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2 로마제국 쇠망사 2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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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업식에 가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표현을 많이 듣게 된다.
로마제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야말로 저 표현에 가장 걸맞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치적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두 가지인데,
비잔티움으로의 천도(콘스탄티노플 건설)와 밀라노 칙령을 통한 그리스도교 공인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전의 로마제국과의 단절, 즉, 끝을 의미하면서 이제 로마제국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을 잡아 나갈 것이라는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길이 통하던’ 로마를 떠나 철저하게 황제가 계획한 도시(비잔티움)로 천도했다는 사실은
로마인들이 기억 속에서나마 긍지로 삼고 있던 ‘과거의 로마’와의 완벽한 결별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밀라노 칙령은 누구에게나 종교선택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일견 로마의 다신교적 전통과 관용적인 종교정책의 실현에 충실한 것 같이 보이지만,
황제 자신도 그리스도교도로 개종(엄밀한 의미에서는 이용)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칙령의 실질적 혜택은 그리스도교에 주어졌다.
그리스도교는 박해받던, 또는 천덕꾸러기였던 신세에서 벗어나 세계 전체를 호령할 수 있는 날개를 단 셈이다.
콘스탄티누스 치세의 로마제국은 이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전의 전통과 사뭇 달라진 길에 들어선 것이다.

2.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전임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 전체를 4분하여 각 지역에 황제를 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외적의 침입이 잦던 시기에 넓은 땅덩어리를 ‘지역방어’하는 체계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대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권력분점은 내부에서 붕괴될 위험이 높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체계이기도 했는데, 황제끼리 반목하거나, 야심만만한 황제가 여럿 등장했을 때 내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이 바로 이러한 약점을 통해 생존했으며, 또한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무수한 위기를 넘긴 끝에 재통일에 성공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새로운 수도의 건설은 분산된 황제의 힘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 위한 노력의 결정체였다.
이제 그동안 형식적이나마 남아 있던 ‘로마 공화정체’, 즉, 로마의 시민권을 존중하거나 원로원의 의견을 묻는 최소한의 절차조차 사라졌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비잔티움이 이웃하였던 페르시아의 군주가 그랬던 것처럼 한 명의 ‘전제군주’로서 재탄생한 것이다.

고대 로마의 자유에서 비롯한 미덕의 외형조차 잃게 되자, 간소함이 특징이었던 로마 예법은 어느덧 아시아 궁정의 위엄 있는 겉치레로 전락했다. 공화정에서는 개인의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매우 두드러졌지만, 군주제 아래에서는 미약하고 모호해지면서 황제들의 전제 정치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황제들은 개인 능력 대신 왕실의 노예로부터 전제 권력의 미천한 앞잡이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직위에 따른 엄격한 종속관계를 도입했다. (p.17)

물론 이렇게 군주 한 명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한 체제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발휘하던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는 전제적 지배체제가 의도했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그의 사후, 능력면에서나 품성면에서나 그에 미치지 못한 황제들과 환관들(나라망친 환관들은 중국에서만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의 전제적 지배는 로마제국을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된다.

3.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대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위대한 황제로 대접받는데,
사실 이러한 평가는 그의 정치적 업적 보다는 '그리스도교의 공인'이란 종교적 업적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밀라노 칙령 자체는 관용적이면서도 로마의 전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누구도 그 신앙으로 인해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종교의 자유는 양심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와 함께 개인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용인 그 자체야 욕먹을 일이 아니겠으나,
문제는 황제 스스로가 그리스도교의 보호자로 자처하면서 실제 현실에서는 종교간 평등이 아니라 다신교가 억압받는 종교간 차별 상황이 연출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그리스도교도들은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황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반대방향으로 동일하게 작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의 아들이 통치하던 시대.
소위 ‘이교도’들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으며,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은 원래 주인을 찾아 준다는 명목아래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넘겨졌다.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의 소위 ‘삼위일체’를 둘러싼 그리스도교도들의 격렬한 논쟁은 국론의 분열과 속주간 반목‧대립이라는 해악만을 끼쳤을 뿐 로마제국 입장에서 엄밀히 말하면 아무런 실익도 없는 것이었다.

후대의 폭군들은 오랜 치세동안 무고한 자들을 무수히 죽여도 재생의 물, 즉 세례를 통해 순식간에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이리하여 종교의 남용이 도덕의 토대를 심각하게 위협하게 되었다. (p.176)

종교적 관용의 대헌장인 밀라노 칙령은 로마제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고 신봉할 특권이 있음을 천명했으나, 이 귀중한 특권도 얼마 안 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황제는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함께 박해의 원칙까지도 받아들였으니, 가톨릭 교회와 의견을 달리하는 종파들은 그리스도교의 승리로 고통과 억압에 시달리게 되었다. (p.195)

기번은 이 지점에서 또 한 명의 로마 황제를 등장시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대비시킨다.
그가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조카인 율리아누스 황제이다.
콘스탄티누스에게 ‘대제’라는 영예로운 별칭이 붙은 것과 반대로 율리아누스에게는 ‘배교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따라 다닌다.
물론 이 ‘배교자’라는 별칭은 철저하게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개념이다.
로마제국 이후 서양세계를 지배했던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이교의 부흥과 다신교적 전통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율리아누스 황제는 아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으리라.

율리아누스 황제는 제위에 오르기 전 그리스 아카데메이아에서 학문을 닦았고, 그리스-로마신들에 깊이 천착하여 신앙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종교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로마의 전통을 되살리려 하였다.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과거 로마 공화정이었으며, 이상적인 종교는 다양성을 가진 다신교였던 것이다.
물론 율리아누스 황제의 시도는 실패했다. 페르시아 원정에서의 뜻하지 않았던 전사와 그의 뜻을 계승할 후계자의 부재는 율리아누스 황제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4.
기번이 기술한 두 황제의 대조된 배치는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번 역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 아닌가 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콘스탄티누스=위대함>, <율리아누스=배교자>란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이 평가속에는 로마제국 부흥의 명예는 콘스탄티누스에게, 쇠망의 책임은 율리아누스에게 돌리는 의도가 엿보인다. 과연 이 평가는 정당한가?”

[로마제국 쇠망사] 제1권에 대한 서평에도 그런 말을 적은 바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로마제국 쇠망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솔선수범하고 진취적이던 로마시민의 가치관이 타락한 것에 있으며, 대제국에 걸맞지 않는 관용과 포용정신의 쇠퇴를 그 다음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정상적인 로마였다면 게르만족이나 고트족 등 외적의 침입에 좀 더 합리적인 대책을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자비를 들여 스스로 무장하고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앞장서 종군하는 로마시민군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면, 그들은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자신들의 안전을 송두리째 맡겨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거다.

로마 군대의 야만족 수용은 날이 갈수록 일반화되고 불가피해졌으며,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p.36)

문제는 이런 자발적 정신의 타락이 당시 로마제국의 종교와 악순환의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점이었다.
기번은 이 때의 ‘악순환’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고 보고 있는데,
첫째는 로마 황제들의 표면적인 종교관용정책에도 불구하고 실제에서는 종교차별로 나타난 비관용과 불포용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나 율리아누스 황제 모두 표면적으로는 관용적인 종교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절대군주제에서 황제 자신이 어떤 종교를 신봉한다는 것 자체가 제도적 평등에서 현실적 차별을 유발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에 집중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나 로마 다신교를 신봉한 율리아누스 황제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과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즉, 자신의 종교의 절대성과 타종교에 대한 교묘한 탄압이 어우러진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 종교가 로마제국에 가져온 악순환은 사치와 낭비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은 예외없이 사치와 향락, 낭비를 일삼았다.
철인(哲人) 황제와도 같았던 율리아누스 황제조차도 자신이 신봉하던 종교행사에 대해서만큼은 아낌없이 국가의 부를 쏟아부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황제 본인과 궁정의 관리들, 그리고 황제가 총애하던 성직자들(그리스도교 주교는 물론 로마 다신교 신전의 사제들까지)의 사치는 모두 근면한 농민들의 희생에서 나온 것이었다.

율리아누스는 엄격하게 근검 절약을 실천했으나, 종교의식에는 세입의 상당 부분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신들의 제단에 바치기 위해 먼 지방에서 희귀하고 아름다운 새들이 끊임없이 수송되어 왔으며, 하루에 백 여 마리의 소가 율리아누스의 손에 희생되는 일도 흔했다. (p.322)

따라서 기번이 보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율리아누스 황제를 선악의 화신처럼 대비시켜 왔던 당시 가톨릭의 관점은 그야말로 ‘웃긴 농담’이며 편파적 평가일 뿐이었다.
오히려 기번은 상당 부분 율리아누스 황제야말로 ‘조국을 사랑하는 자이며 세계의 황제가 될만한 자(p.304)’라고 인정한다.

5.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비잔티움 천도에서 시작된 [로마제국 쇠망사 2]는
율리아누스 황제 시대를 거쳐 또 한 명의 위대한 그리스도교 황제로 일컬어지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등장으로 마무리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그리스도교를 인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국교’로 격상시킨 인물.
따라서 이제 로마제국에서 다양성에 대한 포용은 찾아보기 어려운 미덕으로 전락해 버리고 ‘정통’의 자리를 다투는 분파적 파벌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질 거란 예상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빈사 상태에 빠진 로마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리고 그 대응에도 왜 로마제국은 쇠망을 피하지 못했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3권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이다.


뱀다리
[로마제국 쇠망사 2]의 책이 가지는 흐름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는 지적일 수 있으나,
기번이 가진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은 반드시 제기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 시각을 드러낸 부분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극단적으로 나타난 다음과 같은 부분을 인용해 보겠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에서 승리하고 그곳의 궁전을 불태운 사건에 대한 평이다.

그러나 이처럼 함부로 저질러진 파괴행위에 대해 우리가 동정하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인 예술가의 손으로 완성한 단순한 나체 조각상 하나가 야만족들의 노동으로 빚어진 이 모든 조야하고 비싸기만 한 기념물들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p.378)

물론 이와 같은 역사인식은 당시 서구사회에서 일반적인 의식이었을 것이고,
기번 역시 이러한 시대정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그렇지만 역사가로서 그의 자세는 로마 제국의 쇠망 과정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만큼이나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반면교사의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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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
문부식 지음 / 삼인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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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메마른 성정을 소유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문부식 씨가 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을 읽으면서 며칠을 끙끙 앓아야 했다. 펑펑 울어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앞쪽의 글들은 저자의 성찰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지만 뒤쪽 부분들, 서 승, 윤이상, 김경환에 대한 글에 이르러 코끝이 찡했다.

보통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은 신파조의 소설 아니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감동의 휴먼스토리’ 정도 되겠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패배의 기록이며, 불꽃같았던 시대를 온 몸으로 헤쳐온 한 지식인의 자기반성의 책이다. 패배와 반성의 책이 메말라 있던 내 심정을 자극한 이유? 첫째, 나는 이 책에서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과거 386세대의 고백’이 아니라 진지하면서도 뼈를 깎는 자기성찰의 솔직함과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둘째, 이 책이 패배의 기록은 되어도 결코 절망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한 그러했다.

신문지상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무수히 많은 사람의 변절과 변신을 보았다.
김지하, 박노해, 김영환, 이재오, 김문수... 혹자는 생명에 대한 경외로 방향을 잡았고, 혹자는 ‘주체사상의 선구자’에서 ‘주체사상 공격수’로 바뀌었고, 혹자는 민중당이라는 한국 정치지형의 극좌파(?)에서 보수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정치적 색채를 바꾸었다.
좋다. 나는 변화를 믿는다. 그래서 인간의 변화도 믿고,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과 이념도 마땅히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에게 “절망은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묻고 싶다. 저자의 말대로 “절망은 패배한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굴절된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것과 단절하거나 반성하는 것이 어떻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 행위가 패배를 넘어서는 인간의 솔직함을 보여주기 보다 권력지향적으로 굴절된 것이라는 데에 있다.
변절과 변신이 회자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한사회변혁운동의 아이콘’들이었다. 그들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었던 위치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말 그대로 ‘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비판과 반성이 위치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권력자들 앞인가, 아니면 그들을 믿고 그들 주위에 모였던 ‘동지들’의 앞이어야 하는가?
진정한 반성은 그가 어느 길로 가든지 사상과 이념의 동질성을 떠나 박수를 보내주고 격려의 말을 건네게 한다. 하지만 반성이란 것이 주위의 사람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기억까지 모욕하는 것이라면 그건 반성이라 할 수 없다. 그건 허위로 가득찬 말장난일 뿐이다.

2.
나는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1995년 가을은 뜨거웠다. 취업준비로 바쁜 도서관의 복학생 형님들까지 거리로 불러낸 당시의 구호는 “광주학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바로 그거였다. 그리고 그 외침이 결실을 맺어 특별법 제정이 발표되는 날, 우리는 감격했다. 새벽에 경남 합천 고향집에서 수사관들에게 양팔을 잡혀 끌려 나오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가슴후련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두 전직 대통령과 학살 관련자들의 재판과정을 보면서 오히려 혼란에 빠져버렸다. 문부식씨도 같은 점을 지적하는 걸 보니 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뭐냐하면 두 명의 ‘학살 주범’을 재판정에 세우고 사형언도까지 받게 한 건 좋다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누구도 그들이 진짜로 사형을 받게 될거라고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판결을 내린 판사도, 구형한 검사도, 변호사도, 일반 국민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진정으로 죄값을 치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법정에 세운 것으로, 얼마간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그나마 그들은 감옥에서도 특급대우였다) 그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국민의정부라던 DJ정부는 그들을 사면했다. 그리고 그들은 현직에서 횡령한 돈으로, 그리고 단돈 29만원만 가지고도 지금도 잘 산다.

왜? 과거와의 화해와 국민통합 때문에? 거리에서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 수업도 거부하고 화염병까지 투척하며 나섰던 사람들은 그 현실 앞에 왜 침묵했나? 적어도 법적, 정치적으로 면죄부를 받은 그들에게 이제 누가 광주의 책임을 지라고 말할건가?

나는 그 대답을 모르겠다. 왜 그들이 사면받을 때 우리는 침묵했는가? 사면조치를 내린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영광을 얻은 정부를 우리는 부정할 수 없어서? IMF 경제위기로 먹고 사는 것이 더 큰 문제라서? 아니면, ‘이 정도로 그만 되었다. 광주 시민들의 명예도 회복된 셈이고, 5.18묘역도 국립묘지가 되었고, 이제 그만 잊고 그만 용서하자.’ 이런 국민적 합의가 있어서?

5.18 광주가 관련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여러 가지로 듣게 된다. 희생자와 그 가족은 물론이고, 진압작전에 참가한 일부 공수부대원들도 대인기피증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들에게 5.18은 현재진행형이다. 1980년 5월 18일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겠으나, 그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역사적, 사회적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린 그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기억함]에서도 몇 차례 언급되는 영화이기도 한데, 영화관과는 원래 거리가 먼 내게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이 작품을 영화관에서 두 번 보고, 비디오로도 몇 차례 더 보았는데, 볼 때마다 역사가, 그리고 국가가 어떻게 개인을 옥죄면서 망가뜨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순수했던 한 청년으로 하여금 결국에는 달려오는 기차에 정면으로 마주설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극점에 이르렀던 1979년 구로공단과 그렇게 이루어 놓은 천민자본주의의 사망선고였던 1999년의 경제위기는 결국 한 길일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개인 역시 한 쪽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되었다. 전체주의 사회가 무엇인가? 하나의 사상, 하나의 이념적 잣대하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하나가 되어 달려가는 것 아닌가? 그 속에서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뭔가 반대하는 사람은 부적응자로 생각하여 배제하는 것이 전체주의 아닌가?

그런 점에서 <박하사탕>의 전체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기억함]에서 한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쓰여진 이 글이 2010년 현재 무엇을 말해주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전체주의 사회가 국가에의 통합을 거부하고, 상품 시장화에 저항하거나 혹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간을 철저히 배제하고 소외시켜 버린다는 데 있다. 고비용/저효율을 이유로 노동자는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그리하여 일자리가 귀할수록 그것이 노동하는 인간들에게 작용하는 포섭력은 강해지고, 실용적 가치가 인문적 가치를 몰아내고,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신지식인’이 지식인 일반의 무능력을 비웃는 사회, 모든 국가 구성원의 정신적 가치가 이윤과 결합되어 있고, 자신의 상품성을 광고하는 면접고사장 앞에 사람들이 언제나 늘어서 있고,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비판적 시민 의식을 거세당한 채 안락에의 자발적 예속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사회, 바로 이 ‘끔찍한 신세계’가 지금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아닌지. 한편 세계적 차원의 권력 중심부에서 오는 통합의 요구와 동질화의 메시지가 강할수록 정권 담당자는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 매달리게 되고, 종국에는 사회적 합의나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기피하게 됨으로써 내부로부터 그러한 가치를 지켜가는 힘을 잃고 제도적 절차만 남는 ‘민주주의의 안락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국가의 일체의 행위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 정신의 구축이 자기 이해관계를 떠나서는 좀처럼 구축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야말로 그러한 독립적 정신의 가치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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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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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죽음 이후에 되살아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죽기를 원하는 사람 역시 없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나 생명을 걸고 대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도 애초부터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자의 영혼은 그가 누구든 위로를 받아야 한다.
이 단순한 경험칙이 인류에게 종교와 제의라는 특수한 형식을 낳게 했다.

진중권의 [레퀴엠]은 전통적인 레퀴엠 가사를 이용하여 작성된 인간의 죽음에 관한 글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죽음에 관한 글이라기보다 ‘전쟁’에 관한 글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그는 왜 다양한 죽음 가운데 전쟁으로 인한 죽음을 다루었을까?
나는 전쟁에서의 죽음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첫째, 죽음의 규모가 대규모이다. 이런 특징은 쓰나미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대규모 참사와 사고로 인한 죽음에도 해당된다.
둘째, 재해나 사고로 인한 죽음이 ‘순간’에 일어난다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은 특정한 ‘기간’을 두고 일어난다.
이는 전쟁을 겪는 사회에서는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죽음이 일상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재해나 사고로 죽은 자들이 거의 모두 ‘피해자’인 반면, 전쟁에는 ‘가해자’가 존재한다.
이는 전쟁이 정치적, 사회적 현상으로서, 어떤 ‘의도’가 반영된 현상임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은 <정치적, 사회적 의도를 가지고 일상화되어 버린 대규모 죽음>이라고 하겠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첫 번째 대상자는 역시 전선의 병사들이다.
원해서였든 강제로였든 최일선에 나온 병사들은 적군이 아니라 사신(死神)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병사들은 전투가 끝나고 녹초가 된 몸을 참호에 누이면서 꿈에서만이라도 고향을 그리고, 가족들을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그린다.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의 노래로 불렸던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전쟁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해야 했던 가슴 아픈 경험과 재회의 소망을 담은 노래 <릴리 마를렌>은 원래 독일에서 만들어진 노래였으나,
그 경쾌한 음율과 가슴저린 노랫말로 모든 병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이 노래가 나오던 9시 55분은 서로 암묵적 휴전상태였다고 했다나...
<릴리 마를렌>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독일군 참호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반대편 영국군 참호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Please louder!"

그러니까 독일군이든 소련군이든 영국군이든 미군이든 그 어떤 병사라 할지라도,
그들이 ‘군복’이라는 송아지 가죽을 뒤집어쓰기 전에는, 그리고 그 가죽 위에 ‘국가’라는 뜨거운 불도장이 찍히기 전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이유가 전혀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기를 버리고, 군복을 벗고, 지옥같은 전선을 떠나 저마다 사랑하는 릴리 마를렌을 찾아간다. 비록 그 밤이 지나면 다시 사신(死神)의 끄나풀이 될 지라도.

전쟁은 또한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의 희생을 불러온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라도 전쟁은 ‘필요악’이 아니라 ‘절대악’이다.
2003년에 이라크를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바그다드를 폭격한 미군과 영국군 사령관들은 민간인 희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다. “어느 것도 완전한 해결책은 없다.”
아니... 해결책은 있었다. 핵무기가 있네, 대량살상무기가 있네 하는 증명되지 않은 명분을 갖다 맞춰놓은 전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 있어서 당시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의 파병요구에 응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이 결정은 개인적으로 참여정부에 실망하게 된 두 가지 사건 중에 하나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기존 정부들과 달리 대미관계에 있어서 자주성을 강조하였건만,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파병요구에 “국익을 위해서”라는 말로 응하였다.
‘이라크 민중의 해방’, ‘대량 살상무기 제거’와 같은 미국이 내건 명분이 허황된 것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결국 그들의 목적은 중동의 석유자원을 확보하고 친미 정권을 세워서 그 지역의 반미 국가들(특히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뻔한데, 거기에 생뚱맞게 우리나라의 국익이 왜 들어가는지...
혹시라도 전후 복구에서 떨어질 경제적 떡고물을 기대하며 ‘국익’ 운운했나?
민간인 사망자와 부상자의 참혹한 광경, 가족을 잃은 어린아이의 공포와 망연자실,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뽑혀진 그 곳을 보면서 돈 벌 궁리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지지했던 정부, 그래도 내가 표를 던져서 뽑은 정부는 우리가 가해자로 참여했던 베트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단 말인가?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안전한 황궁에 거했던 네로 황제는 그걸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겠지만,
로마 시민들은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우리는 네로 황제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 로마 시민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
파병 찬성 시위를 벌이며 ‘한미 혈맹’, ‘국익’ 운운하면서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이 남의 일인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생지옥에 가족을 둔 이라크인들은 초라하게 앉아 슬픔과 걱정으로 식사도 하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서야 했는가?

대량 살상에 가해자가 있으며, 가해자가 승리자가 되는 순간 그가 행한 가해는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것도 전쟁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프랑스 정치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자면, “오늘날 전세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유일한 위협은 오직 미국 자체다” 맞는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두려운 이유는 그 원칙이 언제 어느 때고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과 이라크를 비롯한 세계 각처에 엄청난 폭탄을 떨어뜨렸던 미군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정치적 실체가 한반도 북쪽에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정말정말 웃기는 일이 일어난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부시 대통령이나 미국인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Pax Americana를 부르짖을 수 있다고 인정하자.
하지만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걸핏하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한미동맹 강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외치는 한미동맹교 교주와 신자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온갖 도덕덕 정당성을 부여하고 파병이나 금전적 지원 등 실질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목놓아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그 정성의 아주 조금이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 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없겠는가.

진중권의 [레퀴엠]은 170여 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면서, 짤막한 8개의 이야기로 다시 구분해 놓아 어려움없이 읽힌다.
하지만 서문에 써놓은 그의 말은 보통 무거운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야만은 아직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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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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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은 흥미있는 텍스트다. 물론 소설적 재미라든가 작가의 자료조사에서 나온 개연성 있는 상상도 좋지만, 이 작품은 현재 우리나라와 사회가 맞닥뜨려 있는 가장 거시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오랫동안 통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로 ‘우리의 소원’이라는 당위성을 가져 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보자. 통일을 원하는가? 원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되어야 하겠는가? 오히려 통일된 이후가 두렵지 않은가?
글이 좀 딱딱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예방접종’ 삼아 말해 둔다.

반세기 넘게 분단되어 있던 두 개의 한국, 즉, 남한과 북한은 마침내 2011년에 남한의 흡수통일에 의해 통일을 이룬다. (이제 보니 1년 남짓 남은 셈이다!!!) 그리고 [국가의 사생활]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지상명령과 같았던 남북통일 이후 우리의 삶은 더 나아졌는가?’

작가는 이 질문에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상황으로 답한다.
휴전선이 걷혀 영토상의 통일은 이루어졌으나 남한과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갈등과 반목만이 존재한다. 빈부격차와 사회적 차별은 고착화되어 가기만 하고, 식량은 부족하여 북한주민들의 거주지에서는 도둑고양이조차 씨가 마른다. 북한군의 무기로 무장한 폭력조직이 난립하고 살인, 강도, 폭행이 횡행하는 한편 공공연하게 마약이 판매된다.
행복이란 찾아볼 수 없는 통일한국의 황폐한 모습을 통해 작가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셈이다. “통일의 당위성 못지않게 통일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

[국가의 사생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였다는 점이고, 이것이 통일 한국이 맞이한 디스토피아의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의 현재 정치경제 체제의 급속한 붕괴 후에 강력한 일방이 우위에 선 종속적 관계에서의 통일, 그러니까 남한이 주도하는 흡수통일은 아직도 네오콘들에 의해서 주장되는 통일방안이다. 뭐.. 통일방안이야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니 그 양반들을 공격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실패한 북한의 현재 체제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흡수통일은 그렇지 않아도 엄청나게 소요될 사회적 비용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아무리 남한의 경제수준이 북한보다 월등하게 높다고 하더라도 급격한 체제 변동은 이 격차를 뛰어넘는 비용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취약계층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남한은 북한의 체제가 붕괴할 경우 발생할 엄청난 탈북자와 난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 그들은 복잡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능숙하지 않으며, 60년이 넘는 분단으로 고착화된 이질감을 단번에 해소할만큼 변신에 익숙하지도 않다. 이들은 고스란히 통일한국의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이들의 거주지는 게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방파제와 같던 북한 체제가 붕괴하고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남한정부가 주도하는 통일한국을 중국이나 러시아가 얼씨구나 환영하겠는가? 흡수통일은 한반도를 또다시 주변국의 각축장으로 변모시킬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국가의 사생활]이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그냥 소설적 허구였으면 좋겠다. 그냥 한 소설가의 상상에서 그치고 영화 정도로나 제작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암울하고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암울한 건 저런 소설적 상황이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디스토피아를 허구로 만들려면 흡수통일은 지양되고 먼 길이지만 점진적인 통일방안이 옳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북한 주민의 극악한 생활수준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끌어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국제사회나 남한 정부의 지원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고. 남북한 간의 복잡한 상황이야 십분 이해한다고 쳐도, 도대체 틈만 나면 북한주민의 인권 운운하는 사람들이 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도 반대, 의약품을 지원해도 반대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이런게 인권의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 아닌가.
그들 말마따나 ‘거지 같이 빈곤한’ 북한 주민들이 통일된 후에 어디로 가겠는가? 그들의 표현대로 ‘사회보장비용을 축내던가’, ‘사회악의 근원’이 될텐데, 통일이라는 변동이 가져올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남한 주민의 절반 정도만이라도 끌어 올리는 게 오히려 유리하게 생각되지 않는가.

다시 한 번 반복하건데, [국가의 사생활]에 나온 통일한국의 황폐함을 미리 방지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다. 당위적 통일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날로 높아져 가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지금보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면서 ‘차라리 통일이 되지 말았으면...’이라고 한탄한다면 그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꿈에도 소원이었고, 이 정성을 다해서’ 이룩한 ‘우리의 소원’으로부터 배신당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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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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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이 되어도 캄캄해지지 않고 환하다면 무슨 느낌일까?
백야(白夜) 현상을 본 적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일 것이겠으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피곤한 일일 것 같다. 잠을 자고 쉬어야 하는 때가 밤인데, 대낮같은 밤이 얼마나 사람을 짜증나게 하겠는가? 그것도 후텁지근한 여름에 말이다.
‘환한 밤’은 이율배반적 모순표현이다. 밤은 캄캄해야 한다는 경험논리에 대한 모순이며, ‘환하다’라는 말의 긍정적 의미가 짜증의 원천이 되는 의미의 역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순, 그 백야(白夜)가 현실에 실제로 있는 현상이란 점이다!!!!
[죄와 벌]은 ‘환한 밤’과 같은 소설이라고 멋대로 규정내려 버린다. 경험과 이성, 논리로 해(解)를 구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 인간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이중삼중으로 얽혀 이루어지는 수많은 조합 속에 궁극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성의 모순이 마치 ‘밤은 밤이로되 잠들지 못하는 환한 밤’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뻬쩨르부르그의 후텁지근한 날씨가 주는 찝찝함을 가지고 [죄와 벌]은 시작한다.
‘살인’ 여부를 두고 갈등하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마침내 도끼를 휘둘러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한다. 여기서 첫 번째 모순이 발생한다. 살인은 당연히 죄, 그것도 아주 무거운 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의 이성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는 피해자를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더러운 기생생물인 ‘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인간의 종류는 ‘비범한 인간’과 ‘평범한 인간’의 두 종류이다. 그리고 비범한 인간에게는 인류발전을 위해 도덕과 법, 윤리를 초월하는 모든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기 때문에 죄를 뉘우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이 한 마리 잡아 죽였다고 누가 나에게 손가락질 하랴? 이건 죄가 아니라 비범한 내가 인류를 위해 행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뭐... 요약하면 이런 생각이다.

그런데 어쩌나. 라스꼴리니꼬프의 이 숭고한 이성이 고양되어 형성된 자의식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거니와 신성해 보이는 신념과 목적 역시 허구임이 금세 폭로된다. 여기서 모순의 모순이 발생한다. 먼저 라스꼴리니꼬프의 ‘비범인 vs 범인’의 논리가 가지는 허점은 분명하다. 그의 친구 라주미힌이 말했듯이 그런 논리야말로 ‘합법적으로 피를 흘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유혈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굳게 믿고 있는 ‘비범인의 도덕초월성’이란 신념도 실상은 죄의식을 가리고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 리자베따를 살해한 그 순간부터, 아니 살인을 계획했던 순간부터 라스꼴리니꼬프는 극심한 불안과 고통, 두통과 불면증, 수시로 찾아드는 졸도에 시달린다. 라스꼴리니꼬프 본인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현상은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에서 나오는 고통이며, 언제 자신의 범죄행각이 만천하에 알려져 교수대 사형집행 또는 시베리아 유형의 길로 나서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의 발로이다.

그러니까, 결국 라스꼴리니꼬프가 범한 ‘죄’란 무엇이었나? 살인죄? 위증죄? 절도죄? 형법 법전에나 나오는 그런 딱딱한 죄 말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가장 큰 죄는 자신을 속인 거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거다. 자기 영혼은 죄의식으로 채워져 가는데, 이성으로는 그걸 거부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것이 그의 ‘죄악’이다. 폐결핵에 걸린 친구를 도와주고 불에 타서 죽을 뻔한 아이를 살리고, 생면부지의 마르멜라도프가 마차에 치어 죽게 되었을 때 전재산을 털어 유족들은 도왔던 라스꼴리니꼬프가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거리낌없이 도끼를 휘두른다?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딘가 안 어울리지 않은가? 이게 뭔가? 마음속에 선한 영혼과 선한 목적, 선한 수단이 있다는 것을 모두 인정하는 그가 일순간의 사상에 경도되어 인간을 ‘이’로 파악한 것도 ‘죄’이지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선함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악으로 속이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그의 ‘제1의 죄’이다. 그 이중성, 그 모순, 그 이율배반, 그 격렬한 ‘두 세계’의 싸움이 보여주는 역설의 파워게임.

서구 사회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죄’와 그에 따르는 ‘형벌’은 등가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인식된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쫓겨났고, 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억울하게(?) 죽은 이유도 바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죄에는 반드시 형벌 또는 희생이 따른다. 그럼 라스꼴리니꼬프가 받은 ‘벌’이 무엇인가?

라스꼴리니꼬프는 종국에 가서 자신이 살인범임을 자백하고 8년 동안의 시베리아 유형생활에 들어간다. 물론 시베리아 유형도 법적인 ‘형벌’에 틀림없겠으나, 이건 그가 한 살인에 대한 처벌에 불과할 뿐, 스스로를 속이고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애써 외면했던 죄에 대한 벌은 아니다. 그가 받은 진짜 형벌은 다른 곳에 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삶은 마치 황량하고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처럼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파멸로 치닫는다. 그는 스스로 불안과 고통에 허덕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가 맺어 놓은 관계가 모조리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버린다.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전당포 노파를 백해무익한 벌레로 간주한 행위를 이성과 논리로 정당화하면서도 동시에 혹시나 자신의 행위가 드러났을까 전전긍긍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행위가 드러날 위험에는 정신착란 증세를 보일 정도로 모든 의지력을 상실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 뿔헤리야와도, 여동생 두냐와도 사랑의 관계가 단절된다. 친구의 조언도 소용없고, 그동안 그가 쌓아왔던 학문과 지적인 성찰, 잘생긴 외모도 모두 껍데기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의 삶에서 이제 사랑, 안정, 여유, 기쁨과 같은 가치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양심은 빈사상태에 빠졌고, 그의 이성은 정당성을 잃었다. 자수하기 전까지 라스꼴리니꼬프의 겉모습인 육체는 자유였다. 그는 숨쉬고 두 발로 걸어다니며 이야기를 하며 뻬쩨르부르그를 헤맨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미 죽었다. 그는 자신을 지탱해주던 모든 것에서 단절되었다. 이것이 그가 죄의 대가로 받은 ‘형벌’이다.

죽은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은 희생과 참된 참회밖에 없다. 이를 위해 소냐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최하층인이기 때문에 재산도, 명예도 없다. 아버지는 비명횡사했고, 어머니는 폐결핵에 정신착란으로 생을 마감했다. 직업? 백주대낮에도 돌팔매질이 가해질 수 있고 공공연하게 차별을 받아도 당연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던 사람이 기독교적 가치관이 뿌리내린 사회에서의 ‘창녀’ 아닌가.

그러나 소냐는 라스꼴리니꼬프와 달리 영혼이 살아있는 여성이었다. 그래서 신약성서에 나오는 <라자로 이야기>를 원용하여 볼 경우 소냐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라스꼴리니꼬프는 죽어 무덤 속에 매장된 라자로에 해당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라자로는 죽은지 나흘이 지나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풍길 정도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부활시킨다. 무덤에서 걸어나온 라자로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린 첫 번째 명령이 이것이었다. “풀어 놓아서 다니도록 해라.”

라스꼴리니꼬프의 영혼은 이미 죽었다. 그의 영혼에서는 자기기만과 이율배반의 악취가 풍겼고, 그의 이성은 스스로를 ‘비범인’으로 특출나게 생각하는 광포함에 둘둘 말려 있었다. 그가 구원을 얻고 부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둘러쳐진 이성의 덮개를 걷어버리고 솔직한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후, 자신이 느끼는 죄의식과 가책,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으로써 단절되었던 주위와의 관계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즉, 그에게도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고, 바로 그것이 구원인 것이다.

그래서 소냐는 라스꼴리니꼬프에게 두 가지 참회의 방법을 제안한 것이었다. 자수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는 것과 함께 ‘대지에 키스할 것’ 말이다. 자수하여 죄를 인정하는 것이 표면적인 것이라면 대지에 키스하는 것은 죽은 라스꼴리니꼬프의 영혼을 부활시키고 단절된 관계를 처음으로 되돌리는 아주 중요한 의식인 것이다. [죄와 벌]의 이 장면은 읽을 때마다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부분이다. 아직 라스꼴리니꼬프의 영혼은 완벽하게 부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땅에 입을 맞추는 순간 마치 꽉 막혀 있던 물길이 뚫리면서 맑은 물이 흘러 넘쳐 들어오듯, 대지의 신선한 기운이 그의 영혼에 힘을 공급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갑자기 소냐의 말이 생각났다. <네거리에 가서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대지에 키스하세요. 당신은 대지 앞에 죄를 지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 내어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그는 그 말을 기억해 내고,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출구가 없는 비탄과 그동안, 특히 지금 몇 시간 동안의 불안이 그를 너무나도 깊이 압박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금방 이 완전하고 새롭고 충만한 감정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감동이 발작처럼 갑자기 그에게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한꺼번에 그의 마음은 녹아 내렸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그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p.774)

이제 ‘환한 밤’이라는 모순과 역설의 시기는 지나갔다. 마지막 에필로그의 배경이 ‘부활절’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라스꼴리니꼬프의 영혼은 새롭게 살아 부활하는 길에 들어선다. 답답하고 짜증나던 여름의 후텁지근함은 부드럽고 포근한 봄날의 햇볕으로 바뀐다. 소냐와 라스꼴리니꼬프는 불꽃과 얼음이 마주치는 것과 같이 격렬했던 ‘두 세계’의 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역시 도스토예프스키답다. 왜 그를 ‘본좌’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다.

덧붙여서 1
소냐와 라스꼴리니꼬프에 가려져서 그렇지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그야말로 연구(?)가 필요한 인간이다. 선함을 가리는 악함을 풀어 놓아야만 구원을 얻는 라스꼴리니꼬프와 정반대로 그는 악함이 선함과 고뇌로 치장되어 있는 인물이다. 라스꼴리니꼬프와 정반대의 투쟁이 필요한 인간형인 것 같은데, 이런 인물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권총자살’이라는 편안한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덧붙여서 2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이 도스토예프스키를 평한 말, “도스토예프스키는 육체와 영혼의 고귀함보다는 불행과 악덕, 욕망과 범죄에 기독교적인 공감을 보인 작가였다.” 와! 역시! 말만 멋진 게 아니라 그야말로 명쾌하다. 토마스 만의 평가는 [죄와 벌]에서 시작하여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루어지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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