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처가 사랑을 밀어내지 않게 하려면 -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심리 수업
저우무쯔 지음, 박영란 옮김 / 더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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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패턴은 반복된다. 사귐의 불씨가 헤어짐의 불씨가 되고, 결혼 사유가 이혼 사유가 되고, 연애 이유가 불륜의 이유로 이어진다. 대만에서 인기 있는 상담심리사 저우무쯔는 관계 패턴이 반복되는 원인으로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Intimacy Fear)을 지목한다.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에는 크게 여섯 가지가 있다.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부족한 사람이라는 두려움, 배신과 기만에 대한 두려움, 순종해야 한다는 두려움, 통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보통 사람은 누구나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싶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과, 상대방에게 무관심하고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 이 두 가지 전형적인 캐릭터는 자신도 모르게 친밀감의 두려움에 갇혀 있는 것이다."(20쪽)

관련 문항 체크 리스트를 보니, 나는 '통제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가령 "때로는 연애가 귀찮게 느껴지며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 "때로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관계가 좋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를 보살펴 주거나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때 종종 부담스럽다." 등의 문항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음은 '사랑받지 못하는 두려움'이다. 일테면 "상대를 찾을 때 나는 가정환경이나 직업, 외모, 재능 등 특정 조건을 적용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포용하고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 노력하고 사랑하는 것이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는 것보다 더 많다고 느낀다." 반면에 매우 흥미롭게도 '배신과 기만에 대한 두려움'은 관련 사항이 전무했다. 나만 이런가.

저자는 애착 이론의 관점에서 어린 시절 부모와 주 양육자 같은 중요한 사람들에게 받은 보살핌의 경험과 그들과의 관계가 이후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애착 유형은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혼합형(혼란형) 네 가지다. 성장기에 부모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방임이나 학대를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다면 불안형 애착이나 회피형 애착 같은 불안정 애착 유형에 빠지기 쉽다. 관계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나름의 본능적인 전략으로 대응하기 마련인데,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생존전략'은 싸우기, 도망치기, 경직되기, 비위 맞추기 네 유형이다.

저자는 생존전략의 예로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언급한다. 마츠코가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한 생존전략은 '비위 맞추기'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달래 주는 방식으로 대인관계의 두려움과 상실감을 극복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하면 나는 안전하다'는 마츠코의 신념은 남자친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나아간다. 마츠코는 나쁜 남자들에게 성모 마리아처럼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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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역사 - 표현하고 연결하고 매혹하다
샬럿 멀린스 지음, 김정연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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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술평론가 샬럿 멀린스의 《예술의 역사》(소소의책, 2024)는 예술사 입문서로 제격이다. 일단 내용 전개는 예술 사조의 변천에 충실하다. 동굴 조각과 벽화 같은 선사시대 예술부터 출발해,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를 거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인상파를 정점으로 찍은 후에,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 뮤직비디오까지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주목할 만한 이 책의 특색을 하나 꼽는다면, 그동안 주류 예술사에서 자주 배제되곤 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애써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다 칼로나 오노 요코 같은 몇몇 유명인들을 제외하면, 저자가 거론한 대다수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이 내겐 생소했다. 일테면 1850년대 로마에서 활동한 일군의 미국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해리엇 호스머의 「쇠사슬에 묶인 제노비아」(1859년)와 메리 에드모니아 루이스의 대리석 조각 「영원한 자유(1867년) 등이 그러하다. 인상파 화가들을 논할 때도 여성 예술가 명단을 빼먹지 않는다.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유명한 남성 화가들만이 아니라 베르트 모리조와 미국인 화가 메리 카사트 같은 여성 화가들도 거의 같은 비중으로 언급한다.

예술의 역사는 표현의 역사, 연결의 역사, 그리고 매혹의 역사다. 예술은 삶과 죽음을 표현하고 연결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으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유혹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선 인간의 기본 욕동으로 삶 충동과 죽음 충동을 강조했다. 이는 예술 사조에도 대입할 수 있는데, 그리스 예술과 고대 예술이 삶 충동에 기반해 현세를 긍정했다면, 이집트 예술과 중세 예술은 죽음 충동에 기반해 영원불변의 내세를 지향했다.

한편, 문예이론가 발터 벤야민은 예술 작품의 가치를 크게 전시 가치와 예식 가치로 구분한 바 있다. 전현대 예술은 예식 가치가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현대의 예술작품은 상품으로써의 전시 가치가 우선이다. 가령 선사시대에 프랑스 동굴 벽에 남겨진 들소 부조는 다산 의식이나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석기 시대 익명의 예술가가 창조한 들소 조각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동굴 미술은 의례적이면서 예술적이다. 현대 화가 알리 바니사드르에 따르면, 동굴미술 이래로 모든 예술은 마법에 관한 것이다. 예술은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어떤 신비한 힘에 관한 것이다. 일테면 동물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은 샤먼이 동물의 혼령을 불러내는 데 쓰였을 수도 있고,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예식 가치에서 전시 가치로 문턱을 확실히 넘은 이정표적 작품을 하나 꼽자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년)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에세이 〈현대 생활의 화가〉에서 예술가란 "역사 속에서 유행이 담아내는 시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추출하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마네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모던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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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꼭 봐야 할 100편의 영화
Team. StoryG 지음 / oldstairs(올드스테어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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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감명 깊게 본 영화는 각인 효과가 크다. 가령 영화 『미션』은 언제나 내가 첫째로 꼽는 인생영화다. 그런데 초등학생 때 내가 극장에서 본 영화는 대부분 유치했다. 그나마 좀 어른스러웠던 작품은 80년대 유명 가수 이용이 주연인 영화『잊혀진 계절』이었다. 이용과 전영록의 열혈팬이던 사촌누나와 같이 본 게 기억난다. 다시 초등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반복해서 볼 것이다. 어릴수록 거장이 만든 일류 작품을 다양하게 접해봐야 한다.

지브리 설립자인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거장이다. 소년소녀를 티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게 만든 티비 만화 시리즈「미래소년 코난」「알프스 소녀 하이디」「엄마 찾아 삼만리」「빨강머리 앤」등이 바로 이들 거장의 손에서 나왔다. 참고로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을 말한다. 《지브리의 철학》이란 책에 따르면, 다카하타 감독의 특기는 "보통 사람의 희로애락을 그리는 것"이고, 미야자키 감독의 특기는 "소년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모험 활극 판타지"다.

단언컨대, 지브리 작품은 죄다 "인성의 교과서, 창의성의 선생님이 되어 줄 영화들"이다.『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이웃집 토토로』『반딧불이의 묘』『마녀배달부 키키』『추억은 방울방울』『붉은 돼지』『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귀를 기울이면』『모노노케 히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마루 밑 아리에티』『하울의 움직이는 성』『벼랑 위의 포뇨』 등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붉은 돼지』이지만, 지브리 작품을 처음 접하는 저학년생에게는 『벼랑 위의 포뇨』와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권할 것이다. 다섯 살 소년 소스케와 마법을 부리는 물고기 공주 포뇨의 순수한 우정과 사랑, 상호신뢰가 매우 인상적이다. 내용상 디즈니사의『인어공주』를 떠올리게 하지만, 보다 더 순수하고 건실하고 연대적이며 희망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요즘은 초등생도 성인 못지 않게 불안과 노이로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어린이 대상 전문 심리치료센터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연유다. 초등학생 때 꼭 봐야 할 명작 영화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지친 동심을 위로하는 '약손'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데 그런 100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엔 어린 관중의 영화 감상을 돕는 질문들이 다섯 문항씩이나 나온다. 너무 많다. 대신 줄거리 요약을 늘리고 명대사를 좀 집어넣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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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서사원 영미 소설 1
패트리샤 박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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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울타리 제도가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와 피해, 모멸감을 주는 경우가 있다. 다문화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정책이나 제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징표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망고문' 그 자체인 것들도 있다. 아메리칸드림이나 코리안드림이 그러하다. '드림'을 이루려면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승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천에서 용 나오기 힘든 시절에는 형편에 맞는 꿈을 꾸는 게 더 현명하다. 독일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여기 다문화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이란 주술에 사로잡힌 명문고 우등생이 있다. 우등생의 아빠는 아메리칸드림에 희망고문을 당하다 세상을 등졌고, 엄마는 드림은 언감생심, 그냥 사는 처지에 따라 애써 버틸 뿐이다.

우등생의 이름은 알레한드라 김(앨리), 한국계 아르헨티나계 미국인 이민 2세다. 엄마 아빠 모두 아르헨티나 한인 2세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이민 1세대에 해당한다. 아빠 후안 김은 10대 때 미국에 왔다. 그 전엔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자랐고, 친부모에 의해 아동 노동을 강요받으며 노동력 착취의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엄마 베로니카는 지금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아빠의 누나인 윤아 고모와 개리 고모부는 잘 나가는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자녀로 마이클과 제이슨이 있다. 고모네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셈이다.

한국인과 미국 백인에게 '알레한드라'란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스페인에선 미국의 '제시카'만큼이나 흔한 이름이다. 문제는 퀸스에 거주하는 알레한드라가 이따끔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는 데 있다. 번화가에서 백인에게 '망할 중국놈(칭크)'이란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스페인어를 능란하게 쓰지만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고 라틴계에서 무시당하곤 한다.

퀸스에 거주하는 대다수 이민자 후손에게 아메리칸드림이란 그저 "돈과 음식, 보금자리"일 뿐이다. 온화한 성품의 아빠 후안은 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꿈을 크게 가지렴", "이 나라에서는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어." 하지만 정작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아빠는 심한 우울과 무기력에 잠식되어 끝내 7호선 선로에 투신했다. 아메리칸드림이 독이 된 경우다.

"퀸스 거주민들은 멍청하지도, 천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현실적일 뿐이었다. 이들은 전쟁, 기근, 빈곤 같은 온갖 끔찍한 일을 피해 자신의 모든 걸 버린 채 알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쳐 온 사람들의 후손이었다."(65쪽)

앨리는 두 명의 절친이 있다. 죽마고우인 빌리 디아즈와 고등학교 베프인 로럴 그린블라트-왓킨스다. 빌리는 도미니카 출신의 이민자 가족 출신이고 매력남 유형이다. 대학 입학 대신에 해병대를 선택한다. 로럴은 급진적인 사회운동가 기질이 다분한 유대계 백인이다. 로럴은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이슬람 여성들을 돕기 위해 여름방학 내내 아랍어를 공부할 정도다. 앨리의 지금 소원은 원하는 명문대에 진학해 퀸스 시궁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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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인생 수업 - 괴테에게 배우는 진정한 삶에 대한 통찰
사이토 다카시 지음, 전경아 옮김 / 알파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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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잘 배우려면 거장, 일류, 고수, 달인, 프로, 전문가에게서 배워야 한다. 가령 공 차는 기술을 메시나 손흥민에게 배운다고 치자. 실력이 얼마나 빨리 늘겠는가. 인생 수업도 마찬가지다. 거장에게, 일류에게 배워야 한다. 현재 살아 있는 초일류나 거장, 대문호는 내 옆에 모시기가 매우 힘들지만, 이미 고인이 된 초일류나 천재는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얼마든지 아무때고 내 앞에 불러낼 수 있다. 괴테를 사숙했던 에커만이나 '일류의 법칙'에 관심이 많은 사이토 다카시는 모두 이런 이치를 잘 꿰고 있었다.

오늘날 매우 세속적인 시각으로 봐도,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일류 인생, 명품 인생을 살았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살다간 괴테는 고전주의라는 직구와 낭만주의라는 커브볼을 두루 구사할 수 있는 출중한 문재를 지닌 대문호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였고, 과학자이면서 시인이자 정치에도 능했던 만능인이었다. 나는 베르테르와 파우스트를 통해서 딱 두 번 괴테를 만났다. 그리고 한동안 괴테를 잊고 지냈다. 그럼에도 모방자살의 대명사인 '베르테르 효과'라는 술어는 여전히 내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내가 아직 펼치지 않은 괴테의 작품 가운데 『괴테와의 대화』가 있다. 이 책은 젊은 학도였던 에커만이 만년의 괴테를 만났던 9년간의 메모를 바탕으로 괴테와 나눈 대화를 수록한 책이다. 일본의 인문주의자 사이토 다카시는 이 책의 본질이 '숙달론'이라고 단언한다. 달리 말하면, '일류의 법칙'을 담고 있다는 얘기다. 사이토 다카시의 책 『괴테의 인생수업』은 '발상의 기법'이란 관점에서 『괴테와의 대화』의 가장 중심적 테마인 숙달론을 정리한다. 저자는 괴테의 다채로운 인생 편력과 문학 정신에 깃든 숙달론의 진수를 '집중, 흡수, 만남, 지속, 연소'라는 다섯 범주로 요약한다.

일류는 집중력이 좋다. 집중력을 키우려면 선택과 배제의 균형감 혹은 직감이 있어야 한다. 가령 '표현수단은 최소한으로, 흡수하는 그릇은 최대한으로' 해야 한다. 뭔가를 흡수할 때는 폭넓게 흡수하지만, 표현 수단에 있어선 자신의 재능, 기력, 에너지를 집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영화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오즈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놓고서 '나는 두부 가게라서 두부밖에 못 만들어'라는 겸손의 말을 남겼다. 또한 일류는 지속력이 좋다. 가령 괴테는 파우스트 집필에만 60여 년이 걸렸다.

일류가 되려면 일류를 만나야 한다. "최고만을 보아야 안목이 생긴다." 괴테는 취향이란 모름지기 가장 우수한 것을 접해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중급품이나 중간 정도 수준의 작품을 많이 본다고 해서 취향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고를 알면 나머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는 발상에 내 무릎을 쳤다.

인생은 유한하다. 따라서 어차피 열정을 쏟을 거라면 어중간한 것보다는 가장 좋은 것에 쏟아야 한다. 가령 일본 문학의 정점을 맛보려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고전 음악의 진수를 맛보려면 모차르트를 접하면 된다. 장르를 굳이 가릴 필요는 전혀 없다. 어떤 장르든 정점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에 와닿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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