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책방 도감 이야기가 있는 디테일 도감
마사키 데쓰야 지음, 백운숙 옮김 / 윌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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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탐서가다. 해서 책방 순례나 도서관 탐방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순례의 좋고 나쁨은 방문지보다도 순례자의 안목과 취향에 좌우된다. 출판 관계자의 눈으로 본 책방과 건축가의 눈으로 본 책방은 분명 주안점이 다르다. 일본의 건축가 마사키 데쓰야는 『일본 책방 도감』(윌북, 2026)에서 개인 서점, 사설 도서관, 북 카페 등 일본의 '책 있는 공간' 마흔네 곳을 찾아가 공간을 실측해서 그린 입체도면을 통해 책방의 기능과 분위기 그리고 서가 진열 배치에 따른 특유의 공간적 정취를 선보인다.

나는 '책방지기'라는 오랜 로망이 있기에 순례 여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어떤 서점을 만들까, 책방 주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이다. TMI이지만 꽤 오래전부터 영어와 중국어 원서 전문 책방을 열고 싶었다. 푸코 연구나 자문화기술지 같은 학술 서적은 물론, 펭귄 클래식 디럭스 에디션이나 해리포터 미나리마 에디션 같은 화려한 양장본 원서를 많이 갖춘 그런 책방을 열고 싶다. 중국어 원서의 경우, 양장본 비중이 매우 적기 때문에, 동서양 고전 총서나 루쉰, 위화, 모옌, 김용, 고룡, 와룡생 같은 '작가 브랜드'에 집중하는 전집물을 되도록 많이 갖추고 싶다. 후훗, 그런데 이런 책방은 순전히 책방지기의 탐심만을 만족시키는 아지트가 될 리스크가 크다.

일본 책방은 역시 출판 강자답게 벤치마킹할 거리가 적지 않다. 책방지기가 없는 책방, 이른바 무인 서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니가타시의 이마도키서점은 고등학생이 연 무인 서점으로 유명하다. 1년마다 책장 주인이 바뀌는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국의 도서 소비 상황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아무튼 회원제로 운영되는 무인 서점 방식에 눈길이 간다. 아, 서울국제도서전도 아무쪼록 무인 부스가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북적북적한 장소는 내향적 독서인이 가장 꺼리고 피하는 험지가 아닌가 말이다. 독서인구와 출판 시장은 마구 축소되는 와중인데, 왜 도서전은 이토록 인산인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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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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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별은 죽어갈 때 강렬한 에너지 파장을 발한다. 그 강렬함은 별의 질량에 비례한다. 제국도 별과 같다. 한 제국이 죽어갈 때 마찬가지로 강렬한 파장을 쏟아낸다. 그 파장의 강렬함과 깊이는 제국의 문화적 질량에 비례한다. "한 제국이 죽어가는 동안 가장 오래 살아남을 예술이 함께 태어났습니다. 죽음과 탄생이 한 침대에 누워 있던 시기였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서서히 저무는 무렵에도 강렬한 내폭이 지속적으로 있었다. 그런 내폭의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프카(1883~1924)의 글과 에곤 실레(1890~1918)의 그림이다.

1900년 전후 빈과 프라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심장부였다. 소설가이자 문화기획자 홍선기는 1910년대 프라하의 작가 카프카와 빈의 화가 에곤 실레가 서로 '만나지 않은 쌍둥이'라고 보면서 두 천재의 내적 감수성과 예술적 스타일이 보여준 가족유사성에 주목한다.

잘 알다시피, 프란츠 카프카는 현대 문학의 상징적 아이콘이다. 문청에게 '카프카'란 이름 석자는 '애플'이나 '스타벅스'와 그리 다르지 않은 대형 브랜드다. 그의 소설 《심판》, 《변신》, 《성》은 '카프카적'이란 수식어를 하나의 문학적 테마로 만들었다. 가령 "불합리하고 악몽 같은 상황,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선 개인의 무력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죄, 부조리한 관료제, 무력한 개인" 같은 테마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정서적 서늘함, 건조하고 메마른 분위기" 같은 무채색 감정이 곁들여진다. 카프카 특유의 문학 스타일은 카프카의 뿌리 깊은 소외감에 기인한다. 카프카는 독일어 문화권 안에서 이른바 '세 겹의 소수자'였다. "체코어를 쓰는 도시에서 독일어를 쓰는 사람, 가톨릭 국가에서 유대인, 그 유대인 사회에서도 신앙에 거리를 둔 회의주의자."

카프카는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와 애중의 관계였다. 아버지는 잡화점을 열어 자수성가한 유대 상인으로, "키가 크고, 목소리가 크고, 식욕이 왕성했고, 자식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적이었"다. 통치하고 명령을 내리고 불복종에 분노하는, 전형적인 독재자 유형의 가장이었다. 카프카는 일기와 편지에서 '카프카적 기질'이란 표현을 써서 "강한 의지, 건강, 세상을 정복하려는 태도" 같은 카프카 가문 특유의 마초 기질을 언급한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예술가 개인의 민감한 영혼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결을 선명히 재현한다. 카프카의 글도, 에곤 실레의 그림도 그러했다. 예술가 본인의 심리보고서이면서 동시에 당대 사회의 문화코드에 대한 분석적 탐구였다. 에곤 실레 역시 '아버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에곤의 아버지는 철도청 간부였는데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에곤에게 지울 수 없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아버지가 오래 앓던 매독으로 정신착란 끝에 재산을 전부 불태우고 죽어버렸는데, 열두 살의 에곤이 다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뼈가 도드라지고, 관절이 꺽이고, 살갗은 푸르고, 손은 거미처럼 갈라지고, 엄지손가락은 거의 등장하지 않은"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 그런 트라우마의 흔적이 선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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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전
시라카와 시즈카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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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 괴이한 일, 힘으로 하는 일, 어지러운 일, 귀신에 관한 일은 공자의 담론에서 배제되고 차단되었다. 그런데 현대의 뉴스 미디어와 TV 드라마는 공자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글과 영상마다 괴력난신이 차고 넘친다.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는 방송인들은 웃픈 광대나 요란한 약장수 역할을 자처하고, 스마트폰에 중독된 좀비들은 거리와 길목을 활보하고 있다. 성인 ADHD 환자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미디어 시청을 부러 차단하는 영상 디톡스가 시급하다. 지적 생활자라면 독서와 필사를 그런 미디어 디톡스의 일환으로 실천하고 있을 터. 여기 광기와 흥분으로 열뜬 마음을 진정시켜줄 책 한 권을 소개한다. '현대 일본의 마지막 석학'으로 존경받는 시라카와 시즈카의 역작 《공자전》(AK커뮤니케이션즈, 2025)이다.

저자는 공자의 생애와 사상을 논한 무수한 동양학 권위자들 가운데 탑급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공자의 삶의 방식과 발자취, 사상의 흐름을 거시적인 사회문화적 맥락과 결부지어 다부지게 풀어내고 있다. 책의 구성은 '동서남북을 떠도는 사람', '유교의 원류', '공자의 자리', '유교의 비판자', '논어에 담긴 뜻' 총 5장이다.

공자의 전기 자료는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 집대성되어 있다. 오늘날 역사 덕후 가운데 사마천을 사필의 전범으로 추앙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저자는 사마천의 공자 담론에 매우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사마천의 역사 기술 방법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가령 일관성이 결여되었고, 선택과 배열의 타당성을 잃고 있으며, 자료의 성질이 불분명한 잡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공자와 혈통과 세계에 대해 《사기》 등에 기록된 이야기는 모두가 허구다. 아마도 공자는 이름 없는 무녀의 사생아로 일찍이 고아가 되어 비천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이 인간에 대해서 최초로 깊이 응시할 줄 알았던 이 위대한 철인을 낳았던 것이리라. 사상은 부귀한 신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28쪽)

공자는 분명히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적 이상주의자였다. 유교의 출발점도 주류 정치에 반하는 반체제 이론이었다.

"공자는 한편으로 주공의 열렬한 찬미자이자 복고주의자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각지에서 등장한 반란자의 부름에 기꺼이 응하고자 했던 모반자이기도 했다. 다만 공자가 여느 모반자와 다른 점은 그는 언제나 이상주의의 깃발을 높다랗게 내걸었고 '주공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표방했다는 점이다."(147쪽)

하지만 공자 사후, 일련의 권위화 작업과 신성화 과정을 통해 공자는 중국 문화의 보수 아이콘이 되었고, 유교는 동아시아 정치 체제를 정당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공자의 지지자는 공자를 위대한 철인, 혁명가, 휴머니스트, 민주주의자, 참교육자로 추앙하지만, 비판자는 툭하면 공자를 문화적 보수, 망국의 원흉, 고루한 꼰대로 손가락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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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트백 억만장자 - 성공의 방식을 바꾼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삶과 경영
데이비드 겔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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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무척 기묘한 책 제목이로다. '더트백 억만장자'라니. 내 귀엔 '아나키스트 억만장자'라는 소리처럼 엇박자로 들린다. 요즘 챙겨 보고 있는 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처럼 라임 한번 제대로다. 암벽을 오르고 송어를 낚시하며 서핑에 미친 어느 아나키스트가 재벌 기업가가 되었다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런 전설적 인물이 실존한다. 바로 미국의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다.

참고로, 더트백은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소유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흙바닥에서 잠을 자도 마냥 행복해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등반계에선 "오직 암벽을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을 존경과 애정을 담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야생의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아나키스트, 그게 바로 더트백이다.

이본 쉬나드는 모험가이자 사업가이었으며 동시에 자선가였다. 《뉴욕 타임스》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겔러스는 쉬나드를 "스포츠와 비즈니스, 그리고 자선 활동이라는 서로 다른 세 영역에서 혁명을 일으킨 한 남자"로 높이 평가한다. 『더트백 억만장자』(흐름출판, 2026)는 쉬나드의 모험가, 사업가, 자선가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밀착 취재하고 있다. 암벽등반가, 플라이낚시꾼, 카야커, 대장장이로서의 활기찬 삶도 흥미롭고, 더불어 환경운동가의 이념을 기업 경영에 적극 도입한 혁신적인 사업가로서의 삶도 감동적이다. 쉬나드 가족과 친구들, 파타고니아 임직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성공의 방식을 바꾼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삶과 경영'을 생생히 그려보이고 있다. 경영자로서 쉬나드는 "타협 없는 장인 정신과 직관적인 디자인 감각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캘리포니아 벤투라에 본사를 둔 파타고니아는 유기농·친환경 재료와 공정무역을 지향하고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세계적인 혁신기업이다. 1973년 설립된 파타고니아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공헌, 파격적인 육아 복지 혜택, 창의적인 마케팅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웃도어 의류를 선보이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파타고니아의 핵심 활동은 모두 환경보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낭비와 폐기를 줄이기 위해서 제품의 내구성을 디자인과 생산의 강력한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더불어 유기농 및 재활용 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고 손상된 의류를 수선해주며 전체 공급 사슬에 걸쳐 강력한 환경보호 기준을 준수하도록 했다. 오랫동안 파타고니아의 사명 선언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319쪽)

2018년 파타고니아는 "더 단순하고, 더 명확하며, 더 야심찬" 새로운 사명을 내건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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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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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사회의 오랜 정서적 뿌리는 가모장제다. 특히 한국의 신화와 전설, 설화를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명확해진다. 이런저런 옛날이야기 속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더 중하고 더 진하고 복잡미묘하다. 한국계 이민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전통 신화나 민간설화에서 한두 가지 소재를 차용한 예는 적지 않다. 그런데 에밀레종, 선녀와 나무꾼, 견우와 직녀, 심청전, 바리공주 등 무척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총출동한 소설은 처음 접해본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젤라 미영 허의 소설 《우리, 메아리처럼》(열린책들, 2026)은 마치 외국 독자들에게 한국 고유의 전설과 동화를 들려주는 공상과학 버전의 기묘한 고사집처럼 다가온다. 소설이 차용한 한국의 다양한 신화와 전설은 환상적이며 괴기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엘사 박은 스톡홀름에서 박사 후 과정 중인 물리학자다. 아문센 스콧 남극 기지에서 '유령 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를 연구하고 있다. 기지 가까이에 세계 최대의 중성미자 관측소인 '아이스 큐브'가 있기 때문이다. 중성미자는 "초신성 폭발이라든가 감마선 폭발, 초대질량 블랙홀의 탄생, 빅뱅 같은 대변동으로 탄생한 기본입자"인데, 전기적 중성이고 사실상 질량이 없으므로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아 관측이 매우 어렵다. 물리학 이론상 존재하지만 실제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런 소립자, 즉 '유령 입자'인 셈이다.

그런데 극히 드문 일이지만 중성미자가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이 일어날 경우 '체렌코프 방사선'이라는 파랗고 기다란 빛을 방출하는데, 이걸 감지하는 가장 이상적인 매개물이 바로 물이고, "남극의 얼음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H₂O"다. 엘사가 보기에, 중성미자 연구는 "우리 존재를 이해하려는 행위에" 가까운, "과거에 관해, 어쩌면 미래에 관해 알아내려는"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도 유령 입자 연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엘사의 어머니는 한국전쟁 통에 어머니와 언니를 모두 잃고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왔다. 아버지와 오빠는 미국에서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는 신병을 앓았는데, 결국 16년간 병원 신세를 지는 '납굴증' 환자가 된다. 목욕탕 사건 이후로 긴장증에 언어 장애까지 생겼는데,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와 가문의 저주로 인해 신병이 크게 도진 것이다. 당시 엘사는 열네 살이었다. 말을 잃어버리기 전, 어머니가 어린 엘사에게 한국어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때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풀이를 하는 무당의 목소리였다. 옛날이야기 속 여인들의 운명은 하나같이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여인들의 낮고 서글픈 목소리에는 에밀레종의 '에밀레, 에밀레' 소리처럼, 슬픔과 "끔찍하고 무서운 분노"의 정한이 담겨 있었다.

옛날이야기는 이민자의 문화적 정체성과 혈연적 뿌리에 해당하는 것들을 환기시키는 매개체다. 동시에 무속신앙과 결부된 집안 저주와 연관된 끈을 재현하는 운명의 그물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런 저주의 연을 끊어내고자 딸에게 본능을 거부하라고, 상상을 지워 버리고, 옛날이야기는 잊어버리라고 한다. 엘사가 물리학 박사가 된 것도 전통문화와 무속신앙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는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도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신병은 피를 통해 이어지기 마련. 엘사 역시 그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엘사는 아홉 살 때부터 귀신을 보곤 했다. 소복 차림에 빨간 댕기를 단 여자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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