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돌
아티크 라히미 지음, 임희근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인내’란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려서부터 ‘인내의 미덕’에 세뇌되어 온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해 봅니다.
‘조금 힘들어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어려움도 참으면 결국 복이 된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이 고상한 도덕규범이 혹시 이중적인 잣대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여기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로부터 맞으면서 자란 이 여성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남자에게 시집와서 또 3년간 남편을 만나지 못합니다.
혹시나 처녀 며느리가 도망갈까봐 감시하는 시어머니의 눈초리는 그렇다 치고,
3년만에 돌아온 남편은 여성의 복종과 일부종사( 一夫從事)를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여성으로서 아내의 인격과 권한은 모두 남자인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만 속한 것입니다.
더 기막힌 일은 이런 남편이 내전에 참여했다가 식물인간이 되어 돌아온 후 일어납니다.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여자에게 남편을 떠넘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때부터 이 여성은 아무 미동도 없는 남편의 병수발만 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병사들은 이 여성의 육체를 소유할 기회를 엿보면서도
여성이 ‘창녀’처럼 보일 때는 가차없이 그 여성을 악마로 매도하며 침을 뱉습니다.

[인내의 돌]을 통해 이 여성의 일상을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 여성에게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참고 인내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작가는 아프가니스탄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내를 강요당하고 있는 세계 모든 곳의 여성의 처절한 현실과 절망을 재현해 냈습니다.
우선 이 여성이 어떻게 낡은 인습에 메여 있는지 보십시오.
지배자인 남성은 먼저 여성의 몸을 자신들의 ‘영토화’합니다.
순결함에 대한 맹신, 월경을 불결함과 죄악으로 치환시키는 맹목,
여성은 재생산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편협함,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희생당한 여성에게 씌워지는 ‘더럽고 사악한 창녀’라는 낙인.
이런 사고방식 속에 여성들에게는 ‘인내’가 강요됩니다. 이게 바로 성정치학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인내의 기제는 ‘폭력’과 ‘힘’이란 남성적 가치를 통해서 뒷받침됩니다.
반대로 이 여성이 어떻게 스스로를 해방시켰는지 보십시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언어에 자신의 감정을 실음으로써,
그리고 분출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내뱉음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억압의 부르카를 한 겹 벗겨 냅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타자화된 성은 미약하게나마 제자리를 찾습니다.

말과 글이 있다는 것은 소수자, 억압받는 자에게 있어서 저항의 마지막 무기입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역사를 자신의 입장에서 기록합니다.
반대로 소수자는 혀를 잘리고, 억압받는 자는 침묵을 강요당합니다.
그리고 도덕을 통해서, 종교를 통해서, 규범과 법률을 통해서 참고 인내할 것을 가르칩니다.
숨막힐 듯 폐쇄적인 사회에서 소수자들은 목소리를 잃었고,
그 잃어버린 목소리는 절규가 되고 비명이 되어서 유령처럼 떠도는 것입니다.

[인내의 돌]은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내의 종말이 무엇인지를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방법에 대해서도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란 무작정 참고 인내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것, 자신의 존재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

결국 생게 사부르(syngue sabour), 즉, 인내의 돌은 깨어져야 합니다.
강요당한 인내가 깨어질 때만이 참된 자유가 오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에게 구원이 다가온 것처럼 말입니다.

살람 알레이쿰, 아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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