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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불멸의 사랑'....
사랑의 불멸성을 이야기하려면 플라톤의 [향연]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플라톤의 향연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랑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향연]의 연설가인 아리스토파네스에 의하면 제우스는 신들의 영역을 넘볼 정도로 강력한 인간을 견제하고자 인간을 반으로 쪼개놓는다.
이 쪼개진 양쪽은 한쪽은 남자, 한쪽은 여자가 되어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되며,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을 갈망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는 '에로스'가 깃들어 있다.
에로스란 본래 하나였던 몸이 쪼개진 후 그 쪼개진 반쪽을 찾아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신조차 넘볼 정도로 강한 힘을 인간에게 부여한 것... 그것은 잃어버린 반쪽과 결합하여 완전한 사랑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에게 에로스(사랑)란 원래 상태로의 회복이며, 치유이고, 능력의 원천이며, 힘이 된다.
앤드루 데이비드슨의 [가고일]에는 몇 가지 점에서 소위 '막장'인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잘 나가고 매력적인 포르노 배우이다. 그렇지만, 그의 육체는 마약과 알코올, 시시때때로 애인을 갈아치우는 쾌락에 빠져 있다.
겉으로는 화려했으나 그의 생활은 썩어 있었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막장'이었다.
이 남자는 결국 마약에 취해 운전하다가 전신화상을 입게 되고, 그야말로 끔찍한 외양과 고통스러운 치료과정만을 남기게 된다.
그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성기는 불타는 차 속에서 “심지만 남은 양초”꼴로 타버려서 겨우 흔적만을 남긴다.
그가 신뢰하던 것, 그의 생활의 원천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그의 두번째 ‘막장’이었다.
까맣게 탄 살만 남아서 하루하루를 약물과 고통스러운 치료 속에서 보내던 이 사람... 더욱이 견디기 힘든 것은 육체에 의존하여 살던 사람이 자신의 육체를 잃어버린 데에서 다가오는 절망감이었다.
결국 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결심한다. 이것이 그의 세번째 ‘막장’이었다.
이 세 겹 막장 속에서 이 남자의 삶의 결말은 당연히 보였다. 바로 죽음...
이 사람을 누가,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이 때 마리안네 엥겔이란 한 여성이 등장한다.
마리안네는 주로 가고일을 조각하던 조각가였는데,
그녀가 가고일을 조각하는 방식이 참으로 특이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않은 채로 모든 옷을 벗어버린다.
그리고 가고일을 조각할 돌 위에 몸을 밀착시키고 돌 속에 있다는 ‘가고일’을 일깨운다.
그녀가 가고일을 조각하는 것은 무생물인 돌에서 형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갇혀 있는 가고일의 영혼을 깨어나게 하고, 그 가고일을 속박하던 돌을 깨뜨림으로써 가고일이 스스로 세상 속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고일 조각 방식이 바로 마리안네가 화상으로 세 겹 막장에 둘러싸인 그를 위한 사랑의 방법, 에로스였다.
그는 육체의 즐거움, 마약과 술의 탐닉에 빠져 그것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속박하고 있는 돌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에게 돌을 던졌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그러한 그의 특성을 이용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안네는 마치 나체로 돌 위에 엎드려 있듯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않은 순수함으로 그의 영혼을 덮은 어두움을 깨뜨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도구로 사용한 것이 전생에서 겪은 자신과 그의 사랑이야기, 4명의 사랑이야기(프란체스코, 비키, 세이, 시귀르드르),
즉,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찾고 갈망하며,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는 불멸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마리안네의 사랑과 헌신으로 화상을 입어 죽음만 기다리던 그는 살아난다.
육체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도움을 얻어 지옥과 연옥, 천국을 다녀온 것과 같이 환상 중에 지옥을 체험하게 되고,
이제 완전히 ‘육체’라는 것을 벗어나 ‘정신’의 사랑이 가지는 의미를 깨우쳐 간다.
저자인 앤드루 데이비드슨은 환상처럼 보이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 곳곳에 삽화처럼 배치된 4편의 사랑이야기를 통해서
플라톤이 [향연]에서 이야기했던 ‘에로스’를 보여주었다.
서로의 반쪽을 찾아 헤매고 갈망하며, 그 반쪽을 찾아내었을 때 가지는 근원적인 힘으로의 회복과 치유인 에로스.
그리고 그 에로스를 통하여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렀음을 알려주었다.
700년, 아니 이제 영원히 지속될 불멸의 사랑을 통해서 말이다.
책에 대한 또다른 간단한 소감
1. 무척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창작하여 배치한 4편의 사랑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이면서도 뭉클하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주인공 남녀가 용병대의 추격을 받아 쫓기는 부분에서는 안타까우면서도 고통스럽기도 했다. 추워지는 날씨에 가슴아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원하는 친구가 있다면 좋은 선물이 될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 전에 [제물의 야회]라는 책을 선물로 받아서 읽었는데... 글쎄 이젠 솔직히 그런 이야기는 좀 질렸다. 오랜만에 따뜻한 이야기를 읽어본 것 같아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2. 저자가 사진빨을 잘 받는지... ㅎㅎㅎ 무척 잘 생긴 사람이었다. 냐하하.. 못 믿으실 분들을 위한 사진 뽀나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