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 CNN 앵커, 앤더슨 쿠퍼의 전쟁, 재난, 그리고 생존의 기억
앤더슨 쿠퍼 지음, 채인택.중앙일보 국제부 옮김 / 고려원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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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투성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다양한 사건을 접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민족 간의 내전, 민주화 시위, 이웃 국가에서 일어난 참혹한 재난 등을 텔레비전이나 신문 혹은 인터넷을 통해 접하면서 세상을 알고 느끼며 이해한다. 이를 통해 폭압정치의 선봉에 선 지도자를 비난하기도 하고 박해받는 자들의 응원군이 되기도 하는 한편, 천재지변의 거대한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들의 심정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을 보는 눈'인 보도 매체가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이 보도 매체의 한가운데 기자가 있다. 발로 뛰고 또 뛰어 세상의 소식을 부지런히 주워 담고 이를 오리고 붙여 하나의 뉴스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기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뉴스는 우리의 안방에 전달되어 머리를 울리고 가슴을 울린다.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는 이렇게 처절한 취재의 현장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현실감 있게 안방에 전달하는 CNN앵커 앤더슨 쿠퍼의 에세이다. 미국의 부호 가문인 밴더빌트가에서 태어난 앤더슨은 뉴욕에서의 안락한 삶을 살기보다, 세계 곳곳의 치열한 현장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길 바랐다. 지금은 그의 원대로 세계 각지를 누비며 존경받는 앵커 겸 기자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길은 아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마땅한 기자 자리를 찾지 못해, 그리 크지 않은 방송국에서 기사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만 할 수 밖에 없던 그였다. 하지만 그에게 내재된 취재에의 욕구가 숨을 죽이고 있었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92년,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무작정 떠난 소말리아에서 참혹한 기근을 생생하게 포착해냈고 이를 계기로 원하던 기자 직함을 따내게 된다. 그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라크, 보스니아, 르완다,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전쟁과 재해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곳엔 늘 앤더슨 쿠퍼가 있었다. 발전된 문명과 기술의 손길이 드리운 선진국, 대도시 등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 이어지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그는 끊임없이 소식을 전했다. 취재 일정이 끝나거나 바쁜 와중에 어쩌다 짬이 생길 때면 집으로 돌아왔지만,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잔상을 잊을 수 없어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기 일쑤였다. 이 같은 취재에 대한 열정은 그의 심성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겪은 아버지와 형의 죽음으로 인해 끊임없이 삶의 본질을 고민하던 그는, 이토록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했다. 끝내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대신 그는 취재의 이유를 얻었다. 세상 모든 고통의 최전선에 서서, 그는 그 고통이 그것을 겪는 이들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력 있는 이들이 한발 앞서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전쟁과 재난의 고통이 사그라질 것 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세상의 끝을 향한 그의 여정은, 그 개인의 성찰과 맞닿아 있었다. 어쩌면 개인적 상념이 그가 발 디딘 곳의 상황에 대해 계속 의식적인 사고를 하도록 촉발함으로써, 그의 보도를 더욱 현실적이고 진실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제의 비로 오늘의 바지를 적실 필요가 없고, 내일의 비를 위해 오늘 우산을 펴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어제의 비에 모든 것이 쓸려간 후의 고통을 오늘도 내일도 생각해야 하며, 내일의 비를 위해 어제도 오늘도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앤더슨 쿠퍼의 취재일기를 통해 깨달았다. 사실을 전하기에 앞서 진실을 전하는, 그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인들을 통해 세상의 끝이 곧 시작이 될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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