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3 로마제국쇠망사 3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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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설 상의 로마의 창건자인 로물루스는 로마를 세울 즈음에 독수리 열 두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 독수리들은 열 두 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호사가들은 열 두 세기가 끝나는 때를 서기 447년으로 잡았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이 예언(?)이 얼추 맞았다. 오도아케르에 의한 서로마제국 멸망이 476년이었던 것이다.
‘독수리 신탁’을 받아들인다면 로마는 하늘의 뜻에 따라 ‘천수를 누리고’ 멸망한 셈이다(19년이나 더 갔다!!!). 그렇다면 독수리가 한 스무 마리만 더 날았다면 지금 우리는 세계 지도에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가 아닌 ‘로마 제국’을 찾아볼 수 있었을까? 기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기번은 로마 쇠망의 원인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 다해서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고, 예방가능한 것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날아가는 독수리 떼보다 더 확실한 징조가 로마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로마 정부는 적들에게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존재가 되는 반면 국민들에게는 더 혐오스럽고 압제적이 되어 갔다. 나라가 어려워질수록 세금은 불어났고 절약의 필요성은 요구될수록 오히려 반비례하여 무시되었다. 부자들은 부당한 행위로 가난한 자들에게 불공평한 짐을 떠넘겼고, 빈민들의 고통을 경감해 줄 수 있는 면제 방법마저 속임수를 통해 빼앗아 버렸다. 재산을 몰수하고 육체를 고문하는 가혹한 심문에 몰린 발렌티니아누스의 국민들은 차라리 더 단순한 야만인들의 폭정 쪽을 택했다. 그들은 숲과 산으로 도주하거나 야만족들 밑에서 돈을 받고 하인으로 일하는 비천한 생활을 받아들였다. 과거에는 전 세계인이 열망했던 로마 시민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버린 정도가 아니라 혐오했다. (p.368)

2.
율리아누스 황제 이후 로마 제국은 국내 각 세력들의 대립과 반란, 이민족들의 잦은 침입, 교회 내 교파들의 이단논쟁으로 혼란을 겪었다. 이 와중에 즉위한 테오도시우스는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여 국내 반란세력을 진압하는 한편, 로마의 위세로써 이민족들의 복종을 이끌어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에 국교로 격상된 그리스도교는 제국 시민들의 신앙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물론, 이민족들의 교화에도 이바지함으로써 로마의 위상을 높였다. 과거의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는 평화롭고 안온했으며 로마 제국의 명예가 지켜졌던 시대였다. 이런 점에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로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군대의 선두에 서서 전장에 모습을 나타냈고 전 제국에 걸쳐 널리 권위를 인정받았던 아우구스투스와 콘스탄티누스의 마지막 후계자인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함께 진정한 의미의 로마의 진수는 막을 내렸다. (p.89)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중병 환자였던 로마 제국이 피워낸 ‘마지막 불꽃’일 뿐이었다. 그의 무능한 후계자들과 권력욕에 불타는 총신들의 대립으로 인해 동서로 분할된 로마 제국은 훈족, 반달족, 고트족, 게르만족 등 주변 민족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는다. (이민족의 침입은 서로마 제국에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있었고, 동방의 페르시아를 제외하면 큰 위협을 줄 민족이 없었던 동로마 제국은 그나마 행운을 잡은 셈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세계사 시간에 서양의 중세 부분은 ‘훈족의 압박과 게르만족의 이동’이라는 장(chapter)으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민족들의 침입은 로마 제국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렇지만 사실 이민족들의 침입은 로마 역사 전체에서 비일비재했던 일 아니었던가? 문제는 과거 같았으면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는 승리했을’ 로마의 힘이 더 이상 발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치지 않는 투혼으로 카르타고인들과 갈리아인들을 경악시켰던 로마의 힘은 이제 소진되었다. 이민족들의 침입 앞에 속수무책으로 약탈을 당하다가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겨우 위기를 넘기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3.
나는 개인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폴리스들과 로마의 가장 큰 힘은 ‘내 조국은 내 손으로 직접 방어하는 정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재산과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치는 진취적이고 헌신적인 시민 정신이야말로 테베레 강변의 일개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를 전 지중해를 호령하는 대제국으로 팽창시킨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공화정 시대에는 귀족들이라 할 수 있는 집정관이나 원로원 의원들이, 제정 시대에는 황제들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전선의 맨 앞에 섰다. 국민의 대부분을 이루었던 시민 계급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장을 위하여 자비를 들였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가족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자발적으로 무장하여 나선 로마 군대를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 로마인들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로마인들에게는 결코 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 군대의 침입으로 로마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보라.

한니발의 원정 시기에 (중략) 당시의 원로원 의원들은 빠짐없이 미관 말직에서든 고위직에서든 군복무 임기를 다했다. 한니발이 로마에서 3마일 떨어진 아나오 강변에 진을 쳤을 때, 곧 그가 막사를 친 땅이 공개 경매에서 제값을 받고 팔렸다. (p.167)

한니발이 점령한 땅인데도 땅값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땅을 구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현재 적장이 점령한 땅인데도 반드시 자신에게 소유권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이건 보통 자신감이 아니라 높은 긍지와 믿음의 표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몇몇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병력은 금방 보충되었고, 마지막 승리는 언제나 로마의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 말기가 되자 이런 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신상의 안락 또는 현실에서의 쾌락일 뿐이었고, 이제 국가의 방위는 스스로의 손이 아닌 이민족 용병들에게 맡겨진다. 간단히 말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셈인데, 더 한심한 것은 몇 차례나 이민족 대장들에게 로마의 국토가 유린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군율이 느슨해지고 훈련을 하지 않게 되면서 병사들은 군무의 피로를 버텨 낼 힘도 의지도 약해졌다. (중략) 무기력해진 병사들은 그들 자신과 국가의 방어를 포기했다. 그들의 나약함과 태만은 제국의 몰락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p.60)

병역(兵役)에 얼마나 치명적인 악습이 만연하게 되었는가. (중략) 시민들과 국민들은 돈을 주고 자신의 나라를 지킬 중대한 의무를 면제받았다. 그리하여 이 의무는 야만족 용병들에게 넘어갔다. (p.122)

4.
진취적인 시민 정신과 함께 로마의 성장을 가져온 원동력은 세계제국으로서의 관용과 포용성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사실 전쟁에서 패한 피정복민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생존과 현실의 유지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요구를 정복자가 수용할 경우 지배에 대한 순응도과 통합의식은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아직까지 민족국가의 개념이나 제국주의-식민지라는 인식이 없었고 인적 자원에 사회의 발전을 의존하던 고대 사회에서 ‘승자의 포용과 아량’은 국가의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신교 전통을 이어받은 로마가 광신적인 신앙과 배타적인 포교 논리를 가진 일신교 전통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까지 받아들였다는 점은 보통 중요한 결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가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과 시민들의 다수가 믿는 종교가 되어 버리자 어느 순간부터 신앙의 순수성을 과도하게 주장하고, 진리와 믿음의 독점성으로 인해 내부에서조차 ‘너죽고 나살자’ 식의 이단논쟁이 발생한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그 중에서도 삼위일체설을 주장한 아타나시우스파의 교리를 정통으로 하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한 후 로마 제국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박해’가 일어났다.

테오도시우스의 법의 박해 정신은 (중략) 이교의식 자체를 벌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위배되는 이러한 행동들을 보고 묵인한 자에게도 우상 숭배죄를 폭로하거나 처벌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적지 않은 벌금이 부과되었다. (중략) 테오도시우스의 법의 박해 정신은 그의 자손 대대로 그리스도교 세계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거듭 강화되었다. (p.77)

간단히 말해 정통파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보아 우상숭배이거나 이단 교파인 경우에는 가차없이 생명과 재산상의 손해를 입혀도 무방하다는 주장인데, 그 논리의 이면에는 정통파라면, 모든 이단자는 천상과 지상의 지고한 권력에 거역하는 역적이므로 천상과 지상의 권력은 각각 죄인의 정신과 육체에 재판권과 처벌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독선과 광신의 논리가 숨어 있다. 이러한 독선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광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종교재판, 마녀재판, 이단재판.... 이런 것들이었다.

종교 재판관(이단 심문관)이라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이름의 관직이 처음 설치된 것도 테오도시우스 치세하에서였다. (p.22)

뿐만 아니라 이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한 그리스도교는 합법적인 재산증식, 병역회피, 사치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순수한 신앙에서 시작한 수도원 운동은 로마의 야심가들에게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통로로 받아들여졌다. 성직에서 성공한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세워 그들의 동료를 늘려나갔으며, 돈 많은 귀족 집안 또는 황실과 연계하여 자신의 수도원을 지원해 줄 개종자들을 확보해 나갔다. 결국 비대해진 수도원은 초심을 잃게 되었고, 귀족 청년들이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까지 타락한다.

인근 지방과 도시로까지 세력을 확장한 유명한 수도원의 재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히 증가했고, 사고로 줄어들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중략) 수도원이 번성하면서 규율은 무너졌고, 점차 부자라는 자만심에 젖어 마침내는 사치와 소비에 탐닉하게 되었다. (중략) 수도사들은 이제 수도원을 창설할 당시의 목표를 잊고 자신들이 저버린 세상의 헛된 감각적 쾌락을 좇았는가 하면, 창시자들이 엄격하게 덕행을 쌓아 획득한 부를 철면피하게 낭비하였다. (p.447)

5.
유럽의 역사에서 로마 제국이 가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해서 로마는 현재 유럽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하도록 만든 ‘멍석을 깔아준’ 역할을 했다고 본다. 비록 후세 역사가들의 시대 구분이겠지만,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서양 고대의 종언임과 동시에 중세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자양분과 헤브라이즘으로 대표되는 종교적/정신적 자양분은 로마라는 한 용광로에서 녹아들었고, 로마의 강역 확대와 함께 도나우 강에서 브리타니아 지방까지 지금의 전 유럽 땅으로 확대되었다. 도저히 같은 문화권으로 편성될 것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련된 이탈리아 반도의 사람들과 야만적이고 거친 갈리아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비록 국가는 달라도 공통적인 경제체제와 공통적인 정치체제를 영위하게 된 것이다.
서로마 제국 이후 이 역할을 담당한 것이 게르만인들이었다. 로마라는 명칭의 현실속의 국가는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왕 즉위와 동시에 종결되었지만 문화적 상징물로서 로마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에드워드 기번이 서로마 멸망과 더불어 지금의 프랑스 및 독일 지역에서 번영하기 시작한 프랑크 족의 클로비스 대왕에게 눈을 돌린 것과 중세 사회의 중요한 모습 중 하나인 수도원의 발흥에 관심을 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메로빙거 왕조를 열었던 클로비스 대왕은 공적을 세운 신하들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고 이를 농민들에게 경작하게 함으로써 향후 중세 시대의 지배적 생산관계인 분봉제도와 농노제도의 기틀을 잡았으며, 이제 서구인들의 정신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그리스도교는 수도원이란 공간을 통해 세속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과 아울러 문화의 전수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부하들은 말이나 갑옷 등으로 보상받는 대신, 공적이나 총애의 정도에 따라 봉토(benefice)를 받았다. 이것이 봉건 영지의 최초 명칭이자 단순한 형태라 할 수 있다. (p.511)

6.
동로마 제국이 남긴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서구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종말을 맞았지만 로마는 단순히 1500여년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역사적 국가로만 남아 있지 않다. 로마가 성장할 때, 그리고 위기에서 일어날 때에는 예외없이 헌신적인 지도자와 시민계급이 발견됨을 기억해야 한다. 에드워드 기번을 비롯한 서양의 역사학자들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로 격찬하는 오현제 시대는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직접 가장 미천한 자와 같이 군대의 선두에 서고, 권력의 자리는 독점이 아니라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과 함께 분점하다가 죽으면서 양위하던 시기였다. 주위의 많은 민족들과 전쟁을 벌이고 정복하고, 약탈 당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로마는 다른 민족의 문화를 인정하면서 그들을 로마 시민으로 적극적으로 포용하였다.
이제 유럽 지역에서 다시는 로마처럼 성장한 나라는 등장하지 않았다. 샤를마뉴 대제도,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지리적인 영토나 영향권은 로마에 버금갈 정도로 넓게 확보하였으나 로마와 같은 권력관계 및 문화적 성숙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유럽은 하나의 문화적/정신적 유산을 배경으로 한 서로 다른 민족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의 직접적인 권위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모든 그리스도교도 형제들을 영적으로 결합시키는 종교적 친교였다. (중략) 그 결과 서서히 유사한 풍속과 공통된 법제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근대 유럽의 독립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여러 나라들을 유럽 이외의 다른 나라들과 구별해 주는 특징이 되었다.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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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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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조차 가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캘리포니아는 책이나 사진,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 등 간접 경험만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땅이다. 하지만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여러 가지 ‘간접 경험’들을 종합해 봤을 때 캘리포니아는 축복받은 땅인 듯 싶다. 기후는 온난하고 땅은 기름지며 자원도 많다. 여러 곳의 대학과 문화시설들로 인해 문화적 수준도 높고 사람들의 소득도 다른 주들에 비해 높다고 한다. 주렁주렁 달려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 오렌지, 복숭아는 그 자체가 캘리포니아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안정의 상징이다. 캘리포니아는 430년 동안이나 노예 생활에 신음하다가 엑소더스(Exodus)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매불망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비교할 수 있으리라. 차이가 있다면 실제로는 척박한 사막인 가나안 땅과 달리 캘리포니아의 ‘젖과 꿀’은 실재라는 점이다. 서부개척시대의 미국인들이 왜 캘리포니아를 목표로 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가 되었는지,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풍요로운 땅 캘리포니아는 존 스타인벡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외다. 그는 기름진 땅에서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인물과 작품이 아닌, 광막한 광야와도 같은 [분노의 포도]를 썼다. [분노의 포도]의 전체적인 느낌은 황량하고 답답하다. 중간중간에 오아시스와 같이 지친 몸을 쉬게 해 주는 장면도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아무리 침을 삼켜도 없앨 수 없는 갈증과 ‘텁텁함’을 실감하게 한다. 모래먼지가 흩날리면서 목과 코를 메마르게 하고, 운명처럼 땡볕이 내리쬐는 땅을 지나가야 하는 힘겨움과 고단함,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아니라 전갈과 독사로 가득찬 광야와 같은 작품이다. 잘 실감나지 않는다면 한여름밤 열대야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 끈적거림과 후텁지근함, 답답함.... [분노의 포도]는 읽을수록 그런 느낌을 들게 한다.

술에 취해 엉겁결에 사람을 죽였던 톰 조드는 가석방되어 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운 고향 땅에서 그를 맞아 준 것은 황폐화된 농지와 폐가로 변한 고향집, 그리고 서부(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재산을 처분하는 가족들이었다.

그동안 내가 ‘대공황’이라는 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두 가지 측면에서 짧았음을 깨달았다. 첫째는 공간적 측면인데, 대공황의 이미지를 금융, 주식, 실업, 물가와 같은 것에 국한시켜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공황을 철저히 ‘도시적인 사건’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이 고통의 시기를 헤쳐 나가야 했던 농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의문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시간적 측면이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미국의 농촌 모습이 전적으로 ‘현재’의 이미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농지와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비료와 농약을 살포하는 모습,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와 과일들. 이렇게 풍요롭고 부요한 미국 농촌의 현실은 사실 ‘현재’ 미국 농촌의 모습이다. 풍요로움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닐 것인데, 혹시나 그 풍요로움의 이면에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분노를 삼켜야만 했던 미국 농민들의 피와 땀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드 일가가 정들었던 고향 오클라호마를 떠나는 과정은 자본의 확장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소설 자본론’이라고 볼 수 있겠다. 거듭된 가뭄과 모래폭풍은 은행에서 농사 자금을 빌려 농사짓던 농민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했다. 담보로 맡긴 그들의 농지는 트랙터로 정리되었고,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로 전락한다. 경작지를 대규모로 확대하고 농기계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면서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은행과 채권자(대농장 회사)들의 자본 확장의 논리는 소규모 자작농과 소작농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집을 부수고 그들을 땅에서 쫓아낸 것이다.
이렇게 땅에서 쫓겨나 농민들은 뿌리채 뽑힌 식물과 같은 신세가 된다. 이제 그들은 가족들을 먹고 살기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처분하여 멀고 먼 서부까지 이동할 차량을 구입하고 여행비용을 마련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땅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과 꿈과 희망까지도 거대자본에 도매금으로 넘겨진다. 개인적으로 다음의 대목을 읽으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온갖 정을 주며 한 가족처럼 키우던 말 두 마리를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넘겨야만 하는 이 비인간성! 이 무자비함과 잔인함! 식인주체의 본질을 여과없이 드러낸 자본의 위력!

저쪽 말은 여덟 살이고 이쪽 말은 열 살인데, 같이 호흡을 맞추는 걸 보면 쌍둥이 같아. 이빨을 봐. 전부 다 건강하다고. 허파도 튼튼하고, 다리도 예쁘고 깨끗해. 얼마 줄 거야? 10달러? 두 마리에? 거기다 마차까지.... 아이고 세상에! 차라리 죽여서 개밥으로 쓰는 게 낫겠다. 아유, 그냥 가져가! 빨리. 말갈기를 땋아주고, 제 머리에 있던 리본을 풀어서 말에게 묶어 주고,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갸웃하고 그 부드러운 코에 제 뺨을 비벼 대던 내 딸의 마음까지 사가는 거야. 햇빛 속에서 땀 흘리며 일했던 세월까지 가져가는 거라고. 말로 할 수 없는 슬픔까지도. (제1권, p.182)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여정도 순탄하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고향에서 뿌리 뽑혀야 했던 노인들은 여행을 견디지 못한다. 조드 일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는 길 위에서 죽음을 맞게 되고, 톰 조드의 형과 매제는 가족을 떠나 사라진다. 가족의 죽음과 해체라는 천신만고 끝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젖과 꿀이 흐르고는 있었지만, 그 젖과 꿀은 이미 자본의 것으로 독점되어 가난한 이주민들은 범접조차 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되어 있었다.
구름처럼 서부에 흘러 들어온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에도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그래서 임금은 더 떨어진다. 도저히 그 돈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과 영양실조, 질병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주민들은 서부로 몰려온 사람들을 ‘오키’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경계하였으며,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보안관들을 고용하고 총과 법으로 이주자들을 통제한다. ‘약속의 땅’은 순식간에 지배계급의 악랄한 노동력 착취와 빈곤의 악순환이 만연한 또 다른 ‘지옥의 땅’으로 변모한다.

포도원, 과수원, 크고 평평하며 초록색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계곡,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 농가들. (중략) 멀리 보이는 도시들, 과수원 지대의 작은 마을들, 계곡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아침 햇살. (제1권, p.477)

멀리서 바라보는 캘리포니아의 풍광은 ‘약속의 땅’으로 불릴만 하다. 계곡과 집은 아름답고, 농토는 넓고 기름지다. 과수원에 주렁주렁 달린 노란 오렌지와 가지가 휘도록 달린 포도는 먹음직스럽다. 하지만 대농장 주인들과 자본가들이 누리는 그 아름다움, 그 풍요로움의 이면에는 ‘분노의 포도(grapes of wrath)’가 익어가고 있었다.
분노의 포도가 열리는 첫 번째 원인은 작게나마 땅의 주인, 노동의 주체, 생산의 주체였던 농민들이 산업예비군으로 전락하여 철저한 소외를 맛보게 된 데에 있다. 그들은 쥐꼬리만한 급료를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도 언제든 경쟁사회에서 퇴출될 수 있는 사회의 최하층, 극빈층으로 전락한다. 분노의 포도의 두 번째 원인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소박한 꿈마저 앗아가는 자본의 무자비함과 냉담함에서 기인한다.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농민들의 소망은 단 한 가지이다. 바로 가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먹이는 것. 가끔 고기도 먹게 해주고 싶고 과일도 먹게 해주고 싶은 당연한 소망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의 비쩍 마른 몸으로, 제때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아이를 사산해야만 하는 누이동생의 비극으로 배신당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시키고 싶어했던 어머니의 소망은 옷 한 벌 제대로 해 입힐 수 없는 경제적 극빈과 캘리포니아 원주민 아이들의 차별대우 앞에 배신당한다. 기술을 배워 자신의 가게를 차리고 주말에는 여자친구와 같이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쉬기를 원했던 젊은이의 소원에 자본은 격심한 노동과 보잘 것 없는 보상, 총으로 무장한 보안관의 무력과 법이라는 무형의 제제를 가해 온다.

[분노의 포도]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조드 일가와 아이를 사산하고 기진맥진한 로저샨(톰 조드의 여동생)은 장대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오두막 안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가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어머니와 무언의 시선을 교환한 로저샨은 사람들을 모두 나가게 한 후 그 남자에게 젖을 물린다. 원래 이 젖을 먹어야 할 아이들은 죽어서 세상에 태어났지만, 이 젖은 한 생명을 살리는(최소한 그 순간의 굶주림은 면하게 하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나는 여기서 자본의 힘을 이길 유일한 힘은 역시 인간에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약속의 땅이라던 캘리포니아의 ‘젖과 꿀’은 인간을 배반하였지만, 서로 도우면서 자신의 것을 내놓는 인간의 ‘젖’은 공동체의 힘을 이루게 한다.
그런 점에서 톰 조드가 가족들을 떠나기에 앞서 어머니와 작별하면서 하는 말도 의미심장하다. 톰이 처음 감옥에 들어간 것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방을 삽으로 때려 죽였기 때문이었는데, 캘리포니아에 와서 가족들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는 파업에 참여하던 짐 케이시 목사가 대농장의 자경단원들에게 맞아 죽자 이성을 잃고 그 자경단원을 때려 죽이게 되는데, 이렇게 다혈질적이거 자기제어력이 부족한 그가 숨어 지내면서 깨달은 것이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떠나는 그를 어머니가 걱정하자 위로하면서 하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몰라요. (중략)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어디를 보시든.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러 댈 때도 제가 있을 테고,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앞에 두고 웃음을 터뜨릴 때도 제가 있을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스스로 가꾼 음식을 먹고 스스로 지은 집에서 살 때도 저는 거기 있을 거예요. (제2권, p.402)

아마도 앞으로 톰 조드는 캘리포니아에서 억압과 차별을 견뎌야만 하는 이주자들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기나긴 투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떤 형식의 투쟁인지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든 배고프고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겠다는 그의 선언은 사회문제에 대한 ‘개인’ 차원에서의 항의가 아니라 ‘공동체’ 또는 ‘집단’으로서의 힘을 자각하고 그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감상 한가지만 하고 정리할까 한다.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후반 미국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놀라운지고! 이 이야기 속에는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그리고 더 비극적인 건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태백산맥]을 비롯한 조정래의 대하소설들에 잘 나타나고 있는바, 우리의 현대사의 최소한 첫부분, 그러니까 해방을 전후로 한 시점에서부터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기까지의 과정은 한 마디로 농촌의 해체와 농촌의 희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이후 소작농에게 돌아갈 땅은 과연 누구에게 흘러갔으며, 1960년대 산업화라는 미명 하에서 뿌리뽑힌 농민은 과연 어디로 흘러들어 갔던가.
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대체로 참여정부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여러 가지 실망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인 노무현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워도 다시 한번?) 그렇지만 한미 FTA의 추진과 이라크전 파병은 내게 이해도 되지 않고 인정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인간 노무현마저도 미워하게 만들었던 두 가지 결정이었다. ‘힘’은 곧 ‘정의’라는 논리로 죄없는 이라크 민중에게 총을 겨눈 미국에게 ‘국익’ 운운하면서 가담한 일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농촌의 구조조정’ 운운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되어 농업의 글로벌화, 기업화를 외친 대통령의 모습은 또 뭐란 말인가.

[분노의 포도]에서 자본과 대농장들이 마침내 이룩해 낸 현재 미국 농촌의 모습. 대규모로 기업화된 모습은 과연 우리 농촌의 role model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해체된 삶의 터전을 떠나 도시의 빈민으로 편입되어 산업화의 희생이 되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비극을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은 다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희생을 강요하고, ‘분노의 포도’를 맺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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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뱀파이어 - 폭력의 시대 타자와 공존하기
임옥희 지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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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가 채식을 한다? 이건 이율배반적이고 존재부정이다. 낮에는 관 속에서 잠을 자고 밤이 되면 박쥐나 늑대로 변신해 가면서 생명의 상징인 피를 빨아대는 영생불멸의 무서운 흡혈귀가 양순한 소처럼 풀을 뜯어 우물거리는 모습은 개그 프로의 소재로나 쓰일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웃긴 얘기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라는 모순이 내 앞에 놓인 엄연한 현실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를 지배하는 것도 모자라서 전세계를 지배권에 두고 확장된 신자유주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승자독식’의  이데올로기다. 뱀파이어와 다르지 않다. 2등조차 기억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뒤쪽부터 세는 것이 빠른 사람들은 주변인도 되지 못하는 위치로 내몰린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빈곤과 차별, 배제와 학대로서, 마치 뱀파이어의 희생물처럼 말라 죽을 때까지 피를 빨리고 또 빨린다. 더 무서운 것은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면 역시 뱀파이어가 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자본에 피를 빨린 우리도 무의식중에 이런 빈곤과 차별을 따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식인은 원시인의 풍습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우리는 ‘식인주체’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기부정을 통한 공존이라는 존재론적 문제가 제기된다.

페미니즘은 어떨까. 페미니즘 역시 자기부정을 통한 생존의 문제에 당면해 있지 않은가.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은 뿌리깊은 가부장적 문화와 성차별에 대항하여 투쟁하면서 존재 영역을 넓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제도권 밖에서, 들판에서 외치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호주제는 폐지되고 부부별산제도 도입되었다. 공직에 여성할당제가 도입되었고 어떤 분야에서는 남성할당제의 도입이 거론될 정도로 제도적 성평등이 진전되었다. 여성가족부의 존재는 여성문제의 국가적 의제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부의 예산편성에서부터 사업의 집행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성인지적 관점’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책연구기관인 여성정책연구원과 여성단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오히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에서는 ‘페미니즘의 죽음’이 이야기되고 있다. 왜 그럴까?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흐름은 ‘페미니즘의 죽음’이다. 물론 다양한 처지와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의 공존을 통한 페미니즘의 부활 또는 재발견도 이 책의 중요한 주제이긴 하다. 그렇지만, 부활이나 재발견이란 결국 죽음 또는 상실이 전제되어 있는 개념인만큼, 책의 논의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저자가 왜 ‘페미니즘은 죽었다’라는 용감한(?) 선언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죽음은 이중적 함의를 가진다. 어떤 사회운동이든지 지향하는 목적이 달성된 이후 그 운동이 소멸한다면(즉, 죽음을 맞는다면) 그야말로 바람직한 일이다. 소위 ‘발전적 해체’란 이럴 때 써먹는 말이다. 그래서 저자도 서문에서 지적한다. 여성억압이 없는 사회가 되어 페미니즘이 용도 폐기되었다면 그 죽음을 경축해야 마땅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런 바람직한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원래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는데 운동의 성격은 자꾸만 변질되어 버리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면서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런 죽음이야 말로 통탄해 마지않을 수 없는 죽음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지금 이야기되는 페미니즘의 죽음이 경축할 만한 전자가 아니라 통탄해야 할 후자라는 점이다.

지금의 페미니즘이 통탄할 정도로 원통한 죽음을 당했다니... 너무 가혹한 말인가?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은 그동안 많은 제도적 성과를 달성했다. 물론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지만, 짧은 여성운동의 역사와 지난했던 과정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의 성과들이 평가절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단순히 과거의 성과가 미흡했다는 이유 때문에 페미니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죽음은 성과의 미흡이 아니라 성과의 고착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페미니즘의 중병(重病)은 그 운동이 일정한 기틀을 잡고, 국가적으로 페미니즘 담론이 수용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중병으로 허약해진 페미니즘은 모든 것을(젠더라는 담론조차도) 물신화하고 자본화하는 신자유주의와, 그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급적 대립구도 속에서 치명타를 맞는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를 읽으면서 저자가 은연중에 또는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의 죽음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 것이  ‘국가주의 페미니즘’으로의 변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가족부의 존재와 여성문제의 국가적 의제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여성의 지위 신장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과 절차적이고 양적인 성평등 담론 속에 ‘국가’란 단어가 의미하는 절대적 권력관계와 제도가 의미하는 합리가 어느 틈엔가 페미니즘을 국가주의 속에 편입시킨다.
시민사회의 발전이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반면 공동체의식은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게 바로 국가에 절대적 권한을 부여(혹은 반납)해 버리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인데, 여기서 국가는 한 가족의 가부장으로 대치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여성운동을 비롯한 제반 사회운동이 국가제도화 된다는 것은 이제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 경계인과 주변인들이 겪는 문제들의 해결책은 모두 가부장인 국가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이제 여성운동의 존재 의미는 단 한 가지만 남는다. 가부장인 국가가 이런 일들을 잘할 수 있도록 여러 좋은 대안을 마련하여 국가에 제공(혹은 헌납)하고 그 하회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 물론 그 대가도 있다. 정부보조금이라는 떡고물. 오히려 페미니즘 운동은 국가에 대해 어려움과 고통을 돌보는 자상한 아버지의 상을 만들도록 기여하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페미니즘은 그렇게 국가에 편입되었고, 또 국가로부터 배신당했다. 문제는 여성운동이 국가의 배신에도 변변히 저항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MB정부의 여성관련 정책들을 나열해 보자. 여성부 축소와 폐지 논의, ‘퍼플잡’이라고 불리는 유연근무제도 도입과 일-가정양립, 여성 관련 부처에 가족과 청소년 업무가 붙은 상황, 저출산 사회에서 적정인구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출산장려운동 등등.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촛불집회를 비롯한 반정부 불법(!!!) 집회에 참석하지 않아야만 정부보조금을 줄 수 있다는 방침. 여성운동의 영역을 제한하고, 여성의 노동력을 가족에 얽어매려 하며, 저출산의 책임이 여성에게 귀결되는 이 현실과 정책들에 대해 과연 제도화된 여성단체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국가주의 페미니즘으로의 편입은 종국적으로 계급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페미니즘으로의 전락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런 점에서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에 제시된 사례인 가족과 일자리에 대한 백인 중산층 여성운동가들의 관점과 유색인 하층 여성운동가들의 관점의 차이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중산층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족은 그들의 사회적 진출을 속박하는 족쇄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들은 가족구조의 해체와 여성의 사회진출을 주장하게 된다. 물론 가족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들의 주장은 의미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유색 하층 여성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용감하게(?) 가족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상류계급에 속한 백인 여성들의 배부른 푸념이자 자신들의 꿈을 산산조각내는 위험천만한 발상일 뿐이다. 상류층이 꺼려하는 사회의 질낮은 일자리에서 해고의 위험을 절박하게 감수하며서도 잠시의 휴식도 없이 노동해야 하는 이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가진 남편 및 사랑하는 아이들과의 가족생활은 해체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향해야 할 바이다. 동일한 사회적 현상 또는 사회적 제도에 대해 계급적 관점 차이는 이렇게 크다.
성매매에 대한 입장도 이런 복잡한 계급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어떤 이들에게 성매매 여성이 그 자리까지 전락하게 된 ‘신성한 노동에 대한 남성 독점주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가 배제 또는 도구화한 여성들이 집창촌을 형성한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합법적인 성, 그러니까 결혼과 가족의 구조 속에 있는 성일 뿐, 그 외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순결주의 또는 가족중심주의적 입장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중심주의의 가부장인 국가의 개입에 박수를 보내고 강력한 단속을 지지한다. 그 속에 숨은 국가의 폭력, 집창촌 지역의 개발을 통한 개발이익의 조장이라는 자본의 폭력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자. 그럼 이제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페미니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운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질문 자체는 간단하다. 제도화된 페미니즘을 극복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부활 또는 재발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여성운동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질문은 간단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제 우리의 삶은 가정, 교육현장, 노동현장 등을 가리지 않고 사소한 것 하나조차도 신자유주의의 물신화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 경쟁력을 갖추고 스펙을 높여야 하며, 다른 사람을 밟고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다.

이렇듯 강력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페미니즘을 재탄생시키기 위하여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에서 제시한 방법은 ‘성찰’과 ‘공존’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주체와 타자의 분명한 구분이며 이것은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낳는다. 나와 남 사이의 경계를 확실히 그은 후, 그 경계 너머의 대상은 뱀파이어의 희생물이 된다. 그래서 나 자신이 뱀파이어가 되어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 생존하거나, 타인을 내 생존의 걸림돌 또는 이용물로 삼아 잡아먹는 식인주체로서 살아가지 않았나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나와는 좀 더 떨어진 위치로 시선을 옮겨 자신을 타자해 보고, 경계를 넘어 내게로 들어오는 타자들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대하고, 폭력이 아니라 포용으로 대하고, 그들과 함께 유머를 나누고 문화와 예술을 통해 인생을 풍부하게 하면서 일상의 뿌리를 공유한다.
이게 바로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의 삶이다. 천성적으로 생명의 피를 빨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뱀파이어에게 채식은 자기 존재의 부정이다.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허기를 채식으로 달래는 뱀파이어의 모습은 아이러니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의 주장이다.

물론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를 돌아보고 타자들과 공존하는 것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내 생각을 짧게 덧붙여보고자 한다. ‘앞으로 페미니즘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답을 들었으니 이제 틀리든 맞든 내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이 좋은 책을 읽은 독자로서의 의무가 아닌가 한다.

앞에서 페미니즘의 죽음의 근거로 국가주의로의 편입과 제도화된 페미니즘의 모습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을 되살리는 길은 국가주의로부터의 탈피와 생명력있고 자유로운 원래 모습의 재발견이 될 것이다.
내가 페미니즘에 바라는 첫 번째는 타자에 대한 환대와 공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연대’의 관계맺음과 운동으로의 발전이다. 함께 공존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버스나 지하철에 몸이 불편한 장애우가 탔을 때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개인적 수준의 공존이라면, 장애우들의 이동권을 위해서 함께 잘못된 것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페미니즘 차원의 연대이다. 물론 누가 타든 말든 엉덩이 붙이고 무관심하게 앉아 있는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이니 공존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페미니즘의 외연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대변하고 함께 그들의 삶을 바꾸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연대란 것은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양자를 상호대립적으로 보게 하는 관점의 지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을 둘러싸고 남성들과 여성들의 감정섞인 이전투구는 페미니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다.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 상황에서 2년 내지 3년의 청춘을 군대에 바치는 것은 신성한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을 모두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단체들이 군가산점을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에만 매몰되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깝다. 평등의 관점에서 가산점 폐지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동시에 우리 사회가 신성시하고 있는 군대의 환상을 깨뜨리는 일에 남성과 여성이 연대해야 한다. 그건 구체적으로 국민개병제의 모순을 지적하고 모병제로의 전환과 군대내 인권과 안전의 확보를 함께 요구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바라는 모습은 국가주의와 계급적 이해관계를 뛰어 넘는 페미니즘이다. 이와 관련해서 여성운동 단체들이 최근의 저출산 현상과 관련하여 정부가 내놓고 있는 여러 가지 출산지원정책과 여성가족부의 퍼플잡(purple job, 유연근무제도)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란 것은 여성 입장에서 두 가지 위험성을 가지는 개념이다. 무엇보다 육아를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치환시키며, 또한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도입되는 유연근무제가 단순히 보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현장에 적용되는 것으로 변질될 우려가 커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고, 그 나마 경제활동이 비정규직, 임시직의 ‘질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본 입장에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임신 또는 출산하여 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려 할 때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내가 이윤율을 최고로 높이고자 노력하는 기업가라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해고 또는 잘해야 무급휴직을 제안하고, 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최대한 근무시간과 임금을 줄인 후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시키겠다. 그러면 인건비 절감 효과와 생산성 증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까. 지금 정부의 퍼플잡 정책에서는 이와 같은 노동시장의 재편에 대한 어떤 보호장치도 발견하기 힘들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정말 여성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야 하는가? 그리고 가정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기 위해서 근무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눈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할 위험성이 있는 정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까? 그럼 어떻게 여성의 가정과 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국가주의와 계급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할 페미니즘에서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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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17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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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놀랍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 이유는 기발한 발상과 그 발상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낸 작가의 노력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31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인명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인물들이 모두 허구의 가상인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런 형식 자체는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에서도 접한 바 있으니 완전히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볼라뇨는 좀 더 치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라. 말이 좋아 가상의 작가 31명이지, 볼라뇨가 창조한 것은 단지 전화번호부 찍듯이 만들어낸 작가들의 이름만이 아니다. 한 작가의 삶을 복원하려면 그의 작가로서의 활동, 그러니까 주요 작품의 제목과 내용과 주제들까지도 창조해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작가별로 서로 다른 성격, 가족관계, 인간관계, 관심사, 인생에서 전기가 된 중요한 사건들도 복원해 내야 한다. 그 뿐이랴. 가상의 인물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도 적절히 가미시켜야 한다. 작가들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와 주요한 정치적 사건, 스포츠 이벤트 등등 모든 것이 맞물려야만 비로소 한 명의 작가가 탄생되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한 두명도 아니고 30명 넘게 해 냈으니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은 단지 신선한 발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끈기와 노력의 결합물이라고 해야겠다.

2.
파블로 네루다, 이사벨 아옌데, 아리엘 도르프만, 그리고 이번의 로베르토 볼라뇨까지.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칠레의 작가들에게서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공통된 트라우마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칠레 현대사에서, 아니, 전세계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의 몰락이라는 트라우마 말이다.
왜 볼라뇨는 인류의 기형이라 할 수 있는 파시즘을 가지고 가상의 인명사전을 만들고자 했을까. 이후의 작품을 위한 습작일수도, 그냥 생각나서 썼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멋대로 내린 답은 로베르토 볼라뇨가 바로 칠레인, 그것도 파시스트들에 의해 몰락한 아옌데 정부의 비극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칠레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아옌데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 수립에 성공한 칠레의 대통령이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반제국주의를 천명하고 대내적으로는 독점재벌과 다국적 매판자본의 손아귀에 있던 구리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한다. 쿠바에 이어 자신의 ‘앞마당’에 등장한 반미정권을 미국이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일. 미국은 비축해 놓았던 구리를 국제시장에 풀어 칠레산 구리의 가격을 하락시킴으로써 칠레에 경제적인 타격을 가하는 한편, 군부를 움직여 직접적인 체제전복에 나선다.
1973년 9월 11일 아침부터 라디오 방송에서는 계속하여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립니다”라는 멘트가 흘러 나온다. 이 멘트는 우익 군부의 쿠데타 암호였고,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는 대통령궁에 진입하여 망명을 거부한 채 총을 들고 저항하던 아옌데 대통령을 무참히 사살한다.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한 달간 학살당하거나 실종당한 칠레 국민들은 10만명에 달했으며, 투옥과 고문을 받은 사람의 수는 아직도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나뭇잎 하나도 내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라면서 철권통치를 자행한 파시스트 괴물, 피노체트 정부는 1989년까지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시고니 위버 최고의 영화로 생각하는 <진실>은 바로 이 시기 칠레가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를 다룬 영화이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칠레 사회주의 정부의 수립과 몰락의 현장에 있었고, 칠레의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후 조국을 떠나 살게 된다. 비록 히틀러라는 개인, 국가사회당(나치)이라는 정당은 세계대전과 함께 사라졌지만 파시즘은 국가권력으로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그 파시즘이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일상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음을, 그리고 파시즘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지원했던 지식인, 문필가, 언론인들이 근절되지 않고 엄연히 존재함을 체험한 것이다. 그는 결국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로 스페인에서 눈을 감는다.

3.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이 말은 세상의 어떤 것도 한결같은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그래서 이 세계의 본질은 변화와 생성이라는 만물유전(萬物流轉)의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명제이다. 그런데 로베르토 볼라뇨는 첫 페이지에서 이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간단하게 뒤집어 버린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살이 완만하고 좋은 자전거나 말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강물에 두 번(개인의 위생적 필요에 따라 세 번까지도)까지도 멱을 감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 같지만 역사를 보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있었다. 볼라뇨는 파시즘에서 그 반복성을 보았다. 그리고 말한다. ‘완만한 물살’, ‘좋은 자전거’, ‘좋은 말’이라는 조건이 있을 때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있노라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히틀러와 그의 제3제국은 몰락했고, 그와 더불어 공동전선을 구축했던 이탈리아와 일본도 차례로 연합국에 항복한다. 수천만의 생명을 희생시킨 대가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목격한 대가로 인류가 배운 것은 다시는 나치와 같은 파시즘의 준동을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진리였다. 그래서 독일과 일본의 전범들과 나치 부역자들은 사형에 처해졌으며, 각국은 국민들에게 파시즘의 재등장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천명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보았을 때, 파시즘은 역사의 패배자이며, 흘러가는 강물처럼 다시는 나타나서는 안되는 죄악이다. 하지만 파시스트들은 포기를 모른다. 그들은 집요할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얼마전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후보가 15.6%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제 외국인과 다른 인종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공공연히 표출하고 국수적인 자민족 우선주의를 공약으로 하는 극우 정당이 높은 지지를 얻는 현상은 유럽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나타난다. 독일과 러시아의 네오 나치스들과 스킨헤드족은 공공연한 장소에서조차 외국인을 습격하여 린치를 가하고 목숨을 빼앗는다. 세르비아와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인종청소, 일본에서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 여전히 제3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군부’라는 괴물과 잊을만하면 신문 국제면을 장식하는 그들의 쿠데타 소식들. 우리도 그랬다. 50년 전에 시작된 군부독재는 1993년이 되어서야 겨우 형식적으로나마 종식되었다. 파시즘은 흘러가 버린 과거의 강물인가? 아니면, 또다시 우리가 발을 담궈야 할 지금 현재 시점의 강물인가?

피노체트라는 파쇼정부의 쿠데타를 직접 목격하고, 실제 그들에 의해 수감되었던 로베르토 볼라뇨가 그리고 있는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은 극우 파시스트들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행태, 그렇지만 소름이 쫙쫙 돋는 행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이 소설은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인 셈이다. 볼라뇨가 창조한 31명의 파시스트 작가들의 연보를 보면 2014년이나 2029년에 사망했다고 나오는 작가도 있는데, 바로 이것이 파시즘이 미래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우울한 예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볼라뇨가 패러디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에서 같은 강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 두 가지, 즉 ‘완만한 물살’이라는 환경적 요인과 ‘좋은 자전거나 좋은 말’이라는 도구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에서 히틀러와 나치가 정권을 잡기까지의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시즘의 등장 배경에는 극도의 경제난과 살인적인 인플레, 고도화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히틀러는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서 사회적 안전망이 와해되어 독일 국민들이 불안해 할 때, 그 책임을 이방인들, 그러니까 유태인과 집시들을 비롯한 외국인과 사회적 취약계층에게서 찾았고, 그들을 옹호하며 독일 제국을 붕괴시키는 집단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며 순식간에 반사적인 지지를 얻는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과 유럽 국가들에게 지금 준동하고 있는 파시스트 정당들의 주장도 히틀러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인격체로서 최소한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안전망(social safety net)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그 격차가 세습될 때, 주거‧교육‧의료와 같은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게 되어 차별이 발생할 때 그 속에는 파시즘의 망령이 배회하고 전체주의의 독버섯이 자라게 된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가기’를 구현하고 있는 도구가 문학이라는 저에서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은 문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지금의 문화에 대한 날세운 공격인 셈이다. 임지현 교수가 [우리 안의 파시즘]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과연 우리는 부지불식중에 의식과 사고, 생활양식 가운데 파시즘적 습속들을 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가부장주의,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등 한국의 소수자들에게 들이대고 있는 이중의 잣대, 지역적 차별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 규율과 복종의 미덕을 공급하고 있는 학교와 군대조직들. 안토니오 그람시는 권력의 속성을 이렇게 지적해 낸다. “권력이 강한 것은 억압과 강제보다는 동의의 기제에 의존할 때이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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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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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순정만화나 본다는 친구들의 구박과 작가의 사정(사이비종교에 빠져 있었다나)으로 여태 완간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점만 뺀다면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가면]은 내가 읽었던 만화 중에 손가락 안에 꼽는 작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만화를 보고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 연기자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보는 못된(!)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첫 번째는 배역에 자기자신을 완전히 함몰시키는 유형이다. 혼신을 다한 연기란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닌가 싶은데, 연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물론이고 그 연기를 준비하는 평상시에조차 연기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연기가 끝나고 나서도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종종 본다. 두 번째는 맡은 배역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유형이다. 배역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거수일투족, 몸짓, 말투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데,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유형의 연기자는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다양한 캐릭터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법이다.

[유리가면]의 두 여주인공인 마야와 아유미의 연기는 두 번째 유형에서 첫 번째 유형으로 변화해 간다. 즉, 배역에 대한 해석 수준을 넘어 자신이 맡은 ‘인물되기’로 발전하는 것이다. ‘인물되기’로 한 차원 올라서는 순간 그들은 원래의 자아를 벗어난다. 츠키카게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벽한 ‘유리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면이 깨지거나 벗겨지는 순간에도 이들이 본래의 마야, 본래의 아유미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점이다. 그들은 이미 가면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면이 벗겨진 마야나 아유미는 자아에 상처입은 연약한 인간으로 전락해 버린다. 유리가면이 깨진 연기자에게는 자신의 자아를 지킬 어떤 도구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유리가면]의 최고 명장면 가운데 하나는 꼼짝말고 있어야 하는 인형을 연기하던 마야가 어머니 생각에 한 줄기 눈물을 흘려버리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에서 가면이 의미하는 바는 [유리가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가면은 한 사람의 자아를 가리고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끔 한다. 2) 물론 가면 아래에는 본래 인물의 자아가 여전히 존재한다. 얼어붙은 강 아래에는 계속하여 물이 흐르는 것처럼. 3) 그렇지만 본래 자아가 가면의 자아와 동일화되는 과정을 밟게 될 때, 본래 자아는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가면의 고백]은 일생을 가면을 쓰고 자신의 본질을 숨겨가면서, 그렇지만 종국에는 그 가면으로 변화해 가는 한 남자의 색다른 성장고백이다. 주인공인 ‘나’는 어려서부터 유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고, 할머니의 권한이 막강했던 모계중심적 집안에서 자란다. 그런 환경 때문이었을까? ‘나’는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게 된다.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의 순교>라는 작품에 나오는 탄탄한 근육을 가진 인물(물론 남성이다)을 보고 자위행위를 시작하는가 하면, 건장한 남자의 살을 가르고 피를 뿜게 하여 제단에 바치는 사디즘적인 환상 가운데 탐닉한다. 똥지게를 퍼나르던 청년의 근육을 일평생 기억하고, 겨드랑이부터 가슴까지 털로 뒤덮인 동급생의 벗은 몸에 애정과 질투를 느낀다.
그리고 어떤 원인인지 모르지만 ‘나’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거의 매일같이 공습경보와 대피가 반복되던 시절에 ‘나’는 폭탄에 맞아서 요절하는 생각에 깊이 빠진다. 유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그나마 생기가 넘치는 젊은 시절에 죽음으로써 그가 자위행위의 대상으로 삼았던 ‘성 세바스찬’과 같은 영광의 육체를 얻게 될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런 본성의 목소리에 가면을 씌운다. 이성에 관심이 있는 척 하고, 모범적이고 공부만 아는 법대생의 삶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요절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습경보가 울리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방공호로 뛰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비참함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유리가면을 쓴 마야가 전혀 다른 자아로 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인 양 연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기는 비단 외부의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 본래의 자아를 향해서도 가면의 연기가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가면과 본성이 어떻게 ‘나’의 내면에 뒤섞여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마지막 부분이다. 친구의 여동생인 소노코를 사랑했던 ‘나’는, 하지만 가면을 쓴 자존심과 불안함으로 소노코와의 결혼을 거절했던 ‘나’는 전쟁이 종료된 이후 결혼한 그녀와 해후한다. 함께 무도장에 간 ‘나’는 그녀의 질문에 횡설수설한다. 왜? ‘나’는 그곳에서 소노코의 존재감보다 충실하고 탄탄한 근육을 가진, 팔뚝에 목단 문신을 한 남자의 야만적이면서도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반라의 육체를 발견하고 정욕에 휩싸여 버린 것이다.

나는 소노코라는 존재를 잊어버렸다.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여름이 한창인 거리에 저렇게 벗어부친 모습 그대로 뛰어나가 야쿠자들과 한 판 싸움을 벌이는 것, 날카로운 비수가 저 하라마키를 뚫고 그의 몸통에 꽂히는 것, 저 더러운 하라마키가 피범벅으로 아름답게 칠해지는 것, 그리고 그 피투성이 시신이 들것에 실려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

그 때 소노코의 음성이 들린다. “이제 5분 남았네요.” ‘나’는 그 순간 부지불식간에 가면이 벗겨져 내렸음을 깨닫게 되고, 필사적으로 그 가면을 다시 쓰고자 한다.

이 순간 내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가 잔혹한 힘에 의해 두 쪽으로 쩍 갈라졌다. 번개가 떨어져 생나무가 쪼개지듯이, 내가 지금까지 온 영혼을 기울여 쌓아왔던 건축물이 엄청나게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나라는 존재가 뭔가 일종의 무시무시한 <부재>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을 본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나는 아주 짧은 순간에 내 가면으로 다시 돌아와 얼어붙을 듯한 의무 관념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가면이 벗겨진 후 주인공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실된 본래의 모습일까? 진정한 자아의 외침이었을까? 아니다. 분명 확신하건데, 가면이 벗겨진 모습은 진정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방어능력을 상실한 채로 상처입고, 주위를 공격하고자 웅크린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무서운 것은 이 가면을 벗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가면을 쓴 사람은 이제 자신의 가장 큰 희망사항은 가면을 벗지 않고, 가면 자체가 자신의 얼굴이 되도록 하는 것이 된다. 본성과 가면이 뒤섞인 차원을 넘어서 가면이 본성이 되고, 가면이 자아가 되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광기이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자전소설이라 할 수 있는 [가면의 고백]에 나타난 이 가면의 미학에서 그의 일생과 일본 군국주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자신의 육체를 각종 운동으로 단련하여 근육질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미시마 유키오, 태평양전쟁 당시 죽음을 바라면서도 방공호에 가장 먼저 뛰어가던 자신의 모습에 탄식하던 미시마 유키오. 동경대 전공투 학생들과의 대결(?)에서 “천황을 인정하지 않는 너희들과는 서로 죽일 뿐”이라고 사자후를 토하던 미시마 유키오.
세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면서 천재작가로 칭송받았으나 결국 육상자위대 사령부에 난입하여 미일안보조약 개정과 평화헌법 폐지를 주장하다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의 일생은 가면의 일생이 아니었을까.
미시마 유키오 본인은 평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단순히 우익적이거나 군국주의적인 것이 아닌 순수함과 신념이며, 그것을 위해 죽겠다는 각오를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본 전통의 집적인 천황을 인간으로 격하시키는 평화헌법과 미국의 존재를 부정하고 천황을 보호하는 것이 아름다운 가치라는 입장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위들은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 가면으로, 두렵고도 인정할 수 없는 한 인간의 광기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탐미(耽美)하던 순수한 일본정신, 천황의 아름다움의 본질에는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을 가리고자 드리운 가면을 진짜 얼굴인 양 전도시킬 때 자신은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음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아니, 알았더라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가면이 진짜 자신의 얼굴이 되었다고 자신하고 있던 그를 향해 자위대원들이 보낸 냉소와 조롱 앞에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은 떨어져 나간다. 잃어버린 가면과 함께 상처입게 된 미시마 유키오의 영혼은 저항하거나 살아갈 힘을 잃는다. 그래서 그의 최후는 ‘할복’이라는 지극히 일본적 죽음의 미학으로 종결되고 만다. 마치 자신이 찬양하던 건물과 함께 죽음을 꿈꾸었던 [금각사]의 주인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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