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기원 - 우리의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칼 다이서로스 지음, 최가영 옮김 / 북라이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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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망가진 마음은 망가지지 않은 마음을 설명한다." 광유전학을 창시한 신경과학자 칼 다이서로스의 말이다. 저자는 《감정의 기원》(북라이프, 2026)에서 인간의 감정과 뇌의 관계를 탐구한다. 정신과 의사의 경험담, 인간 감정에 관한 가설, 최신 신경과학(광유전학) 기술이 한데 어우러진 책이다. 등장하는 정신질환 에피소드는 우울증, 자폐증, 조증, 불안장애, 섭식장애(거식증과 폭식증), 조현병, 경계성격장애, 치매 등 다양하다.

광유전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소개도 빠질 수 없다. 광유전학은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채널로돕신)을 신경세포에 넣은 뒤 빛을 쪼여 신경세포 활성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목표 세포에 빛 감지 센서를 붙여 빛으로 세포를 통제하는 광유전학 기술은 뇌 기능 이해, 행동 연구, 뇌 질환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녹조류에서 발견된 채널로돕신을 동물 신경세포에다 처음 적용한 사람이 바로 저자다. 덕분에 감정이 어떻게 신경회로에서 생성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성격과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할 길이 열렸다.

"광유전학으로 뇌 안의 특정 세포와 신경회로를 조작하는 게 가능해진 덕분이다. 예를 들어 겨냥한 신경회로가 무엇이냐에 따라 실험동물의 공격성과 수동성을 높이거나 줄일 수 있고, 얼마나 사교적인지, 이성을 밝히는지, 먹을 것과 마실 것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잠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활동적인지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196쪽)

광유전학 기술은 정신질환의 근원이 되는 신경 메커니즘을 파악하여 확실한 치료책을 내놓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시중에서 '뇌력 개발'을 부르짖는 약장수들 가운데 우리가 뇌의 극히 일부 기능밖에 쓰지 못하고 있다는 거친 주장이 있는데, 이는 완전히 난센스다. 신경과학은 광유전학 기술을 빌어 목마를 때 물을 찾는 매우 단순한 반응에도 뇌 영역 대부분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음의 무늬를 파악하는 데 광유전학 기술이 매우 유용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과학만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모두 설명할 수 없으며 상상력과 공감이 감정을 이해하는 또 다른 통로임을 강조한다. 내담자의 에피소드와 신경과학을 연결하는 중간다리가 바로 인간 내면의 감정 경험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력과 공감이다. 이런 상상에 저자의 화려한 문학적 수사(비유와 은유)가 더해져, 환자와 의사의 서사가 마치 한 편의 심리소설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정신의학은 의학을 다루지만 언어로 펼쳐지는 과학이라 가장 효과적인 치료 역시 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정신의학에만 독특하게 허용되는 추상성 덕분에 나는 매일 단어와 이미지에 흠뻑 빠져 이야기 속에서 우화적 의미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결과는 빈손이더라도 역사, 신경과학, 예술 그리고 내 개인적 경험과 두루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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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 정말 쉽다·5분 완성!
카롱쌤 지음 / 황금부엉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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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요즘 그림과 시에 푹 빠져 있다. 그림과 시는 공통점이 적지 않다. 특히 순수한 마음으로 자세히 보고 관찰해야 사랑스런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 그러하다. 식탁 위의 사과 같은 일상 속의 사물을 그린 정물화나 자연 속의 대상을 노래한 영물시나 다 같은 마음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림 유튜버 '카롱쌤'의 그림 그리기 책을 보고 나니 더욱 그런 확신이 강해진다. 카롱쌤이 그림을 매우 쉽게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숫자와 알파벳을 이용해 누구나 귀엽고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준다. 책을 본 부모와 아이는 시인의 상상력과 화가의 상상력이 결코 다르지 않구나, 라는 점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는 터라 미술시간이 그닥 즐겁지 않았다. 미술 시간 준비물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쉬는 시간 물감통에 물 채우고 다시 씻고 하는 일이 번거로웠다. 물감보다 오히려 풀과 가위, 색종이, 점토와 철사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기보다 더 좋아했다. 만약 어릴 때 카롱쌤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면, 그리기를 최애의 취미로 삼을 수 있지 않았을까. 카롱쌤은 숫자와 알파벳을 이용해 고양이, 강아지, 토끼, 사과, 딸기, 바나나, 공룡, 자동차, 로봇 등을 그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미술책이기 이전에 숫자와 알파벳을 이용해 우리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쑥쑥 키워주는 놀이책이다. 숫자 1이나 알파벳 A처럼 자주 보던 글자를 엉뚱하고 재미난 그림으로 바꿔보면서 '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가령 숫자 2로 백조, 호박모자, 고양이, 개구리, 잉어를 그려 보고, 알파벳 I로 초코 음료, 아이스크림, 이글루 등을 그려본다. "그림을 그릴 때 이미지를 단순화한 다음 점차 확장해 가는 연습을 하면 그림 실력이 쑥쑥 자라나요."

네모, 세모, 동그라미, 선처럼 기본적인 모양들을 활용해 대상을 그리는 노하우도 알려준다. 가령 아홉 개의 네모만을 이용해 사자를 그릴 수도 있고, 여덟 개의 세모만으로 귀여운 강아지를 그려볼 수도 있다. 가로선, 세로선, 대각선, 곡선 등 기본 선 그리기 연습과 기본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깨우침을 준다. 삐뚤삐뚤한 선이나 구불구불한 선들이 이런 기본선들과 어우러져 앵무새가 되기도 하고 꽃과 화병이 되기도 하고 홍학이 되기도 한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예술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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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스페인사 - 단숨에 읽는 스페인 역사 100장면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역사
나가타 도모나리.히사키 마사오 지음, 한세희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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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리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유럽에서 한국인의 기질과 가장 흡사한 나라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반도(이태리반도,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국가다. 새해 목표의 하나인 스페인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마침 스페인 역사를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교양서가 나왔기에 펼쳐 들었다. 말미에 '스페인사 연표'가 나오는데 상단은 본문에서 언급한 '스페인 사건'이, 하단은 '세계 사건'이 있어, 거시적 시각에서 본문을 복습하거나 예습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기원전 한반도에 예맥족과 한족이 살았다면, 이베리아반도에는 남에서 올라온 이베리아인과 북에서 내려온 캘트족이 살았다. 주로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이베리아인은 반도 남부와 동부에, 피레네산맥을 넘어 북쪽에서 침입해 온 캘트족은 반도 서부와 중부에 각각 정착했다. 그들의 융합 문화를 켈티베리아 문화라고 부른다. 이어서 로마, 이슬람, 가톨릭의 문화가 섞이게 된다.

기원전 197년 로마인은 이베리아반도에 속주 '히스파니아'를 설치한다. 이는 이후 '스페인(에스파냐)'의 어원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 시절, 히스파니아는 크게 발전하는데, 로마 제국 최고 전성기를 이끈 오현제 가운데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가 히스파니아 출신이었다. 황제 네로의 스승인 철학자 세네카, 시인 루카누스도 히스파니아 출신이다. 1세기 무렵, 히스파니아에 기독교가 들어온다.

5세기가 되어 게르만족 일파가 세운 서고트 왕국이 들어서고, 서로마 제국의 붕괴 시기와 맞물려 서고트 왕국은 남갈리아 지역부터 이베리아반도 전역까지 지배하는 유력 국가로 성장한다. 이슬람 세력이 침입해 서고트 왕국이 멸망하고 서고트 유민(펠라요)은 북부의 칸타브리아산맥 인근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운다. 이어서 기독교 세력에 의한 이베리아반도의 탈환운동인 '레콩키스타(재정복)'가 시작된다.

레콩키스타(722년~1492년)는 약 800년간 벌어지는데,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그리고 개종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 관계가 이어지지만 그 덕분에 풍부한 문화가 탄생했다. 레콩키스타를 종결하고 스페인 왕국의 시대를 개막한 이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다.

"1469년,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결혼이 성사되었습니다. 이사벨은 1474년에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로 즉위했고, 페르난도는 1479년에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로 즉위했습니다. 그 결과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연합 왕국의 동군연합으로서 '스페인 왕국'이 탄생했습니다."(67쪽)

1492년 이사벨 1세가 콜럼버스의 첫 항해를 지원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남미 일대를 향한 신대륙 개척을 본격화하는데, 스페인의 식민지는 북미 대륙의 멕시코부터 중미를 거쳐, 포르투갈령이었던 브라질 이외의 남미 대륙까지 뻗어 있었다. 16세기 후반의 스페인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는 세계 제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외화내빈의 상태로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스페인의 재정난은 펠리페 2세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1세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에는 외국과의 전쟁과 국내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스페인 제국의 몰락과 미국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이 미국ㅡ스페인 전쟁이다. 1898년 4월부터 8월까지 쿠바의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은 태평양과 카리브해에서 전개되었는데, 필리핀의 카비데와 쿠바의 산티아고 해전 등에서 패하며 스페인의 완패로 막을 내리게 된다. 스페인은 파리 강화조약에서 쿠바의 독립을 인정하고, 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와 태평양의 필리핀과 괌을 미국에 할양했다. 쇠락하는 상태로 20세기 초반을 맞이한 스페인은 세계가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곤혹을 치룰 때 모두 참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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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 - 16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500년 화학사
후지시마 아키라 외 지음, 정한뉘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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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요즘 같은 한파에 외출할 때는 핫팩이 요긴하다. 살살 흔들기만 했는데 오랫동안 따뜻하다. 핫팩 온도는 평균 40도라고 하는데, 대체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럴까 궁금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핫팩 안에는 철가루, 활성탄, 나트륨 등이 있다고 한다. 주재료인 철이 산소와 만나면 산화반응이 일어나는데, 그 때 열이 발생하고 그 열의 발생을 활성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부재료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산화반응, 그래 이런 게 바로 화학이다. 연금술에서 자라난 화학은 역시 생활밀착형 학문이다.

16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500년 화학사를 들려준다는, 매우 용감한 책을 접했다. 입문서라면 도가 튼 일본 과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책이라서 믿음이 간다. 난생 처음 본 화학사 관련서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총 16장으로, '화학의 기초, 수소·산소의 발견과 플로지스톤설, 탄산가스·질소의 발견과 라부아지에, 주기율, 물리화학 분야의 세 선구자, 전기화학, 열역학과 화학 에너지, 방사선화학, 반응속도, 화학결합, 광화학, 고분자화학, 유기화학, 양자화학, 표면 분석, 유기 화합물의 구조 결정'의 순이다.

각 장마다 세 명의 화학자가 등장한다. 가령 전기와 관련된 화학의 하위 학문인 '전기화학'을 예로 들면,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볼타,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 독일의 발터 헤르만 네른스트가 대표적 인물로 등장한다. 1800년 볼타가 구리와 아연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볼타 전지를 발명했는데, 덕분에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는 전기분해 연구로 나트륨(Na), 칼륨(K), 칼슘(Ca), 마그네슘(Mg), 스트론튬(Sr) 등의 원소를 발견했고, 데이비의 조수 출신이던 패러데이는 1831년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했다.

물리학에 뉴톤과 갈릴레이가 있다면, 화학에는 라부아지에와 멘델레예프가 있다. 프랑스의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고, 러시아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라부아지에는 1789년 최초의 근대 화학 교과서인 『화학원론』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을 언급하고,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 및 요소를 '원소'로 명명했으며 수소, 산소, 질소 등 33종의 원소를 분류했다.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화학자'로도 유명한데, 단두대에서 처형된 다음 날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는 이런 말을 남겼다. "그의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같은 머리를 얻으려면 한 세기로도 부족할 것이다."

한편, 주기율표는 모든 원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표로, 1870년대 당시 알려져 있던 63종의 원소를 원자량과 성질에 따라 나열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지구상에 존재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 자리를 빈칸으로 두었는데, 빈칸에 들어갈 미지 원소의 성질까지 정확히 예측했다. 가령 멘델레예프가 명명한 에카붕소, 에카알루미늄, 에카규소는 훗날 각각 스칸듐(Sc), 갈륨(Ga), 저마늄(Ge)이라는 이름의 원소로 발견되었다. 원자번호 101번에는 그의 이름을 따 멘델레븀(Md)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자번호 113번 원소는 일본인 연구자 모리타 고스케가 발견했는데, 니호늄(Nh)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공학도 출신의 배우 윤소희가 방송에서 주기율표 20번까지 외우는 암기법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정말 도움이 된다. '허허, 리베비씨는 엔오플네요, 나마알씨는 인황염아라, 카칼슘.'

잘 알다시피, 주기율표의 가로줄은 '주기', 세로줄은 '족'이라고 하는데, 현재 총 7주기 18족이 있다. 영국의 윌리엄 램지는 희토류 원소를 발견해 18족 원소의 존재를 증명했다. 헬륨(He), 네온(Ne), 아르곤(Ar), 크립톤(Kr), 제논(Xe), 라돈(Rn) 같은 비활성 기체가 그러하다. 18족 원소는 화학적으로 안정되어 화학 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여 비활성 기체라고 부른다. 책은 비활성 기체의 전자 개수를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전자껍질에도 K 껍질, L 껍질처럼 기호가 있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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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도연명 -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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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문학자 박홍규는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을 '농사꾼 아나키스트'로 자리매김한다. 도연명에게서 농업을 중심에 둔 비지배, 비착취의 아나키스트 정신과 태도를 읽어냈기에, 그동안 도연명의 산문과 시에 드러난 유불선 사상의 비중 여부는 저자가 보기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령 혹자는 도연명이 젊은 시절엔 선비로서의 포부가 있었지만 불혹의 나이 이후부터는 노장의 초탈과 은일 사상에 기울었다고 말하고, 혹자는 도연명 시에 나오는 술 주(酒)를 고요할 선(禪)으로 바꾸면 음주시가 그대로 '선시'가 된다고 했지만, 저자에게 도연명은 유불선 삼교를 회통한 먹물이 아니라 권력과 부를 거부하고서 자급자족하는 평등 공동체를 이상으로 내세운 '농사꾼 아나키스트'의 모범일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도연명의 삶과 시가 제자백가 가운데 농가를 대표하는 허행의 사상과 깊은 친연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벼슬보다 밭을 택한 시인, 세상과 불화한 자유인. 1600여년 전, 도연명은 출세 대신 퇴장을 택했다. 명예보다 흙을, 권력보다 거문고를, 소음보다 양심의 리듬을 선택했다. 그는 말없이 물러났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의 언어였다."

저자는 도연명의 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시가 바로 「잡시」 1수라고 고백한다. 직접 농사를 짓고 농민과 친구가 된 도연명은 이 시에서 평등을 노래하고 있는데, 인생의 '지금 여기'를 즐기라는 낙관주의와 '모든 사람은 형제'라는 평등한 우정에 기초한 공동체주의가 눈길을 끈다.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는 것

길 위의 먼지처럼 부질없이 나부끼네

흩어져 바람 따라 떠도니

이는 이미 무상한 몸이라

세상에 태어나면 형제 된 것이니

어찌 반드시 골육끼리만 친할까?

기쁜 일 생기면 마땅히 즐기리니

한 말의 술 있으면 이웃을 불러 모으게.

청춘은 다시 오지 않으니

하루에 새벽 두 번 오기 어려워라.

때가 되면 마땅히 힘써 노력할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네."

(190, 191쪽)

도연명을 흔히 술의 시인이라고도 한다. 젊어서부터 술을 무척 좋아한 성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자는 도연명이 술에 입을 댄 것은 중년 이후, 정확히는 50대 이후라고 토를 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런 저자의 단언은 너무 지나치다. 도연명의 다섯 아들이 아비 발끝에도 못미치는 하나같이 못난 이유가 도연명의 애주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도연명의 「음주」 20수 가운데 5수가 제일 유명하다. 여기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은일 이미지로 국화, 남산, 새들이 나오는데, 평정심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먼저 언급하면서, 자연과의 합일 경지인 '참뜻'은 말로 풀어내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책 본문에 한시 원문이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음주시는 너무나 유명하기에 특별히 원문을 소개하고 싶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결려재인경, 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문군하능이, 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기일석가, 비조상여환

此中有真意, 欲辯已忘言. 차중유진의, 욕변이망언

"초가집 짓고 마을 근처에 살아도

수레와 말 시끄럽지 않네.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묻는다면

마음 멀어지니 땅도 절로 멀어지네.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니

멀리 남산이 눈에 들어오네.

해 질 녁 산 기운은 더욱 아름답고

떠돌던 새들도 무리 지어 돌아오네.

여기에 참뜻이 있으니

말하려 해도 말을 잊었네."

(202,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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