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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메뉴판 - 한 장의 메뉴에 담긴 시대의 취향, 계층, 문화 이야기
나탈리 쿡 지음, 정영은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2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문난 맛집에 가면 보통 셰프들이 선보이는 일품요리와 레시피에 주목하는 법이다. 그런데 요리와 레시피 이전에 우리 손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메뉴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메뉴판은 볼수록 매력적인 다면체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음식을 알리는 손님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영업 실적을 올리려는 레스토랑 홍보물이기도 하고 화려한 만찬 초대장이나 역사적인 문화 전시물, 심지어 이름난 미술품이 되기도 한다. 캐나다 영문학자 나탈리 쿡이 바로 그런 '볼매' 메뉴판을 다각도로 조명해 세계 음식문화와 외식업의 변천사를 선보인다.
메뉴판은 음식을 책임진 셰프의 사적인 취향과 레스토랑의 개성은 물론, 당시의 음식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다. 동시에 메뉴판은 "그 시대의 대중 예술과 인쇄 기법, 나아가 소통 기술의 변화까지" 보여주는 문화 텍스트다. 우리는 메뉴판에서 식문화의 발전과 변천사를 엿볼 수 있고, 메뉴판 한 장에서 취향과 권력의 위계, 디자인의 유행까지 일별할 수 있다. 언어학자 댄 주래프스키에 따르면, "메뉴판의 음식 설명에는 온갖 종류의 잠재적인 언어적 단서가 숨어 있다. 이러한 단서들은 우리가 지닌 부와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사회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보여준다."
우리는 과거의 메뉴판을 통해 대중문화(특히 식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읽어낼 수 있다. 패러다임이란 당대의 지배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말하는데, 메뉴판이 "사회·정치·문화·의학·상업·요리 역사의 흐름 속에 나타난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과 끈질기게 이어진 연속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왕의 만찬과 호화 여객선의 메뉴판은 권위와 품격을 담은 유물이 되었고, 메뉴판에 실린 삽화나 소박한 레스토랑의 메뉴들은 대중의 일상을 기록하는 작은 문서가 되었다."(35쪽)
저자는 총 여섯 가지 범주의 메뉴판을 살핀다. '눈으로 즐기는 만찬, 기념품으로 변신한 메뉴판, 세계 무대로 떠난 메뉴, 우리 안의 어린 시절을 위한 메뉴, 건강을 위한 새로운 미식, 우리를 사로잡는 수수께끼 메뉴'의 순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메뉴 사전'이 있어 플럼 푸딩, 요크셔 푸딩, 비스크, 페슈 멜바, 콘드 비프, 크넬, 마렝고 닭요리, 필레 미뇽, 스위트브레드, 삼부사, 검보, 체리 주빌리, 스트루폴리 등 낯선 요리 이름에 대해 알려준다.
먼저 레 상 비블리오필 정기 만찬 메뉴판처럼 "인쇄술과 예술, 그래픽 디자인이 정교하게 어우러진 복합적 산물"로서의 메뉴판들을 살핀다. 이어서 귀중한 소장품이 된 메뉴판이 등장하는데, 가령 행사를 홍보하거나 유명한 인물이 담긴 경우, 디자인을 맡은 예술가의 이름값 때문에 기념품이 된 메뉴판이 그러하다. 여기서 개인 수집가들의 노고와 헌신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메뉴판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뉴욕 공립도서관인데, 안과의사 출신의 수집가 버나드 프리드가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수집한 메뉴판들이 그곳에 있다. 저자는 또한 '감사의 글'에서 메뉴판을 통해 미국 사회사를 분석한 헨리 보이트와 왕실 메뉴판 전문 수집가인 호주의 제이크 스미스 등을 따로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