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아고라 -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격론의 순간들!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진부한 표현이 되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표현 속에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어울려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다소 도식적인 의미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어떻게 서로 다른 처지와 조건을 가진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스스로의 도덕성을 확보한 사회적 강제를 통하여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가장 바람직한 것을 개인들간의 자발적인 입장 정리와 통일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론’이 가지는 역사성은 인간이 집단을 이룬 역사와 동일하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토론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인 ‘아고라’나 소피스트들이 아테네 청년들에게 가르쳤던 것이 결국은 ‘변론’이었다는 사실,
케사르의 암살을 두고 벌어진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그 유명한 연설 대결.
고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을 담은 책에는 자신의 이상과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기 위한 토론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는 사실 등은 토론의 역사가 얼마나 장구한지를 말해준다.
토론의 역사는 현대 우리사회에도 지속되는데,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토론의 광장은 언제나 수많은 누리꾼들로 북적대며,
[백분토론]과 같은 토론 프로그램은 사안에 따라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기도 하고, 출연자가 다음 날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군왕과 신하들에게 끊임없는 자기수양과 학습을 요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언로(言路)’ 위주의 정치를 폈던 조선사회에서 치열하면서도 세련된 토론이 없었을 리가 없다. 
이 한의 [조선 아고라]는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격론의 순간들’이란 부제를 달고
조선시대의 5가지 토론, 즉, 한성천도 논쟁, 공법실시 논쟁, 제1차예송 논쟁, 제2차예송 논쟁, 문체반정 논쟁의 시초와 진행과정, 결과를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논쟁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알려준다는 지식의 전달 측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말랑말랑한’ 역사서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엄청날 정도로 많아졌다.
그렇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 이면에서 지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있는 문화사적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책에는 그러한 점에서 지은이의 수고와 고민을 읽어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각 논쟁들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만한 것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한성천도 논쟁: 비과학적인 것, 하지만 여러 사람이 인정하는 것(여기서는 풍수지리)은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을까?

공법실시 논쟁: 토지는 누구의 것인가? 왕의 것? 신하의 것? 민초들의 것? 왜 중국과 우리나라의 토지제도는 주나라 정전(井田)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는가?

제1차 및 제2차 예송논쟁: 현실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고려하는 것은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아닐까?

문체반정 논쟁: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정조시대의 개혁은 왜 실패하였는가? 왜 실학은 현실정치에서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학문적인 수준에서만 머물렀는가?

이러한 의문점들은 하나씩만으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주기 때문에 여기서 길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의 논쟁들을 읽으면서 조선이란 사회가 뒤로 올수록 세련되어지면서도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만은 지적하고 싶다.
설령 말뿐일지라도 조선 초기에 이상으로 남아 있던 애민, 부국의 가치에서 격식과 형식을 존중하는 가치로, 또 더 나아가 지배층이 보수와 통제의 가치로 돌아서는 과정을 다섯 편의 논쟁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 현상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며, 그렇다고 조선 초기가 긍정적인 사회였냐라고 묻는다면 또다른 길고 긴 논쟁이 될 것 같으니 잠시 여기서는 뒤로 미뤄두었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점이 현재에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의 논쟁’에서도 중요하게 생각되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나는 토론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곡학아세(曲學阿世)를 가장 조심하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와 타인, 우리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쉽다면, 이 책에 소개된 토론들이 모두 ‘국왕과 신하들’이라는 토론상대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쩌면 결국 토론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것이 국왕일 수밖에 없었던 조선사회의 정치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예송논쟁에서와 같이 세부적으로는 사대부들 사이의 논쟁이 섞여 있는 것도 있었으나,
국왕중심주의 하에서 어떤 주제든 정치적 토론의 중요한 축은 국왕에게 있었다는 점은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다소 학술적이거나 경제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나 정도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성리학적 세계관에 대한 유학자들(퇴계나 고봉 등)의 논쟁, 불교에 대한 논쟁, 조선 후기 경제적 변화에 대한 실학자들의 논쟁 등도 충분히 다뤄볼 만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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