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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의 야회 ㅣ 미스터리 박스 3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여름 휴가지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는 회사 동료가 선물해 주어 읽은 책입니다.
간단하게 책 뒷표지에 있는 글로 줄거리 소개는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범죄 피해자 가족모임'에 참가했던 두 여성이 살해되었다.
하프 연주자는 양 손목이 잘려나가고, 다른 한 명은 뒤통수가 돌계단에 내리쳐진 채로.
오코우치 형사는 피해자 남펴의 행방에 의문을 품지만 공안부에서 이유없이 수사를 중지시킨다.
또한 모임에 패널로 참석했던 변호사가 19년 전 일어났던
소년 엽기범죄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엽기적인 살인마와 프로 킬러가 맞붙은 순간,
경찰조직의 부패에 직면한 형사도 고독한 한 마리 늑대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뭐랄까요... 먼저 '머리'라는 그릇 속에 많은 물이 여러 곳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만 골라 내어도 여러 권의 책이 나올 수 있는 주제들.... 그 주제들이 정신없이 머리속으로 몰아쳐 들어왔습니다.
미성년 범죄자의 갱생은 과연 의미가 있는가? 범죄피해자의 사적인 복수는 허용이 되는가?
정치와 경찰이라는 국가기관간의 유착과 검은 거래는 사라지지 않는가?
그리고 그 검은 거래를 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던져 책임지고 입을 막아야 하는가?
이런 사회성 짙고 논쟁이 여지가 아주 많은 주제들부터 시작해서...
가족이란? 사랑이란? 친구란? .... 그리고 개인의 경험과 트라우마라는 상대적으로 미시적이고 심리적인 분야까지
모두 건드리고 나가는 작가의 좌충우돌식 글쓰기는 일면 위태위태하면서도
상대진영을 헤집고 다니는 축구선수(!!)를 보는 것처럼 즐거움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나오는 하드보일드한 장면들은 섬뜩섬뜩함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런 책을 보면 무척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이토록 잔인하면서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이제 현실이 되었고,
그 가슴 아픈 개인사의 뒷면에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어서 우리들을 더이상 나빠질래야 나빠질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하드보일드'라고 하는 것...
인간적인 상식 수준에서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양상들이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엽기적인' 사건이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받는 충격과 그에 따르는 '반성'이 점점 사그러들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하드보일드한 내용을 '책'이란 매체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어느 정도로 그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야회(夜會).... 밤에 여는 사교적인 모임이나 회합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동기이든 사회적인 동기이든 밤과 같은 어두움 속에서 은밀히 벌여지는 희생제물들의 잔치(!!!!!).
그렇게까지 우리 사회가 어두움에 가득차 있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