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남부의 한 시골 마을인 앨라배마 주의 휘슬스톱, 여기 한 카페가 있다. 환하게 때로는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씩씩한 여자 이지와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모의 여자 루스, 둘이서 카운터를 지키는 곳. 괄시받는 흑인이든 주머니에 동전 한푼 없는 떠돌이든 일단 발을 들이면 따끈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온정 있는 카페로 소문난 그 곳. 아담한 규모와 소박한 인테리어에 풋토마토 튀김을 주메뉴로 내놓으며,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을 자처하는 공간, 바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배경이 되는 휘슬스톱 카페다.

 어두운 심연이 지배하는 에벌린 카우치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온통 검은 칠이 된 꽉 막힌 방에서 간신히 바닥을 딛고 서 있는 듯, 일상 모든 것에 대한 의욕도 의지도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죽음을 열망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삶이,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버거울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인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내키지 않는 울적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만나러 매주 찾는 노인 요양원에서 어느 날 우연히 말을 트게 된 니니 스레드굿이 그 주인공이다.

 니니 스레드굿은 휘슬스톱 카페를 이끌었던 이지 스레드굿의 가족으로, 씩씩한 이지와 따뜻한 루스의 곁에서 휘슬스톱의 시작과 수많은 사건들, 그리고 끝을 함께 겪었다. 카페를 연 시기는 대공황기 즈음으로,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대공황기의 차가운 공기도 휘슬스톱에서만큼은 힘을 쓸 수 없었다. 유쾌하고 호탕한 분위기 속에서 카페는 마을의 버팀목 역할을 하며 보이지 않는 손으로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즐겁고 따뜻하지만 때론 힘들고 우울하며 미스테리하기도 한 갖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카페는 모두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는다.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이 카페를 지배하는 향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휘슬스톱 카페의 이야기를 니니 스레드굿은 매주 만나게 된 에벌린에게 부드럽고 달콤하게 들려준다.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던 에벌린은 휘슬스톱의 미담과 어느 것에도 쉽게 굴하지 않는 씩씩한 이지 스레드굿의 면모를 곱씹으며 치렁치렁한 우울의 옷을 벗어 던져버리기로 결심한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뻔한 혼란의 시간이 있었지만, 니니의 호의 가득한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삶에 용기 있게 도전장을 내민다. 과거의 휘슬스톱 카페가 에벌린의 새로운 시작을 도운 셈이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조금 특별한 주인공들의, 인간적 삶의 방식에 대한 향수를 담아낸 이야기다. 씩씩한 이지와 따뜻한 루스를 필두로 휘슬스톱 카페에 발도장을 찍었던 이들의 사랑과 우정, 용기와 의리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이어진다. 단지 그 시대에 휘슬스톱에 살았던 이들 뿐 아니라 현재의 사람인 에벌린 카우치의 삶마저 변화시킨 휘슬스톱 카페는 단지 특별하다는 말로, 따뜻하다는 말로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길가를 걷다 보면 간판을 발견할 것만 같은, 가보지도 않은 소설 속의 휘슬스톱 카페를 한동안 그리워하게 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백여 년 조선왕조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 가운데 첫째로 꼽을 수 있는 비극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이는 영조가 죽으면 왕의 적통으로서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를 일이 거의 확정적이었던 세자가,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칠 일 만에 숨을 거둔 전대미문의 일이다.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막론하고 부왕이 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결과만 보더라도 그 해괴함이 이를 데 없어, 이 사건은 당시에도 수년간 풍파를 일으켰으며 2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논란 중에 있다. 여기에 영조와 사도세자 외에 또 다른 주인공이 있었으니, 바로 <한중록>의 저자인 혜경궁 홍씨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영조의 며느리로서, 사도세자의 부인으로서, 정조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친정의 피붙이로서 팔십여 년을 살며 겪은 희노애락을 회고하며 말년에 쓴 책이다. 혜경궁이 애초 조카 홍수영의 부탁으로, 몸소 겪은 역사를 후대의 자손 또한 알게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쓰기 시작한 글은 후에 순조의 생모 가순궁의 부탁과 혜경궁 본인의 의지를 통해 크게 세 차례에 걸쳐 쓰여 졌다.열 살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세자빈으로 책봉되면서부터의 이야기를 쓴  「나의 일생」,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쓴  「내 남편 사도세자」,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끊임없이 모함을 받는 친정을 위한 항변을 담은  「친정을 위한 변명」이 바로 그것이다.

 <한중록>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단연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아버지 영조의 밑에서 부정父情보다 호된 질책을 받는 것이 더 익숙했던 사도세자의 화증이 광증으로 발전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명 받을 때에 이르러서는 광증에 따른 기행奇行이 요즘 말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결국 정치적인 이유와 맞물려 사도세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 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부인 혜경궁 홍씨와 세손은 정치적 입지가 흔들림과 동시에 깊은 마음의 상처도 떠안게 된다. 결과적으로야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고 혜경궁은 왕의 어머니가 되며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왕위에 올랐지만, 사도세자의 죽음 당시 누가 뒤주를 들였냐 하는 문제와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광증이라는 것이 과연 실제로 있었냐 없었느냐 하는 논란은 물밑에서 계속되며 혜경궁과 정조를 비롯, 혜경궁의 친정까지 끊임없이 뒤흔들었다. 여기에 왕위에 버금가는 권력을 얻으려는 정적政敵의 얕은 모함까지 가세하면서 혜경궁은 팔십여 년의 일생 중 얼마 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이러한 시련은 혜경궁의 속을 들끓게 만들었고 말년에 이를수록 울화를 견디지 못해 벽을 두드리며 밤을 지새는 날이 허다한 가운데 <한중록>을 쓴 것이다. 글이 시작되는 초반의 문체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담담하기 그지 없지만,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 하고 외부로부터 몰아치는 바람이 거세지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글에서 드러나는 울화와 비판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고조된다. 모진 일을 겪고도 아들과 손자가 각각 왕위에 오를 때까지 세상에 숨 붙이고 살았으니 그 섧은 일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행간에 서린 애닯기 그지 없는 눈물과 한은 이와 같은 문장에서 선연히 드러난다. 「내 심혈心血이 이 기록에 다 있는지라. 새로이 심혼心魂이 놀라 뛰고 간장이 무너져 글자마자 눈물져 글씨를 이루지 못하니,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다시 어이 있으리오. 원통코 원통토다.」(21쪽)

 그러나 자고로 역사는 승자의, 살아남은 이들의 기록으로써 누군가에 의해 쓰여져 후대에 전해지는 역사는 주관과 편집의 산물이다. <한중록>을 제외한 다른 사료에서 헤경궁의 <한중록>과 대치되는 기록이 존재하며, 사도세자와 혜경궁을 둘러싼 사건도 그 원인이나 과정, 결과에 대해 현재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과 사도세자의 일생이나 친정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에서 기술한 혜경궁의 기록 또한 걸러서 읽는 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를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 어떻든 간에 구곡간장이 미어지는 일을 겪은 혜경궁의 가슴앓이 속에서 써내려 간 <한중록>이 '산문 고전의 정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혜경궁의 애간장을 오롯이 담아낸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식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있다. 구중궁궐에서 마음을 누르고 억누르며 팔십여 년 일생을 지낸 여인의 삶, 한이 깊어 차라리 죽음으로써 잊기를 바랐던 그 애끓는 심사心思가 여기, <한중록>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 - 배부른 세계의 종말, 그리고 식량의 미래
빌프리트 봄머트 지음, 전은경 옮김 / 알마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두어 해 전, 텔레비전에서 식량 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 중국의 경제가 급속 성장하면서 국민들의 삶의 질 또한 높아져 다양하고 새로운 미식 성향이 생겼다고 한다. 욕구가 증가된 여러 음식 중 특히 치즈 수요가 돋보였는데, 주로 우유 같은 1차적 유제품을 선호하던 중국 소비자의 성향이 치즈로 옮겨 가면서 우유의 수요 또한 증가하게 되었다. 치즈의 주원료가 우유이기 때문이다. 우유의 수요가 급증하니 이를 생산하는 소도 더 많이 키워야 했고, 소가 우유를 만들어 내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사료 또한 더 필요했다. 이에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 수요가 늘어났고 공급이 달리자 옥수수 등 곡물의 가격은 치솟았다. 비싼 곡물값을 감당할 수 없었던 빈곤한 국가가 줄을 이으면서 인류 전체에 대한 식량의 불공평한 분배 문제는 다시금 우리에게 경종을 울렸다.

 어릴 때 보던 공상과학 만화영화에서처럼 작은 캡슐 하나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날이 오지 않고서야, 식량문제는 인류와 가장 가까운 문제이자 위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공식품 한 가지의 수요가 급팽창하면서 연쇄 작용을 일으켜 다른 분류에까지 영향을 미치거나, 국가 간 국민 간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해 애초에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극심한 기후변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경작지 축소, 고갈되는 민물, 증가하는 세계 인구와 단일화에 가까워지는 동식물 품종 등의 요인은 식량문제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문제를 완벽히 정리할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수습할 만한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의 저자 빌프리트 봄머트는 위와 같은 문제들이 왜 일어나는지,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앞으로 전망은 어떠하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수치에 근거한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풀어 나간다. 가난하고 굶는 이들을 위해 노력하자는 막연한 말과 단순한 구호보다, 식량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체감이 더 잘 되는 이유다. 저 멀리 있는 나라에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고 어느 사막엔 풍력 발전소가 놓였으며, 우리나라 어디께의 바다를 메워서 조력 발전소를 세웠다던가 하는 핑크빛 미래를 위한 앞서가는 발걸음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말이 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 토양이 척박해지고 기후가 돌변해서 식량을 생산할 수 없는지나 유전형질 변환으로 단일화된 곡물 품종이 한두 개의 질병에 일제히 맥을 못추는 등, 정작 인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제1의 위기인 식량문제에 대해선 쉽게 접하기 어려운 요즘이기에 식량문제의 입문서 노릇을 톡톡히 하는 이 책이 반갑다.

 기후변화나 고갈되는 기본 자원으로 인한 문제도 문제지만, 저자가 가장 염려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농업 연구나 정책에 대한 푸대접이다. 날로 심해져가는 식량 수요와 공급의 문제나 국가 간 국민 간 빈부 격차로 인한 기아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 연합이나 세계식량기구를 문제 해결의 창구로 삼고는 있다. 하지만 여기에 각국 간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히고 일반 산업에 비해 낮은 농업에 대한 인식 등이 걸림돌이 되면서 사실상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은 지지부진하다. 당장 심각한 재정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유럽의 재정 문제조차 거북이 걸음으로 눈치싸움만 하고 있는 터에, 문제가 당장 눈앞에 닥치지 않는 식량문제를 말해서 무엇할까. 그러나 식량문제는 그 어느 문제보다도 인류에게 심각한 상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현상이라고 저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한때 곡물값이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며 세계 인구의 어느 정도는 굶지 않을 수 있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위기가 코앞에 닥쳐온 지금, 그 시기가 다시 돌아올 지는 미지수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앞으로를 위한 대비를 해야 한다. 급변하는 기후에 대처할 방법을 연구하고 재배하는 품종을 다양화하여 병충해를 견디며 식량 분배가 원활해질 수 있는, 거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대치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혹여 저자인 빌프리트 봄머트의 식량에 대한 다음 책이 출간된다면, 그때는 지구의 식량에 대한 좋은 소식이 담겨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화유산은 국사國史 그 자체다. 수백 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조상은 건축 · 예술 · 과학 · 종교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그 뜻을 기릴만한 많은 업적을 이루었고, 그렇게 켜켜이 쌓인 업적은 오늘날 우리 국토 곳곳에 자리한 문화유산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눈앞에 펼쳐진 궁궐, 산사, 석탑, 유물, 기록 등의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 시대를 읽고 민족의 얼을 느낀다. 그렇기에 문화유산은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가 함축된 것으로서, 국사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며 이해하고 있을까. 초중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국사에 대해 글 한줄 읽어볼 일이 별로 없는데다, 따로 들여다본다 해도 국가시험이나 자격증 취득시험 등을 위해 요점정리 같은 단편적인 내용을 공부할 뿐이다. 가까이에 유적지나 박물관이 있어도 왠지 따로 시간을 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우리의 역사를 찬찬히 훑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뜻깊다. 1993년 첫 답사기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남도답사 일 번지>를 시작으로 글로써 문화유산을 유람하는 새로운 길을 만들었던 유홍준 교수가 십여 년 만에 펴낸 여섯 번째 답사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동시에, 우리 문화유산의 담백한 면면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뜻이 고아高雅하게 느껴진다.

 부여 송국리의 청동기시대 유적지와 백제, 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의 위엄 있는 경복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시대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풀어놓는 이야기는, 짜임새가 탄탄하고 마치 현장에서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듯 생생하다. 작은 산사山寺를 소개하면서는 자연의 정취가 있는 진입로부터 일주문一柱門을 거쳐 소박한 멋이 있는 절집의 전체적인 배치와 세세한 구조물까지 차근차근 훑는 솜씨를 드러내고, 드넓고 위엄 있는 경복궁은 그 기원부터 근엄한 하나하나의 건축물에 대해 정성스레 늘어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가진 문화유산의 신묘함과 고매함에 절로 흐뭇해진다.

 이번 답사기에는 저자 개인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문화재청장 시절 특별히 마음을 썼던 경복궁, 때마다 쉼터삼아 찾게 되는 순천 선암사, 마음의 빚을 진 달성 도동서원과 거창, 두 번째 고향으로 삼은 부여 등 개인적으로 마음 속 끈이 각별히 닿아 있는 곳의 문화유산을 애정 어린 문장으로 풀어낸다. 한국 미술사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가르쳤으며, 답사 일행을 이끌고 나라 곳곳을 다닌 것만도 이십여 년에, 정식 문화유산해설사로서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는 일을 맡은 지도 벌써 여러 해인 저자의 관록이 곳곳에서 묻어남은 물론이다.

 여기에 곁들여 간간이 소개하는 옛 문장가들의 유려한 글귀나, 담백한 미가 느껴지는 문장도 지나칠 수 없다. 특히 합천 영암사터에 있는 쌍사자석등의 모양새를 소개하면서 붙인 문장인 '쌍사자석등은 황매산을 떠받들고'(291쪽)나, 성주사터의 조망眺望을 '바람도 돌도 나무도 산수문전 같단다'(413쪽)라는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일품이다.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저자에게 제2의 고향인 부여를 소개하면서부터는 저자가 발붙이고 이웃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사는 곳이어서인지 문체는 더욱 따뜻해진다. 저자의 일상과 주변인을 둘러싼 삶의 자잘한 알맹이를 문화유산과 아울러 소개하는 이야기에는 소박한 멋이 가득하다.

 자긍심이 절로 피어오르는 우리 문화유산을 통해 역사를 훑는 앎의 기쁨에 정신을 쏟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책장이 넘어갔다. 잠시 잊고 있었고 어쩌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우리 역사의 소산인 문화유산을 따라 방방곡곡을 유람하는 즐거움이 컸다. 광주 비엔날레, 광화문 복원, 경복궁 복원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으면서 문화유산 보존과 홍보의 올바른 길에 대한 저자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고, 다사다난했던 역사의 틈새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은 문화유산을 마주할 때는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저자의 답사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섯 권 째에 이르러서도 미처 소개하지 못한 충청, 경남, 제주 등을 지나 북한 개성과 백두산 등지까지 답사의 폭을 넓힌다 하니 그 행보에 기대를 아니 걸 수 없다. 답사기 다음 권, 다음다음 권까지 기다림이 길지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답사기의 보폭이 길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상당하다는 방증일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 CNN 앵커, 앤더슨 쿠퍼의 전쟁, 재난, 그리고 생존의 기억
앤더슨 쿠퍼 지음, 채인택.중앙일보 국제부 옮김 / 고려원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제투성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다양한 사건을 접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민족 간의 내전, 민주화 시위, 이웃 국가에서 일어난 참혹한 재난 등을 텔레비전이나 신문 혹은 인터넷을 통해 접하면서 세상을 알고 느끼며 이해한다. 이를 통해 폭압정치의 선봉에 선 지도자를 비난하기도 하고 박해받는 자들의 응원군이 되기도 하는 한편, 천재지변의 거대한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들의 심정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을 보는 눈'인 보도 매체가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이 보도 매체의 한가운데 기자가 있다. 발로 뛰고 또 뛰어 세상의 소식을 부지런히 주워 담고 이를 오리고 붙여 하나의 뉴스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기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뉴스는 우리의 안방에 전달되어 머리를 울리고 가슴을 울린다.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는 이렇게 처절한 취재의 현장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현실감 있게 안방에 전달하는 CNN앵커 앤더슨 쿠퍼의 에세이다. 미국의 부호 가문인 밴더빌트가에서 태어난 앤더슨은 뉴욕에서의 안락한 삶을 살기보다, 세계 곳곳의 치열한 현장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길 바랐다. 지금은 그의 원대로 세계 각지를 누비며 존경받는 앵커 겸 기자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길은 아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마땅한 기자 자리를 찾지 못해, 그리 크지 않은 방송국에서 기사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만 할 수 밖에 없던 그였다. 하지만 그에게 내재된 취재에의 욕구가 숨을 죽이고 있었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92년,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무작정 떠난 소말리아에서 참혹한 기근을 생생하게 포착해냈고 이를 계기로 원하던 기자 직함을 따내게 된다. 그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라크, 보스니아, 르완다,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전쟁과 재해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곳엔 늘 앤더슨 쿠퍼가 있었다. 발전된 문명과 기술의 손길이 드리운 선진국, 대도시 등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 이어지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그는 끊임없이 소식을 전했다. 취재 일정이 끝나거나 바쁜 와중에 어쩌다 짬이 생길 때면 집으로 돌아왔지만,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잔상을 잊을 수 없어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기 일쑤였다. 이 같은 취재에 대한 열정은 그의 심성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겪은 아버지와 형의 죽음으로 인해 끊임없이 삶의 본질을 고민하던 그는, 이토록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했다. 끝내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대신 그는 취재의 이유를 얻었다. 세상 모든 고통의 최전선에 서서, 그는 그 고통이 그것을 겪는 이들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력 있는 이들이 한발 앞서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전쟁과 재난의 고통이 사그라질 것 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세상의 끝을 향한 그의 여정은, 그 개인의 성찰과 맞닿아 있었다. 어쩌면 개인적 상념이 그가 발 디딘 곳의 상황에 대해 계속 의식적인 사고를 하도록 촉발함으로써, 그의 보도를 더욱 현실적이고 진실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제의 비로 오늘의 바지를 적실 필요가 없고, 내일의 비를 위해 오늘 우산을 펴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어제의 비에 모든 것이 쓸려간 후의 고통을 오늘도 내일도 생각해야 하며, 내일의 비를 위해 어제도 오늘도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앤더슨 쿠퍼의 취재일기를 통해 깨달았다. 사실을 전하기에 앞서 진실을 전하는, 그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인들을 통해 세상의 끝이 곧 시작이 될 날을 고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