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어홀릭
신명화 지음, 이겸비 일러스트 / 은행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한때, 발칙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뒤끝을 한참 남길만한 이별을 한 전애인이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어느 때보다 정성들인 치장을 하고 결혼식장을 찾아가 가까운 친지들의 전용석인 맨 앞자리에 앉아 호기로운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박수를 보내주는 생각 말이다. 아직 뒤끝 있는 연애는 해본 적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실행할 날이 없기를 바라지만), 아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많이 봐서일 수도 있겠으나 가장 큰 계기는, 전애인의 결혼식 소식을 듣고 한번쯤은 참석을 고민하게 되는 사람을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이 책, <슈어홀릭>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슈어홀릭>의 주인공인 '한효주'는 사실 이 문제로 고민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녀의 전애인은 그냥 전애인이 아니고, 무려 그녀와 며칠전까지 연인관계였다가 돌연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발칙한' 전애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효주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의 결혼식에 친구들까지 데리고 가 그에게 평생가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을 선물한다. 이 대담한 복수는 효주가 신랑신부의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서서 결혼사진을 찍는 것에서 최고조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는, 효주가 단순히 전애인에게 복수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전애인과의 이별과 함께 단숨에 꼬여버린 그녀의 인생에 대한 선전포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이 꼬여버린 채 멋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보지만은 않겠다는 그녀만의 다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의 이 생각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효주가 자신의 꼬인 삶을 제자리로 추스려 놓기까지는 꽤 여러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별과 전애인의 결혼식, 실직 등 한꺼번에 들이닥친 위기 앞에서 효주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마음을 다잡고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골몰한다. 그녀의 나이 서른, 주인공인 효주도 그렇거니와 보통 사람들도 무엇을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에서조차 이러한 생각이 만인을 지배한다면 서운할 것이다. 효주의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은 자신의 구두가게를 열겠다며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물론 긴장감을 이어가야 하는 소설의 요소를 잊지 않고, 그녀는 갖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되지만 말이다.

 이렇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는 좋았지만,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며 겪게 되는 '난관'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책 뒷표지에 실려있는 '못 말리는 슈어홀릭의 좌충우돌 사랑 찾기'라는 표제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곳에 효주를 스쳐간 남자와 스쳐가고 있는 남자, 그리고 앞으로 스쳐갈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남자들을 만나면서 효주는 보통 사람의 생각보다 쉽게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기대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구두가게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다가도 남자에 관련한 문제라면 쉽게 지치고 상처입는 효주의 모습을 보며 썩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적극적이었다가도 소극적으로, 그 반대로도 쉽게 변하는 것에 따라가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래서 결국 한효주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지? 하는 물음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한번쯤은 두렵게 생각할 '서른'이라는 벽에 부딪혀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사랑도 없이 고심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유쾌한 문체로 그려낸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무한한 욕망과 그들만의 사랑을 '구두'를 통해 그려냈다는 <슈어홀릭>이지만, 과연 소설 속에서 '구두'가 주인공의 사랑찾기와 앞으로의 삶에 얼마만큼의 '공헌'을 한 장치로 그려졌는지 의문이 들면서, 이 부분이 아쉽게 느껴졌던 책이었다.

 주인공인 효주는 소설의 초반에서, '뒤뚱뒤뚱 얼음판을 슬슬 피해 돌아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스무 살도 어느덧 스멀스멀 지나가 버리고, 설렁설렁 서른 살씩이나 먹고 말았다.'(41쪽) 라고 말한다. 자포자기한듯 '설렁설렁'한 태도를 보이던 효주가 소설이 끝날 때쯤, 봉착한 난관에 부딪치거나 은근슬쩍 빙 돌아서 통과한 다음의 무렵에는 어떠한 태도를 보였을까. 그녀는 결국 사랑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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