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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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행복은 사색과 성찰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이 시작되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생로병사의 문제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인생, 나이듦, 질병, 죽음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화두이지만, 기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풀어야 할 궁극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는 숙명적인 방학숙제와 같다고 할까.

일본의 시민철학자 오가와 히토시는 생로병사에 인간관계를 더해 해가 저물어가는 인생의 오후에 접어든 중장년이라면 누구나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다섯 가지 주제로 삼는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키케로, 보부아르, 몽테뉴, 융, 장켈레비치, 하이데거 등과 같은 유명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어떤 관점에서 숙고했는지 풀어낸다. 이중 나이듦의 주제를 예로 들어보자.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론》에서 노화와 노년기에 관한 세상의 부정적인 편견들(가령 무력, 의존, 노쇠, 사회의 짐짝 등)을 걷어내고 나이듦의 여러 장점들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처럼 노년을 활기차게 보내는 법을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도 나이듦을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노년에야말로 주인공답게 자기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페미니즘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에서 실존주의적 삶의 방식에 입각한 노년기의 즐거움과 희망을 설파했다. 즉, "자신의 분투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견지하면서, 활기찬 노인이 될 것을 주문한다. 일본의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는 효율성과 유용성, 합리성만을 따지는 생산지상주의의 윤리관에서 벗어나 "유희, 사랑, 돌봄, 무위"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노년 윤리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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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인격이다 -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가 전하는 다정함의 심리학
김선희 지음 / 나무생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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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다. "수많은 신, 수많은 믿음, 수많은 길들이 있지만, 이 슬픈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친절을 베푸는 기술이다." 그렇다. 요즘 시국이 좀 어지러운가.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야만적인 정치적 선동의 꾸리함에 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왕당파의 광기와 음모론, 천박한 폭언이 정신과 감정을 사납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친절을 베푸는 기술이 절실해진다. 세상과 타인을 보다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적절한 매너와 친절한 태도, 다정한 마음이 중요해진다.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는 '다정함이 인격이다'라고 단언한다. 사람으로서의 품격이 '인격'이라면, 성숙한 인격의 바로미터가 친절함과 다정함이라는 얘기다. 다정한 마음으로 다정히 말하는 인간, 그런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다정한 세계를 만든다. 여기서 저자는 외부와 내부 양방향의 다정함을 강조한다. 밖으로 타인의 연약함과 취약성을 끌어안는 다정함과 안으로 자기자신의 연약함과 취약성을 수용하는 다정함이다. 먼저 자기를 아끼고 보살필 줄 알아야 남도 아끼고 돌볼 수 있는 법.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무해할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격의 기본이다. 만약 자신의 취약성과 아픔을 돌보는 내면의 힘이 부족하거나 서툴다면, "소모적 행동, 탐닉 행동, 중독, 광신, 마니아적 행동" 등에 빠져들기 쉽다.

건강한 대인관계는 "협력과 진심 어린 참여 그리고 건강한 상호 헌신"을 필요로 한다. 한쪽의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희생은 내면의 불안이나 죄의식에서 기인한 자기학대일 뿐이다. 부부 관계와 가족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친밀 여부를 막론하고 인간관계는 모두 시의적절한 주고받음과 "관심과 민감성, 관찰과 조율 그리고 자주성과 독립을 토대로 풍성해진다." 특히 부부나 가족은 희생을 빌미로 상대를 비난하고 원망(책임전가)하기 쉬운데, 이는 벌써 관계가 왜곡되고 망가졌다는 신호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누적된 적대감은 무한반복되는 퇴행적 싸움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자극에도 발끈하며 비합리적인 감정 반응이 나타나고, 시작하자마자 가속화되며, 대치와 반목으로 분열과 양극화가 일어나고, 적대감을 보이다 무기력감으로 마무리되는 싸움을 퇴행적 싸움이라고 한다."(113,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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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
오가와 사토시 지음, 최현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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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소설을 쓸 때 반드시 이 소설을 통해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정한다. 연작 단편집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소미미디어, 2025)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의 화두는 다름아닌 '소설가란 것은 어떤 것인가'이다. 그래서 주인공으로 '소설가 오가와'가 등장하고, 그의 고교동창들과 여자친구, 편집자 같은 주변인물들이 소개된다.

독서를 좋아하는 소설가의 일상과 사유(사변적이고 철학적인 그런 류)를 다루기에 그만큼 여러 유명작가의 이름과 저서들이 나열되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은 엄청난 독서가인 동아리 선배에게 잘 보이려는 지인에게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빌려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달의 궁전》을 읽는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는 남자라면 애초에 사귀지 않는 게 낫지." 공감하는 바다. 폴 오스터가 취향이 아니라면 무척 가볍거나 경박한 스타일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잠깐 나를 어리둥절케 한 점은 솔 크립키의 분석철학 이야기가 크게 강조된다는 점인데, 이는 소설가 오가와가 현실은 무수한 가능세계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크립키의 견해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그리는 세계는 그런 무수한 가능세계의 원초적인 복원 실험일 수도 있다.

책은 총 여섯 편의 연작 단편이 등장한다. 〈프롤로그〉〈3월 10일〉〈소설가의 본보기〉〈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가짜〉〈수상 에세이〉다. 〈프롤로그〉는 대학원생이던 주인공이 소설가가 된 계기를 소개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신의 인생을 원그래프로 표현하시오"라는 애매한 출판사의 입사지원서 항목이 그를 소설가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블 만화책을 보다보면, 긍정인물과 부정인물, 선한 영웅과 악한 영웅이 나오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소설가 오가와의 이야기에는 그런 긍정인물이나 영웅인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남의 사생활에 무관심한 평범한 도회인이나 성공을 향해 내달리다 거짓이나 허영의 덫에 걸려드는 소시민적 인물의 몰락을 그린다. 이는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이 재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결함"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소설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오히려 아무 재능이 없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야."라는 말에, 뭐야 노벨상감 발언이잖아, 라는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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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철학자들 - 자연에서 배운 12가지 인생 수업
신동만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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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안목을 넓힌 이는 도인이기도 하고 전사이기도 하고 시인이기도 하다. 노자의 무위자연이나 공자의 요산요수가 자연의 언어를 터득한 도인의 태도라면, 결정적 찰나를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고, "상대가 허점을 보이지 않으면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생존의 법칙을 몸으로 체감한 전사의 노하우다. 그리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들의 언어와 몸짓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가슴 설레는 것은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목도한 시인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자연 환경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이자 조류학자 신동만은 "가장 원초적인 대화"라 할 수 있는 야생과의 대화를 즐긴다. 대부분 야생과 인간 세상을 극명한 대조의 차원에서 바라보지만, 동물생태학 박사인 저자는 야생과 인간 세상의 유사함에 주목한다. 가령,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시간의 흐름,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투, 의리와 사랑으로 연결된 짝짓기와 양육, 공생의 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바로 이런 유사점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야생에서 배울 수 있는 신박한 인생의 지혜가 적지 않다. 저자는 지난 30여년 동안 야생과 함께하며 깨달은 것들을 열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 있는데, '준비, 적응, 기다림, 끈기, 신뢰, 기적, 선택, 관계, 관심, 시선, 포용, 잠시 멈춤'이 그러하다. 저자는 "야생은 철학자, 스승, 치유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인생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한다.

야생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동식물은 준비하는 존재다. 동물은 타고난 본능과 정교한 생체시계에 따라 움직인다. 생체시계에 이상이 생기면 야생에서 도태되고 만다. 동물의 일생은 그저 막무가내로 현재만 존재할 것 같지만, 이들의 생체시계는 미래의 준비를 내포하고 있다. 동물은 여름부터 겨울을 준비하고, 겨울에는 봄을 준비한다. 동물마다 포식자냐 피식자냐란 생태적 지위에 따라 번식 전략이 달라진다. 가령 포식자 맹금류에 해당하는 수리부엉이는 한여름밤에 새로운 번식을 준비하고 한겨울에 알을 낳지만, 수리부엉이의 먹잇감인 멧비둘기는 연중 두세 차례 번식하여 새끼의 생존율을 높인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자연에 안길 수 있는 법은 기실 얼마든지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아파트 주변의 산책길과 정원만 주의깊게 살펴도 자연이 바로 코앞에 있음을 알게 된다. 아파트에 살더라도, "모든 생명은 적응을 위해 투쟁한다", "야생은 정해진 시간표를 착실히 따른다", "신뢰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등, 야생의 인생수업을 전해들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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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점심시간 다봄 어린이 문학 쏙 5
렉스 오글 지음, 정영임 옮김 / 다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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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폭력은 어깨동무 사이다. 가난할수록 유치하고 찌질한 가정폭력이 미세먼지처럼 자욱한 법이다. 가난은 부모들을 주눅들게 하고 체념하게 하고 툭하면 욱하게 만든다. 자녀를 감정의 휴지통처럼 거칠게 사용하는 못난 부모들이 있다. 그래서 부모형제의 궁상과 싸구려 폭력이 지긋지긋해 가출을 일삼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 그러다 가출팸이 되면, 성매매나 절도, 강도, 상해와 같은 범죄의 먹잇감이나 조력자가 되곤 한다.

열세 살의 렉스는 학교가 집보다 훨씬 편했다. 머리가 똑똑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렉스는 수업이 즐거웠다. 다만 학교 생활에서 가장 불편하고 거북한 것이 점심시간이었다. 가난은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이빨에 낀 고춧가루처럼 화들짝 부끄럽게 만든다. 렉스의 여린 마음도 그랬다. 렉스는 점심시간마다 무료 급식 대상자라는 사실을 늙은 계산원에게 알리고 확인받아야 했다. 렉스는 리엄과 토드 같은 옛친구들이 알까 봐 겁이 난다. 가난과 궁상은 우정의 강물까지 흐린다. 5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 모두 풋볼 팀이 되면서 렉스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렉스는 엄마 루시아나와 샘 아저씨, 그리고 동생 포드와 같이 산다. 히스패닉계 엄마는 성깔이 사납고 정서적으로 불안해 감정 기복이 크다. 렉스의 눈에 엄마는 엄마나 어른처럼 보이지 않았다. 새아빠인 샘도 도긴개긴이다. 독일계 색슨족인 샘 아저씨는 말을 더듬고 욱하면 폭력을 휘두르곤 한다. 렉스는 자기도 나중에 엄마나 새아빠 같은 못난 어른이 될까봐 두렵다.

렉스가 차별과 폭력에도 삐뚤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외할머니의 사랑과 친구 이단의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렉스가 사랑하는 할머니는 나름 아메리칸 드림을 소박하게 이룬 멕시코계 이민 1세대였고, 손자를 사랑으로 보살필 줄 아는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한편, 점심 시간에 밥 친구로 새로 사귄 만화책 폐인 이단은 "같은 배트 시간에 같은 배트 기지에서 봅시다"란 '배트맨' 티브이 시리즈의 인삿말을 헤어질 때 내뱉는 똑똑한 괴짜다. 이단은 엑스맨을 가장 좋아하는데, 엑스맨이 자신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세상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단은 엑스맨처럼 지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모두를 도와주는 영웅이 좋았다.

렉스는 초능력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란 이단의 말에, "자기 자식을 때리는 사람들을 없애 버릴 거야"라고 답한다. "나쁜 녀석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해"라는 렉스의 말에, 이단은 "선한 사람들이 나쁜 녀석을 죽인다면 나쁜 사람들하고 다를 게 뭐야"라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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