는 데 힘쓴다”는 이탁오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그의 개인 본위와 개인 행복 지상주의는 현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며, 억압하고 지배하는 자들에 대한 대담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탁오의 주장은 윤리 본위와 ‘사회 지향’의 유교 국가에서 부처와 노자보다 훨씬 파괴력을 지닌 이단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탁오 평전]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했던 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009년 대한민국’에 그의 비판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의 비판을 거울 삼아 우리나라의 정치, 현대사, 학계의 모습을 비추어 보라.

앎과 사상의 독점은 우리 사회에서 무수한 ‘공산주의자’와 ‘빨갱이’를 양산해 왔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인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교묘히 자극함으로서
지배층의 이해관계에 상충되는 주장에 대해 붉은색을 덧칠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한반복되고 있는 전략 아닌가.
이들에게 좌파란 말그대로 중도를 기준으로 한 진보적 집단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라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식의 감정적 반공의식에 호소하여 타도해야 할, 국가와 민족의 적(敵)일 따름이다.
때문에 이런 ‘빨갱이’들의 위협 앞에서 개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의 자유와 권리는 간단하게 무시된다.
지금 정부는 ‘실용’이라는 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지만,
그 실용의 열매는 과연 누구의 배를 불리고 있으며, 살아갈 공간 한 뼘조차 얻기 힘들어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답으로 돌아오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탁오 역시 그가 살고 있었던 종법적 봉건제도라는 시대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좌충우돌식 강단과 고집은 인간관계에 서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가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나 공화정을 지향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백성을 가난에 빠뜨린 원인이 사상의 독점에서 나온 무용지물에 불과한 지식과 지배층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원인 진단과, 실질적이고 다양한 앎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종법적 봉건질서가 지배하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탁오는 지금부터 400여년 전, 우리나라도 아닌 중국(명나라)에서 살다 간 사람이었다.
그 때의 주장이 지금 우리 사회에 적용되어 수많은 ‘21세기 한국의 이탁오’를 양산하고 있다고 본다면, 이건 나의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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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 :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 샘깊은 오늘고전 10
방현희 지음, 김태헌 그림 / 알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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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표류한 일에 대한 기록’이란 의미의 표해록(漂海錄).
이 책은 지금부터 500여년 전인 1488년 ‘최 부’라는 조선 선비가 제주도 인근 바다에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중국 남부 해안 지역까지 표류한 후 천신만고 끝에 강남 지역과 북경을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6개월의 일을 기록한 책이다.

알마에서 ‘샘깊은 오늘 고전’ 시리즈로 펴낸 [표해록]은 완역본은 아니며,
대체로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생 정도의 독자들에게 적합하게 다듬어져 있다.
물론 아이들 대상의 편집본이라고 하여 그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당시(조선 성종 연간) 주위 세계와 성리학적 세계관,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조선 선비의 인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성인들이 읽어도 당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 자신에 대한 제어력을 잃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 최 부는 몇 차례나 생사의 갈림길을 넘어들면서도 스스로를 다잡고, 조선 사대부로서의 기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마음이 급박한 상황에서 풍랑을 만나 생사가 위태롭던 상황,
겨우 중국 땅에 당도하여 위기를 넘기나 싶더니 해적을 만나고,
중국 군사들에게 왜구로 오인받아 목이 날아갈 뻔한 상황.
지금처럼 통신시설이 발달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역만리 떨어져 기약없이 돌아갈 날만 기다려야 할 상황.
이렇게 그는 바다에서 생명을 건졌다 뿐이지, 그 생명을 지탱해 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그는 침착하게 일행을 이끌어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기지와 순발력을 발휘하여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태도를 보여 중국인들로부터 감탄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나는 [표해록]을 보면서 최 부란 한 선비로부터,
아니, 최 부로 대표되는 조선전기 사대부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역시 생사가 급박한 바다 위에서 보여준 놀라운 판단이다.
풍랑과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일행은 마실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상태에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모두 탈진 상태에 이른다.
이 때 나온 귤 몇 개!!!
최 부는 관리라는 입장에서, 지배계층(사대부)이라는 입장에서 이 귤을 독식했을까? 배에 탄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우리들은 모두가 한 나라 사람으로 그 정은 한 핏줄과 같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
이 귤과 술은 한 방울이 천금과 같으니 네가 이를 맡아 배에 탄 사람의 절박한 목마름을 풀어주는 것이 좋겠다.”

그는 이 소중한 귤의 사용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고,
‘입술이 타고 입이 마른’ 심각한 상태의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만 남은 상황에서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니...
만약 그가 자신의 계급적 우위를 주장하여 귤을 독점하여 하였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작은 배위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발생하여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장면은 수차(水車)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 부는 북경을 향해 가면서 갑자기 동행한 중국 관리에게 수차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물이나 퍼올리는 수차에 선비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몰라 묻는 관리에게 답하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나라는 논이 많은데 자주 가뭄이 든다오.
만약 수차 제작법을 배워 우리 백성에게 가르쳐 준다면 농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마치 그로부터 300여년 후에 나타난 실학자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당시 사대부로서는 놀라운 성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관리 역시 수차에는 문외한이었던지 ‘형태와 돌리는 방법을 대략’ 듣기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이런 것이 조선 전기 사대부들이 가졌던 기본 소양이고 자신감이었나 보다.
아쉽다면 이런 진취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사대부들의 소양이 그 직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연산군 치세부터 일어난 사화는 사대부들의 건전한 성장과 진출을 막았고,
(최 부 역시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끝에 처형당했다)
그 직후 일어난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성리학 일변도의 이념만이 강조되어 새롭고 진취적인 풍토의 진작은 이단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표해록]을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겹친다.
조선 초기 훈구파의 실용적이면서도 우리 문화에 대해 가졌던 자신감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사림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어 ‘실사구시’와 ‘지조’가 함께 살아숨쉬는 조선사회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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