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기사 제대로 읽는 법 - Health Literacy
김양중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몇 년간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통로가 갖추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정보 접근능력과 정보 생산능력은 몰라보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소비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용자에게 친화적으로 바뀌어 가는 전반적인 사회흐름에도 불구하고 공급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영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의료이다.
사실 병원과 의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환자도 의사의 사소한 처방 하나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며,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수많은 정보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료현장에서 소비자의 목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가?
더 나아가 어째서 소비자가 접하는 의료 관련 정보에서 왜곡이 발생하는가?
저자는 이와 같은 왜곡의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정보 수집 및 제공과 해석 과정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정보 오류(information bias)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우리나라 암환자들의 상병 특성과 건강보험체계를 고려하지 않고 전체 암환자의 생존을 비교하여 의료체계의 우수성을 평가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라거나,
특정 병원의 내원 환자 정보가 마치 전체 환자의 정보인 것처럼 보도되거나,
정보의 원천이 기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응답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수집되거나 하는 것이 이런 오류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들은 사실 아차하여 저지르는 실수일 가능성이 높고, 때론 큰 악의(?)를 가지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고치는 수준에서 관대하게 넘어갈 수도 있겠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원인인데, 이는 정보 제공자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부각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하여 사소할 수도 있는 질병을 과장하거나,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의 기준을 낮추어 의약품 및 서비스 판매를 촉진하거나,
폐경이나 탈모 등 과거에는 질병이 아닌 것들도 ‘질병화’ 시킴으로써 이들로 하여금 의료서비스를 더욱 많이 이용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특정한 의도에서 발생하는 왜곡은 공공재(public good)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할 의료가 사적 이윤의 대상으로 취급된다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책의 저자 역시 이와 같은 의료의 영리화와 상업화를 무척이나 경계하고 있다.
특히 현재 정부가 ‘의료의 선진화’를 이야기하면서 영리의료법인의 허용, 의료채권을 비롯한 의료기관 수익구조의 다변화 등의 일련의 정책도입을 통해 의료 현장에 시장과 자본의 논리를 적용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저자의 논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business-friendly를 이야기하고, ‘규제완화’가 마치 지상과제인 것처럼 주장되고 있으나,
과연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가 영리보장과 규제완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최고의 의료수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국민의 건강수준은 떨어지는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특히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질병이나 사고의 위협은 상위 계층의 사람들보다는 취약 계층의 사람들에게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치명적으로 나타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70%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직도 가족 중 1명이 중증질환자라면 모든 가계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에서 우리 의료체계의 우선과제는 ‘영리화’ 보다는 다른 것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점은 건강은 물론 객관적인 신체 현상의 하나일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푸코의 주장처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측면이 강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건강하다는 것을 우리 몸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의학에서 개발한 숫자들의 정상범위 안에 들어왔느냐 여부를 가지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정상범위도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라고 하는 의료인들에 의하여 정하여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정상범위 안에 있어야만 건강인가?
예를 들어 정상혈압이 120/80이라고 한다. 그럼 내 혈압이 125/85라면? 나는 ‘비정상’이고, 나는 ‘환자’인가?
정상혈압의 범위를 조금만 낮게 잡아도 관련 의약품의 매출량은 그에 연동되어 요동친다. 그렇다면 우리의 건강이란 기준을 누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월경과 폐경 등은 오랜 옛날부터 여성들에게 특수하게 일어나는 하나의 병리적인 현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페미니즘을 비롯한 사회구성주의자들은 이것이 남성중심 의학이 규정한 여성의 몸에 대한 지배와 질병규정이라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어쨌든 [건강기사 제대로 읽는 법]을 통해 건강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실재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성과였다.
그 안에는 전통적인 인술(仁術)의 논리 뿐만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서부터 전근대적인 권위의 논리까지 다양한 논리가 들어 있다.
누가, 어떻게 건강을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건강의 기준은 달라지고, 그에 따른 정책의 우선순위도 달라져 왔다.
결국 우리가 우리 몸의 주체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여여 함은 물론이고,
건강을 위협하고, 우리 몸의 주체성을 왜곡시키는 사회적 요인에 제대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이제 이런 몸의 주체성 회복 노력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시작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