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백 억만장자 - 성공의 방식을 바꾼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삶과 경영
데이비드 겔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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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오호, 무척 기묘한 책 제목이로다. '더트백 억만장자'라니. 내 귀엔 '아나키스트 억만장자'라는 소리처럼 엇박자로 들린다. 요즘 챙겨 보고 있는 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처럼 라임 한번 제대로다. 암벽을 오르고 송어를 낚시하며 서핑에 미친 어느 아나키스트가 재벌 기업가가 되었다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런 전설적 인물이 실존한다. 바로 미국의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다.

참고로, 더트백은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소유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흙바닥에서 잠을 자도 마냥 행복해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등반계에선 "오직 암벽을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을 존경과 애정을 담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야생의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아나키스트, 그게 바로 더트백이다.

이본 쉬나드는 모험가이자 사업가이었으며 동시에 자선가였다. 《뉴욕 타임스》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겔러스는 쉬나드를 "스포츠와 비즈니스, 그리고 자선 활동이라는 서로 다른 세 영역에서 혁명을 일으킨 한 남자"로 높이 평가한다. 『더트백 억만장자』(흐름출판, 2026)는 쉬나드의 모험가, 사업가, 자선가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밀착 취재하고 있다. 암벽등반가, 플라이낚시꾼, 카야커, 대장장이로서의 활기찬 삶도 흥미롭고, 더불어 환경운동가의 이념을 기업 경영에 적극 도입한 혁신적인 사업가로서의 삶도 감동적이다. 쉬나드 가족과 친구들, 파타고니아 임직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성공의 방식을 바꾼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삶과 경영'을 생생히 그려보이고 있다. 경영자로서 쉬나드는 "타협 없는 장인 정신과 직관적인 디자인 감각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캘리포니아 벤투라에 본사를 둔 파타고니아는 유기농·친환경 재료와 공정무역을 지향하고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세계적인 혁신기업이다. 1973년 설립된 파타고니아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공헌, 파격적인 육아 복지 혜택, 창의적인 마케팅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웃도어 의류를 선보이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파타고니아의 핵심 활동은 모두 환경보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낭비와 폐기를 줄이기 위해서 제품의 내구성을 디자인과 생산의 강력한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더불어 유기농 및 재활용 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고 손상된 의류를 수선해주며 전체 공급 사슬에 걸쳐 강력한 환경보호 기준을 준수하도록 했다. 오랫동안 파타고니아의 사명 선언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319쪽)

2018년 파타고니아는 "더 단순하고, 더 명확하며, 더 야심찬" 새로운 사명을 내건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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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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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사회의 오랜 정서적 뿌리는 가모장제다. 특히 한국의 신화와 전설, 설화를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명확해진다. 이런저런 옛날이야기 속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더 중하고 더 진하고 복잡미묘하다. 한국계 이민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전통 신화나 민간설화에서 한두 가지 소재를 차용한 예는 적지 않다. 그런데 에밀레종, 선녀와 나무꾼, 견우와 직녀, 심청전, 바리공주 등 무척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총출동한 소설은 처음 접해본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젤라 미영 허의 소설 《우리, 메아리처럼》(열린책들, 2026)은 마치 외국 독자들에게 한국 고유의 전설과 동화를 들려주는 공상과학 버전의 기묘한 고사집처럼 다가온다. 소설이 차용한 한국의 다양한 신화와 전설은 환상적이며 괴기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엘사 박은 스톡홀름에서 박사 후 과정 중인 물리학자다. 아문센 스콧 남극 기지에서 '유령 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를 연구하고 있다. 기지 가까이에 세계 최대의 중성미자 관측소인 '아이스 큐브'가 있기 때문이다. 중성미자는 "초신성 폭발이라든가 감마선 폭발, 초대질량 블랙홀의 탄생, 빅뱅 같은 대변동으로 탄생한 기본입자"인데, 전기적 중성이고 사실상 질량이 없으므로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아 관측이 매우 어렵다. 물리학 이론상 존재하지만 실제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런 소립자, 즉 '유령 입자'인 셈이다.

그런데 극히 드문 일이지만 중성미자가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이 일어날 경우 '체렌코프 방사선'이라는 파랗고 기다란 빛을 방출하는데, 이걸 감지하는 가장 이상적인 매개물이 바로 물이고, "남극의 얼음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H₂O"다. 엘사가 보기에, 중성미자 연구는 "우리 존재를 이해하려는 행위에" 가까운, "과거에 관해, 어쩌면 미래에 관해 알아내려는"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도 유령 입자 연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엘사의 어머니는 한국전쟁 통에 어머니와 언니를 모두 잃고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왔다. 아버지와 오빠는 미국에서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는 신병을 앓았는데, 결국 16년간 병원 신세를 지는 '납굴증' 환자가 된다. 목욕탕 사건 이후로 긴장증에 언어 장애까지 생겼는데,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와 가문의 저주로 인해 신병이 크게 도진 것이다. 당시 엘사는 열네 살이었다. 말을 잃어버리기 전, 어머니가 어린 엘사에게 한국어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때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풀이를 하는 무당의 목소리였다. 옛날이야기 속 여인들의 운명은 하나같이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여인들의 낮고 서글픈 목소리에는 에밀레종의 '에밀레, 에밀레' 소리처럼, 슬픔과 "끔찍하고 무서운 분노"의 정한이 담겨 있었다.

옛날이야기는 이민자의 문화적 정체성과 혈연적 뿌리에 해당하는 것들을 환기시키는 매개체다. 동시에 무속신앙과 결부된 집안 저주와 연관된 끈을 재현하는 운명의 그물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런 저주의 연을 끊어내고자 딸에게 본능을 거부하라고, 상상을 지워 버리고, 옛날이야기는 잊어버리라고 한다. 엘사가 물리학 박사가 된 것도 전통문화와 무속신앙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는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도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신병은 피를 통해 이어지기 마련. 엘사 역시 그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엘사는 아홉 살 때부터 귀신을 보곤 했다. 소복 차림에 빨간 댕기를 단 여자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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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리스 피플 - 책임, 공감, 원칙이 사라진 거대 플랫폼 기업의 세계
세라 윈윌리엄스 지음 / 디플롯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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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물은 기능에 따른 나름의 고유한 쓰임이 있다. 이를 '어포던스'라고 한다. 숟가락으로 못을 박을 순 없고, 식칼로 와인병 마개를 따기는 어렵다. 인간이 만든 도구는 적절한 쓰임새와 기능적 한계가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 도구도 마찬가지다. 일부 순진한 디지털 개척자들과 사회 활동가들에게 소셜 미디어가 공유와 혁신, 진보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애초의 꿈이나 기대와는 달리, 정작 소셜 미디어의 어포던스는 그런 게 아니었다. 물론 '아랍의 봄'이나 '미투' 운동처럼 플랫폼 기업과 소셜 미디어가 가진 사회적 확성기 역할과 의제설정 효과가 각광을 받은 적도 있지만 말이다.

뉴질랜드 출신의 변호사이자 페이스북의 공공정책 담당자였던 세라 윈윌리엄스의 내부고발처럼, 거대 공룡이 된 플랫폼 기업 페이스북은 "책임, 공감, 원칙이 사라진" 케어리스 피플(careless people)들의 소굴로, 기업 수뇌부들은 깽 무비에 나오는 비열한 보스처럼 돈과 권력, 명예만을 추구한다. '좋아요'와 엄지 표시는 바이럴 효과와 알고리즘 종속을 통해 돈을 벌려고 만든 것이지, 사생활 보호나 불평등 개혁, 사회 해방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원칙적 이상주의에 불타 한때 유엔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저자는 페이스북에게서 사회적 혁신 매체로서의 잠재력을 보았고, 본인의 저돌적인 노력 끝에 세계 각국 정부와 공공정책을 교섭하는 페이스북 담당자로 일하게 된다. 페이스북의 최종 의사결정자는 여전히 마크 저커버그 1인이지만, 정책과 정치 파트는 셰릴이 주도하고 있었다. 아, 아시아 순방 기간 중 저자가 마크와 셰릴을 대동하고 한국 방문에 나서고 삼성 사람들과 만난 무미건조한 에피소드가 카메오처럼 아주 잠깐 스쳐지나간다.

페이스북 최고 수뇌부의 지근거리에서 보고 들은 바를 폭로한 저자의 내부 고발은 재벌 드라마의 막장 전개 수준과 그리 다르지 않다. 노동 착취, 직장 내 괴롭힘, 성추행, 플랫폼을 활용한 선거 개입, 청소년 대상 알고리즘 조작, 반복되는 외교 결례 등이 그러하다. 분노한 퇴사자가 들려주는 페이스북 최고 경영진의 사내 정치와 경영 문화는 국제 갱단에 위장 잠입한 인터폴 수사관의 모험담처럼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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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 - 증명하려 애쓰는 삶에서, 나를 믿는 삶으로
케이티 모턴 지음, 정지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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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통제보다 자기돌봄이 먼저다. 미국 심리치료사 케이티 모턴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실수에 대한 두려움, 기진맥진할 정도의 과로와 습관적인 사과, 과도한 책임감까지" 이런저런 통제 욕구가 우리 삶을 행복과 자유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완벽주의 강박과 간절한 인정욕구가 노예 같은 삶, 피곤에 찌든 삶을 만든다는 얘기다. 이런 통제하려는 충동은 어린 시절의 양육방식에서 비롯된다. 부모가 모든 인간관계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건강하지 못한 대인관계 패턴과 갈등 양상은 곧 부모와의 관계 패턴과 거의 판박이다. 가령 연애에 있어서 우리는 부모를 닮은 사람을 고르기 쉽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우리의 생각과 행동 패턴은 유년 시절에 형성되고 고착된다. 따라서 자기 성찰의 시작은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과 부모와의 상호작용 패턴을 살펴보는 일이다. 가령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지금 돌아보면 그 관계에 대해 어떤 감정이 드는가?"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지금 돌아보면 그 관계에 대해 어떤 감정이 드는가?"

통제에 중독된 이들은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강박이 심하다. 사랑과 관심,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통제 욕구를 낳고, 완벽주의와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 패턴으로 고착화된다.

"항상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느끼거나 타인보다 더 많은 일과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못 유무와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사과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결핍된 마음이 잠잠해질 것 같지만, 완벽을 쫓는 방식으로는 결코 마음을 달랠 수 없다. 남보다 더 애쓴다고 해서 저절로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며, 실수 없이 일을 끝냈다고 해서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45, 46쪽)

완벽주의자는 열심히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 무언가를 이루지 않으면 자신이 가치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따라서 완벽주의의 폐해를 막으려면, 의식적으로 '완벽'이 아닌 '적당히 괜찮은' 수준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지나치게 남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이들도 자기통제로 인해 건강한 경계선이 허물어진 경우다. 갈등을 피하고 타인을 늘 먼저 챙기며 남의 비위나 기분을 맞추는 행동이 지나치면 이는 결국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않는 '자기 유기' 행태와 다르지 않다.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려면 내가 원하고 선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제대로 의식하고, 나를 돕지 않고서는 타인도 도울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늘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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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역사 - 사랑과 권력의 5천 년
어거스틴 세지윅 지음, 김재용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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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역사적 인물 가운데 정말 아버지다운 아버지로는 누가 있을까. 아니 역사 인물이나 유명인사를 논하기 전에 잠시 감명 깊게 본 드라마 얘기부터 해볼까 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일명 '모자무싸')에는 가정다운 가정이나 부모다운 부모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유기와 방치 같은 모성애 결여의 문제가 제일 병적이지만, 부성애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 부성애의 아픔과 상실감을 상기시키는 인물로 시인 황진만의 처지가 나오는데, 딸의 행방을 십여 년 넘게 전혀 모른다는 점에서 역시 아비로서는 실격 수준이다.

흥미롭게도 황진만이 변은아에게 인생의 목적이 뭐냐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데, 변은아는 당차게 '힘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힌다.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들 많아"라는 황진만의 말대로,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 같은 아버지도 너무 많다. 역사상의 위인도 다르지 않다. 얼핏 내 머리를 스치는 '부성 제로'의 인물은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와 조선의 영조 임금이다. 루소는 낳는 아이마다 고아원 문앞에 갖다버렸고, 영조는 장성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 그런 루소가 얄궂게도 자녀교육의 멘토 역할을 꽤나 오랫동안 했다.

"19세기의 '가정 영역'은 정숙하고 순결한 곳이자 보살핌과 평온함이 지배하는 세계로, 때로는 거칠고 경쟁이 심한 남성성과 분리된 아늑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개념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권력과 권위를 여성과 어머니들이 일정 부분 행사할 수 있게 했고, 이는 남성들이 그 역할을 안정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던 시점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었다."(210쪽)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만행을 고발한 지 오래다. 그런데 간혹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의 전제인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고 지배적인 성별이라는 점을 훼손하곤 한다. IMF 같은 금융위기 사태가 대표적이다. 반면 전쟁이나 전염병, 자연재난은 바짝 쫄아든 가부장제를 되살리거나 회복시키는 강심제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는 때때로 남성성에 가차없이 흠집을 내곤 한다.

오늘날의 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제 질서하에 놓여있지만, 남성성의 위기는 심각한 지경이고 부성이나 부성애의 개념도 힘을 잃은지 좀 됐다. 가령 가정의 울타리 내에서 자녀 양육은 어머니의 전담 영역이 된지 오래고 (따라서 양육지침서와 진학 상담의 주요 대상은 어머니들이다) 아버지의 위상은 '고개숙인 남자'라는 상투적 표현만큼이나 곤두박질쳤다. 서구에선 19세기 중반부터 그러했다. 역사학자 어거스틴 세지윅의 지적대로, "본래 아버지를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보다 높은 자리에 놓고 그렸던 가족 초상화는 모든 구성원을 같은 높이에 둔 그림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헨리 8세, 미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에머슨과 소로,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밥 딜런 등 역사적 위인들이 어떤 아들이었고 어떤 아버지였는지를 살핀다. 이중 가장 아비다운 아비, 친절한 가부장제에 딱 들어맞는 자상한 아버지상을 하나 꼽는다면 '진화론의 아버지' 다윈일 것이다. 자녀 일곱을 거느린 다윈은 《바비아나》라는 꼼꼼한 자녀육아 기록을 남길만큼 정말 다정하고 헌신적인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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