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역사 -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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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인간성, 시민의식, 공중도덕, 예의범절, 사회규범…. 이들의 공통분모가 바로 매너다. 교양의 바탕이 매너요, 인간성의 토대가 매너다. '도덕과 교육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를 살짝 바꾸어, '매너와 예의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고 할 수도 있다. 흔히 매너를 때와 장소에 맞는 정중한 행동양식, 올바른 격식을 갖춘 언사와 행동거지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런 간소한 뜻풀이는 매너가 정작 발휘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기능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너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과 교류를 원활케 하는 관계의 윤활유이자 즐거움을 주는 장치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고, 공공선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였다.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가 "매너는 법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매너가 지닌 이런 사회문화적 효능 때문이다. 법이 명시적이면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사회통제 기능을 행사한다면, 매너는 암묵적이면서 상호적이며 넛지적인 사회통제 기능을 연출한다.

매너의 역사에 관한 학술 연구는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이 가장 대표적이다. 엘리아스가 주목한 사례들은 주로 생리현상이나 식탁 매너와 관련된 것들이며, 옷차림이나 인사법, 대화술이나 몸가짐과 같이 예법에서 중요한 영역들이 누락되어 있다. 시기적으로는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집중되어 있고, 지역적으로는 프랑스 궁정 예법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중세 유럽에선 프랑스의 궁정 예절이 매너의 근간이었다. 엘리아스는 17세기부터 프랑스 궁정 예법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영국사를 전공한 사학자 설혜심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18세기 영국에서 프랑스 궁정식 매너도 일부 존재했지만, 그보다도 폴라이트니스(politeness) 개념을 내세워 중간계급 특유의 개방적인 매너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당시 산업화와 자본가 계급의 부상에 따라, 18세기 영국 중간계급의 매너는 소탈한 자연스러움과 진정성,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젠틀맨 매너가 주류였다.

매너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띤다. 시기별로 굵직한 매너를 나열해보면, 데코룸, 쿠르투아지(궁정식 매너), 시빌리테(시빌리티), 폴라이트니스, 에티켓 등이 그러하다. 저자 설혜심은 유럽 각국의 에티켓북과 처세서, 행동지침서, 편지, 매뉴얼북 등 다양한 예법서를 토대로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 말까지 매너의 역사를 분석한다. 서양 매너의 이론을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로마의 키케로부터 중세의 기사도, 에라스뮈스와 로크의 예절 교육, 18세기 영국식 매너와 젠틀맨다움을 거쳐 상류사회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에티켓으로의 퇴행과 개인화된 20세기 에티켓까지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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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 - 방향 잃은 삶을 위한 철학 나침반
강용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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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불안하다. 행복하지 못할까봐, 성공하지 못할까봐 불안불안하다. 불행이 유행이 된 듯한 현대인에게, 미래는 암울하고 현재는 우울하며 과거는 유감이다. 뭔가 불안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비법이나 묘약은 없을까. 철학자 강용수는 불안하고 불행하고 우울한 영혼들에게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을 제안한다.

대중의 눈에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니체는 허무주의자로 비춰진다. 그런데 얼핏 염세와 허무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사싱이 오히려 살아갈 의지와 용기를 고취시키고 분발시키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보다 섬세한 눈으로 살피면, 염세주의도 허무주의도 적극과 소극, 능동과 수동의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철학자 모두 좋은 태도, 건강한 관계, 의미 있는 삶, 자기다움에 관해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아포리즘을 남겼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둘 다 실존적 불안에 주목했다. 다만 그 해결책이 갈리는데, 쇼펜하우어가 '마이너스 해법'을 제시했다면, 니체는 '플러스 해법'을 제안했다. 쇼펜하우어는 불안과 고통을 잠식시키려면 의지를 억제하고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금욕주의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니체는 실존적 불안을 인간이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니체가 '힘에의 의지'나 '초인 사상'을 내세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다움을 강화하고 삶의 역경과 불안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니체는 전반적으로 쇼펜하우어보다 더 급진적이다. 니체는 진리, 신앙, 과학을 상대로 파산선고를 하기 때문이다. "진리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신은 죽었다" 등의 관점주의 선언이 그러하다. 관점주의는 절대적 진리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주어진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니체의 관점주의를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로 해석한다. 다원주의는 같은 사물을 달리 볼 가능성을 허용한다. 그렇다고 객관성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객관적인 인식은 더 많은 관점, 더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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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가 낯선 나에게 - 삶의 모든 순간에서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
사라 큐브릭 지음, 박선령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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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좀비 시대다. 좀비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런 확신이 든다. '스몸비'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공동묘지에서 나온 듯한 흐리멍텅한 눈, 비틀어진 자세, 휘청거리는 다리로 번화가를 몰려다니는 좀비는 진정한 자아와 감수성을 상실한, 무감각한 도시인의 초상이다. 실존주의적 접근을 선호하는 심리치료사 사라 큐브릭은 '자기 상실'을 현대인의 고질병으로 파악한다. 자기 상실이란 "자신의 자아가 되어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자신의 진정한 본질과 멀어져서 조화, 공감, 동맹 의식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자기 상실은 자신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공허감, 단절감, 좌절감, 불행을 느끼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좀 거칠게 말하면, 자기 상실은 '내적 동의'를 붕괴시키는 실존적 상실이다. 내적 동의란 "삶을 긍정하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 감정, 본질, 자기에게 중요한 것, 신념, 개인적인 독특함, 태도, 목적을 긍정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말한다. 하지만 주변의 기대, 동조 압력, '남들 다 그렇게 산다'는 평범한 상식에 부응하기 위해 내적 동의가 붕괴되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고 자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근근이 버티다, 끝내 우울과 불안, 공황발작, 섭식장애, 약물중독, 자해와 같은 여러 고통스런 문제들을 겪게 된다.

"자기 상실을 겪으면 자기의 감정, 신체, 생각, 신념, 관계, 의미, 자유, 가치와 분리되거나 소외되는 것처럼 느껴진다."(30, 31쪽)

실존주의 상담 치료의 이론적 토대는 장 폴 사르트르, 쇠렌 키르케고르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알프레드 랭글의 실존 분석학이다. 실존주의 상담 치료사로서, 저자는 우리의 '자아' 감각이 행복, 관계, 성취의 핵심이며, 자아에는 자유, 선택, 책임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따라온다고 강조한다. 자유, 선택, 책임의 부담을 받아들여야 진정성과 의미가 있는 존재 방식이 가능하다. 즉, 활발발한 자기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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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한눈에 보이는 책방도감 - 공간 디자인으로 동네를 바꾼 일본의 로컬 서점 40곳
건축지식 편집부 지음, 정지영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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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란」에 나온 30대 배우 박정민은 글을 쓰고 만드는 작가이자 1인 출판사 사장이다. 출판사는 설립 이래 적자를 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책방까지 도전해 볼 생각이 없는지 묻는 건 잔인한 일일까. 글을 쓰고 만드는 업종을 떠나, 책을 사랑하는 간서치들의 순수한 몽상 가운데 하나가 책방 운영이다. 문제는 독서불모지로 유명한 한국에서 적자를 감수할 수 있는 깜냥이 되는가다. 색깔 있는 작은 책방의 책방지기가 되려면 불황과 적자를 각오해야 한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한강도 '책방 오늘'이라는 작은 서점을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6년 내리 적자에 허덕였다고 한다.

한국의 책방 폐업률은 무시하지 못할 지경이다. 지금이야 국민적 경사인 노벨문학상 특수여서 오랜만에 신통방기한 독서열풍이 불고 있지만, 반짝 유행이 되지는 않을지 늘 노심초사하게 된다. 더구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가의 전쟁 모드가 과열되는 분위기라 더욱 그러하다. 바깥 분위기가 매케하고 요란한데, 마실 나간 셈 동네 책방을 둘러 천천히 서가를 구경하고 맘에 와닿는 책을 사 볼 여유를 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방지기를 꿈꾼다. 지역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작은 책방 이미지를 그려본다. 책방의 규모보다 위치가 중요하고(코스트코에 내 책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대의 배열보다 책방지기의 개성과 안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행, 건축, 사진, 영화 등 특정 주제를 가진 테마 서점이 좋을 것 같다. 신출내기 책방지기는 '힐링' 테마를 고려하고 있다. 지금은 불안과 노이로제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책방 규모라면 30평을 넘었으면 좋겠지만 30평 미만이 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고객의 동선이 넓고 편했으면 좋겠다. 아, 머리가 아주 번잡해진다. 어떡하지 싶을 땐, 독서강국인 이웃나라 일본을 살피는 게 좋다.


이 책 《디자인이 한눈에 보이는 책방도감》(현익출판, 2024)은 일본 각지에 있는 개성 넘치는 로컬 서점 40곳을 소개한다. 책장, 매대, 계산대 등을 찍은 사진과 매장 디스플레이를 한 눈에 보여주는 평면도로 책방의 특색을 설명한다. 아울러 방문객을 유인하고 매출을 늘리는 책 진열 방식이나 조명과 음악, 행사 기획, 매장 운영 마케팅, 경영 지속을 위한 노력 등 현실적인 팁들을 알려준다. 특화된 큐레이션, 커뮤니티 허브, 협업 및 네트워크, 복합문화공간, 테마 서점, 부가 상품 및 서비스 같은 재정적 자립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들은 현역 책방지기에게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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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의 노래 - 흑인, 퀴어, 우아한 탐조자로 살아온 남자의 조용한 고백
크리스천 쿠퍼 지음, 김숲 옮김 / 동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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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다. 이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비상하는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철새처럼 성과 속의 경계를, 야생(자연)과 문명(인간)의 국경을 넘나들며 연결하는 메신저의 상징이기도 하다. 새는 아름답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오늘날 영국 속어로 '버드'가 '예쁜 여자'를 가리키는 이유다.

새를 유난히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 화가 존 제임스 오듀본이 대표적이다. 오듀본은 489종의 미국의 새를 관찰하고 435장에 달하는 그림을 남겼다. 마블 코믹스에서 작가이자 편집자로 일했던 크리스천 쿠퍼도 깃털 달린 아름다운 생명체를 무척 사랑하는 탐조인이다. 쿠퍼는 스스로를 "흑인이고 게이이며 SF와 판타지를 사랑하는 괴짜"로 소개하는데, 하버드대학교 탐조클럽의 회장을 맡기도 했고, 현재는 조류 보호단체인 뉴욕시 오듀본 협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블랙버드의 노래》(동녁, 2024)는 게이 흑인 탐조 활동가의 60년 삶을 회고하는 자서전이다. 이야기 테마는 크게 두 가지다. 인종(흑인)과 성정체성(게이)을 둘러싼 개인적 갈등과 번민, 그리고 탐조의 매력이다. 흑인이자 퀴어라는 이중의 억압구조에 시달린 저자가 공황장애나 중독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삶을 버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려서부터의 탐조 활동 덕분이었다. 아름다운 새들은 숨 막히는 벽장 속에서 저자를 꺼내주었다. 저자에게 탐조는 단순히 고상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피난처이자 해방의 탈출구인 셈이다. 책의 역자 김숲도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탐조인이다.

저자는 자신의 탐조 경험을 '탐조의 일곱 가지 즐거움'으로 정리하고, 이야기 중간중간 탐조 활동의 팁을 전수한다. 탐조의 일곱 가지 즐거움이란 '새들의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환경에 있는 것의 즐거움, 과학적 발견의 기쁨, 수집의 즐거움, 유혈 없는 사냥의 기쁨, 퍼즐을 푸는 기쁨, 유니콘 효과(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생명체를 마침내 직접 보게 되는 짜릿함)'다. 나같은 문외한이 보기에 탐조를 시작하는 동기로 매우 그럴듯하다. 그리고 탐조 팁으로 "유명하고 희귀한 새를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새가 아니라 이미 새를 찾고 있던 탐조인 무리를 찾는 것이다", "먼저, 맨눈으로 새를 찾는다. 그리고 시선을 고정한 채로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댄다. 절대 반대로 하지 말자" 등이 있다. 난 지금 쌍안경과 조류도감을 알아보고 있다.

탐조 경험은 소풍날의 보물 찾기 게임처럼 매력적이다. 비록 수면 부족과 체력 고갈을 기본으로 하는 남다른 끈기와 고생, 사랑과 지식을 요구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새의 아름다운 자태와 노랫소리가 이런 노고를 보상해준다. 뭔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가끔 관점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인종이나 성별, 성정체성도 매한가지 아닐까. 탐조의 세계에는 증오와 혐오, 차별이 없다.

"탐조는 당신의 시각을 바꿔놓을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더할 것이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할 것이다. 소리와 계절을, 멀리 떨어진 장소를, 우리를 초월하는 동시에 포용하는 야생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내 삶에서, 탐조는 경이로움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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