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1. '한 줌의 눈'에서 뻗어 나온 생명력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거쳐, 다시 나치 정권과 소비에트 시대 그리고 통일된 독일까지 이어진다. 숙명적 죽음이 우연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고, 이는 다시 숙명적인 죽음으로, 또 다시 우연의 삶으로 돌고 돈다. 이는 끊어지지 않는 실로 엮여 반복되는, 운명이되 운명이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2. 불시에, 불특정한 완력에 의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숙명과 우연이라는 질료로써 그 구멍들을 메워 보지만 삶이라는 세계가 가진 폭은 너무나 깊고 넓어서, 겨우 어느 한 부분을 메웠다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이정표를 부여받지는 못한다. 단지 결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의 진행 끝에, 애초에 부여된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귀결을 맞을 뿐이다. 모든 삶은 그렇게 종결된다. 속절없는 비극이다.


3.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읽어도 하나의 생각은 날로 분명해진다. 개인은 시대에 잠식되고 함락되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이 불변의 진리 앞에서, 나는 이제 시대를 향해 저항의 손을 들기보다 연민의 눈으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로 했다. 열세에 몰려 분투하는 아군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4. 장과 장 사이에서 '막간극'이라는 이름으로 서사의 전환을 꾀하는 징검다리가 흥미롭다. 숙명과 운명 사이 어디쯤에서, 정해진 길을 비껴가고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포석을 놓는다. 비록 그 뜻을 이루지 못할 지라도 반복하여.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끝이 나버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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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긼하 2018-09-2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출판사 한길사입니다.
예니 에르펜베크 <모든 저녁이 저물 때> 가제본 리뷰 당첨자로 선정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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