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 효종.현종실록 - 군약신강의 나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아끼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권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만화라고 무시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나온 조선왕조에 대한 어떤 입문서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에 빠져서 IMF로 어려웠던 시절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사료와 씨름한 작가의 마음가짐과 준비한 공력 때문일 것이다.

이번 13권은 조선의 16대, 17대 왕이었던 효종과 현종실록을 다룬다.
이 두 왕은 ‘북벌(효종)’과 ‘예송논쟁(현종)’이라는 뚜렷한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실록과 기타 사료를 검토하고 난 후 효종의 북벌이 실제로 추진되었다기 보다는 하나의 구호적인 성격과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효종은 군사에 관심이 많았고, 다양한 군사제도의 개혁을 주도했다.
그러나 효종의 군사개혁은 청을 정벌하려는 목적이라기 보다는 침입이 있을 경우 임진왜란 때와 같은 장기항전 및 게릴라전을 염두에 두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효종이 북벌을 표방한 것은 적장자였던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이후 효종이 평생동안 낙인처럼 지니고 있던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송시열을 중용한 것도 역시 당대 주류 사대부들인 산림(山林) 세력의 지지를 얻어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다분히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고 보고 있다.

현종 당시의 예송논쟁은 이후 숙종에서부터 정조시기까지를 관통한 ‘당쟁’이 본격화된 사건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예송논쟁은 왕이 직접 당쟁의 중심에 서서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시도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현종대의 예송논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효종과 그 왕후가 죽은 후 입어야 할 상복의 기간을 두고 치열한 예학의 해석논쟁과 더불어 일어났다.
하지만 작가도 지적하듯이 상복을 입는 기간은 전시대에도 온갖 편법이 난무하였던 문제였고, 또한 각 당파의 주장에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점에서 논쟁의 결과가 완전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되어 버린 예송논쟁은 분명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효종의 북벌과 현종의 예송논쟁은 이제는 조선사회에서 왕권에 대한 신권의 우위가 돌이키기 어려운 대세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태종이나 세조, 연산군이 노력했던 신권을 지배하는 왕권이나 세종이 노력했던 왕권과 신권의 조화와 균형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왜란과 호란, 인조반정 등을 거치면서 나타난 왕권의 무력함과 및 간관제도와 상소로 대표되는 성리학 사상으로 무장한 산림세력의 자신감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대를 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시점에서 보수회귀와 근본주의적 편협함이 나타났고, 종국에는 이것이 국력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왕권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대부 지배체계 역시 무력함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는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였고, 그런 점에서 서서히 의식과 물질기반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중소상인들과 일부 농민들의 역할이 중요해 지는 시기였다.
하지만 결국 이 시대의 흐름은 ‘소중화(小中華)’를 강조하고, 경전의 문구 하나에 치중하여 상대편을 몰락시키는 보수적 근본주의로 회귀하고 말았다.
청나라는 서양 각 국가들과, 일본은 네덜란드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화로의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조선은 중화중심를 심화시켜 가고 있었다.
이제 당쟁은 건전한 붕당정치라기 보다는 문구 하나하나로 꼬투리를 잡아 ‘너죽고 나살기’ 방식의 양상으로 바뀌어 갔다.
조금만 더 융통성을 가진 지배체제가 이루어졌더라면, 수권 집단의 타협이란 새로운 정치문화가 창출되었더라면, 기층 민중들의 의식이 좀 더 각성하였더라면 하는 등등의 생각을 가져보지만....
결국 역사에서 가정이란 하나의 결과론이며 아쉬움의 표출 이상이긴 어려운 것 같다.

다행이었다고 느낀 점은 김 육과 같은 정치인이 있어서 ‘대동법’이라는 민중중심적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졌다는 점 정도일까.
그나마도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전국적인 실행은 그 후로도 한참 후인 숙종 시대나 되어야 하니, 더욱 답답함을 느낄 뿐이었다.

이제 현종의 시대까지 가고, 아마도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장 많은 소재가 되었을 ‘장희빈’이 등장하는 숙종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예송 논쟁을 통해 지배계급의 주류였던 서인 세력과 만년 야권이었던 남인 세력의 본격적 다툼이 시작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당쟁을 통해 당시 조선의 지배계급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영조/정조시기에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다음 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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