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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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추리소설(이라고 책 소개에는 쓰여 있다)인 [흰 옷을 입은 여인]은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먼저 이 스릴 넘치고 흥미만점인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영국, 리머리지 가의 자매에게 수채화를 가르치게 된 가난한 화가 월터 하트라이트는 런던을 떠나기 전날 밤 흰옷을 입은 의문의 여인과 마주친다. 하트라이트는 그림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학생인 로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로라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로라에게는 이미 선친이 정해준 약혼자가 있었다. 로라의 행복을 위해 리머리지 가를 떠난 하트라이트는 로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무덤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 있는 그녀를 만나게 되면서 ‘로라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뒤쫓게 된다.

19세기 최고의 추리소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추리소설의 ‘클래식’으로 불리기에는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진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이 책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눈을 뗄 수 없을만큼 재미있고 스릴이 넘친다. 물론 단순히 재미만 따진다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긴박하게 몰아치면서 책장을 휘리릭 넘겨버리게 만드는 요즘 추리소설에 따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요즘 소설들과는 다른 종류의 재미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서서히 몸을 조여가는 느낌, 부지불식간에 코 앞까지 다가온 위기감이 바로 그것이다. 문장 하나하나, 등장 인물의 증언 하나하나가 퍼즐처럼 모여 들다가 어느 순간 폭주하듯이 마구 달린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다. 급격한 위기상황이 지나간 후에 다시 냉정을 되찾아 잠잠해 지다가 이전보다 한 단계 높아진 위기 상황으로 독자들을 인도해 나가면서 다시 한 번 몸을 조여드는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래서 이 작품을 짧은 호흡으로 대했다가는 제풀에 나가떨어져 버리고 말 것 같다. 결말을 알기 위해서 스카이콩콩 식으로 책을 읽었다가는 지루함만을 느낄 것이다. [흰 옷을 입은 여인]은 비유하자면 마치 나선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은 작품이다. 그리 경사가 높지 않은 계단을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위태로운 높은 곳에 올라간 아득함을 느끼게 되며, 걸어 올라온 계단들을 발 아래로 보는 순간 하나하나의 계단에 담긴 의미가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재미와 더불어 [흰 옷을 입은 여인]에서 만날 수 있는 매력은 이야기 전개에 자연스럽고 맛깔스럽게 녹아 있는 시대적 배경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19세기 발전을 거듭하던 런던의 분주함과 근교 지역의 한적함을 경험할 수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했던 가난한 시민들과 물질적 부 및 사회적 지위를 독점했던 귀족들(이들은 하인/하녀라는 희한한 사회계층을 출현시키기도 했다)을 만날 수 있으며, 그 귀족들이 만들어낸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녀관계와 지극히 ‘오바스러운’,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형식적이고 허황되어 보이는 예절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불균형을 만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감정은 세라 워터스나 찰스 디킨스, 코난 도일 경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이번에 [흰 옷을 입은 여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이 아닌 시대가 주는 매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나는 개인적으로 빅토리아 시대가 주는 흥미로움의 원인은 이 시기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어슴푸레한’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는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던 시기였다. 물질문명을 이루는 기본 바탕은 ‘계몽’에 있으며, 계몽이란 결국 자연과 사회, 개인의 일상까지도 밝은 빛 아래로 나오도록 이끄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계몽의 시기에도 런던의 거리는 여전히 뿌옇기만 했다. 지난 시대보다 거리는 조금 밝아졌으나, 안개와 스모그, 추적추적 내리던 기분나쁜 비로 인해 여전히 런던의 뒷골목이나 시골의 어두움은 남아 있었다. 희뿌연 가스등 불빛으로는 이 어두움을 모두 밝혀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두움의 영역은 가시적인 공간에만 적용되던 것이 아니었다. 이 시대 지배자들은 여성의 미덕을 ‘빛’으로 내세웠지만, 거기에는 여성들에게 복종만을 강요했던 가부장적인 사회체계의 ‘어두움’이 숨어 있었다. 영국을 가리켜 붙여주는 명예로운 존칭인 ‘신사의 나라’가 ‘빛’이라면 그 신사들의 생활을 떠받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하인과 하녀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어두움’ 속에서 희생했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생산력을 앞세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한 빛의 이면에는 평균수명 28세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철저히 착취당한 순수자본주의 시대 노동자들과 해외 식민지 주민들의 피땀이라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핑거 스미스]에서 시대적 균열 속에 아픔을 겪던 사람들, [셜록 홈즈의 모험]의 악의 제왕인 모리어티 교수는 모두 이렇게 여전히 남아 있는 어두움을 터전으로 삼아, 또는 어두움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셈이다.

[흰 옷을 입은 여인]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이 어두움의 영역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궁색하게 가정교사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하트라이트 가족의 생활고, 공립 정신병원 또는 부랑인 수용시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고발(앤 캐서릭은 이 때문에 사설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신경질적이고 속좁은 귀족 가문 남성의 변덕에 맞춰서 섬겨야 했던 하인들, 주인의 말 한 마디에 일자리를 잃고 쫓겨나야 하는 하녀들, 가난으로 인해 새롭게 개발된 시가지로 이주할 수 없어서 빈곤의 악순환을 겪는 시골 주민들,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으로 짜여져 있는 상속제도와 등기제도, 남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여성들, 높은 사회적 지위의 인물들이 보내는 하층민들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등이 바로 그 어두움의 영역인 것이다.

사실 추리소설의 기본적인 구조는 단순하다. 즉, 추리소설은 거의 예외없이 <범죄의 발생→범죄의 해결>이라는 기본틀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흰 옷을 입은 여인]은 이런 기본틀 속에서 범죄의 계획과 실행, 진상의 규명과 악인의 처벌까지를 충실하게 보여주어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곳곳에 시대의 어두움을 짙게 더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앞서 이 소설을 ‘추리소설의 클래식’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거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이며,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추리소설들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책을 통해 시대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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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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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 폰팅은 20세기의 역사를 서술한 그의 책에 [진보와 야만]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책은 과학과 이성에 의한 지배에서 비롯된 인간 진보의 믿음과 그 믿음이 구현해낸 산업 발전 및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전쟁과 학살,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야만적 행태들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20세기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사용한 ‘진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가치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질적 발전이란 것이 한 줌의 소수에게는 진보로, 압도적 다수에게는 야만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대적인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 국가, 한 민족 또는 한 문화권의 진보와 발전은 다른 국가, 다른 민족, 다른 문화권에 가해진 야만적 행태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류가 발전시켰다고 믿고 있는 진보는 사실 절름발이처럼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었고, 왜곡된 것이며, 일그러진 것입니다.

귄터 그라스는 바로 이 시기, 진보와 야만이 공존하던 20세기 전반을 살아온 작가였습니다. 그의 고향은 식민지배와 독립을 반복했던 비극적 역사를 간직한 폴란드 단치히였으며, 얼마전 스스로 고백했듯이 나치 친위대(SS)로서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는 인류의 생산성 증가 속도는 최고에 달하여 여러 부문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던 진보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류의 양심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던 야만의 시대,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이유에 심각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던 성찰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귄터 그라스는 난쟁이 오스카를 등장시킨 [양철북]을 통해서 그 시대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또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 과연 인간이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를 통렬하게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양철북]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역시 주인공 오스카의 외모가 아닌가 합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3살의 외모, 90cm 정도에 불과한 신장.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까지 유지하다가 그 이후에는 ‘꼽추’가 되어 버리는 오스카의 외모는 ‘발전’이라는 허황된 꿈속에서 기형적으로 변해 버린 20세기 인류의 모습을 비틀어 놓은 것에 다름없습니다.
동네 식료품가게 주인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양철북 연주자로 남기 위해서 세 번째 생일날 스스로 사고를 일으켜 성장을 멈추었다고 주장하는 이 난쟁이의 맹랑한 고백 속에는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느끼게 합니다. 경악스러운 것은 이런 열망을 어린아이의 외양 속에 감춘 채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그의 실제 아버지조차도 죽음 직전에야 이 꼬맹이의 정신은 정상적인 청소년의 그것이었음을 깨달았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정신적으로는 성장하지만 외모는 세 살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인데, 주위의 사람들은 영락없이 이런 외모에 속아서 어떤 이는 오해로 대하고, 어떤 이는 애정으로 대하며, 또 어떤 이는 숭배를 바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죽음과 파멸의 길을 가게 됩니다.
결국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외모 속에 시대적 뒤틀림과 비뚤어짐을 반영한 영악한 영혼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셈인데, 이런 그로테스크한 설정 자체가 바로 그 시기 인류(최소한 유럽인)의 모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오스카의 상태는 이 시기 인류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는 외양이 실제로는 자라나기를 멈춘 허구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 속에는 처참하게 파괴된 인류의 양심과 무너진 진보에 대한 자신감이 숨겨져 있음을 도전적으로 고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깊은 기억은 역시 양철북이 아닌가 합니다. 오스카는 이상할 정도로 빨간색과 하얀색이 래커칠된 양철북에 집착합니다. 영화 [양철북]을 본 사람이라면 난쟁이 어린아이인 오스카가 미친듯이 두드려대던 양철북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진주 귀고리 소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어느새 하얀 진주 귀걸이에 머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카를 바라보는 눈은 종국적으로는 양철북으로 귀결됩니다. 이 양철북은 오스카의 분신이면서 모든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물건입니다.
[양철북]은 현재(1954년)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된 오스카가 오래전 조부모의 만남 장면부터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회상의 안내자가 양철북을 두드리는 행위입니다. 이 울림소리를 따라서 성장을 멈추기로 했던 고의적인 사고, 학교에서의 경험, 목소리로 유리를 깨뜨리던 오스카의 특수한 능력, 친구인 헤어베르트의 기괴한 죽음, 묘지에서의 경험, 연인 마리아와의 관계, 이웃들과의 관계와 죽음, 전쟁에의 참가, 가족(조부모, 두 아버지, 어머니, 계모, 아들이자 동생 등)들의 삶과 죽음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결국 양철북은 오스카로 상징되는 인류가 걸어온 길을 안내하는 일종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그 길 자체로 확장됩니다. 양철북의 북소리를 따라 오스카는 사람들의 욕망을 시험하고, 마치 오래된 앨범을 보는 것처럼 격변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인생을 펼쳐놓습니다. 그리고 독일군에 이어 단치히를 점령한 소련군 앞에서 아버지인 마체라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 오스카는 그의 무덤 속에 양철북을 함께 매장해 버림으로써 한 시대와 단절합니다. 양철북을 버린 후 3살에서 멈추었던 그의 신체적 성장이 다시 시작된 것도(그래봤자 30cm 정도 더 자라는 것에 그쳤지만) 한 시대의 메타포로서 양철북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양철북]은 매우 상징성이 강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흥미로운 서사의 힘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양철북]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매력 가운데 하나가 오스카의 성장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그들이 엮어가는 사건들을 다양하게 배치함으로써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긴장감과 흥미를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오스카의 친구 헤어베르트의 등에 새겨진 상처와 해양박물관에서 맞이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종말, 나치군의 폴란드 침공과 폴란드 우체국 방어전, 단치히 지역의 불량 청소년이 규합된 ‘먼지떨이단’과 해체 과정, 종전 후 서독 지역으로의 이주, 메말라 버린 시대에 양파의 힘을 빌려 인위적인 눈물을 짜내던 ‘양파 주점’의 추억, 짝사랑하던 독일 간호사 도로테아의 빈 방 옷장 속에서의 경험 등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 그럼 이렇게 일그러져 버린 오스카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스카의 구원은 줄기차게 두드려대던 양철북에도, 자유자재로 유리를 깨뜨려 버리던 미성(美聲)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한 때나마 사랑했던 연인에게서도 구원을 찾지 못하였고, 조숙하게 경험하였던 세상의 어떤 쾌락들 가운데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양철북]을 보면 귄터 그라스가 당시대에 대해서 얼마나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가의 조롱이 미치지 않는 유일한 장소가 있습니다. 경찰에 쫓기던 오스카의 외조부 요셉을 숨겨 살려준 장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가 잉태된 장소, 고통과 절망을 당할 때마다 오스카가 숨기를 원했던 곳. 바로 외할머니 안나 콜야이체크의 네 겹 치마 속입니다. 이 곳은 [양철북] 전체에서 유일하게 일그러지거나 왜곡되지 않은 공간이며, 따라서 성역이자 지성소(Sanctuary)로 그려집니다. 조국 폴란드의 식민지배와 독립,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과 오스카를 둘러싼 가족의 해체와 비극이라는 운명적인 사건들 속에서도 할머니 안나의 네 겹 치마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오스카는 여전히 그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 곳이 구원의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세계대전은 끝났고, 인류는 20세기 초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다시 이룩하였습니다. 하지만 일그러진 현실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 보아도 각박한 사회적 현실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빈민, 워킹푸어 등의 기형적인 삶들을 양산하고,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비정규직 등에 대한 일그러진 차별을 확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다른 진보의 이면에 야만이 자라나지 않도록 우리는 성역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잘못에 뼈저린 반성을 수행하는 마음, 도망자까지도 따뜻하게 품어주던 네 겹 치마와 같이 이웃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이웃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주고 그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묵묵히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마음 말입니다. (최근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홍익대학교의 청소용역노동자 분들과 학생들의 대응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됩니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았던 귄터 그라스는 세계대전과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전후 독일 사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전후의 영광이란 결국 영광에 지나지 않으며,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가 생생하고도 잔인하게 자랑했던 그 모든 행위와 범죄들을 끊임없는 야옹 소리와 함께 역사로 돌려버리려는 고양이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p.501)

귄터 그라스는 오스카의 삶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우리의 삶을 선한 인간 본성의 모습으로 회귀시키지 않는 한, 오스카와 가족, 이웃들이 고통 가운데 지나가야 했던 기형적이고 왜곡된 시대를 또다시 통과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참고로.......
이해삼아 귄터 그라스의 고향이자 [양철북]의 배경이 되는 도시인 단치히(Danzig)에 대해서 짤막하게나마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치히는 현재 ‘그다니스크’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위인전을 열심히 읽으셨던 분이라면 아마 퀴리부인과 쇼팽의 전기를 통해서 폴란드의 비극적인 상황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프로이센과 러시아라는 동부 유럽의 두 강대국 사이에서 폴란드는 200여년간 독립된 국가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항복으로 끝나면서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단치히 지역은 자유시로 독립을 얻어냅니다.
하지만 1939년 9월 1일 히틀러는 단치히가 원래 독일의 땅이라는 주장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하게 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독일군의 침공과 이후 소련군의 진주로 인해 단치히 시내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파괴되거나 불타버리게 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러니 이 시기를 살던 단치히 주민들이 경험한 고통과 공포, 절망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양철북]은 바로 이 시기 단치히를 배경으로 삼음으로서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진 당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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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의 지층들 - 현대사회론 강의
이진경 엮음 / 그린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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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기 전 표지에서 [모더니티의 지층들]이라는 제목과 그 아래의 ‘현대사회론 강의’라는 부제목 사이에서 잠깐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modern’은 ‘현대의’라는 의미로 번역되고 있으니 문자 자체의 의미로만 본다면 제목과 부제목 사이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그런 ‘modern'한 사고방식과 생활체계를 의미하는 모더니즘(modernism)이라는 단어는 ’현대주의‘ 보다는 바로 앞 시기를 가리키는 ’근대주의‘라는 용어로 더욱 익숙하기 때문이다.
보통 역사를 고대-중세-근대-현대와 같이 구분할 때에는 각 시대별로 상이한 지성사와 생활사를 상정해 두기 마련이다. 그래서 근대적 진리관과 근대적 사고방식을 뛰어넘고자 했던 노력에 ‘Post-modernism’이라는 용어를 붙이지 않았던가. 우리는 1990년대 초중반기에 과연 근대가 종식된 것인지,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의 주체와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난 것을 지켜봤다. 따라서 모더니즘 이후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할 때, ‘모더니티’라는 단어에서는 ‘근대’라는 느낌을 훨씬 강하게 받는다. 이 때문에 ‘현대사회’와 나란히 붙은 ‘모더니티’에서 다소 이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14가지 강의로 구성된 [모더니티의 지층들]을 읽어가면서 앞서 느낀 이질감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여러 저자들의 논의가 한 점에 모인다는 인상을 받았고, 왜 표지에 ‘근대성’과 ‘현대’를 동일하게 다루었는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건 근대성의 특징들을 구성하는 다양한 지층들이 현대사회에서도 단절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두 시대의 연속성 내지는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지층들 가운데 근대사회와 현대사회 사이의 연속성이 존재하게끔 만들어주는 가장 결정적인 거멀못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이다. 근대적 속성인 자본주의가 현대에도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저자들의 논의는 자본주의 체제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의미있는 생각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2.
근대를 흔히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합리성이란 어떤 현상에는 반드시 그 현상을 설명할 원인이 존재하며, 그 원인을 설명해 낼 수 있다면 결과까지도 예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인이나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 근대사회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근대사회의 합리성이 중요한 이유는 ‘탈신비성’, ‘과학성’을 속성으로 가지기 때문이다. 인류를 자연 현상에서 인간의 행동까지 모든 것을 신의 섭리로 설명하던 신비주의와 미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과학’이었다. 이 과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계산가능성(calculability)이다.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예측하고자 했던 것이 근대과학이라면, 그런 과학을 통해 신이나 신비적인 것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 근대적 이성이었고, 이러한 계산가능성을 삶의 전체 과정 속에 관철시킨 것이 ‘근대적 생활방식’이었던 것이다.
계산가능성을 속성으로 하는 과학의 지배는 인간의 경제적 활동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경제적 계산가능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화폐이다. 화폐를 통해 지금까지 비교할 수 없었던 가치들의 순위가 정해지고, 종국적으로는 그 가치들이 ‘상품화’되어 평가받는다. 근대는 화폐가 본격화, 정착화, 지배구조화된 시대였던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피카소의 작품과 고흐의 작품 중에 어떤 것의 가치가 높을까? 상식적으로 두 작품의 가치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작품에 가격을 매기는 경매장, 그러니까 화폐가 개입하는 순간 피카소와 고흐의 작품이 가지는 질적 가치는 비교가능한 양적인 화폐가치로 변화한다.

질적 차이를 양적으로 계산하거나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화폐경제는 자본주의 경제모형의 근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본이 축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노동’의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고, 그것을 자본을 통해 ‘구매’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흐름 속으로 배치시키는 단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치 가운데 투입된 가치 이상의 가치가 발생하는 바, 이것이 바로 ‘잉여가치’인 셈이다.
맑스는 자본가들이 최대의 잉여가치를 산출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봉건제도나 농노제도라는 신분적 제약에서 해방한 후,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도록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빼앗았다고 분석하였다(이중의 해방). 그리고 협업과 분업이라는 노동과정의 변화와, 그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산업혁명기의 기계들을 통해 노동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관장하게 됨으로써(노동의 실질적 포섭) 마침내 노동이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기본틀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소련을 비롯하여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현실적 힘으로 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황과 외부효과, 노동자계급의 저항 등 자본주의 내부에서도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위기요인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3.
위의 과정이 근대까지 자본주의 체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사회주의권의 몰락, 복지제도의 확충 등을 거치면서 현대의 자본주의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낸다. 그 활로란 ‘가치’라는 것, ‘돈’이란 것은 자본가 뿐만 아니라 전 사회구성원이 욕망하는 것으로 ‘탈계급화’시켜버리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현대에도 자본주의를 생존하게 하는 힘이자 자본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힘은 전통적인 자본가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와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전체 대중을 ‘돈’이라는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앞서 근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치의 계산가능성에 있다고 언급하였고, 그 특징이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 전반에 영향력을 관철시켰다고 하였다. 이것은 누구든지 자신이 보유한 가치를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이 가치의 보유 정도가 사회적 신분과 지위, 권한과 권력의 보유 정도까지 결정해 버리는 체제 속에서 모든 구성원은 ‘돈을 벌기 위한’ 단일한 욕망에 매몰된다. 현대사회는 모든 사람, 전통적으로 자본의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들까지도 자본의 충실한 대행자가 된다는 소름끼치는 이야기이다.

M-C-M'은 자본의 운동을 표시하는 공식이지만, 화폐가 자본으로 바뀌는 배치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욕망을 표시하는 공식이기도 하다. 오직 화폐만이 교환의 유일한 가능성일 때 다양하고 구체적인 욕망들은 화폐를 향한 단일한 욕망으로 환원되고, 돈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는 어떤 것이 되기 때문이다. 화폐를 향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더 많은 돈에 대한 갈망 속에서 우리는 자본의 충실한 대행자가 된다. (p.129)

아마 이런 질문을 던져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째서 자본주의가 유지되고 재생산되는가? 자본주의에서는 착취하는 자본가보다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훨씬 많은데 어째서 이 착취체제는 무너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가?’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중산층도, 노동자들조차도 자본가와 같은 욕망, 즉 좀 더 많은 돈을 벌고, 좀 더 많은 가치를 보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본가들과 동일한 욕망을 가지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움직이는 한 중산층도 노동자도 본질적으로는 자본가와 동일한 존재다. 돈이 없어도 돈을 욕망하는 한, 돈에 대한 욕망을 통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지속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치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전통적인 분석틀마저 붕괴시켜 버린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인 시각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은 두 개이며, 이 두 계급은 서로 적대하는 계급이다. 그러나 모든 계급에서 욕망의 동질화가 일어난 후에 계급은 하나가 된다. 물론 사용자와 노동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욕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두 계급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 결과는? 맑스식대로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집단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노동자 계급이 더욱 자본가에서 멀어지면서도(양극화), 노동자 계급 안에서 ‘가치의 보유 정도’를 매개로 한 분열과 보수화를 불러왔다. 같은 사업장의 동일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차별과 갈등의 본질이 가치(돈)를 둘러싼 양 노조 사이의 분열이라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노총이 한나라당 후보와 정책연합을 선택한 것은 가치(돈)를 통해 지위를 얻으려는 노동자들의 보수화의 예라고 할 것이다.

더 무서운 얘기가 하나 남아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이와 같은 ‘욕망’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으로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의 머리 속에 세뇌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기제들을 총동원한다는 점이다. 나는 앞에서 근대사회와 현대사회 사이의 연속성이 존재하게끔 만들어주는 가장 결정적인 거멀못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모더니티의 지층들]에 실린 어린이, 주거, 도시화, 이동, 경찰 등 다양한 지층들의 계보를 읽어가다 보면 가치(돈)에 대한 욕망을 사회 전반에 관철시키려는 자본의 노력이 얼마나 무섭고 집요한 것이었던가를 한층 실감하게 된다.
일례로 자본의 욕망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가족’을 생각해 보자. 산업혁명기에만 해도 가족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바, ‘따뜻하고 정감있으며, 모든 것을 희생하여도 지켜야 할’ 가치의 중심이 아니었다. 이 당시 최악의 주거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술집으로, 아이들은 거리로 돌아다녔고, 주부들 역시 고된 노동으로 인해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인간의 노동이 가치창출의 거의 전부이던 시기에 이런 노동자계급의 분산과 태만은 이윤창출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온한(!!!)’ 사상을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였다(프랑스대혁명을 생각해 보라).
그래서 자본주의는 우선 위생수준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임대주택을 짓고 노동자들에게 주택구입자금을 빌려주어 매달 월급에서 갚아나가는 체제를 도입한다. 개인 단위로 소규모 자본축적(저축)을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빈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관념이 발생한 셈이다. 그리고 술집의 노동자들과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양육과 교육의 명분 하에 가정과 학교라는 ‘훈육’의 체제에 편입시킨다. 이제 거리를 활보하는 노동자나 아이들(청소년)은 ‘게으르고 태만한 낙오자’라는 도덕적 낙인으로, 그리고 부랑자를 수감, 처벌하는 각종 현실적이고 폭력적인 시설을 통해 통제된다.

세 가지 문제(노동자의 빈곤, 위생, 통제)의 해결 방법은 ‘가족주의’로 집약된다. 즉, 위생과 빈곤의 문제, 아이들의 보호라는 문제를 통해서 노동자의 생활을 가족으로 영토화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노동자로 하여금 일이 끝나면 돌아가서 쉴 수 있는 가족의 공간, 가족만의 공간으로서 집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즉 노동자가 선술집으로 향하려는 발길을 되돌리게 하며, 아이들을 거리로부터 끌어들일 수 있는 포근한 가족, 위생적이고 안락한 가족적 공간을 통해, 그리고 이 집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소유하게 함으로써 세 가지 문제는 동시에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p.221)

4.
[모더니티의 지층들]은 현대사회의 특징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게 하는 아주 괜찮은 책이었다. 전통적인 시각과 약간 다른 시각에서 현대사회를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공부가 될 책으로 추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이런 책은 읽고 나서 한숨과 답답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정신건강 측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모든 것을 ‘돈’이라는 가치로 계산하도록 한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정체 폭로와 우리 스스로가 돈을 찾는 욕망의 노예, 자본주의의 존속기계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저자의 문제제기는 통렬하면서 따끔하지만, 이 욕망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저자의 표현대로 ‘탈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딱히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계속하여 진화하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돈을 찾거나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서는 은행을 방문하여 은행 직원에게 부탁해야 했지만 지금은 ATM을 이용해서 직접 그 일을 해낸다. 자본주의라는 차원에서 보면 과거에는 노동자(은행원)를 매개로 하여 가치를 창출했다면, 지금은 소비자에게 직접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무료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면서 클릭하지만, 사실은 소비자의 ‘접속’이라는 행위가 발생시키는 가치는 포털 업체들에게 광고수주라는 형식의 직접적 가치로 전환된다. 자본은 접속행위 자체를 소유하는 셈이다.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자연스러운 ‘일상’ 행위를 네트워크화 시켜서 거대한 부를 창출하도록 만들고 있는 자본주의의 틀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모더니티의 지층들]의 저자들이 은연중에 대안으로 보여주고 있는 ‘코뮨주의’가 과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 집’, ‘내 가족’에 목매달도록 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높은 장벽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 그들의 노력에 기대를 걸고 응원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나부터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에 답답함이 컸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가족과 친구까지도 자본의 틀 속에 편입시켰던 자본주의는 이제 생명복제란 무기를 들고 생명까지도, 녹색성장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자연까지도 노리고 있다.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까지일지, 그리고 끝이 있다면 그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해지면서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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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5 로마제국 쇠망사 5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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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원히 세계를 지배할 것 같았던 로마는 동서 분리를 즈음하여 점차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동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 속에 로마는 존속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좀 심하게 말하면) 껍데기만 남은 모습에서 옛 로마의 지중해의 여왕으로서의 영광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로마의 쇠퇴는 다른 모든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운명의 부침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현상이 아니었고, 서양의 역사가 로마라는 한 국가의 역사를 벗어나서 다양한 민족과 국가들이 상호작용하는 역사로, 그리고 아랍인, 사라센인, 투르크인, 중국인 등 전혀 다른 문화체계와의 교류의 역사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현상도 아니었다. 하나의 국가로서 로마의 빛은 점점 사라져갔지만, 다른 국가들의 모태이자 이웃으로서 로마의 의미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적어도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의미는 크게 줄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로마제국의 판도에서 형성된 ‘신성로마제국’은 로마의 위세와 영광에 기댄 명칭일 뿐 로마를 계승했다고 보기에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동로마제국’은 여전히 실체적 권력이긴 하였으나, 사방을 둘러싼 이민족의 침략과 내부의 정치적 분열로 콘스탄티노플 주변 지역이나 겨우 유지하는 찌질한(!!!)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에드워드 기번이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로마제국 쇠망사] 집필을 종결하려고 하였던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2.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이후 약 800년 동안 동로마제국은 혼란과 빈약함을 노출시켰다. 이 당시 동로마제국의 정체가 얼마나 허약했는지 보여주는 증거. 보통 우리가 ‘제국’이라고 하면 창시자의 직계 또는 방계 자손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세습하는 법이다. 간단히 말해 혈통(lineage)에 따른 왕위의 세습인데, 이 당시 동로마제국에서는 이렇게 황가(皇家)를 이룬 사례가 그다지 많지 않다. 황제의 자리는 반역과 폭동, 모함과 음모로 점철되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모함하며, 형제 사이에 옥좌를 두고 서로 죽이며, 친밀한 친구 사이가 갈라서고, 어제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하루 아침에 반역자로 돌변하고, 황위를 목표로 한 폭동과 암살의 무한쟁탈이 벌어진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딱 맞는 형국! 그리고 여기에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의 도덕적 타락, 제국 신하들의 부패와 무능력이 겹치면서 동로마 제국은 천혜의 요새지인 콘스탄티노플의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약소국으로 축소되었다.

크리스트교는 허약해진 제국 곳곳에서 망조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삼위일체 논쟁과 성육신 논쟁에 이어서 또 다른 신학논쟁과 파벌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성상(聖像) 숭배 논쟁’으로 알려진 이 논쟁은 로마 신민들간의 불화를 부르고,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에서 그나마 한 형제라는 인식을 유지했던 교회를 라틴 교회(로마 교황)와 비잔티움 교회(그리스 정교회, 동로마 황제)로 두 동강 내어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의 문제로 콜로세움에 던져지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박해는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박해가 나타난다. 즉,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성상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절차와 형식, 권위에 따른 차이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약탈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박해가 일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주장에 외곬으로 빠진 광신(狂信)은 국가의 안위에마저 큰 해악을 끼쳤다. 바울파와 야고보파라는 근본주의적 종파는 사라센인들이 쳐들어 왔을 때 자신들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의 안위를 팔아넘긴다. 라틴 교회와 비잔티움 교회의 대립은 제4차 십자군 전쟁에서 베네치아 상인들의 탐욕과 어우러져 라틴 제국들에 의한 비잔티움 약탈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제공하였고,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게 멸망당하던 급박한 시기에 유럽 제국들이 보여주었던 수수방관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3.
한편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로마 교황이 신앙의 영역을 넘어서서 세속의 영역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샤를마뉴 대제나 오토대제와 같은 서유럽 황제들과 교황이 서로간의 이해를 위해 결탁하는 수준이었다. 황제는 ‘로마제국의 계승자’, ‘크리스트교의 보호자’라는 명분을 얻었고, 로마 교황은 성상 숭배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던 동로마제국 황제의 무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방패라는 실리를 얻은 것이다.
처음에는 무력을 보유한 황제의 권한이 강했으므로 무게추가 황제 쪽에 쏠렸다. 오죽했으면 교황이 서거한 후 선출되는 새로운 교황은 교회의 수호자인 황제가 승인하고 동의를 표시하지 않으면 정식 교황이 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부침에 취약한 속세의 권력에 비해 일관된 종교적 열정을 등에 업은 교황의 권한은 점차로 힘을 얻기 시작하여 세속의 권력과 재산을 두고 황제와 맞서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교회 재산의 출발은 샤를마뉴 대제가 교황청의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기부한 로마 주변의 토지와 약간의 재산이었지만 이는 곧 후대 황제들이 지켜야 하는 관습으로 고착되었고, 교황청에 대한 황제의 기부는 이후 더욱 확대되어 카롤링거 왕조는 동로마제국 황제가 임명하였던 로마 총독령을 교황에게 넘김으로써 교황의 경제적 힘과 정치적 힘을 대내외적으로 높여주게 된다.
이제 천상의 권한이라던 교황권은 속세로 내려온다. 몇몇 교황들은 탐욕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하였는데, 일례로 황제 소유의 토지를 교황에게 기부한다는 서류를 날조하여 교회의 재산으로 삼으려 했던 사건이 발생할 정도였다. 나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각 교구의 주교를 임명하는 권한 즉, 성직서임권(聖職敍任權)은 교황과 황제의 힘의 균형관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었다. 이익이 있는 곳에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생긴 곳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 서양의 중세 초기를 관통하는 교황과 황제의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이 지역(이탈리아 전 지역)들을 차지하기 위한 거래에서 교황들은 야심과 탐욕을 드러내 심한 비난을 받는다. 그리스도교 사제라면 자기 직분의 덕목을 훼손시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통치하기 힘든 지상의 왕국을 겸손하게 거절했어야 마땅하다. 충실한 신하, 아니 관대한 적들조차도 야만족의 전리품을 나눠 갖는 데 그처럼 안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p.134)

(교황청의 목표는) 추기경 회의에 선거의 자유와 독립성을 주고 황제와 로마 민중의 권리를 영원히 폐지하는 것, 서로마 제국을 교회의 봉토 또는 성직록(聖職祿)으로 증여하고 재점유하며 교황의 세속적 지배권을 지상의 왕과 왕국으로 확대하는 것.(p.160)

4.
로마의 역사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슬람교이다. 이 신흥종교는 믿음을 보유한 사람들의 신념과 가치관에서부터 소소한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들과 유사하였지만,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을 들고 정복을 통한 확장과 포교를 채택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들과 차이점을 보였다. 마호메트가 사망한 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이슬람교도들은 아라비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 예루살렘, 이집트를 정복하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유럽 땅 스페인에까지 세력을 미친다.

이슬람교가 크리스트교 못지않은 세계종교임에는 틀림없으나, 그에 대한 이해수준이 매우 낮은 내 입장에서 비판의 칼을 들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기번이 많은 역사적 문헌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이슬람 세계의 확장 과정에서 내가 받은 인상 정도를 쓰려고 한다.
이슬람교 전파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관용은 [로마제국 쇠망사] 전체를 통해서 지겹도록 반복되어 온 크리스트교의 획일성과 폭력성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매우 신선했다. 사실 폭력과 정복을 수반한 포교 방식은 이슬람교에 대한 가장 큰 비판지점 중에 하나였다. ‘코란과 칼’ 중에서 양자택일 하는 식의 이슬람 포교방식, 그러니까 코란을 선택할 경우에는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철저한 파괴와 박해를 가한다는 이슬람교의 포교는 무척이나 비인간적이면서 폭력적인 것이다. 그런데 에드워드 기번은 약간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포교 과정에서 잔혹한 면이 분명 있었으나, 그러한 면은 어느 종교이든지 다른 종교와의 초기 접촉 과정에서 거의 예외없이 발생하였던 것이며, 오히려 이슬람교는 박해 못지않게 상당한 관용을 베풀어 정복지에서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였다고 주장한다. 로마제국의 영토로서 크리스트교의 전통이 뿌리깊게 남아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아프리카, 스페인을 정복한 후, 칼리프들은 다음과 같은 관용을 베풀었다.

11세기 혁명 후(이슬람의 동방, 아프리카, 스페인 정복) 터키 제국의 유대교도들과 그리스도교도들은 아랍 칼리프들이 허용한 양심의 자유를 즐겼다. (중략) 가톨릭교도들은 이집트의 교회를 같이 썼고, 동방의 모든 종파들은 관용이라는 공동의 혜택을 받았다. 대주교오 주교, 성직자의 지위, 면책권, 국내 관할권은 행정관이 보호해 주었다. (p.359)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슬람교 역시 근본주의적 신앙이 불러일으킨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런 부정적인 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 당대 최고의 도서관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렸던 것이었다. 70만권에 이르던 인류의 지적 보고에 대한 처리를 묻던 현지 사령관에 대한 칼리프의 아래와 같은 대답은 그야말로 무섭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의 글이 신의 서적과 의견이 일치한다면 (중복되어서) 쓸모없으니 보존할 필요가 없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해로운 글들이므로 마땅히 파기해야 할 것이다. (p.323)

5.
앞서도 언급했지만 원래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 저술을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끝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기번은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계속 저술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면서 마지막 두 권에 대한 계획 가운데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그는 콘스탄티노플 함락까지 동로마제국 800년의 역사를 과감히 압축할 것이며, 둘째, 서로마 제국의 판도에서 번영하기 시작한 과거의 ‘야만족’ 및 ‘이민족’ 왕국들과 동로마 제국의 이웃에서 발흥하는 이슬람 등 새로운 문화와의 관계 속에 로마사를 서술하겠다는 점이었다.

기번의 이런 편집 방향 덕분인지 [로마제국 쇠망사 5]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동로마제국의 역사나 황제들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속세의 권한을 얻기 위하여 무진장 애쓰던 교권(교황)의 노력이었다. 서양의 중세를 일컫는 ‘신권(神權)에 의한 사회 전반에 대한 지배’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물질적, 정신적 기틀은 바로 이 시기에 마련되는 셈이다. 둘째는 이슬람교의 발흥이다. 알라를 유일신으로 따르는 이 신흥종교는 최초 발원지인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북부와 스페인,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휩쓸었고, 궁극적으로는 ‘로마사’의 종언을 울리는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다.
[로마제국 쇠망사 5]는 읽는 내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노(老)제국 로마와 떠오르는 새로운 역사의 주역들 사이의 대조를 느끼게 해 준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유럽의 프랑크족과 게르만족이, 뒷부분에서는 아랍민족과 투르크인들이 로마와 대조되는 새로운 주역들이다. 이런 흥미진진한 대비 과정 속에서 동로마제국 쇠락의 원인이 단순한 ‘역사적 운명’이 아니라 황족을 비롯한 신하들의 도덕적 타락과 부패, 무능함, 점차 변질되기 시작하는 크리스트교의 세속적 권력 추구와 무관용성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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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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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라는 말은 전체적인 모습은 알지 못한 채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의 지식이 전부인 양 믿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실 이 행위는 생소한 세계를 인식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에 여러 장님들이 모여서 자신이 만진 모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면, 그리고 코끼리를 만진 장님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전체적인 코끼리의 모습에 가까운 형상을 복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것이 가능한가 하면 (좀 인식론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장님이 만진 코끼리의 각 부분인 코끼리 다리, 코끼리 코, 코끼리 귀 등도 전체 코끼리는 아니지만 엄연한 코끼리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작은 사람의 얼굴 모양을 모자이크로 하여 큰 사람의 얼굴을 만드는 것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코끼리 만지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거창한 의미까지 부여하는 이유는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라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우리가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인식구조를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 대답은 ‘NO'이다. 왜? 가장 큰 이유는 저자인 로버트 단턴과 독자인 우리들 그 누구도 그 시대, 그 장소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의식구조를 재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목표로 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방법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부분을 모아서 모자이크화하는 것인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역사서술과 함께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해석해 보는 것이다. 그 시대에 대한 이해수준은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며, 여러 자료를 모으면 모을수록 완전한 상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서게 될 것이다. 

여기서 로버트 단턴의 역사서술이 우리가 익숙한 기존 역사서술과 무척이나 다르다는 점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국사책에서 보아 왔던 역사서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이질감 또는 신선감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통적인 역사서술에 반하는 서술로 읽혔다. [고양이 대학살]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특징은 역사를 시간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수직적(longitudinal) 관점에서 벗어나 특정 시점을 칼로 잘라낸(cross-sectional)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단턴의 역사서술에 따르면 역사는 흐름이라는 성격 뿐만 아니라 그 순간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고양이 대학살]의 두 번째 특징이 나온다. 즉, 그 시점의 모든 형태의 자료가 ‘사료(史料)’가 된다는 점이다. 이건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랑케(Ranke)의 방법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야기다. 언제나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하고 보편타당한 자료만을 인정했던 랑케의 방법론과 달리 로버트 단턴은 주관적이고 특수하며 상대적인 자료들을 사료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고양이 대학살]에서 활용한 자료만 해도 민담, 일상에서 일어난 이야기, 자신이 살던 도시에 대한 감상문, 지식인들을 감시하던 경찰의 보고서, 책주문서 등등이다. 랑케에게 역사는 ‘과학’이었다면 단턴에게 역사는 ‘민속’이다.

[고양이 대학살]에는 모두 6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은 모두 18세기 중후반기의 프랑스이다. 18세기 중후반, 그것도 프랑스라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로버트 단턴은 다양한 사료들을 활용하여 당시 프랑스의 귀족, 부르주아, 도제 및 장인, 일반 농민들이 어떻게 자신 주위의 세계를 구성하였으며, 그것이 프랑스 대혁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한다. 결국 그는 사람들의 ‘기저의식’이나 ‘집단의식’을 의미하는 말인 망탈리테(mentalité)의 역사를 탐구한 셈인데, 책의 표제이기도 한 두 번째 논문, <고양이 대학살>에서 그의 논리전개를 짚어 보자.

<고양이 대학살>은 1730년대 파리의 생-세브랭 가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났던 해프닝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파리의 가내 수공업장은 주인-장인-직인-견습공의 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들의 생활 여건은 무척이나 달랐다. 대부분 부르주아 계급이나 귀족 계급에 속했던 주인들은 호의호식하는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이 기르던 고양이들마저 등따숩고 배부른 처지였는데 비해 최하층인 직인들과 견습공들은 온갖 차별과 비위생, 고양이보다 못한 영양상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어느 날 밤 한 견습공이 주인의 침실 위 지붕에서 고양이 울음을 흉내낸다. 놀란 주인은 이것이 악마의 출현이라고 믿고 직인과 견습공들을 동원하여 주위의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도록 한다. 단, 주인 마님이 애지중지 키우던 ‘그리스’라는 고양이는 학살에서 제외였다. 그렇지만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견습공들이 주인의 고양이를 그대로 둘 리가 있겠는가? 대대적인 고양이 대학살 속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죽인 후에 시체를 홈통 속에 숨긴다. 주인 마님은 ‘그리스’가 없어진 사실에 대경실색하며 견습공들을 추궁하지만, 이미 수많은 고양이들이 학살당하여 시체들이 처리된 후라 ‘그리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주인 마님의 비통함과 견습공들의 통쾌함 속에 대학살은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건은 그냥 끝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복사(copie)’로 남게 된다. 고양이 대학살은 견습공들이 모인 곳에서 무언극으로 재연되었고, 이것은 주인들에 대한 조롱과 자신들의 단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로버트 단턴은 당시의 임금 장부와 길드의 서류를 검토하여 당시 견습공들과 직인(journeyman)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었는지를 보여준 후, 당시 이들이 구성하고 있었던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견습공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있었던 셈인데, 지금처럼 경제적 동기가 강조된 조합이 아니라 특징적인 의례와 일종의 종교적 신념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결속력을 가진 공동체였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내면화하면서 호의호식하던 다른 집단, 특히 주인인 부르주아(또는 귀족)에 대한 복수심을 보인다. 그렇다고 주인을 직접 잡아다 매질을 가하거나 목을 날릴 수는 없는 일. 따라서 견습공들은 자신들의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의례’ 속으로 주인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여기서는 고양이)을 끌어 들여 심판함으로써 울분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파리의 한 거리에서 발생한 해프닝으로 끝났다면 불쌍한 고양이들에게 추모비를 세워주는 것으로 충분했으리라. 그렇지만 로버트 단턴이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이런 학살이 ‘복사(copie)’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울분풀이 또는 주인 골탕먹이기로 시작했던 이런 행위들이 노동자들의 의식 속에서 확대재생산되면서 당시 경제제도와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고, 종국적으로는 프랑스대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집단의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유죄 판결은 주인에서 주인집으로, 그리고 체제 전체로 확대되었다. 아마도 반쯤 죽은 고양이 한 무리를 재판하고 자백을 받고 목을 매닮으로써 노동자들은 법 질서와 사회 질서 전체를 조롱하려고 의도하였을 것이다. (중략) 반세기 후에 파리의 직공들은 같은 방식으로 폭동을 일으켜 무차별의 학살과 즉성의 인민재판을 결합시켰다. (p.143)

글의 첫 부분에 [고양이 대학살]의 특징 중의 하나가 역사를 단면적(cross-sectional)으로 파악했다는 점을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고양이 대학살]에 실린 6편의 논문은 각각 서로 다른 계급과 서로 다른 상황을 그리면서 18세기 중후반 다양한 프랑스인들을 다룬다. 그리고 출발점이 다른 도로들이 한 지점에서 만나듯이 각각의 논문들은 집단의식이 프랑스 대혁명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책의 두 번째 논문인 <고양이 대학살>은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던 노동자들(직인 및 견습공)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관에 체제에 대한 저항을 녹여내게 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19세기 프롤레타리아화하는 맥락 속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첫 번째 논문인 <마더구스 이야기>는 프랑스인의 인식구조가 영국이나 독일과 어떻게 다른지를 민담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은 왜 대혁명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는가에 대한 일종의 답변일 수도 있겠다. 로버트 단턴이 논하고 있는 유럽 각 국의 민담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프랑스 민담이 ‘교활’ 또는 ‘기지’라면 독일 민담은 ‘환상’ 또는 ‘경건’, 영국 민담은 ‘얌전’ 또는 ‘유머’라고 할 수 있다. 권선징악이라든가 ‘착한 사람은 언젠가 복을 받는다’라는 교훈은 프랑스 농민의 민담에서는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프랑스 농민들은 사회적 약자가 착하고 도덕적으로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기지를 발휘하여 윗 계급을 속이거나 뒤통수를 치고, 교활함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함을 가르친다. 유명한 <빨간 모자>이야기의 프랑스 판본의 결말은 늑대가 빨간 모자를 삼켜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해피 엔딩은 후세 사람이 첨가한 것인데, 빨간 모자 소녀는 교활하거나 지혜롭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세 번째 논문인 <텍스트로서의 도시>는 1768년 몽펠리에 시에 거주하는 한 부르주아가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해 쓴 일종의 ‘도시 소개서’를 소재로 삼는다. 도시 소개서의 저자는 먼저 몽펠리에 시에서 벌어졌던 가두행진(퍼레이드)에서 각각의 사회적 계급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꼼꼼히 서술한다. 여기서 우리는 급부상하던 부르주아가 당시 시대를 어떤 시가에서 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혁명 이전 프랑스 사회는 3개의 신분으로 구성되었다. 즉,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 제3신분인 시민이 그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몽펠리에 시를 소개하면서 제1신분인 성직자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거나 무시하고 있다.

그는 성직자를 완전히 제외시켰다. (중략) 그런 뒤 그는 귀족을 ‘제1신분’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중략) 부르주아들은 비록 사법적으로는 ‘제1신분’ 내부의 두 번째 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부유한 시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중략) 저자는 전통적으로 귀족들이 위치하였던 ‘제2신분’에 부르주아를 위치시켰다. (p.180)

그럼 제3신분은 누가 되는가? 노동자들인가? 도시의 설명서를 작성한 부르주아는 그냥 제3신분을 ‘장인(artisan)’과 ‘평민’이라고만 서술한다. 이것은 당시 부르주아들의 이중적 태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즉, 신흥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귀족에까지 격상시키는 것에는 관대하였던 반면, 노동자들의 성장과 시민으로의 편입에 대해서는 극도의 반감을 가졌던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의 역사적 가치에 비해, 그 열매가 부르주아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돌아갔다는 일부의 평가의 근저에는 어쩌면 이러한 의식적 차별화가 내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 논문인 <문필공화국의 해부>는 혁명 직전에 파리의 문필가들의 동향을 감시하였던 한 경찰관의 보고서를 분석한다. 이 경찰관의 목표는 프랑스 왕정을 위협할 수 있는 문필가들을 감시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적인 것이었다. 이 감시 목록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루소, 볼테르 등의 계몽사상가들과 달랑베르, 디드로 등 소위 ‘백과전서파’가 등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록 한 경찰관의 눈이었을망정 국가라는 최고 권력기관의 눈에 이들이 ‘현실의 존재’로 포착되었다는 점이다. 계몽사상가들은 체제를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는데(물론 그들의 재능은 경찰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그 의미는 작은 것이 아니다. 이전까지 생산과 변화는 거의 대부분 ‘육체노동’을 통한 것이었고 ‘지식’은 수도원 또는 일부 귀족계급에 한정되어 향유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계몽사상의 등장은 지식을 시민계급에까지 확장시켰고, 희미하기만 하던 지식인이란 계층을 실재로 만들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였다. 당시 지배층들은 사람들이 계몽사상에 ‘오염’될 경우 자신의 기득권이 사라져 버릴 것이란 점을 직감적으로 이해하였던 것 같다. 문필가들에 대한 경찰관의 감시 기록은 대격변을 앞둔 시기의 새로운 사상계층의 등장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 논문인 <‘백과전서’의 인식론적 전략>은 달랑베르와 디드로가 주도하여 만들어진 계몽사상의 대표적인 작품인 [백과전서]의 서문을 분석한다. 이 논문은 계몽사상가들을 외부의 눈으로 관찰했던 앞의 논문과 반대로 계몽사상가들 본인이 프랑스 사회속에서 스스로 인식하고 있던 사명감과 역할을 보여준다. [백과전서]의 항목들은 단순히 알파벳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원칙 속에서 작성된 것인데, 그 원칙이 바로 ‘지식의 나무’였다. 주목할 점은 지식의 나무에서는 이전 시기까지 가장 중요한 영역이었던 ‘신성의 영역’이 학문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단순한 편집 상의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지식의 혁신이었다. 왜냐하면, 항목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것을 넣고 빼느냐는 결국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식의 영역을 이성을 통해 증명가능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현실로 제한하였고, 예술과 과학 등의 영역이 신의 섭리나 비과학적인 재능이 아니라 인식과 추론과 같은 정신적 능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 주역은 바로 자신들, 즉 백과전서파였다.

(백과전서파인)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세계 속에 작용하는 신의 손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가며 일하던 사람들을 연구하였던 것이다. (중략) 백과전서파는 그 세계의 발전이 전적으로 자신들과 같은 지식인들의 영향력 덕분이라고 주장하였다. (p.281)

마지막 논문인 <낭만적 감수성 만들기>에서 활용된 자료는 한 시민의 도서주문서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당시 독자들이 가졌던 루소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루소에게 보낸 당시 독자들의 팬레터를 보면 그야말로 노골적이 애정공세도 무척 많았다). 베스트셀러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느냐를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그들의 인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루소의 책은 당시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로버트 단턴은 그 비결은 루소의 책이 독자들의 일상생활에서 완전히 ‘소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18세기 중반까지 독서가 ‘집중적(intensively)'이었다고 하였다. 성경이나 신앙서적, 싸구려 이야기 책 등 극소수의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명상하거나 친목모임에서 크게 낭송하였던 것이 독서행태였다. 그에 비해 18세기 후반부터 독서는 ’광범위(extensively)'해졌다. 인쇄물도 광범위해지고, 소설과 저익 간행물이 생겼으며, 한 번의 독서에 흠뻑 빠지고 난 후 곧 다른 책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런 독서행태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이것이다.

텍스트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대신에 책 속에 자신을 던져넣고 그 의미를 포착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야 한다.(p.355)

대혁명 이전에 루소에게 열광했던 독자들은 이전의 ‘점잖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자와 지식의 독점을 해체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세계에 대한 인식틀을 제공해 준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공헌이었다면, 텍스트에 몰입하고 현세계에서의 적용 가능성까지 나아가도록 한 것은 루소와 새로운 풍토를 담은 책의 공헌이었던 셈이다.

마무리하며....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은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어렵다는 평가도 많지만 음식을 꼭꼭 씹듯이 찬찬히 보면 그 논리전개에 신선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단턴의 책이 일종의 ‘결과론적 추론’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별적인 사실들에서 보편성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건에 개별적인 사실들을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건 거의 무한대로 존재하는 과거의 사실 가운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상대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프랑스대혁명 과정에서 왕족(귀족)-시민(부르주아)-노동자(프롤레타리아)의 대립구도를 알고 있다. 단턴의 작업을 조금 폄하하여 말하자면, 이런 대립구도를 보여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들을 찾은 것이다. 고양이 학살 사건에서 대립구도의 단초를 본 것인데, 만약 다른 역사가가 18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주인과 견습공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발굴하여 제시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람들의 일상사는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랑케가 주장한 바 사료의 객관성과 보편타당성 역시 무시해 버리기에는 어려운 가치라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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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사 2011-08-1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정말 공들여 쓰셨네요. 책을 아니 볼 수 없게 만드시는데요?
추천 하나 꾹 누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