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력서를 보고 눈을 부라리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데, 경멸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여기 이력서에 오타가 있군요. 당신이 하는 일이 이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난 곧바로 받아쳤다. "저를 타이핑이나 하는 사람으로 고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는 내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상체를 뒤로 젖히고 웃어댔다. "앞으로 일 잘하겠군요"
아빠와 나는둘 다 가난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가난이란 문제에 대해 아빠는 절대로 돈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돈이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절대로,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식으로 반응했다. 반면 나는 계약법, 재무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실패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걸 배우는 식으로 반응했다. 아빠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문제들로부터 멀찍이 물러섰고 나는 그것들을 콕콕 찔러댔다.
내게 불편부당이란 개념에 대해 중요한 걸 한가지 가르쳐줬다. 이걸 추구할 때는 소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중략) 최소공통분모를 찾아 "하늘은 파랗다"라는 성명서를 내지 않았다. 그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 밀고, 찌르고, 때로는 언쟁을 벌였다. 피나는 노력을 해가면서 분석한 결과 우리 보고서는 강력해졌고, 우리 언어는 대담해졌다.
금융 업계의 최고 경영진 중에는 여자가 거의 없는데 어떻게 그들이 저지른 사고의 설거지를 하게 된 사람은 모두 여자일까, 라는 물음이었다. (참고로 워렌 및 당시 연방예금보험공사 총재,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여성이었음)
워렌씨는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금융위기 당시 제가 OO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요. 그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이야기를 하다보면, 누군가가 항상 이렇게 묻곤 했던 것 같아요. `이 일을 엘리자베스 워런이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 그 질문이 나오면 사람들은 항상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생각하게 됐죠.
일주일쯤 뒤 소포를 하나 받았다. 그 안에 대통령이 쓴 쪽지가 하나 있었고, 펜도 한 자루 들어있었다. 그것은 대통령이 소비자 보호 기관 법안을 서명할 때 쓴 펜중 하나였다.
난 조금 놀랐다. 난 대통령이 지금은 승리를 만끽할 순간이고 그럴 권리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비자 보호 기관을 법으로 제정한 업적은 그에게 아주 큰 승리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신이 이룰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나는 정치적 승리뿐 아니라 그가 한 일의 영향을 받게 될 서민들을 잊지 않는 이 사람을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교훈이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분노해서 어깨를 맞대고 싸운다면 상당히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교훈이다. 혹자는 지금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정계를 조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련다. 맞다. 우리가 뛰는 경기는 공평하지 않고 시스템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조작됐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계속 싸워나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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