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이해하는 다윈의 세계 - 일러스트 종의 기원
안나 브렛 지음, 닉 헤이즈 그림, 한성희 옮김 / 런치박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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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 중력의 법칙이 있다면, 생물학에는 진화의 법칙이 있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다면, 진화론이 중력이론보다 서너 수 위다. 진화론은 진화생물학이라는 커다란 몸통을 자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철학 같은 인근 학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령 심리학에선 진화심리학이 대두했고, 사회학에선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반짝 인기를 끌었으며, 철학 분야에선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들뢰즈의 차이의 반복론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 찰스 다윈의 연구와 저술 덕분에, 우리는 지구상의 생물들이 ('노아의 방주'에 의해 보존된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연계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다윈 진화론의 양대 기둥은 자연선택론과 성선택론이다. 자, 이 두 이론을 초등 자녀에게 설명한다고 치자.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나라면 먼저 '진화'를 다른 말로 풀어낼 것이다. 가령 '다양화', '변이', '선택', '적응' 등이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말들도 하나하나 풀어줘야 한다. 아니면, '자연선택'이란 딱딱하고 중립적인 말 대신에 훨씬 박진감 넘치는 〈동물의 왕국〉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생존투쟁'이니 '약육강식'이니 '적자생존'이니 같은 말들을 들려줄 수도 있겠다.

아무리 생물학자라도 다윈의 진화론을 어린이에게 쉽게 설명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차선책으로 안나 브렛의 《한 권으로 이해하는 다윈의 세계》(런치박스, 2024)를 골랐다. 자연 관찰에 매료됐던 다윈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박물학자로서 새로운 대륙을 탐험하며 종의 다양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역사적 순간과 여러 실험과 연구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을 구체화해가는 과정을 잘 풀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글호 탐험》과 《종의 기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 소개는 물론, 다윈 당시에 잘 몰랐던 유전학에 관한 현대적 이해도 더불어 소개하고 있다. 일테면, "유전, 돌연변이, 자연선택이 함께 작용하여 진화가 이뤄진다."가 그러하다.

진화론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린 과학 꿈나무들이 이 책을 통해 생태계의 다양성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생태계의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명애를 보다 소중히 간직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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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근후 지음 / 책들의정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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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 실감난다. 요즘 연륜 있는 노학자의 에세이나 인생론을 접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아흔이 된 정신과 의사 이근후 선생의 에세이집 《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책들의정원, 2024)을 읽었다. 저자에 대해선 잘 몰랐고, 책을 집어든 건 일차적으로 출판사 이름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고, 책제목에서 뭔가 삶의 막바지 반전이나 반등을 꾀할 수 있다는 긍정의 뉘앙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문을 펼치니 바로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명언이 나온다. 헬렌 켈러가 남겼다고 알려진 말이다.

선생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위해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멋에 살면 된다"고 조언한다. 글 중간중간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을 비롯해 유명인의 명언들이 나오는데, 미국의 사회운동가 헬렌 켈러의 명언이 자주 소개되는 것이 눈길을 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역시 헬렌 켈러의 멋진 말이다.

학창시절 선생의 스승인 정신과 주임교수의 구두선 "그건 네 문제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의 질문 내용에는 상관없이 언제나 "그건 네 문제다"라는 답변만 반복했다고 한다. 양산 통도사의 경봉스님과 얽힌 에피소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만약 석가모니 출가 당시에 정신과 의사가 있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해한 선생에게, 경봉스님은 "너는 바로 그것을 버려라"라는 답변을 주셨다 한다.

선생은 국내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정신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한 국내 정신의학계의 선구자이시다. 도서관에서 선생의 전작 두 권을 빌렸다. 《당신은 괜찮은 부모입니다》(다산북스, 2021)와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메이븐, 2019)이다. 선생은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는데, '별먼지'로도 불리는 유명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선생의 큰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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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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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치 하루나의 소설 《물을 수놓다》를 두 번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내 머리에 떠오른 커다란 글자 하나가 있다. 바로 '벽'이다. 나는 이 소설이 '두 개의 벽'을 이야기한다고 본다. 취미로서의 벽(癖)과 장애물로서의 벽(壁)이다.

먼저 취미로서의 벽을 말해보자. 수집벽, 방랑벽, 정리벽, 전원벽 할 때의 벽이다. 벽은 평범하지 않고 매우 오래되고 아주 지독한 습관과 같다. 벽은 오늘날의 덕후 기질이나 오타쿠 근성과 통한다. 취미가 없는 인간은 좀비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사축'이란 말이 있다. '회사가축'의 준말인데, 취미가 없는 일벌레 직장인이 사축이라면, 취미가 없는 공부벌레 학생은 '교축'이 아닐까 싶다. '학교가축' 말이다.

소설엔 바느질을 좋아하는 소년 기요스미와 돌을 좋아하는 소녀 구루미가 나온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기요스미는 자수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 바느질 취미 때문에 간혹 '여자 같은 남자'로 오해받기도 하고, 학교에서 왕따는 아니지만 은근히 겉돌게 되었다. 그런데 기요스미는 자신의 자수벽을 굳이 감추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요리나 재봉 기술을 굳이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과 연결짓는 황당한 선입견을 질타한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누나를 위해 웨딩드레스를 직접 지어주겠다고 나선다.

한편, 구루미는 주말마다 강가나 산으로 돌멩이를 주으러 다닌다. 주운 돌은 매끈매끈 반짝반짝해질 때까지 줄로 다듬는다. 물론 모든 돌을 다듬는 건 아니다. 돌마다의 개성과 뜻을 존중하기에, 다듬어지는 게 싫은 돌은 그 울퉁불퉁 거친 돌의 아름다움을 지켜준다. 방과 후 시간은 전부 돌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는 별난 석치가 바로 구루미다. 벽이 있는 두 고등학생이 무척 어른스럽게 그려져 있다. 기요스미도 나이답지 않게 열린 성품을 보이지만, 그런 기요스미조차 구루미를 보면 "사극에 나오는 수수께끼의 노인" 같이 멋지다고 했을 정도로 구루미는 정말 어른스럽다.

다음은 장애물로서의 벽이다. 벽은 뭔가 넘어서거나 부수거나 허물어야 할 것들이다. 예컨대 '평범함'과 '정상성'에 대한 상식이나 고정관념, 선입견일 수도 있고, 무지와 몰이해에 기반한 증오와 차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릴 때 겪은 부정적인 경험이나 학대로 인한 마음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먼저 '정상 가족'에 대한 벽이 서 있다. 기요스기의 부모인 젠과 사쓰코는 기요스기가 한 살 무렵 이혼을 했다. 현실적인 생활력을 중시한 사쓰코가 평생 디자이너 꿈만 꾸고 있는 생활력 제로인 남편 젠을 일방적으로 내보낸 셈이다. 젠은 처가살이를 했고 금전감각이 매우 부족하다. 이혼하고 나서 젠은 전문대 시절 동급생인 구로다가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게 된다. 구로다는 친구를 대신해 해마다 기요스기에게 생활비를 배달해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캐릭터다.

누나 미오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 보습학원에서 사무직을 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치한에게 추행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치마가 커터 칼에 찢기고 말았고 뻔뻔한 추행범은 '귀엽네'라는 말을 남기고 달아났다. 그 때부터 미오는 치마를 입지 않았고 '여성스러운 것'을 거북해하고, 일부러 화려하거나 귀여운 것들을 멀리했다. 예비신랑인 곤노는 그런 미오의 성정을 잘 이해하고 수용해준다. 덕분에 미오는 "평범하게 취직해서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룬다"는, 결코 만만치 않은 루트를 걸어가는 중이다.

기요스미와는 달리, 미오는 헤어진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지냈다. 아버지의 든든한 보호가 매우 절실했던 그 때, 아버지가 곁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손수 만든 결혼 드레스를 입게 되고, 구로다 씨로부터 아버지가 자녀 이름을 미오와 기요스미로 지어준 연유, 이른바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고서는 어릴 때부터 쌓아온 벽들을 허물게 된다. 남동생 기요스미에게 자수가 기실 사랑과 축원의 행위인 것처럼, 미오 역시 아버지가 만들어준 드레스에서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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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영문법 100법칙 - 읽으면서 이해하고 암기 필요없는
도키요시 히데야 지음, 김의정 옮김 / 더북에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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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언어학에 기반한 영문법 교재라서 흥미가 간다. 메타포와 체계기능문법에 푹 빠져 있던 과거의 내 모습도 떠오르고 말이다. 일본의 '영어 장인' 도키요시 히데야는 일단 영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을 요구한다. 영어가 자아와 타자, 세상과 사물을 표상하는 방식은 우리 한국어 세계의 인지와는 다른 차별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인지 문법의 핵심이기도 하다. 가령 '여기가 어디지?'를 영어로는 어떻게 말할까. 혹시 'Where is here?'라고 했다면 영어의 시각과는 동떨어진 말이다. 영어로는 보통 'where am I?'라고 한다.

한국어가 "자신이 카메라가 되어 바깥 풍경을 비추는 언어"라면, 영어는 "외부에서 또다른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언어"이다. 한국어에서 주어가 종종 생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발화자가 곧 프레임 밖의 카메라이기 때문에 언어화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영어는 외부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감각이 특색이다. 최근 재밌게 본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과거의 즐거웠던 때로 돌아가는 초능력이 있는 복귀주처럼 자신을 타자처럼 바라보는 메타적 감각을 키워야 영어를 잘하게 된다.

영문법은 단순히 기계적인 규칙이나 공식 나열이 아니라 '영어 뇌'를 체화시키는 내러티브다. 나는 영어의 4대 영역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고루 잘 하려면 영문법 숙지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영문법의 허리뼈는 5형식 문형이다. 문형은 단순한 어순의 패턴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단위다. 저자의 말처럼, 문형을 공략하는 것은 영어 숙달의 필수 항목이다. 가령 '비용이 들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cost는 3형식이나 4형식 문장 둘 다 사용할 수 있고, 해석했을 때 둘 다 의미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3형식과 4형식에 쓰이는 cost는 심리적인 느낌의 차이가 있다. 3형식에서 cost는 감정이 없이 객관적으로 '(비용 등이) 들다'라면, 4형식에서 cost는 부담을 드러내며, 부담을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다는 느낌이 있다. 이처럼 말에서 '마음'을 읽지 못하면 영어 학습은 단순한 암호 해독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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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그랩 - 내 정보를 훔치는 빅테크 기업들
울리세스 알리 메히아스.닉 콜드리 지음, 공경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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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식민지를 꿈꾼다. 19세기 말 산업자본에 기반한 유럽 제국주의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두 바퀴로 삼아 굴러갔는데, 경제력은 주로 식민지의 토지 수탈과 자원 수탈의 방식으로 지탱되었다. 화포, 전력과 철도, 의료, 십자가의 순으로 식민지에 들어와서는 원주민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런저런 불평등조약을 통해 경제적 수탈의 기반을 완성했다. 일제의 토지 수탈, 자원 및 식량 수탈, 인력 수탈의 방식을 떠올려보라. 그런데 21세기 정보자본에 기반한 신식민주의는 토지 수탈이 아닌 데이터 수탈의 방식으로 경제력을 지탱하고 있다. 여기서 데이터 수탈의 주동자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다. 탈산업 정보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4대 빅테크 기업을 'GAFA'라 하기도 하고,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더해 'GAFAM'이라고 하기도 한다.

비판적인 미디어 이론가 울리세스 알리 메히아스와 사회학자 닉 콜드리는 《데이터 그랩》(영림카디널, 2024)에서 탈산업사회의 새로운 식민주의 모드로 빅테크 기업들에 의한 데이터 식민주의를 논한다. 유럽 열강에 의한 '역사적 식민주의'의 수탈 대상이 토지, 자원, 인력 등이고, 민족말살 같은 야만적인 식민지 폭력 형태를 보였다면, '데이터 식민주의'의 수탈 대상은 개인 정보와 데이터 등이고, 차별, 기회 박탈, AI와 알고리즘의 악의적 카테고리 분류 같은 상징적인 폭력 형태를 보인다. 저자들은 전작 《연결의 비용》(스탠포드대학출판부, 2019)에서 데이터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식민화하고 자본주의에 적용하는가를 논한 바 있다.

식민주의를 빼고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는 없다. 유럽 열강들의 식민주의 도구는 개척, 확장, 착취, 말살의 이른바 '4X모델'이었다. 역사적 식민주의의 시기별 주도 세력도 이 모델에 기반해 네 영역으로 나뉜다. 가령 개척의 달인인 스페인, 확장의 달인인 영국, 착취의 달인인 네덜란드, 그리고 말살의 달인인 프랑스와 미국이다. 현재의 데이터 식민주의 모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자들은 과거의 식민주의와 데이터 식민주의의 주요한 유사점을 다음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식민주의는 세계 자원(땅, 천연 자원, 노동력, 데이터)을 '그저 거기 있으니' 차지해도 된다고 취급해 강탈하는 데 기반을 둔다. 둘째, 식민지 강탈의 보다 큰 목적은 자원 수탈을 고착시킬 새로운 사회경제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셋째, 식민지 체계와 세계적인 자원 수탈은 국가와 기업의 공동 작업이다. 넷째, 식민주의는 늘 물리적인 환경에 악영향을 미쳤다. 다섯째, 식민주의는 늘 착취하는 특권층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다수의 대중 사이에 극심한 불평등을 일으켰다. 끝으로, 식민주의 약탈 행위는 늘 긍정적인 문명화의 논리와 교묘한 변명으로 위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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