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으로 출근한다 - 뉴욕에서 12년, 평범한 유학생에서 세계 유수의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활약하는 아트디렉터가 되기까지 한국인 애니메이터 윤수정의 뉴욕 스토리 해외 취업 경험담 시리즈 (에디션더블유)
윤수정 지음 / 에디션더블유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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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번쯤은 바다 건너 타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며 열정으로 꿈을 이루는 멋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외국을 제집 드나들듯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 태어난 나라에서만 삶을 꾸려간다는 것이 때로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뉴욕으로 출근한다>는 이러한 상상을 직접 이뤄낸 사람의 이야기다.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윤수정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입학을 포기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져 장차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밟은 미국땅에서, 그녀는 차근차근 노력의 계단을 밟아 나가며 마침내 안정적인 궤도에 이른다. 이 책은 그녀가 꿈을 이루기까지의 발단과 과정을 써내려간 책이다.

 그녀는 먼저 뉴욕에서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로 일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과 그녀가 맡았던 굵직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직장동료들과 어울렸던 이야기와 머리를 맞대고 일했던 이야기들, MTV 등 이름난 클라이언트들과 진행했던 애니메이션 작업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독자를 먼저 사로 잡는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이루기까지 그녀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하는 궁금함이 피어오를 때쯤, 다음 챕터에서 그 과정을 이야기한다. 부모님을 설득해 대학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랭귀지스쿨을 다니며 애니메이터를 꿈꾸던 때, 랭귀지스쿨 수료 후에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 합격한 기쁨 등의 순간을 솔직한 문장으로 독자에게 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녀는 애니메이터가 되기로 결심한 후부터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애니메이터가 속하는 예술계의 특성상 졸업 뒤 바로 정규직을 구하기가 어려워 무급인턴과 유급인턴, 프리랜스 일 등을 전전하다가 밀린 임금을 제때에 받지 못해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던 일도 있었고, 이후 안정적인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일적인 면이나 대인관계 면에서 잠시 어려움을 겪었던 일 등을 털어 놓는다. 어려웠지만 그 시기를 잘 버텼기에 그때의 기억을 자양분 삼아 지금은 인정받는 애니메이터로 건실하게 일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뉴욕에서의 건실한 직장인으로 거듭난 그녀의 이야기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지금 조금의 아쉬움은 있다. 능력있는 애니메이터가 되기 위한 그녀의 노력과 과정을 어느정도는 느낄 수 있었지만, '평범한 유학생에서 세계 유수의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활약하는 아트디렉터가 되기까지'라고 책의 카피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그녀가 발전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과정은 주로 랭귀지스쿨이나 스쿨오브비주얼아트를 다니며 겪었던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 책은 주로 뉴욕에서 일하는 중의 산발적인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구성도 좋지만 그녀가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조금 더 단계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문장이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 흐름이 끊기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몇몇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뉴욕으로 출근한다>는 현재 취직을 준비하는 예비사회인이나, 뉴욕으로 또는 다른 나라로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참고 수준에서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직접 공부하고 현장에서 일해 본 그녀의 경험담만큼은 아쉬울 부분이 없고 끈기있게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에서 배울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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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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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라는 소재는 그 단어만으로도 호기심과 설렘, 두려움 등의 다양한 반응을 불러낸다. 미래는 이미 지나온 과거, 지금 지나고 있는 현재와 달리 예측하고 대비하기 어려운 앞으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낼 수는 없어도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은 영화와 소설, 그림 등으로 구체화된다. 최근 개봉하여 큰 화제를 낳았던 영화 <아바타>를 비롯하여 세상에는 미래를 마음껏 상상해 그려낸 수많은 작품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올해의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 <싱커> 또한 미래 사회와 인류의 모습을 '게임'과 '생명'이라는 주제의 결합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미래의 지하도시 '시안'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더이상 지상에서 삶을 지속하기 어려워진 인류는 삶의 터전을 지하도시 시안으로 옮긴다. 이 과정에서 지하도시의 구성원은 시민과 비시민으로 나누어 지는데, 시민은 권력층과 비권력층으로 나뉘고 비시민은 난민층을 뜻하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백살은 거뜬히 넘는 삶을 살게된 시안의 시민 중 하나인 '미마'는 백오십살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고 혼자 기숙사에 살고 있는 10대 소녀다. 어느날 미마는 시안에서는 비싸 구할 수 없는 약의 저렴한 복제약을 구하기 위해 시안의 버려진 사각지대인 난민촌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미마에게 호의를 베푸는 두 소년을 만나게 되고, 이들에게 '싱커'라는 게임을 얻어 시안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책에서 '싱커'란 동조자를 뜻한다. 게임팩을 실행하면 도시 시안이 지하에 자리잡으면서 봉쇄해 버린, 실제의 아마존을 재현한 '신아마존'에 접속하여 뇌파의 동조를 통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뜻의 이름이다. 지하도시 시안의 기온은 늘 따뜻함을 유지하고 시간마다 조절되는 빛이 있지만, 자연의 생동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던 아이들은 싱커라는 게임을 통해 진정한 '싱커(동조자)'가 되면서 자연에의 열망을 갖게 된다. 지하도시의 회색빛을 벗어나, 뛰어난 현실감으로 다가오는 자연적 감각에 황홀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만을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단순한 미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싱커가 된 아이들의 이야기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을 대입했다. 아이들은 싱커라는 게임을 하면서 놀이를 즐기고 서로 동조를 하며 통신을 한다. 그리고 현실의 우리는 미니홈피나 트위터로 대표되는 인터넷을 통해 유희적 행동을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계속될 때 다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음 과정도 책과 현실이 비슷한데, 집단이 형성된다.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은 으레 일반적인 관계보다 더욱 조밀한 친밀감과 공감대 형성을 이루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집단이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게 되는데 과연 이 현상은 사회에, 더 정확히 말해서 사회라는 피라미드의 윗부분에 올라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싱커가 되어 나무가 푸른 잎을 흔들고 새는 하늘을 날며 사슴이 뛰놀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아마존을 가상으로나마 누비며, 초록빛 자연에의 열망을 동조하는 아이들의 집단은 어른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그들의 동조는 어떠한 형태로 지하도시 시안에 발현될 것인가.

 어린이와 청소년은 나라의 희망이자, 힘이라고들 한다. 이는 곧 그들의 잠재력이 담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나라의 근간을 이룬다는 뜻 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싱커>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된다. 때묻지 않은 열망이 자연이라는 순수한 존재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가 시안이라는 회색도시와 마찰할 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너머에 청명한 하늘이 빛나고 있을 지,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있을 것인지는 <싱커> 안에서 아마존과 호흡하는 싱커들의 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싱커>는 미래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게임과 생명이라는 독특한 결합을 통해, 미래사회로의 진보를 위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비단 독자가 청소년에 국한되지 않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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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 - 상식과 몰상식을 넘나드는 인류의 욕망
이성주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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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 : 상식과 몰상식을 넘나드는 인류의 욕망>. 책제목 한번 길면서도 과감하다. 자고로 성性이란, 인류와 함께 역사를 함께 해 온 최고最古의 화두일 것이다. 이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책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때로는 상식적으로, 때로는 몰상식적으로 인류와 함께 해 온 성. 저자는 특히 우리가 성에 대해 알고 있는 보통의 지식보다, 역사에 있어 '치명적 배후'로 작용해 온 성의 면면을 낱낱이 드러낸다. 성性이라는 주제를 거칠 것 없이 이곳 저곳 들춰내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본능으로 시작한 독서는 스멀스멀 그 자리를 옮겨 머리로써 인류의 성을 이해하게 만든다.
 
 역시 수천년을 인류와 함께한 성性에 대해 쓴 책답게, 다루는 주제도 영역을 한정하지 않는다. 전쟁 / 사회구조 / 과학 / 성 의식 / 성 풍속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낸다. 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성 풍속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국의 흑인들이 매독(성병의 일종) 연구의 희생양이 되었던 인종차별적 폭력에 대해 말하는 가 하면 과감하게 포르노의 양면성과 그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여기에 양념을 더 치자면, 불륜의 성적인 면과 결과에 대해 다루는 차례도 있다. 
 
 다루는 주제가 이쯤되니 '이거 우리의 사회통념을 벗어나는 주제 아닌가' 하는 생각보다, '얼마나 전문용어가 난무하고 고리타분한 사실을 열거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의문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 라고 대답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접한 전문용어라고는 내용 전개상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물질명이라던가, 간간이 나오는 몇몇 학자의 이름 뿐이다. (물론 개인의 기준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게다가 고리타분할 수 있는 학자의 설명이나 연구결과 등도 책의 많은 부분을 대화체로 풀어 쓴 덕분에 쉽게 읽힌다. 또한 '왜 포경수술을 하는가'라는 기초적이면서 생활적인 주제부터 전쟁의 역사에 있어서의 성이라는 묵직한 주제까지 읽는 이가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적절한 유머와 정색으로 풀어 나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비아그라를 복용한 후 섹스하면 임신 성공률이 극도로 떨어진다. 지금 우리는 비아그라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바로 피임 기능이다."
"발기부전 치료제로 피임을 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왜 말이 안 돼? 비아그라가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다 삐끗해서 만들어진 건데, 피임약이 못 될 건 또 뭐 있어?"
"좋아, 그럼 어떻게 피임이 되는 건지 설명해봐." -155쪽 
이렇게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때로는 대화체로 때로는 설명적으로 적절한 방법을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는 한편 공감을 얻을 만한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흥미로운 주제가 더욱 재미를 얻어 몰입도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은 인류의 공통된(?) 관심사인 성性을 활짝 펼쳐보이며, 17 · 18세기의 이야기부터 불과 한 해 밖에 지나지 않은 2009년의 이야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하는 다양한 성性적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횡무진하며 많은 주제를 다뤄서인지 약간 산만한 내용의 흐름이 보인다거나, 이 얘기하다가 저 얘기한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아마도 한권 안에 이 모든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저자의 당연한 욕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내용 간 겹침이 없고, 우리가 성에 대해 한번쯤을 궁금해 했을 이야기들을, 또 다른 나라의 성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써서 읽는 이의 이해도 잡고 몰입도도 잡았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성性은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인류의 영원한 화두다. 이 책을 통해, 어쩌면 성性은 역사의 배후가 아니라 역사와 나란히 걸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삶에서 종횡무진 해 온 성性이라는 인류의 욕망. 이제까지 상식과 몰상식을 넘나들어 왔다면, 이제부턴 상식의 다양한 단계만을 넘나들길 바라면서 호기심 가득한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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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사랑하는 법 -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엮음, 김지은 옮김 / 앨리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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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의 일상과 삶'. 이 짧은 문장을 보면 무엇이 생각날까. 사람들이 복작대며 사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드라마? 인간극장 같이 특정인물의 삶을 밀착취재하는 다큐멘터리? 나는 '미니홈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문에는 잘 나온 자기 사진과 현재 기분을 표현할 만한 짤막한 문장을 걸어놓고, 다이어리와 사진첩 등의 메뉴에는 기념일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과 주말에 다녀온 근사한 여행지에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을 전시해 놓는 곳. 미니홈피를 아는 사람이라면 또 알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미니홈피란 어쩌면 '열폭(열등감 폭발의 줄임말)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이 궁금해서 우리는 가끔씩, 혹은 매일 타인의 미니홈피를 찾는다. 그리곤 아름답고 근사하게 재단되고 편집된 타인의 삶을 구경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때론 상심하기도 한다. 그 전시물들은 편집된 화려함임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들의 삶에 비해 내 삶이 초라해보이는 자괴감이 피어 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타인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는 것은 호기심으로 가득찬 즐거운 소일거리인 동시에, 나를 '열폭'하게 만들고 때론 우울하게도 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 들여다보고 나면 '열폭'보단 훈훈함을, 우울감보단 자존감(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느끼게 하는 타인의 삶이 있다. 바로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다.

 이 책은, 2002년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레처라는 두 작가가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쉬우면서도 어렵고 그러면서 구미도 당기는 실천형 과제를 내고 사람들이 과제를 수행하여 웹사이트에 올린 결과물들을 모아 편집하여 출간한 책이다. 보통 과제는 이런 식이다. '누군가의 주근깨나 점을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 '자신의 하루를 전단지로 만들어 보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기', '응원의 게시물 만들기' 등, 하고자 마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지만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독특함에 매료된 것인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과제를 수행해 웹사이트에 올리게 된다.

 자신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같이 진중한 결과물에서부터 태양을 사진에 담거나 다른 사람의 머리를 땋아주는 간단한 결과물까지 모두 모인 이 웹사이트는, 매우 다양한 빛깔로 채워진 '인생의 스펙트럼'이 된다. 스펙트럼을 채우고 있는 셀 수 없는 다양한 빛깔들은 과제에 참여한 한명 한명의 진솔한 이야기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기 위해 재단되고 편집된 알록달록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 숨겨진 진솔한 나의 모습과 내 인생의 모습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분명 이 책에 담긴 것도 다른 이의 인생 이야기이건만, 미니홈피를 통해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며 느꼈던 불편함은 온데간데 없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공감과 위안이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여느 치유서적에 있는 것처럼 '그러니 너도 힘내!'라던가 '할 수 있어!'와 같은 말은 별로 없다. 타인의 일상과 삶이 투영된 사진이나 그림, 글이 대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하지만 내 삶과 같이, 때론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고 고통을 겪기도 하는 그들의 일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묘한 동질감이 피어나면서 '아직은 나도 괜찮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고 나만 힘든 게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를 위안하게 된다. 책에 실린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는 어떤 참여자의 후기에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심각한 우울감을 느낀다거나 나쁜 충동을 자주 느끼는 경우라면 치유서적보다는 진지한 상담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권태에서 오는 가벼운 무력감을 느낀다거나, 다른 이의 미니홈피를 들락거리다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초라해보여 자괴감이 피어 오르는 사람이라면, 미니홈피와는 다른 형태로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 보자.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혼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없던 힘이 솟아날 수도 있고, 외로움을 끝낼 수는 없어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 느끼고 싶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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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어홀릭
신명화 지음, 이겸비 일러스트 / 은행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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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발칙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뒤끝을 한참 남길만한 이별을 한 전애인이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어느 때보다 정성들인 치장을 하고 결혼식장을 찾아가 가까운 친지들의 전용석인 맨 앞자리에 앉아 호기로운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박수를 보내주는 생각 말이다. 아직 뒤끝 있는 연애는 해본 적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실행할 날이 없기를 바라지만), 아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많이 봐서일 수도 있겠으나 가장 큰 계기는, 전애인의 결혼식 소식을 듣고 한번쯤은 참석을 고민하게 되는 사람을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이 책, <슈어홀릭>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슈어홀릭>의 주인공인 '한효주'는 사실 이 문제로 고민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녀의 전애인은 그냥 전애인이 아니고, 무려 그녀와 며칠전까지 연인관계였다가 돌연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발칙한' 전애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효주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의 결혼식에 친구들까지 데리고 가 그에게 평생가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을 선물한다. 이 대담한 복수는 효주가 신랑신부의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서서 결혼사진을 찍는 것에서 최고조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는, 효주가 단순히 전애인에게 복수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전애인과의 이별과 함께 단숨에 꼬여버린 그녀의 인생에 대한 선전포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이 꼬여버린 채 멋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보지만은 않겠다는 그녀만의 다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의 이 생각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효주가 자신의 꼬인 삶을 제자리로 추스려 놓기까지는 꽤 여러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별과 전애인의 결혼식, 실직 등 한꺼번에 들이닥친 위기 앞에서 효주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마음을 다잡고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골몰한다. 그녀의 나이 서른, 주인공인 효주도 그렇거니와 보통 사람들도 무엇을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에서조차 이러한 생각이 만인을 지배한다면 서운할 것이다. 효주의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은 자신의 구두가게를 열겠다며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물론 긴장감을 이어가야 하는 소설의 요소를 잊지 않고, 그녀는 갖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되지만 말이다.

 이렇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는 좋았지만,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며 겪게 되는 '난관'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책 뒷표지에 실려있는 '못 말리는 슈어홀릭의 좌충우돌 사랑 찾기'라는 표제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곳에 효주를 스쳐간 남자와 스쳐가고 있는 남자, 그리고 앞으로 스쳐갈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남자들을 만나면서 효주는 보통 사람의 생각보다 쉽게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기대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구두가게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다가도 남자에 관련한 문제라면 쉽게 지치고 상처입는 효주의 모습을 보며 썩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적극적이었다가도 소극적으로, 그 반대로도 쉽게 변하는 것에 따라가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래서 결국 한효주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지? 하는 물음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한번쯤은 두렵게 생각할 '서른'이라는 벽에 부딪혀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사랑도 없이 고심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유쾌한 문체로 그려낸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무한한 욕망과 그들만의 사랑을 '구두'를 통해 그려냈다는 <슈어홀릭>이지만, 과연 소설 속에서 '구두'가 주인공의 사랑찾기와 앞으로의 삶에 얼마만큼의 '공헌'을 한 장치로 그려졌는지 의문이 들면서, 이 부분이 아쉽게 느껴졌던 책이었다.

 주인공인 효주는 소설의 초반에서, '뒤뚱뒤뚱 얼음판을 슬슬 피해 돌아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스무 살도 어느덧 스멀스멀 지나가 버리고, 설렁설렁 서른 살씩이나 먹고 말았다.'(41쪽) 라고 말한다. 자포자기한듯 '설렁설렁'한 태도를 보이던 효주가 소설이 끝날 때쯤, 봉착한 난관에 부딪치거나 은근슬쩍 빙 돌아서 통과한 다음의 무렵에는 어떠한 태도를 보였을까. 그녀는 결국 사랑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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