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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었다
셔먼 영 지음, 이정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례 1>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2007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25퍼센트가 일 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 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정도이고, 성인 열 명 중 네 명은 한 달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책맹(冊盲)이다.
<사례 2>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는 백과사전 출판사가 고용하는 수많은 조사원이나 작가를 고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의미의 출판을 하지 않음에도 30만개의 항목과 9천만 개의 낱말에 대한 사전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참고로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겨우(!) 8만 5천 개의 항목과 550만개의 낱말로 이루어져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마추어라 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와 전문가인 [브리태니커]의 정확성 차이는 크지 않으며,
오히려 오류 수정은 위키피디아가 훨씬 더 빠르다는 점이다.
<사례 3>
"신문보다 인터넷" 중진 작가들의 온라인 진출 - 박범신의 [촐라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SBS 2008년 3월 5일 뉴스)
셔먼 영은 "책은 죽었다!"라고 용감하게 선언한다.
책이 죽다니!!! 아무 것도 읽지 않으면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문자중독증인 나에게 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을 잘 읽어가다 보면 "책은 죽었다"라는 용감하면서도 무모하고 충격적인 말이
사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어미를 가진 두 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첫째는 말 그대로 "책은 죽었다"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평서형 어미이다.
이건 위의 <사례 1>에서 보듯이 책을 읽지 않는 현실, 그 때문에 작가나 출판사에 닥친 불황 등등...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책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둘째는 "책은 죽어야 한다"라는 의무를 나타내는 어미이다.
[책은 죽었다]에서 셔먼 영의 일관된 주장이면서 주제는 책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 말은 책이 가진 외형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인 셔먼 영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1) 책은 2장 이상의 종이에 잉크로 내용을 인쇄하고, 그것을 묶은 물건이다. 따라서 책의 본질은 그 안에 품고 있는 '사상'에 있으며,
이 '사상'은 '책 문화'를 형성하고 전달한다.
2) 따라서 이 사상이 있어야만 책이며, 사상이 없는 책은 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안티 책(anti-book) '이다.
3) 그런데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책은 읽지 않고, 읽는다고 해봐야 이런 '안티 책'만을 읽는다는 점이다.
4) 왜? 정보가 필요하면 인터넷이 훨씬 빠르고, 즐거움은 TV가 주는 것이 더 재미있으며, 어딘가에 몰입하고 싶으면 게임만한 것이 없다.
5) 게다가 출판환경조차 좋지 못하다. 책을 내는 일은 비용이 적지않게 드는 일이지만, 요즘과 같은 세태에서 '책팔아 먹고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6) 그러므로 책은 이제 본질적인 변화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책의 외형을 죽이는 것이다"
책은 결국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 정보가 '감동'의 형태를 가지든 '실용'의 형태를 가지든 '지식'의 형태를 가지든, 그리고 그 정보가 쓸모 있는 것이든 쓸모 없는 것이든 책이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그 정보(본질)가 사물(외형)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을까? 쉽게 말해 책 속의 정보를 '책'이라는 껍데기를 통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보가 사물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보라. 요즘 '음악'이란 정보를 얻기 위해 CD나 LP를 누가 사는가? 대부분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지 않는가?
그리고 누구나 음악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다. 음반회사를 찾아가거나 CD나 LP로 만들 필요도 없다. 본인이 즐기면서 본인이 만든 것을 아주아주 손쉽게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
아직 책이란 외형적 물체는 존재한다. 그렇지만 점점 기술이 발달하면서 책의 형체가 없는 e-book이나 audio book의 사용도 증가한다.
아직까지는 책의 외형을 좋아하는 보수적인(?) 독자들 덕분에 책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 기술이 더욱 발달하고, 편리성과 접근성이 개선되고 난 이후로 현재 CD나 LP의 운명을 책이 맞이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위의 <사례 2>의 위키피디아처럼 이제 사용자들이 직접 책의 내용을 채워간다.
<사례 3>처럼 작가들이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고 독자들의 실시간 반응을 살펴보며 다음 이야기의 방향에 반영한다.
자... 이렇게 책이 외형을 버릴 때, 즉.... 책이 죽을 때 셔먼 영의 '천국의 도서관'은 완성된다.
이제 네트워크가 연결된 곳에서는 누구나 책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절판의 염려도 없고, 책을 보관할 광대한 공간도 필요없다.
책이 헤어지거나 떨어져나갈 염려도 없고, 빌려온 책장 사이에서 정체불명의 머리카락을 발견하여 기분 나빠할 걱정도 없다.
그뿐이랴..
이제 프로슈머(prosumer)가 된 독자들은 쌍방향으로 작가들과 대화하고, 때론 독자들 스스로가 글을 써서 올린다.
이렇게 디지털화 된 책의 세상, 책이 진정으로 죽은 세상. 셔먼 영은 그 세상이 이제 올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상상의 도서관'은 무질서면서도 무한한, 그러면서도 내적 질서를 가지는, 독서가들에게 말 그대로 '천국의 도서관'이었다.
셔먼 영 역시 [책은 죽었다]에서 '천국의 도서관'을 꿈꾼다.
그러나 셔먼 영의 천국의 도서관은 보르헤스의 그것과 '상상'이라는 특징을 빼고는 다르다.
아니, 셔먼 영의 천국의 도서관은 현실이면서 미래라는 점에서 '상상'이라는 특징조차 벗어버렸다.
이 책, [책은 죽었다]의 저자의 주장은 반신반의하게 하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게 한다.
솔직히 종이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종이책이 좀 더 발전해 주었으면 하는 욕심은 있으나, 지금의 독서문화는 우울한 것이 현실이다.
사실 요즘에 누가 논문이나 보고서를 쓰러 도서관이나 논문자료실을 먼지마시며 뒤지고 다니는가.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은 인터넷 클릭으로 습득하는 세상,
지하철을 타면 게임을 하거나 DMB를 보는 사람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되, 책읽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의 세상.
반대로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 환경은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어서 결국에는 책의 영역도 넘어가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기왕에 책의 외형을 죽일 것이라면 제대로 죽이고, 제대로 책의 사상을 살리는 방향이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상업주의에 빠져버린 출판문화는 책의 외형과 함께 죽어주었으면 한다.
물론 책을 출판한다는 것이 땅팔아서 먹고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을 벼락부자로 만들어주는 신통한 제품, 단기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았으면 한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책이 좋은 책이며 그렇지 못한 책은 나쁜 책이 된다는 논리,
그렇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하여 보이는 좋지 않은 노력, 즉, 지나치게 화려한 홍보나 마케팅, 과열경쟁은 이제 그만하였으면 한다.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책의 내용은 실망스럽기가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그 비용을 고스란히 독자들의 주머니로 환원시키는 모습이 없었다고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저자의 주장에 개인적인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저자가 말한 안티 책(anti-book)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입장이다.
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를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책을 선택하고 읽는 데에도 기호의 다양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고상하고 심오한 책들과 세계명작들만 남은 책들의 세계는 오히려 더 삭막하고 숨막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저자처럼 운동선수들의 자서전이나 저자의 명성에만 기대는 책들, 자기계발서, 재테크 책들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일 뿐, 그와 같은 책들에 책의 발전을 저해하는 ‘안티 책(anti-book)’이란 낙인을 찍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한 입장 속에는 뭔가 의미를 가진 책에 대한 일종의 우월주의적 사고가 투영된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되돌아 보아야 할 것 같다.
책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말이 길어진다.
우리나라 출판에 대해서 더 쓸 말은 많이 있지만, 일단 이 정도로 그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어려운 시기에도 좋은 책을 쓰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여러 작가분들과,
그 책을 독자들에게 아름답게 전달해 주기 위하여 땀과 눈물을 흘리고 계신 출판계의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