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보다 재미있는 디자인
최경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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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가장 고전적인 것이 가장 현대적인 것이다. 디자인의 영역에선 이 말은 진리다. 단순함과 비움, 여백을 강조하는 아시아의 고전 미학은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의 미적 뉘앙스를 풍기게 한다. 이른바 바우하우스 같은 심플한 현대성과 수묵 산수화의 여백과 같은 미니멀리즘의 조화와 통합이랄까. 동양의 고전적인 수묵 산수화의 여백미는 단순하지만 넓은 공간들과 조화를 이룬다. 선과 획의 여백과 조형요소들이 어울려 전체적으로 강한 생동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고건축의 비워진 창과 문은 바깥의 대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디자인은 심미적 세계와 상업적 세계가 상호교차하는 핵심 분야다. 상업성과 실용성만을 강조한다면, 그래서 심미적으로 재미가 없거나 가슴을 울리는 감수성이 부족하다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광고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처럼 겉보기엔 상업성을 가장 우선할 것 같지만, 실은 현대 미술작품처럼 상업성을 뛰어넘는 가치관과 미감을 지니고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상업성만 추구할 것 같지만 그 상업적 대상은 대중, 즉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상업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정서적인 교류를 먼저 해야만 한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뛰어난 디자인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와 감동을 전해주는 경우가 많다."(57쪽)

그래픽 디자이너는 색채, 점선면의 예술적 감각을 통하여 제품의 본질과 가치를 드러낸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저자 최경원은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데, 작품의 테마를 크게 '미니멀함에 담긴 풍성한 가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디자인, 시각언어의 힘, 깊은 문화적 향기를 지닌 디자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본 그래픽 디자인은 전통 문화에 기반한 현대적인 감각의 개성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법고창신의 디자인 미학이 특색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패키지, 간판, 책 표지, 포스터, 회사 심벌, 실내 인테리어 등 개별 디자이너의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과 더불어, 말미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약력과 특색을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타카하시 유타, 야마자키 세이타로, 키쿠치 카즈히로, 사토 타쿠 등 다양한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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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 예술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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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예술 작품과 화가의 분투적인 삶에서 우리는 인생 나침반과 같은 소중한 가치관을 배울 수 있다. 작품 너머 예술가의 재능과 열정, 시대적 역경과 개인적 고난을 곰곰이 반추해 본다면 어떤 영감을 받거나 창조적인 통찰력까지 키워볼 수 있다. 가령 불타는 밀밭과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고흐에게서, 수련과 연못을 수없이 그린 모네에게서 바로 그런 예술적 열정이나 근성, 창조적인 영감의 화끈한 불씨를 얼마든지 얻어가곤 한다.

특히 자기를 모델로 하는 자화상과 여성을 모델로 한 초상화는 개인의 영혼을 울리는 싱잉볼이 되기에 충분하다.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 〈베스트 오퍼〉를 보면 여성 초상화를 열정적으로 수집하는 노년의 경매사가 등장한다. 주인공의 밀실 사방에 수백 여점의 여성 초상화가 걸려 있다. 분명 경매사는 여성 초상으로 가득찬 밀실이 가슴을 울리는 경이로운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세심히 뜯어봐도, 경매사의 밀실에 요한나 봉허의 초상화는 없었다. 요한나 코헨 고샬크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 요한나 봉허는 어떤 인물인가. 봉허는 빈센트 반 고흐를 세계적인 화가의 지위에 올린 일등공신으로, '동생 테오'의 안사람이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서신집을 정리하고 번역해 고흐의 예술성과 따스한 인간미를 대중에게 각인케 하는 데 기여했다. 어디 이뿐이랴. 봉허의 아들 빈센트 빌럼 반 고흐는 큰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는데, 1973년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다시 말해서, 고흐의 천재성과 회화적 가치를 만방에 알리는 데는 제수씨와 조카의 노력이 매우 컸다.

나는 아방가르드 계통의 그림에 관심이 많다. 미술사가이자 아트컨설팅 전문가 김영애의 책 《아트 인사이트》(마로니에북스, 2025)에서 '아르테 포베라'라는 이탈리아 회화 운동을 알게 되었다. '가난한 예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르테 포베라는 1967년 무렵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현대 미술 운동이다. 전통적인 예술 재료 대신에 나무, 흙, 천, 금속, 돌, 폐품 등과 같이 "버려진 재료와 일상 속의 연약하고 사소한 모든 것을 활용한 작품들"이 특징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흔히 미술관에 가서 '이런 건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버리기 쉬운 작품들이 아르테 포베라의 특기다. 그러고보니 공터나 개천가에서 콜라나 환타 같은 병뚜껑을 주으러 다니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와 동네 친구들은 본질적인 차원에서 아르테 포베라 미술가였다. 그 많던 들꽃처럼 펼친 병뚜껑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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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황금을 찾아 떠나는 대만차 기행
이은주 지음 / 마이티북스(15번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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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녹차, 겨울에는 홍차가 제격이다. 나는 대만차를 좋아한다. 30년 동안 마셨다. 여름에는 문산 포종차, 겨울에는 목책 철관음과 동정 오룡차를 주로 마셨다. 내가 제일 처음 접한 대만차는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동방미인차다. 아마도 대다수 한국인들이 동방미인이나 아리산 우롱차를 입문 대만차로 삼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아리산 고산 우롱차를 마신다. 면세전매 제품이다. 나는 물 온도를 언제나 85도에 맞춰 사용한다. 동방미인이나 포종차는 콜드블루 방식도 가능하다.

대만차와 찻집을 즐기지만 차의 산지를 직접 방문한 적은 없다. 내가 다다티하우스 대표인 산우 이은주의 《녹색 황금을 찾아 떠나는 대만차 기행》(마이티북스, 2025)을 손에 잡은 것도 바로 대만차의 주요 생산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섯 차례나 그런 산지를 방문했다고 한다.

동방미인의 고장은 신죽현이다. 저자는 유흥차업문화관, 녹소선다원, 아미다장 세 곳을 소개하고, 아울러 도자기 장인으로 유명한 대죽계 선생의 혼이 깃든 당성도예까지 알려준다. 대죽계 선생의 찻그릇은 난초와 대나무를 새겨넣은 작품이 많다고 한다.

고산차의 고장은 아리산이다. 농가가 운영하는 차 공장 '복수산순운차원'에서는 채엽부터 제다까지 이루어진다. 차밭 투어와 차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연중 오픈하고 있다. 대만 고산차의 양대 산맥은 리산과 대우령이다. 대우령차는 매년 두 차례만 생산이 이루어지는데, 대략 춘차는 6월초, 동차는 10월 중순이다. 대만 고산차는 청량감과 회감(돌아오는 단맛)으로 유명하다. 한편, 목책 철관음의 고장은 목책, 즉 무자다. 개인적으로 마오콩에 자주 오른 적이 있어 문산 포종과 함께 개인적으로 가장 친숙한 차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차는 선한 사람을 닮았다. 차를 만들고 마시는 다인은 선인이기도 하다. 대만차의 명장은 차에 대한 진지한 철학과 더불어 소박한 생활의 기품이 있다. 저자는 진미다원의 여례진 대사와 충이다장의 장지견 대사를 한국의 다인들에게 소개한다. '진미'는 궁극의 맛을 의미하는데, "좋은 생태와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정신만이 양질의 차를 만들 수 있다"고 여례진 대사는 강조한다. '충이'는 차밭의 아름다움을 동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에 빗댄 것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동정호 악양루를 거닐 때 '충이(蟲二)'라는 싯구를 썼는데 '풍월무변'(끝없이 아름다운 경치)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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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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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행복은 사색과 성찰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이 시작되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생로병사의 문제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인생, 나이듦, 질병, 죽음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화두이지만, 기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풀어야 할 궁극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는 숙명적인 방학숙제와 같다고 할까.

일본의 시민철학자 오가와 히토시는 생로병사에 인간관계를 더해 해가 저물어가는 인생의 오후에 접어든 중장년이라면 누구나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다섯 가지 주제로 삼는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키케로, 보부아르, 몽테뉴, 융, 장켈레비치, 하이데거 등과 같은 유명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어떤 관점에서 숙고했는지 풀어낸다. 이중 나이듦의 주제를 예로 들어보자.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론》에서 노화와 노년기에 관한 세상의 부정적인 편견들(가령 무력, 의존, 노쇠, 사회의 짐짝 등)을 걷어내고 나이듦의 여러 장점들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처럼 노년을 활기차게 보내는 법을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도 나이듦을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노년에야말로 주인공답게 자기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페미니즘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에서 실존주의적 삶의 방식에 입각한 노년기의 즐거움과 희망을 설파했다. 즉, "자신의 분투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견지하면서, 활기찬 노인이 될 것을 주문한다. 일본의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는 효율성과 유용성, 합리성만을 따지는 생산지상주의의 윤리관에서 벗어나 "유희, 사랑, 돌봄, 무위"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노년 윤리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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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인격이다 -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가 전하는 다정함의 심리학
김선희 지음 / 나무생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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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다. "수많은 신, 수많은 믿음, 수많은 길들이 있지만, 이 슬픈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친절을 베푸는 기술이다." 그렇다. 요즘 시국이 좀 어지러운가.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야만적인 정치적 선동의 꾸리함에 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왕당파의 광기와 음모론, 천박한 폭언이 정신과 감정을 사납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친절을 베푸는 기술이 절실해진다. 세상과 타인을 보다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적절한 매너와 친절한 태도, 다정한 마음이 중요해진다.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는 '다정함이 인격이다'라고 단언한다. 사람으로서의 품격이 '인격'이라면, 성숙한 인격의 바로미터가 친절함과 다정함이라는 얘기다. 다정한 마음으로 다정히 말하는 인간, 그런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다정한 세계를 만든다. 여기서 저자는 외부와 내부 양방향의 다정함을 강조한다. 밖으로 타인의 연약함과 취약성을 끌어안는 다정함과 안으로 자기자신의 연약함과 취약성을 수용하는 다정함이다. 먼저 자기를 아끼고 보살필 줄 알아야 남도 아끼고 돌볼 수 있는 법.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무해할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격의 기본이다. 만약 자신의 취약성과 아픔을 돌보는 내면의 힘이 부족하거나 서툴다면, "소모적 행동, 탐닉 행동, 중독, 광신, 마니아적 행동" 등에 빠져들기 쉽다.

건강한 대인관계는 "협력과 진심 어린 참여 그리고 건강한 상호 헌신"을 필요로 한다. 한쪽의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희생은 내면의 불안이나 죄의식에서 기인한 자기학대일 뿐이다. 부부 관계와 가족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친밀 여부를 막론하고 인간관계는 모두 시의적절한 주고받음과 "관심과 민감성, 관찰과 조율 그리고 자주성과 독립을 토대로 풍성해진다." 특히 부부나 가족은 희생을 빌미로 상대를 비난하고 원망(책임전가)하기 쉬운데, 이는 벌써 관계가 왜곡되고 망가졌다는 신호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누적된 적대감은 무한반복되는 퇴행적 싸움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자극에도 발끈하며 비합리적인 감정 반응이 나타나고, 시작하자마자 가속화되며, 대치와 반목으로 분열과 양극화가 일어나고, 적대감을 보이다 무기력감으로 마무리되는 싸움을 퇴행적 싸움이라고 한다."(113,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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