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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는
이권우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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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은, 책을 빌려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나에게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미처 예기치 못한 책을 만나기 위해서다. 점 찍어 두었던 책을 찾기 위해, 혹은 일렬로 늘어선 책을 '구경'하기 위해 도서관의 서가와 서가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간혹 '노다지'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나 소화하기에 얼마나 수월한가? 가 된다. 그러다보니 익숙한 분야나 좋게 읽었던 작가의 책에 주로 손을 뻗게 되어 독서의 편식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의 서가 여기저기를 거닐다 이 책, 저 책 들여보다 보면 절대 스스로는 찾아 볼 엄두를 내지 않았을 책이지만 우연히 접함으로써 읽어보게 되고, 그 충실한 알맹이에 무릎을 탁 치며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노다지'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도서관처럼, 진귀한(?) 책을 손에 쥐어주는 존재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호모부커스' 이관우 작가가 쓴 <죽도록 책만 읽는>의 출간이 반가웠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 낸 저자가 각권의 내용과 그에 대한 생각, 느낌, 연관된 이야기 등으로 구성된 서평을 쓰고 이를 엮어 낸 책이다. 무려 350여 쪽을 저자가 읽고 쓴 서평으로 채우고 있으니, 이 사실만 보아도 저자의 책에 대한 열정이 어떠한지, 얼마나 '죽도록' 책을 읽는 것인지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겠다. 취미생활로 독서를 즐기는 나도 저자처럼 문학, 역사, 실용, 사회, 고전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독서는 어려워할 뿐 아니라, 읽은 책의 면면을 심오하게 이해하고 꼼꼼히 서평을 써내려 간다는 것은 글쎄, 웬만한 의지로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저자의 책에 대한 정성에 한번 놀라고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의 해박한 지식에 또 한번 놀랐다. 독자들에게 서평을 통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작가의 인생관이나 경험을 책의 내용과 결부시켜 이야기함으로써 작품의 속뜻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거나,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부연설명이나 연관된 지식 등을 제시함으로써 흥미를 돋운다. 예를 들면, 46쪽에서 박완서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읽고 쓴 서평에서는, 박완서 작가가 겪은 인생의 굴곡과 참척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도록 길을 터 놓는 식이다. 단지 한 작품을 소개하는 서평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한 장으로 읽고 끝내는 작품해설집을 쓰는 격이다. 이를 통해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분야의 책에도 흥미를 갖게 해주니, 그야말로 '친절한 호모부커스씨'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고전 읽기'를 강조한다. 실제로, 저자가 쓴 서평 중에도 고전이 어느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더욱이 새것을 제대로 누릴 짬도 없는데, 옛것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나이 들면 깨닫게 된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234쪽), 「고전이 무엇이던가요. 세월의 담금질을 견뎌낸 지식과 교양의 고갱이가 아니던가요.」(227쪽) 라고 말한다. 이러한 탄식에 가까운 조언은 책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덕분에 제대로 읽은 고전이라고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밖에 기억나지 않는 나도, 이번 기회에 읽어보기로 다짐했다. '고전'이라는 단 두글자가 선사하는 고루함의 냄새에 아직 책을 선정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 혹은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 이야기는 늘 반갑다. 하물며 단 한권의 책에서 꽉 찬 서가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반가움은 배가 된다. 그 반가움을 담아, <죽도록 책만 읽는>은 옆에 두고 늘 체크해야 할 '독서 위시리스트'의 역할을 할 것 같다. <죽도록 책만 읽는>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저자가 큼직하게 인용한 책의 구절들이 몇쪽에 실린 것인지를 명기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것이 궁금해서라도 나는 저자가 소개한 책을 한번씩은 훑어보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의도되지 않은 친절함(?)에 한번 웃으며 나는 이 작은 도서관, <죽도록 책만 읽는>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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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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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닭가슴살의 맛 같이 퍽퍽한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탈출'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일의 빡빡한 스케줄에 몸을 맡겨야 하고,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벨이나 알림벨은 지겹긴 하지만 그것이 들리지 않으면 그 나름대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고,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딱딱하게 정형화 된 길을 걸으며 그에 따른 역할 또한 완벽히 수행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이 현대인이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현대인들이 때때로 꿈꾸는 것처럼, 갑갑한 삶에서 잠시의 여유를 찾기 위해 한적한 교외로 차를 달리는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의 주인공들이 있다.

 오래된 친구사이이자 각자 전문직에 종사하며 그럴듯한 삶을 살고 있는 엔리코, 루이자, 아르투로, 마르게리타는 한적한 교외에 별장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자인 알레시오를 앞세워 투리기 라는 지역 근처의 '윈드 시프트(Wind shift)'로 향한다. 얼마 후면 근사하고 격조있는 건물을 자신들의 휴식처로 삼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도시를 떠나면서도 자신들의 발목을 붙잡는 골치 아픈 일에 대한 불만을 동시에 지닌 채 떠나는 그들. 그러나 그들의 들뜬 예상과 달리, 갑자기 일어난 작은 사건으로 일해 고장난 차와 함께 전화도 연결되지 않는 깊은 숲속에 '불시착'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험악하게 변한 하늘은 거센 비와 돌풍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질퍽한 진흙길을 따라 민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그들은 극한의 상황에 몰린 나약한 인간답게 서로에 대해 분노의 날을 세운다.

 한참을 헤맨 끝에 그들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민가를 찾지만 그 곳의 분위기는 이상하다. 도시의 그것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실내장식이나 도구들은 둘째 치고,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마치 인간이 자급자족 하던 시대의 인디언 같은 것이다. 가까스로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불청객 일행은 그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고, 다소 원시적인 분위기의 이 곳을 벗어나기 위한 다음날의 노력이 불발되면서 결국 3일 가까이 이 곳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도시인과 인디언 같은 사람들. 이 대조적인 두 단어만 보아도 과연 이 책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인가 눈치 챌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가 자유로운 삶과 얽매여 있는 삶, 이 두 가지 모습의 대립을 생각하지 않을까.

 숲속의 인디언 같은 무리를 이끄는 라우로는, 도시에서 온 일행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진정성'에 대해 묻는다. 지금 도시에서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람냄새가 증발해 버린 빡빡함으로 가득찬 삶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하는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그저 그런 상투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 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묻는다. 그러나 엔리코를 포함한 다섯명 모두 그 물음에 진솔하게 답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쩌면 단 한번도,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삶에 솔직하려 했던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고 싶어도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삶에 보폭을 맞추느라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라우로는, 그들에게 먼저 자신의 삶에 솔직해지기를 권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해지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알고 난 후에는 삶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원하는 삶을 이루려는 에너지를 가지도록 노력하라 조언한다. 라우로의 퉁명스러운 조언은, 처음엔 다섯명 모두에게서 튕겨져 나오지만, 숲속에서 3일간 서로 좋게 혹은 나쁘게 부딪히며 지낸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드디어 그 효력을 발휘한다. 드디어 자신의 삶을 움직이는 운전대를 바로잡은 그들은 그 숲속을 빠져 나오자 마자 고심했던 다짐들을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그들의 다른 삶이 펼쳐지는 처음 순간에,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사실,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달리 책의 흐름은 그다지 교과서적이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불만, 불신, 질투 등의 감정으로 점철된 그들만의 소모전으로 꽤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묘한 동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퍽퍽한 현대를 살아가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용 쓰는'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 이 책을 읽고 한번쯤 자신의 삶에 솔직해지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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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 있다. 음습한 뒷골목의 검은 거래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이 제격일 법한 영역이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의 사법부이다. 그리고 여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가고 있는 사법부에 대해 깊숙이 칼을 꽂아 넣지는 못 해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시민들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책 <불멸의 신성가족>이 있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법학 교양서인 <헌법의 풍경>을 썼던 김두식 교수의 책으로서, 대한민국의 큰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법조계를 질적 연구를 통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단순한 숫자의 나열을 통해 수박 겉핥기 식의 분석을 하기보다, 법조계에 몸 담았거나 그 근처에서 빼꼼히 고개라도 내밀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술면접을 시행하여, 보다 심층적이고 솔직한 분석을 통해 법조계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 들려 오는 법조계 안팎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나라에 발 붙이고 살아가면서 '법'이라는 것을 피해갈 수 없는 국민이라면 한번쯤 귀 기울여 보아야 할 이야기들이라 생각한다. '윗동네 물이 다 그렇지 뭐'하는 식으로 간단히 치부하기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충분한 명쾌함을 지닌 고발이며, 심지어 결국 제살 깎아 먹기인 '그들만의 리그'는 비소가 흘러나올 만큼 재미있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먼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으로 다투어 봤자 그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일들과 사법부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 등으로 인해 아무런 이득도 없이, 혹은 더한 불이익을 얻고 지쳐 떨어져 나가야 하는 일반 시민의 경험을 들려 주며 이를 '비싸고 맛없는 빵'에 비유한다. 비싼 돈을 들여 법 앞에 서봤자 그 효용은 느끼지도 못 하고 상황을 종료해야만 하는 것을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는 빵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왜 법이라는 것이, 법을 다루는 법조계라는 곳이 비싸고 맛없을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한 요인을 짚어나간다.

 그 요인을 간단히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현상이지만)목적이 불순한 돈이 오고 가는 법조계의 관행, 인맥으로 끈끈이 얽힌 법조계를 이루는 개개인 간의 관계 혹은 조직성, 사람 끌어 모으는 수완을 밑천 삼아 사건을 물어오고 그 대가로 소개비를 챙기는 브로커, 그리고 머리엔 까치집을 짓고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 차림으로 고시원에서 묵혀지던 시절의 때를 벗고 번쩍 번쩍 빛나는 세상으로 흘러 나온 법조인을 유혹하는 여러 손길 등. 하나같이 결코 간단하지 않으면서 법조계에 깊이 뿌리 박힌 채, 아래로는 계속 썩어 들어가고 위로는 풍성한 가지를 무기로 법조계 담 너머의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단순히 저자의 주장이나 의견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 저러한 요인들 가운데서 부딪히며 지내 온 사람들의 증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직접 경험한 사람의 구어체에서 나오는 현실감에 나도 모르게 동요하게 된다. 단순히 이런 영역도 있군- 하는 방관적인 태도로 첫장을 펼쳤다가도, 이어지는 증언과 부연설명에 이거 이제 바뀌어야 하는데- 이대로는 안될텐데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조계에 정말 변화가 필요하겠군, 하는 단단한 생각이 들 때가 되면 저자는 얼룩진 법조계에서 '억지로 찾아본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법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는 물론이거니와 법조계를 이끌어가는 주체인 법조인들의 변화, 시민의 용기와 지혜를 요구한다. '그들만의 리그'의 주인공들의 변화도 당연하지만, 시민 또한 살아가면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법조계를 두려워할 것 만이 아니라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권리를 찾으며 동시에 법조계의 변화 또한 견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조계가 예나 지금이나 심하게 얼룩져 있지는 않다. 1997년 의정부/대전 법조비리 사건을 이후로 자체정화의 노력과 구조적인 변화, 법조인들의 세대교체 등을 통해 어느정도 정화가 되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한 국가를 꾸려가는 기준을 제시하는 곳이 법조계라는 것을 감안할 때, 아직도 부족하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누구나 믿고 맡길 수 있는 법조계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도둑이 잘못한 일을 경찰에게 물을 수는 있어도 경찰이 잘못한 일을 경찰에게 묻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처럼, 법조계 또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법조계의 청렴결백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어 우리나라 법조계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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