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희망을 쓰다 - 루게릭과 맞서 싸운 기적의 거인 박승일의 희망일기
박승일.이규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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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희귀 난치성 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의 대상 목록에 올라 있는 희귀 난치성 질환의 종류는 813가지에 이르며, <눈으로 희망을 쓰다> 책에 언급된 바에 의하면 세계보건기구(WHO)에 등록된 종류는 5000여종이 넘는데다 아직 병명을 모르는 질환까지 더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 한다. 누구든지 이 수치를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름대로 희귀 난치성 질환에 관심이 조금 있기 때문에, 그 수치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상황 또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으로 희망을 쓴'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조심스레 나를 질책했다.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이 처한 '실제상황'은 나의 생각보다 백배는 더 아니, 가늠할 수도 없을만큼 절절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은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박승일씨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저 1년에 한번쯤은 감기에 걸렸다가 금방 낫고, 환절기엔 잠시 코막힘에 시달린다던가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하는 정도의 건강상 문제를 겪는 보통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굉장한 무게의 바벨도 거침없이 들어올리던 그가 제몸무게의 절반도 안되는 50kg짜리 바벨을 들어올리는데 문제를 겪게 되면서 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국내 최연소 농구 코치'라는 명예로운 타이틀 아래 농구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에게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보통의 루게릭병 환자들이 밟는 수순대로, 그의 온몸을 근육 마비 증상이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몸의 근육, 얼굴의 근육이 점차 마비되기 시작했고 혀의 감각 또한 서서히 사라져갔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눈' 뿐 이었다. '온몸이 천냥이라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처럼 그에게도 눈만큼 소중한 것이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세상과의 자유로운 소통에 가림막이 생겼던 그는, 눈 덕분에 '안구 마우스'라는 특수장비를 통해 다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소통을 위해 보통 사람의 몇배는 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 그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만의 '일'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을 앓게 되면서 그는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리 건강보험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라고 해도 희귀 난치병 질환자에 대한 지원은 부족했고, 그 중에서도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지원은 더더욱 부족했기 때문이다. 팔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제가슴을 쳐서라도 그 깊이를 호소하고 싶을 정도의 답답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만의 '일'을 시작했다. 환자와 그 가족의 등에 지워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요양소 건립을 위한 홍보가 그것이다. 병으로 인해 온몸이 마비되기 전에도 그는 백방으로 뛰었고, 침대에 누워 간신히 눈꺼풀만 움직이는 지금도 그는 백방으로 뛰고 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점차 한줄기 빛을 찾기 시작했다. 한 일간지에 그에 대한 기사가 기획으로 실리면서 사회적 관심을 조금 더 끌어모을 수 있었고, 그에 발맞춰 며칠전에는 평소 '기부천사'로 불리는 가수 션이 이 책을 보고 흔쾌히 1억원을 기부했다. 단 한번의 관심이라도, 단돈 만원의 기부라도 박승일씨에게 큰 힘이 될 터인데,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루게릭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분명 그럴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환자들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나눌 수 없다면, 그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박승일씨 외에도 다른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는 다른 이들의 사연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승일씨의 관조적인 자세는 한편으론 가벼운 웃음을 주었다. 다른 이가 들여다보면 메말라 보일 삶 속에서도 희망과 더불어 웃음도 잃지 않는 그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 상황에 놓였음에도 바보처럼 웃음이 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차마 그의 웃음을 웃음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병과 맞서 싸우는 박승일씨의 모습을 생각하며 암담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책읽기는 한줄기의 빛을 보며 끝이 났다. 어찌보면 극한으로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 한 몸의 안위보다, 자신과 일직선에 놓여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희망을 써내려가는 그의 노력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닐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의 백마디 말보다 더 큰 메시지를 던져 줄, 박승일씨가 '눈으로 쓴'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숨 쉴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나는 끝까지 루게릭을 위해 뛰리라.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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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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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에게 고소공포증이 생긴다면?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에게 무대공포증이 생긴다면? 과연 어떨까.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그 일에 책임감과 즐거움으로 몰두하던 사람에게 더이상 그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요소가 생긴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잠시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비행하는 일이 좋아 그것만을 배워 온 기장에게 고소공포증이 생긴다면, 기장은 더이상 비행을 할 수 없다. 단순히 일을 할 수 없다는 차원을 떠나, 생계도 곤란해질 뿐더러 하고픈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실감에서 오는 정신적인 피폐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다면…

 <책 못 읽는 남자>의 주인공이 그렇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하던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다수의 작품을 내며 활발한 활동을 하던 작가 하워드 엥겔은 어느 날 아침, 배달된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내가 경험해 본 일이 아니기에 그가 그 갑작스러웠던 상황을 서술한 것만으로는 쉬이 그 당황스러움을 백퍼센트 공감하기 어렵지만, 한동안 멍했을 그의 심정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이 일로 찾은 병원에서 하워드 엥겔은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 된다. 그가 '글을 쓸 줄은 알지만 읽지는 못하는 실서증 없는 실독증'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억기능에도 약간의 문제를 겪게 된다.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 얼핏 보면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중요함과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린 버스를 탈 때도, 길을 걸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컴퓨터를 이용할 때도 그리고 일상의 거의 모든 범위에서 '글자 정보'를 식별하고 받아 들이며 그것에 의해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하워드 엥겔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봐도 그가 얼마나 참담한 상황에 직면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참담한 벽에 부딪혀 주저앉는 것보다 다시 일어서는 것을 택했다.

 병원을 다니며 재활치료를 하고 컴퓨터와 주변 사람의 도움, 그리고 그의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이 굳은 벽을 넘지는 못해도, 돌아서라도 갈 수 있는 길을 새로 만들었다. 자신만의 생각과 방법으로 글자와 문장을 식별하는 눈을 키워, 결국은 이 책 <책, 못 읽는 남자>를 펴내게 된다. 실로, 그의 의지가 참 대단해 보였다. '포기'는 사촌형제쯤 되는 거리로 가까이 두고, '인내'와 '끈기'는 이종사촌쯤 되는 먼 거리에 두고 지냈던 나를 뒤돌아 보게 하는 의지였다. 학교에서 뇌과학 관련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어 그 기억과 관련하여 흥미롭게 느껴져 읽기 시작한 책이, 오히려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준 책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 하워드 엥겔의 책구절로 글을 마친다. 그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위기를 그가 어떤 태도로 마주했는지, 작품활동에 대한 그의 의지가 어떠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어서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었기 때문이다.

 「사는 게 그렇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다. 때로는 힘들고 혼란스럽지만 그 다음 날에 일이 쉽게 풀리면 보상이 된다. 열심히 일하면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울 때도 쉬울 때도 모두 같은 것의 부분일 뿐이다. T. S. 엘리엇이 항상 지적하듯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다 같은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혼란스러운 나머지 원고를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싶을 때조차도 나는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며 나의 작품이 나와 서로 어울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작품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책, 못 읽는 남자/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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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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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알같은 글씨로 다양한 분야의 광고를 싣는 신문에서 어느날 우연히, 다음과 같은 모집 광고를 발견한다면? 「기담을 구합니다! 직접 겪은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에게 상당액의 보수를 드립니다. 다만 심사를 통과할 경우에 해당됩니다.」나라도 마음이 동할 법한 이 광고를 보고 몇몇의 사람들이 자신의 기담을 심사받기 위해 특정한 장소를 찾는다. 바로 '기담 수집가'가 기다리고 있는 'strawberry hill'이다. 그곳에는 자칭 '기담 수집가'인 에비스 하지메가 기다리고 있고, 그는 기묘하고 신기하며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이야기를 찾고 있다. 애주가이자 애연가인 그는 기담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 온 사람들에게 술 혹은 음료를 권하며 그들의 기담을 경청하고, 기담을 말하는 사람들은 '상당액의 보수'를 탐내거나 혹은 아무도 믿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기담 수집가인 에비스 하지메가 바라는 대로, 그들이 들려주는 기담들은 확실히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거릴 만큼 흥미롭다. 자신의 그림자에 의해 칼에 찔렸다는 남자도 있고, 기묘한 계기로 인해 거울 속에 사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호화롭고 아름답게 살 기회를 우연에 의해 놓치게 된 여자의 사연도 있고, 어린이를 살해했던 괴인같은 범죄자와 신기하게 맞딱드리게 되는 사람도 있다. 책에 실린 기담들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롭다. 어떻게 보면 일상적인 요소에 파고들어 있는 기담들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비스 하지메와 그의 조수 히사카 앞에서 기담을 이야기하는 그때부터 그들의 기담은 더이상 기담이 아니게 된다. 유쾌한 에비스가 신기한 기담을 듣고서 아주 흥미로웠다며 호탕하게 보수를 논할 무렵, 냉철한 조수 히사카가 그 기담에 반전을 가미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담을 하나 더 모았다고 기뻐했던 에비스의 흥분은 차게 식어 버리지만, 대신에 'strawberry hill'을 찾은 손님이 말한 기담은 더이상 기묘하기만한 기담이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철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똑 부러진 사건이 된다. 책을 읽는 나의 입장에서는 기담이 기담이었을 때도, 기담이 톱니바퀴같은 이야기가 되었을 때도 흥미로웠다. 기담은 기담 나름대로의 오묘한 신비함이 있기 때문이고, 똑 부러지는 톱니바퀴같은 이야기도 철컥철컥 맞아 떨어지는 이음새에 감탄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일곱번째로 에비스를 찾아와 역시 기담을 이야기하는 마지막의 이야기는, 기담의 느낌보다 환상의 느낌이 강하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앞 6편의 이야기에 적응되어 다소 심심해지던 찰나, 다시 눈을 반짝이게 한다. 그리고 얕은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한여름에 시원함을 가져다 주는 기담이나 공포의 느낌보다 오묘하고 야릇한 느낌이 강해, 그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다. 앞 6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받았던 2% 부족한 느낌이 일곱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라졌다. '기담'이라는 이야기의 특성상 헤살꾼(스포일러)이 되지 않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앞 6편의 이야기는 마지막 일곱번째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차곡차곡 앞편을 읽어나가며 정말 오묘한 마지막 '기담'의 여운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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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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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디자이너, 그것도 출판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디렉터의 책이라기에 먼저 책을 손에 쥐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디자인을 맛봤다. 서점 가판대를 쌩하니 지나가는 독자도 멈춰 세울 것만 같은, 단순하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디자인이다. 비록 '비둘기 똥구멍'이라는 원색적인 단어에 잠시 멈칫하게 될지라도 이는 본문에서 그 뜻을 납득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 볼 때 이 원색적인 단어 하나로 책의 내용을 축약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본 적도 없으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데다가, 그 정체조차 불확실한 '비둘기 똥구멍'은 디자인을 맡기는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를 상징한다. 땅에 두 발 붙이고 걷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날으는(그것도 눈 깜빡이면 눈앞에서 사라지는) 비둘기의 뒷태를 감상하고 그걸 눈에 담았다가 그려내겠는가. 그렇다, 이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거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없는 요구를 한다거나 하는 류의 클라이언트들을 말하는 것이다.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를 예로 들자면 고작 천원을 쥐어 주면서, '가서 떡볶이랑 순대, 튀김 사오고 거스름돈 꼭 받아와' 라고 무리수를 던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하겠다.

 책의 저자는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하고, 꽤 오랫동안 이 나라의 디자인 세계에 발 붙이고 살면서 꽤 느낀 것이 많은 듯 싶다. 앞서 언급한 '비둘기 똥구멍'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부터 디자인을 돈 주고 맡긴다는 개념이 없는 일부 관행, 디자인을 경시하는 문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특히 저자는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컴퓨터 상의 한글 문서 작성 프로그램, 신문의 한글 활자체, 일본의 기무치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김치 등 마땅히 이것들을 지키고 장려하며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손 놓고 있을 때, 저자는 '디자인'과 '우리의 것'이라는 명분만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작업을 한다. 큰 댓가가 따르는 일이 아님에도 그가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명예 때문이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무언가가 휙휙 바뀌는 세상이라도 지킬 것은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신념은 우리나라 디자인의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분명 디자인은 중요하다. 같은 값이라면 당연히 예쁘고 멋지며 눈길 가는 것을 고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저자의 말처럼 짝퉁 디자인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미키 마우스나 아톰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낼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며, 30년 만에 바꿔 다는 자동차 번호판의 숫자 디자인조차 예산을 다 써버리고도 완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밖에도 저자가 본문 곳곳에서 찝어 낸 소소한 문제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디자인에 인색한걸까? 가끔 신문이나 잡지의 칼럼 등에서 저자와 같은 류의 발언을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생각해봐도,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도 사실 잘 모르겠다. 대대적인 '디자인 부흥책'이라도 해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자가 현실에 대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디자인계 혹은 디자인계를 둘러 싼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수줍은 대안이라도 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한입 베어먹은 사과 하나를 그려넣거나, 단지 체크무늬를 벅벅 그려놓았을 뿐인 상품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까짓 사과 대충 그린거네 뭐'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사람들 눈에 콕 박힐 만한 그 단순한 그림 하나를 쥐어짜내기 위해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을까. 이를 생각해본다면 디자인 세계를 둘러 싼 일들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 하듯이 혹은 호소하거나 비판하는 듯이 날을 세운 저자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디자인을 쉽고 재미있게 썼다'기 보다는 '디자인의 곤욕'에 대해 강의를 들은 듯한 여운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디자인의 모난 면 뿐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운 면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 같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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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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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워>의 첫인상은 아찔함과 독특함이었다. 아스팔트의 열기가 거리를 잠식해 오는 초여름에 만난 빨간색의 표지라니, 게다가 지상 674층짜리 마천루 국가(일명 '빈스토크')가 배경이니 체감할 수 없는 높이와 소재가 주는 아찔함과 독특함이 나로 하여금 한껏 기대를 하고 첫장을 열게 만들었다. 첫장을 열며 생각했던 독특한 국가 빈스토크를 위시로 한 엄청나게 독특한 이야기는 사실 없었다. 분명 배경도, 행정시스템도, 사상도 매우 이질적이면서 독특했지만 그것들을 아우르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권력의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과 그 성질, 인간들 간의 반목, 이기적인 인간군상의 면면들 모두 지금 내가,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어느 대목에서는 이것이 허구를 그린 소설인지, 9시 뉴스를 받아적는 것인지 갸우뚱할 정도로 흡사한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특정한 대목에서는 뜬금없이 뒷장을 뒤적여 펴낸 날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혹시, 얼마 전 일어난 Y시 에서의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쓸 만한 기간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어느 부분인지 알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는 허구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그렇게 엄청나게 독특한 이야기는 없으면서 현실과 별 다를 바 없는 이야기면서도 <타워>는 지루하지 않았다. 빈스토크라는 이상하면서 특이하고 유쾌해보이기까지 하는 마천루 국가에 자연스럽게 현실을 녹여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9시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접하는 그 소식들이 전혀 다른 배경에서, 전혀 다른 인간들에 의해 사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꽤 재미있다. 보통 사람의 상식 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뇌구조를 가진 권력자들의 유전자는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변형되지 않는 것인지, 어쩜 '저지르는' 일은 여기 아래서나 빈스토크 위에서나 똑같다. 아주 약간의 정신이상과 돈, 욕이 섞인 일방적인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이 권력자들의 전통적인 자격요건이라도 되는 것일까? 권력자들의 힘을 그리면서도 왠지 그들의 멍청함을 슬며시 드러내 독자의 '킬킬거림'을 유도하는 것 같은 작가의 블랙유머가 <타워>의 백미였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란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에 더 끌리는 모양이다. 블랙유머 식으로 빈스토크의 윗동네(상류사회)를 그려내던 다른 단편도 즐거웠지만, 나는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약자들에게는 똑 부러지게 매정한 국가가 개인에게 등을 돌렸을 때,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국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해 마침내 구원의 손길이 되는 것을 보며 나는 희망의 희열을 느꼈다. '그래도 이 사회에 정의는 살아있다!'는 류의 대사까지 치기엔 약간 난감하긴 하다. 하지만 수많은 개개인들이 거미줄처럼 하나로 엮여 결국 해내고야 말았을 때 나는, 곰팡이 핀 윗동네가 이끌어가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런 개개인이 있으니 어쨌든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희망을 느꼈다. (어쩌면 희망고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타워>는 우리의 세계를 빈스토크라는 빌딩국가에 꽉꽉 채워넣은 것 같은 소설이었다. 우리의 세계가 빈스토크의 세계로 치환되어 있었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읽어내려간 <타워>. 작가는 우리의 터전에 무례하게 서식하고 있는 곰팡이같은 것들에 대해 빈스토크라는 유쾌한 설정을 통해 에둘러 말했지만, 그 숨겨진 뾰족함은 생각보다 세밀했다. 우리의 윗동네에도 이 뾰족함에 제 발 저릴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아 난 킬킬 웃으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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