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희망을 쓰다 - 루게릭과 맞서 싸운 기적의 거인 박승일의 희망일기
박승일.이규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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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희귀 난치성 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의 대상 목록에 올라 있는 희귀 난치성 질환의 종류는 813가지에 이르며, <눈으로 희망을 쓰다> 책에 언급된 바에 의하면 세계보건기구(WHO)에 등록된 종류는 5000여종이 넘는데다 아직 병명을 모르는 질환까지 더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 한다. 누구든지 이 수치를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름대로 희귀 난치성 질환에 관심이 조금 있기 때문에, 그 수치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상황 또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으로 희망을 쓴'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조심스레 나를 질책했다.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이 처한 '실제상황'은 나의 생각보다 백배는 더 아니, 가늠할 수도 없을만큼 절절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은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박승일씨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저 1년에 한번쯤은 감기에 걸렸다가 금방 낫고, 환절기엔 잠시 코막힘에 시달린다던가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하는 정도의 건강상 문제를 겪는 보통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굉장한 무게의 바벨도 거침없이 들어올리던 그가 제몸무게의 절반도 안되는 50kg짜리 바벨을 들어올리는데 문제를 겪게 되면서 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국내 최연소 농구 코치'라는 명예로운 타이틀 아래 농구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에게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보통의 루게릭병 환자들이 밟는 수순대로, 그의 온몸을 근육 마비 증상이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몸의 근육, 얼굴의 근육이 점차 마비되기 시작했고 혀의 감각 또한 서서히 사라져갔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눈' 뿐 이었다. '온몸이 천냥이라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처럼 그에게도 눈만큼 소중한 것이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세상과의 자유로운 소통에 가림막이 생겼던 그는, 눈 덕분에 '안구 마우스'라는 특수장비를 통해 다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소통을 위해 보통 사람의 몇배는 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 그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만의 '일'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을 앓게 되면서 그는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리 건강보험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라고 해도 희귀 난치병 질환자에 대한 지원은 부족했고, 그 중에서도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지원은 더더욱 부족했기 때문이다. 팔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제가슴을 쳐서라도 그 깊이를 호소하고 싶을 정도의 답답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만의 '일'을 시작했다. 환자와 그 가족의 등에 지워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요양소 건립을 위한 홍보가 그것이다. 병으로 인해 온몸이 마비되기 전에도 그는 백방으로 뛰었고, 침대에 누워 간신히 눈꺼풀만 움직이는 지금도 그는 백방으로 뛰고 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점차 한줄기 빛을 찾기 시작했다. 한 일간지에 그에 대한 기사가 기획으로 실리면서 사회적 관심을 조금 더 끌어모을 수 있었고, 그에 발맞춰 며칠전에는 평소 '기부천사'로 불리는 가수 션이 이 책을 보고 흔쾌히 1억원을 기부했다. 단 한번의 관심이라도, 단돈 만원의 기부라도 박승일씨에게 큰 힘이 될 터인데,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루게릭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분명 그럴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환자들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나눌 수 없다면, 그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박승일씨 외에도 다른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는 다른 이들의 사연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승일씨의 관조적인 자세는 한편으론 가벼운 웃음을 주었다. 다른 이가 들여다보면 메말라 보일 삶 속에서도 희망과 더불어 웃음도 잃지 않는 그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 상황에 놓였음에도 바보처럼 웃음이 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차마 그의 웃음을 웃음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병과 맞서 싸우는 박승일씨의 모습을 생각하며 암담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책읽기는 한줄기의 빛을 보며 끝이 났다. 어찌보면 극한으로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 한 몸의 안위보다, 자신과 일직선에 놓여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희망을 써내려가는 그의 노력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닐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의 백마디 말보다 더 큰 메시지를 던져 줄, 박승일씨가 '눈으로 쓴'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숨 쉴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나는 끝까지 루게릭을 위해 뛰리라.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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