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친구 도연명 -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12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문학자 박홍규는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을 '농사꾼 아나키스트'로 자리매김한다. 도연명에게서 농업을 중심에 둔 비지배, 비착취의 아나키스트 정신과 태도를 읽어냈기에, 그동안 도연명의 산문과 시에 드러난 유불선 사상의 비중 여부는 저자가 보기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령 혹자는 도연명이 젊은 시절엔 선비로서의 포부가 있었지만 불혹의 나이 이후부터는 노장의 초탈과 은일 사상에 기울었다고 말하고, 혹자는 도연명 시에 나오는 술 주(酒)를 고요할 선(禪)으로 바꾸면 음주시가 그대로 '선시'가 된다고 했지만, 저자에게 도연명은 유불선 삼교를 회통한 먹물이 아니라 권력과 부를 거부하고서 자급자족하는 평등 공동체를 이상으로 내세운 '농사꾼 아나키스트'의 모범일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도연명의 삶과 시가 제자백가 가운데 농가를 대표하는 허행의 사상과 깊은 친연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벼슬보다 밭을 택한 시인, 세상과 불화한 자유인. 1600여년 전, 도연명은 출세 대신 퇴장을 택했다. 명예보다 흙을, 권력보다 거문고를, 소음보다 양심의 리듬을 선택했다. 그는 말없이 물러났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의 언어였다."
저자는 도연명의 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시가 바로 「잡시」 1수라고 고백한다. 직접 농사를 짓고 농민과 친구가 된 도연명은 이 시에서 평등을 노래하고 있는데, 인생의 '지금 여기'를 즐기라는 낙관주의와 '모든 사람은 형제'라는 평등한 우정에 기초한 공동체주의가 눈길을 끈다.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는 것
길 위의 먼지처럼 부질없이 나부끼네
흩어져 바람 따라 떠도니
이는 이미 무상한 몸이라
세상에 태어나면 형제 된 것이니
어찌 반드시 골육끼리만 친할까?
기쁜 일 생기면 마땅히 즐기리니
한 말의 술 있으면 이웃을 불러 모으게.
청춘은 다시 오지 않으니
하루에 새벽 두 번 오기 어려워라.
때가 되면 마땅히 힘써 노력할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네."
(190, 191쪽)
도연명을 흔히 술의 시인이라고도 한다. 젊어서부터 술을 무척 좋아한 성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자는 도연명이 술에 입을 댄 것은 중년 이후, 정확히는 50대 이후라고 토를 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런 저자의 단언은 너무 지나치다. 도연명의 다섯 아들이 아비 발끝에도 못미치는 하나같이 못난 이유가 도연명의 애주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도연명의 「음주」 20수 가운데 5수가 제일 유명하다. 여기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은일 이미지로 국화, 남산, 새들이 나오는데, 평정심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먼저 언급하면서, 자연과의 합일 경지인 '참뜻'은 말로 풀어내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책 본문에 한시 원문이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음주시는 너무나 유명하기에 특별히 원문을 소개하고 싶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결려재인경, 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문군하능이, 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기일석가, 비조상여환
此中有真意, 欲辯已忘言. 차중유진의, 욕변이망언
"초가집 짓고 마을 근처에 살아도
수레와 말 시끄럽지 않네.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묻는다면
마음 멀어지니 땅도 절로 멀어지네.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니
멀리 남산이 눈에 들어오네.
해 질 녁 산 기운은 더욱 아름답고
떠돌던 새들도 무리 지어 돌아오네.
여기에 참뜻이 있으니
말하려 해도 말을 잊었네."
(202, 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