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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1 ㅣ 로마제국쇠망사 1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직장생활하면서 책을 읽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을 읽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출퇴근 시간과 잠들기 전 시간을 활용해 보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다.
그래서 자꾸만 독서가 소설 쪽에 치우쳐 가는 것은 아닌지 은근 걱정될 때가 많다.
여름휴가나 명절은 그나마 시간 여유가 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맥을 끊어 먹지 않고, 오랜 시간 정독하며 독파해야 할 책에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추석 명절에 읽을 책으로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첫 번째 권을 택했다.
[로마제국쇠망사] 첫 번째 권은 기번이 ‘인류가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평가되던 로마 오현제 말기부터 시작하여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기 직전까지 약 250년의 역사를 다룬다.
역시 기번의 문장은 시원시원하면서도 유려했고, 흥미로웠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정립에 대한 마지막 2개 장은 보통 흥미로운 것이 아니어서 15장과 16장은 재독하며 읽게 되었다.
서양사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일까?
오늘날의 서양문화의 기초로 흔히 말해지는 것이 2H, 즉,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지만,
사실 이것은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억울할 수도 있겠다.
흔히 서양문화의 원류적, 사상적 측면의 공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돌리고
로마의 업적과 영향은 정치체제나 법률, 건축 등 실재적인 영역에서 찾곤 하지만,
서양 문화 전체에 있어서 로마의 가장 큰 기여점은 단지 실용적인 기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구’라는 하나의 거대한 영역을 확정지은 것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 때의 ‘영역’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강역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로마라는 하나의 문화로 포용되는 융합을 통한 영역을 의미한다.
로마의 지리적 강역은 현재의 영국에서부터 라인강, 도나우강 서부 지역, 이베리아 반도에서부터 아프리카 북부 지역,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소아시아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지금도 ‘서구’의 핵심적인 지역이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영토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
즉, 서로 다른 하위의 소(小)문화 간의 관용과 관대함, 융합과 인정에서 ‘Pax Romana’를 형성한 로마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는 피정복민에게 관대한 정책을 활용하여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평등한 권한을 누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피정복민이 오랜 시간동안 누려온 문화와 종교, 인적 자원을 인정하고 융합시키고자 하는 것이 기본적인 로마의 정책이었다.
어떤 민족의 문화이든지 세계의 중심 로마의 그릇 속에서 포용해 내어 녹일 수 있으며,
결국에는 로마 속에 녹아들어 제국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그 자신감에는 오만스러움보다 높은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자신감 넘치던 문화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사후부터 서서히 변질된다.
기번은 그 쇠망의 원인과 과정을 [로마제국쇠망사] 전체에 담아 두고 있다.
물론 아둔하고 잔인한 황제들, 고트족과 게르만족을 비롯한 이민족들의 침입 등 여러 가지로 그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첫 번째 권에서 가장 주목해 봐야 할 쇠망의 원인은 역시 앞서 언급한 자신감 넘치던 문화의 창조자를 잃어버린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본적으로 로마는 공화정 때나 제정 때나 진취적인 지배계급과 헌신적인 시민계급의 건강함을 미덕으로 하는 사회였다.
당시 서구 사회에서 최고의 위치라고 할 수 있는 황제를 보면 이 사실이 자명하다.
최소한 5현제 시기까지 로마 황제의 가장 중요한 일은 안팎으로 두 가지였다.
국내적으로는 로마를 잘 다스릴만한 사람을 찾아 그를 부황제로 삼고, 황제 교육을 시키다가 적당한 때에 ‘선양’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식에게 당연히 황제 자리를 세습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마치 고대 중국의 요, 순, 우 임금이 천하를 가장 잘 다스릴 사람에게 자리를 양위하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는 듯 했다.
국외적으로는 여러 속주들을 돌보고, 때론 최일선에 나가서 직접 전쟁을 지휘하며 군사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써야 했던 일이었다.
영화 <글레디에디터>에도 나오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전선에서 죽었다.
황제가 앞장서서 전투에 임하고,
귀족들과 시민계급이 직접 자비를 들여 무장하여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싸우는 로마군을 누가 당하겠는가?
덕망과 인품을 쌓아 원로원 등에서 인정받아 국가를 다스릴 만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황제 후보자들이 즐비하니, 어느 누가 황제 자리를 독점하거나 편협한 정책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5현제 이후 황제의 자리가 ‘선양’의 대상이 아니라 ‘찬탈’의 대상이 되면서 지배층의 도덕성과 자신감은 무너진다.
급여와 상여금을 올려준다면 서슴없이 황제의 목숨까지도 빼앗는 상비군으로서 근위대의 존재와 용병, 이민족들의 보조군으로의 편입은 ‘스스로의 수호’라는 로마의 뿌리를 갉아먹는다.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문화를 만들어 냈던 로마의 지배층, 솔선수범하여 국가를 지켜냈던 로마의 시민들은 이렇게 썪어가기 시작한다.
기번의 평가를 들어보자.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귀족들은 자신들을 군무에서 배제시킨 이러한 치욕적인 면제 조치를 오히려 일종의 특혜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그들은 목욕탕, 극장 및 별장에서의 향락에 탐닉할 수만 있다면, 제국에 관련된 보다 위험한 책무들은 농민과 병사들의 거친 손에 기꺼이 넘겨 주었다(p.309).
이것이 결국에는 제국의 분할과 쇠망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방에서 쳐들어오기 시작하는 이민족들과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형식적으로 4분하여 2명의 황제, 2명의 부황제가 각각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구축한다.
물론 당시에는 헌신적이고 서로 신뢰하던 4명의 황제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이민족을 물리치고 짧게나마 로마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을 지켜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고안된 제국의 분할은 결과적으로는 국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제국 재통일도 내전이나 마찬가지였고, 그의 사후 동서 로마제국의 분할과 대립도 국력을 쇠잔케 하는 원인이 되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번에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으면서 가장 몰입해서 보았던 부분은 로마에서의 그리스도교 발전과 박해에 대한 부분인 제15장과 제16장이었다.
혹시라도 [로마제국쇠망사]에 도전하는 분이라면 꼭 정독하여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로마 제국과 그리스도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제국의 박해와 신자의 순교라는 모습이 아닐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거대한 콜로세움에 맹수밥으로 던져진 그리스도교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인의 모습은
셴케비치의 [쿠오바디스]를 비롯한 수많은 로마 시대 영화를 통해 확대재생산된 이미지이다.
그 때문에 최소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공인 이전의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박해한 제국이라는 것이 확고부동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기번은 이런 고정화된 믿음에 상당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래서였을까? [로마제국쇠망사]가 처음 나왔을 때, 영국의 교계는 엄청나게 반발하고 기번을 2류 역사가라 칭하며 맹렬히 비난한다.
기번은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급성장한 이유를 다섯 가지로 든다.
첫째, 편협한 일신교의 열정, 둘째, 내세와 영혼불멸의 교리, 셋째, 기적의 힘, 넷째, 그리스도교인들이 보여준 미덕, 다섯째, 그리스도인의 단결에 적합한 교회 행정체계.
기번도 분명히 지적했지만 그리스도교는 분명 로마 제국에서 ‘성장했다’.
네로 황제 시기를 비롯하여 몇 차례 박해와 탄압도 있었으나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속성, 즉, 관용과 포용의 수혜를 최대한으로 입은 종교이기도 했다.
그들의 편협한 일신교 교리조차도 로마에서는 용인되었고, 그들의 예배는 특정한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묵인되었으며, 포교 역시 자유로웠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을 보면, 그가 로마 제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포교했고, 아무 제한 없이 무수한 교회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로마 제국내 속주들의 행정관과 총독들은 잔혹한 죄를 짓지 않는 한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처형하거나 가두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빌라도의 태도나, 바울에 대한 로마 총독들의 태도를 생각해 보라.)
그래서 기번은 분명히 말한다.
그리스도교인의 종교 교의 자체는 처벌이나 심문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p.640)
그리스도교인들이 교회 내부의 불화 과정에서 서로에게 가한 고통이 광신적인 이교도에게 당한 박해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p.690).
한 마디로 말하면 몇몇 황제에 의한 격렬한 박해도 잠시 있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로마 제국 시대에는 교회사에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높이 평가하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장기간에 걸친 박해와 순교는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로마 제국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스도교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유일신을 믿는 편협함은 주위 다른 종교를 가진 민족들과 사사건건 대립을 일으켰고,
이교도들이라 하여 다른 민족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으켰다.
내세에 대한 갈망은 스스로를 순교자로 만들기 위해 ‘오버’하는 경우가 잦았고,
교회 내의 재산 문제, 주교와 신자들과의 갈등, 중요 직책의 독점 등은 어떤 경우 속세를 뺨칠 정도였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이라는 관대한 둥지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이 둥지 속에서 너무나 크게 자라나 마침내는 그 둥지 자체를 먹어치울 지경에 이른다.
포용과 다원성을 정책 목표로 하던 로마 제국과 편협함 및 다른 민족에 대한 배척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그리스도교는 서로의 궁합이 맞지 않은 조합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 또한 로마 제국의 멸망을 앞당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냥 작은 도시 국가 상태였다면 모를까,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가 택한 것이 포용과 다원성이 아니라 편협함과 지식/신앙의 독점이라니,
이는 국력을 분산시키고, 다른 민족, 다른 종교의 반발을 불러왔을 것이 틀림없다.
로마 제국 쇠망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지 않은가?
땅에 떨어진 지배계층의 도덕성, 편협된 가치관... 이런 쪽으로 말이다.
이제 [로마제국쇠망사] 두 번째 권은 콘스탄티노플 건설 이후 로마 제국의 상황으로 이어져서 궁극적으로는 동서 로마제국의 분할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내부의 다양한 신학적 논의들, 즉, 아리우스파나 그노시스파 등을 어떻게 배격하면서 자신들만의 순수한 ‘지상낙원’을 이룩하고자 하였는지 펼쳐질 것이다.
약 2000년전 로마인들이 택한 길이 어떻게 그들 자신 뿐만 아니라 이후의 서구 역사, 나아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뱀꼬리
[로마제국쇠망사] 읽기는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또 언제 이렇게 꼭꼭 씹어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지 은근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