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백여 년 조선왕조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 가운데 첫째로 꼽을 수 있는 비극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이는 영조가 죽으면 왕의 적통으로서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를 일이 거의 확정적이었던 세자가,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칠 일 만에 숨을 거둔 전대미문의 일이다.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막론하고 부왕이 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결과만 보더라도 그 해괴함이 이를 데 없어, 이 사건은 당시에도 수년간 풍파를 일으켰으며 2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논란 중에 있다. 여기에 영조와 사도세자 외에 또 다른 주인공이 있었으니, 바로 <한중록>의 저자인 혜경궁 홍씨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영조의 며느리로서, 사도세자의 부인으로서, 정조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친정의 피붙이로서 팔십여 년을 살며 겪은 희노애락을 회고하며 말년에 쓴 책이다. 혜경궁이 애초 조카 홍수영의 부탁으로, 몸소 겪은 역사를 후대의 자손 또한 알게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쓰기 시작한 글은 후에 순조의 생모 가순궁의 부탁과 혜경궁 본인의 의지를 통해 크게 세 차례에 걸쳐 쓰여 졌다.열 살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세자빈으로 책봉되면서부터의 이야기를 쓴  「나의 일생」,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쓴  「내 남편 사도세자」,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끊임없이 모함을 받는 친정을 위한 항변을 담은  「친정을 위한 변명」이 바로 그것이다.

 <한중록>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단연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아버지 영조의 밑에서 부정父情보다 호된 질책을 받는 것이 더 익숙했던 사도세자의 화증이 광증으로 발전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명 받을 때에 이르러서는 광증에 따른 기행奇行이 요즘 말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결국 정치적인 이유와 맞물려 사도세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 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부인 혜경궁 홍씨와 세손은 정치적 입지가 흔들림과 동시에 깊은 마음의 상처도 떠안게 된다. 결과적으로야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고 혜경궁은 왕의 어머니가 되며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왕위에 올랐지만, 사도세자의 죽음 당시 누가 뒤주를 들였냐 하는 문제와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광증이라는 것이 과연 실제로 있었냐 없었느냐 하는 논란은 물밑에서 계속되며 혜경궁과 정조를 비롯, 혜경궁의 친정까지 끊임없이 뒤흔들었다. 여기에 왕위에 버금가는 권력을 얻으려는 정적政敵의 얕은 모함까지 가세하면서 혜경궁은 팔십여 년의 일생 중 얼마 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이러한 시련은 혜경궁의 속을 들끓게 만들었고 말년에 이를수록 울화를 견디지 못해 벽을 두드리며 밤을 지새는 날이 허다한 가운데 <한중록>을 쓴 것이다. 글이 시작되는 초반의 문체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담담하기 그지 없지만,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 하고 외부로부터 몰아치는 바람이 거세지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글에서 드러나는 울화와 비판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고조된다. 모진 일을 겪고도 아들과 손자가 각각 왕위에 오를 때까지 세상에 숨 붙이고 살았으니 그 섧은 일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행간에 서린 애닯기 그지 없는 눈물과 한은 이와 같은 문장에서 선연히 드러난다. 「내 심혈心血이 이 기록에 다 있는지라. 새로이 심혼心魂이 놀라 뛰고 간장이 무너져 글자마자 눈물져 글씨를 이루지 못하니,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다시 어이 있으리오. 원통코 원통토다.」(21쪽)

 그러나 자고로 역사는 승자의, 살아남은 이들의 기록으로써 누군가에 의해 쓰여져 후대에 전해지는 역사는 주관과 편집의 산물이다. <한중록>을 제외한 다른 사료에서 헤경궁의 <한중록>과 대치되는 기록이 존재하며, 사도세자와 혜경궁을 둘러싼 사건도 그 원인이나 과정, 결과에 대해 현재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과 사도세자의 일생이나 친정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에서 기술한 혜경궁의 기록 또한 걸러서 읽는 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를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 어떻든 간에 구곡간장이 미어지는 일을 겪은 혜경궁의 가슴앓이 속에서 써내려 간 <한중록>이 '산문 고전의 정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혜경궁의 애간장을 오롯이 담아낸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식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있다. 구중궁궐에서 마음을 누르고 억누르며 팔십여 년 일생을 지낸 여인의 삶, 한이 깊어 차라리 죽음으로써 잊기를 바랐던 그 애끓는 심사心思가 여기, <한중록>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