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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이빨 1
제이디 스미스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아기들이 태어나서 잘 자라다가 어느 때가 되면 밤에 자다가 갑자기 깨어 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가 돋아나는 아픔 때문이라고 한다.
살갗에 가시만 하나 박혀도 불편하고 아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갓 태어난 아기의 입속 생살을 뚫고 딱딱한 이빨이 나고 있으니 얼마나 아프고 불편하겠는가.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은 제목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풍기지만,
마치 새로운 이빨이 돋을 때의 아픔과도 같은 소설이다.
[하얀 이빨]은 런던의 준빈민지역에 거주하는 두 가족, 즉, 영국인 아치 존스와 그의 전우인 방글라데시인 사마드 익발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치 존스는 자메이카 출신의 클라라와 결혼했으니 소위 말하는 ‘국제결혼’을 한 셈이며, 사마드 익발은 멀고먼 방글라데시에서부터 런던까지 흘러들어왔으니 ‘이민1세대’인 셈이다.
이야기는 이들이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었고, 또 어떻게 각자의 아내들과 만나 결혼했으며, 각자의 자녀들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그리고 있다.
인간의 오만함과 신의 뜻에 따른 바벨탑의 혼란이 원인이 되었든,
아니면 지리적인 산맥과 강, 바다로 가로막힌 환경의 제약조건이 되었든,
어쨌거나 인류는 유사한 정서와 언어, 생활공간을 지닌 사람들끼지 공동체를 형성해 왔고, 그 공동체만의 문화적 특수성을 발달시켜 왔다.
이제 전세계가 melting pot처럼 하나의 공간화, 지구촌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 이들 공동체 간의 화합과 공존은 마치 가지런한 치아가 신체의 건강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인류 전체의 건강함을 담보하는 일차 조건이 된다고 하겠다.
다문화사회의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어떻게 해서든 적응하며 먹고사는 문제에서만 그치지 않고 매우 복합적인 갈등구조를 가진다는 데에 있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사마드 익발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위하여 싸웠고, 그래서 ‘영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런 자부심은 영국 백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된다.
또한 그는 스스로를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 판디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어떤 경우에라도 이슬람의 전통과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고향 회귀적’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사마드 익발은 가족 내에서도 세대간 갈등이라는 수직적 갈등을 경험한다.
이민 1세대인 아버지세대와 2세대인 자녀세대 사이에는 세대차이라는 보편적 간격과 함께 전통의 고수 대 새로운 문화로의 흡수라는 문화적 간격을 동시에 내포한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자신의 뜻과 전통의 힘에 따라 살아가길 바라지만, 이미 새로운 사회의 문화로부터 세례를 받은 아들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식에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고 부모세대들에 반항한다.
결국 사마드 익발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슬람 전통에서 멀어지는 두 아들 마기드와 밀라트는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다.
고급스러운 서양문화에 젖은 마기드와 서양의 밑바닥 문화를 경험한 밀라트 역시 형제 사이의 우애는 저버린지 오래이다.
런던에서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몰라도 차별의 세대 유전과 가족의 해체는 사마드 익발의 정체성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작가인 제이디 스미스는 이 과정을 톡톡 튀는 언어로, 때론 유쾌해 보이기까지 하는 분위기 속에 그리고 있지만, 그 웃음에는 씁쓸한 고통과 절망, 한탄과 한숨이 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사마드 익발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생존을 위하여 이민의 길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경제적 자리는 잡았으나, 가족 내의 이민 1세대, 2세대, 3세대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우리의 교포 사회.
한국 사회 속에서 3D 업종에 근무하나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는 현실 앞에서 모든 면을 차별당하며 울분을 참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사회.
무슨 이유에서건 한국 사람과 결혼하여 이 땅에 들어와 민족적 차별과 여성의로서의 차별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아파하는 사회.
어떤 지역은 거주 외국인들로 인하여 슬럼화되어 가고 있지만, 또 어떤 지역은 외국인들의 고급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선 사회.
무엇보다 수도 한 복판과 전국 곳곳에 외국인 군대가 들어와 있고, 그들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
소설의 배경인 영국의 다문화 사회는 19세기 제국주의와 식민화 정책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미국의 다문화 사회 형성 역사 역시 흑인 노예의 역사와 아시아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이주민들의 이주/생존의 역사와 상당 부분 일치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 방식으로 다문화사회의 역사를 써나갈 것인가.
이제 막 새로운 이빨이 나오려는 아픔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가지런하고 조화로운 치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아류 제국주의’로 흐르지 않았으면 한다.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의 고통을 누구보다 아프게 겪은 우리 민족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온갖 차별을 받아왔던 우리가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 위치에 올라왔다고 하여 지금의 우리보다 열등해 보이는 다른 민족과 사람들을 차별하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진다면 이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잊은’ 모습일 뿐이다.
예전에 나는 흑인과 백인 아이들이 함께 손을 잡고 걷고, 함께 노래 부르는 세상을 꿈꾸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무척 감명깊게 읽었다.
또한 백범 김구 선생님이 [나의 소원]에서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라는 대목에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기는 백범 선생님이 원하셨던 대로,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우리 민족과 다른 민족들이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