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알라딘’이란 인터넷서점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혹시나 내가 찾는 중고책이 나와 있지 않을까 해서이고,
또 하나는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in.co.kr/mramor)’이란 블로그를 둘러보기 위함이다.

인터넷 서평 중에 우연히 이 블로그를 처음 방문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한 마디로 그 때의 느낌을 말하자면 ‘경탄과 좌절’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의 분야를 가리지 않는 박학함에 놀랐고, 그 지식을 풀어낸 글에 반했다.
그야말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블로그의 페이퍼들을 넘겨가고 있었는데,
결국 좌절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신은 불공평하구나!”

하여튼 내게 존경심과 좌절감을 동시에 안겨준 양반의 책이 나온다니 적잖게 기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출간 초부터 너무도 빵빵한 언론의 지원을 보며 느낀 정체모를 당혹스러움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라는 책에 손이 가는 것을 멈칫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블로그는 뻔질나게 드나들며 눈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벼르던 책을 이번에야 붙잡고 읽어보게 되었는데,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일단 손에 잡은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는 독서스타일인데,
그 때문인지 책을 평가하는 개인적인 기준 역시 딱 한가지이다.
즉, 다 읽은 후에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 두 번 다시 던져놓고 다시 볼 마음이 안 드느냐의 기준 뿐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당연히 전자에 포함된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재독 욕구를 자극한다.

목차에 따르면 책은 다섯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나는 마음대로 양단해 버린다.
하나는 예술에 대한 논의(예를 들어 김기덕 감독에 대한 논의나 김훈‧김규항‧고종석 등의 문체에 대한 논의, 번역에 대한 논의 등등)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 세계에 대한 해석과 실천에 대한 논의이다.

예술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김기덕 감독이나 김훈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면 꾸준히 영화를 즐기고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흥미롭게 읽어내려갈 것이다.
반대로 그의 세상에 대한 논의는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어야 하고,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내 수준에서는 불가능했다.
니체, 라캉, 벤야민, 데리다 등의 굵직한 사상가들에서부터 슬라보예 지젝에 이르는 근현대 사상가들과 현실 사회를 연결하여 진행되는 논의를 보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으나,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 차례 고민하고 다시 읽도록 하였다.

멋대로 생각해 본다.
현대 사회의 구성과 동인(動因), 변화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주목해 보아야 할 사건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9.11, 이라크 전쟁을 꼽고 싶다.
소련의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어쨌거나 인류가 지향해 왔던 이데아 가운데 하나가 무너진 것이었고,
9.11 사건은 절대강자 미국에 도전한 가소로운(?) 집단의 테러를 통해 세계의 구성과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야말로 ‘보편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라크 전쟁은 현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야말로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으면서 위의 세 가지 사건과 사상적 편력을 바탕으로 로쟈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가 활용한 단어와 문구를 그대로 차용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2) (특히 젊은 층에게) 자유란?
3) ‘내가 나인 것이 기적’이다? 그럼 이 시대의 기적은?
4)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며, 정의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그럼 정의가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5) ‘레닌으로 돌아가자’ 지젝은 말한다. 레닌이 실패한 것, 레닌이 잃어버린 기회란 과연 무엇일까? 자본주의가 기생하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문제제기? 아니면 정치경제의 혁명적 폭력?

어느 것 하나 손쉽게 답할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로쟈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숨겨둔 것은 아니겠으나, 아둔한 머리로 간취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힌트를 얻었다면,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신선하게 보았던 부분이 다음과 같은 4개의 글이었다.

1) 네 번째 글인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
나는 여기에 소개된 콘찰로프스키의 자유에 대한 인터뷰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2) 여섯 번째 글인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김규항의 글에 대한 비판 중에 동의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로쟈의 비판이 힘을 잃을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3) 열여섯번째 글인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
데리다의 해체가 어떤 것인가를 흥미롭게 보았다. 아울러 그의 법과 정의에 대한 생각도 흥미로웠다. ‘정의에 복종하는 것은 정당하며, 가장 강한 것에 복종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명쾌한 말이었다.
4) 스물다섯번째 글인 <레닌주의와 대중 유토피아>
지젝이 언급한 ‘레닌’의 효용, 즉, ‘사고 금지’의 상황을 중지시킬 강력한 자유라는 측면에서의 ‘레닌으로 돌아가자’는 분명 매력적인 말이다.
하지만 3)에서도 언급한 정의와 힘, 또는 폭력의 관계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은 ‘너무 쉽거나 어렵지 않은 글, 너무 말랑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글’이 선정기준이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쉽지 않았다.
물론 한 번에 나름대로 이해한 글도 있었고, 흥미롭게 읽어내려간 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최소한 두 세 번씩 반복하여 읽어야 했다.
(문제는 그렇게 읽고서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태반이라는 것!!!)

이 책의 모태가 되는 블로그의 이름(로쟈의 저공비행)에,
그리고 책의 부제에(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에 공히 ‘저공비행’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저공비행은 말 그대로 비행기가 아주 낮은 고도를 비행하는 것.
그렇다면 로쟈는 대중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또 한 번 멋대로 생각을 해 본다.
비록 지공비행이 격추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블로그를 소중히 생각하여 응원을 보내며, 오늘도 즐겨찾기에 등록해 놓은 그의 블로그로 발길을 옮긴다. 내공이 딸려 댓글하나 못다는 눈팅족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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