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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철학자들 - 자연에서 배운 12가지 인생 수업
신동만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야생의 안목을 넓힌 이는 도인이기도 하고 전사이기도 하고 시인이기도 하다. 노자의 무위자연이나 공자의 요산요수가 자연의 언어를 터득한 도인의 태도라면, 결정적 찰나를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고, "상대가 허점을 보이지 않으면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생존의 법칙을 몸으로 체감한 전사의 노하우다. 그리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들의 언어와 몸짓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가슴 설레는 것은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목도한 시인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자연 환경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이자 조류학자 신동만은 "가장 원초적인 대화"라 할 수 있는 야생과의 대화를 즐긴다. 대부분 야생과 인간 세상을 극명한 대조의 차원에서 바라보지만, 동물생태학 박사인 저자는 야생과 인간 세상의 유사함에 주목한다. 가령,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시간의 흐름,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투, 의리와 사랑으로 연결된 짝짓기와 양육, 공생의 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바로 이런 유사점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야생에서 배울 수 있는 신박한 인생의 지혜가 적지 않다. 저자는 지난 30여년 동안 야생과 함께하며 깨달은 것들을 열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 있는데, '준비, 적응, 기다림, 끈기, 신뢰, 기적, 선택, 관계, 관심, 시선, 포용, 잠시 멈춤'이 그러하다. 저자는 "야생은 철학자, 스승, 치유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인생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한다.
야생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동식물은 준비하는 존재다. 동물은 타고난 본능과 정교한 생체시계에 따라 움직인다. 생체시계에 이상이 생기면 야생에서 도태되고 만다. 동물의 일생은 그저 막무가내로 현재만 존재할 것 같지만, 이들의 생체시계는 미래의 준비를 내포하고 있다. 동물은 여름부터 겨울을 준비하고, 겨울에는 봄을 준비한다. 동물마다 포식자냐 피식자냐란 생태적 지위에 따라 번식 전략이 달라진다. 가령 포식자 맹금류에 해당하는 수리부엉이는 한여름밤에 새로운 번식을 준비하고 한겨울에 알을 낳지만, 수리부엉이의 먹잇감인 멧비둘기는 연중 두세 차례 번식하여 새끼의 생존율을 높인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자연에 안길 수 있는 법은 기실 얼마든지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아파트 주변의 산책길과 정원만 주의깊게 살펴도 자연이 바로 코앞에 있음을 알게 된다. 아파트에 살더라도, "모든 생명은 적응을 위해 투쟁한다", "야생은 정해진 시간표를 착실히 따른다", "신뢰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등, 야생의 인생수업을 전해들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