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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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유배지, 감옥, 병원. 살벌한 이 네 곳에서 주옥 같은 글들이 터져 나온다. 생과 사의 경계를 대면한 이들이 남긴 글은 영혼의 깊은 샘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시공을 초월해, 누군가에게 따스한 위안을 건네기도 하고 삶의 이정표가 될 만한 찐한 울림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천연두가 창궐하고 기아와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이런저런 악조건 속에서 피어난 사유의 꽃이 『명상록』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밤마다 이런 내면 일기를 써가면서 평정심을 다스리고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처럼 말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나의 첫 번째 인생멘토다. 사색, 회의, 성찰, 대화 같은 철학의 벽돌을 쌓는 법을 아우렐리우스에게서 처음 배웠다. 세네카와 에픽테토스 같은 다른 유명한 스토아철학자들은 훨씬 나중에야 접할 수 있었다.『명상록』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한 후, 40년 동안 가까이 했으니 이젠 그가 오랜 벗처럼 느껴진다.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대학원생 시절,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힘들게 간병하며 그리스어 원전으로 된 『명상록』을 읽었다고 한다. 역시, 스토아철학이 애초에 역경과 시련에서 태어난 실천적 사유의 산물인 만큼, 언제나 지치고 난감한 이들에게 적절한 용기와 힘을 주는 것 같다. 이 책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위즈덤하우스, 2024)은 저자가 그리스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하고 추려낸 『명상록』의 소중한 글들과 감상이 담겨 있다. 지친 삶을 다독이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무너진 인생을 다시 일으킬 만한 용기를 주는 글을 찾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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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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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슬픈 노래는 거개가 러브 스토리다. 죄다 '이토록 슬픈 나의 사랑' 타령이다. 고독한 영혼의 마구 퍼주는 사랑, 고약한 영혼의 일방적인 사랑, 사악한 영혼의 짝사랑. 어쩌면 사랑의 가장 순수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짝사랑, 무조건적 사랑, 바보 같은 사랑, 미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미국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역작《슬픈 카페의 노래》(열림원, 2024)는 바로 그런 구슬픈 발라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를 우리 귓가에 들려준다.

소설은 등장인물의 개인적 차원에선 갑작스런 짝사랑을 비극적인 삼각구도(미스 어밀리어→사촌 라이먼→전남편 마빈 메이시)로 그려내고, 사회적 차원에선 미국 남부 가난한 백인 직공들의 신산한 삶을 음울하게 스케치한다.

우선 카페가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의 장소인지 묻게 된다. 카페는 한마디로 힐링장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바다를 비추는 고마운 등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치유의 카페다. 카페는 외로운 사람들, 울적하고 불행한 사람들, 기분이 엉망인 사람들이 찾아드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감미로운 술과 음식, 자잘한 수다와 얕은 친밀감, 카페 특유의 흥겨움과 우아한 분위기 덕분이다. 고된 일과를 마친 가난하고 나른한 백인 노동자들에게 '그럭저럭 살만한 인생'이라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안전지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카페는 여주인 미스 어밀리어에겐 '사랑의 시간'이었다. 카페의 존재가 바로 사랑의 증표인 셈이다. 경박스런 꼽추 라이먼 윌리스에 대한 그녀의 콩깍지 사랑이 무미건조한 생필품 가게를 우아한 카페로 변모시켰다. 카페 주인 미스 어밀리어는 숙녀나 미녀, 요녀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국가대표 럭비 선수처럼 육척 장신에 힘이 센 여장부 스타일이다. 장사 수완이 좋아 돈버는 재주가 있고, 사람들에게 인색하며 때때로 야비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을 약초로 치료해주는 선량한 면도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법한 그런 어밀리어가 자신의 친척을 사칭하는 사기꾼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어밀리어는 아기를 돌보는 엄마처럼 어쩌다 굴러온 이 천덕꾸러기를 지극정성 보살피고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꼽추 라이먼은 정작 어밀리어의 전남편이자 꽃미남 부랑아인 마빈 메이시에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후 껌딱지처럼 사생팬처럼 마빈 메이시 꽁무니만 쫓아다닌다. 그리고 미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 사이를 교활하게 이간질한다. 어밀리어는 눈엣가시인 마빈 메이시를 수차례 독살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의 정식 결투가 벌어진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바로 이 결투 장면이지 싶다. 꼽추의 비열한 개입으로, 어밀리어는 패하고 라이먼과 메이시는 카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도망친다. 카페 문이 닫히고 어밀리어의 기나긴 자기유폐가 시작된다. 슬픈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는 끔찍하고 비참했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도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50,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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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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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치적 갈등, 이념적 양극화, 극단주의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을 놓고서도 매우 정치적인 편향성을 띈 갈등이 잡초처럼 자라났다. 증언문학의 역작인《소년이 온다》(2014)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사건을 다루는데, 극우적 역사관을 지닌 일부 트롤팜이 노벨상 수상 작가의 역사 인식을 문제시하면서 불필요한 역사 논쟁, 케케묵은 색깔 논쟁을 선동질하고 있다. ​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갈등'과 '양극화'를 구분한다. 둘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기고, 갈등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가령 '갈등 관리' 방식)으로 양극화에 대응하려 한다. 안 된다. 말다툼이나 법정 소송 같은 갈등 상황은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불러일으킨 사람들이 명확히 나뉜다. 하지만 양극화 상황은 그런 문제소지자를 콕 집어내 요주의 관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양극화의 책임자와 핵심 주체가 누구인지 찾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데, 이게 이른바 '양극화 관리'의 걸림돌이다. ​ 양극화 현상은 그 자체로 역학과 원리가 있다. 양극화의 핵심은 '우리 vs.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보편적인 양극화 역학은 좌, 우, 중도 세 가지 다른 인식이나 입장을 형성해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우파와 좌파라는 극단적 입장 사이에서 긴장이 형성되며, 그 사이에는 중도라는 중립적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양극화 상황의 해소법은 중재 언어나 중재 행동을 통한 '중도를 지키는 법'이다. 여기엔 '버티기'와 같은 전략도 포함된다. 양극화는 항상 정체성이 서로 대립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고 그들은 그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발언은 양극화의 주요 원료다. 결국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직감과 신념은 대립을 강화하고 입장을 고착화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양극화 현상에 참여하는 역할 그룹은 다섯이다. 바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다. 주동자는 양극화를 확대하기 위해 중간에 있는 방관자 그룹을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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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 - 비루한 삶도 고귀한 삶도 부활한다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4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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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혁명을 일으키려면 실존철학을 곁에 두어야 한다. 나는 특히 '실존철학 삼총사'에 주목한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바로 그런 삼총사다. 셋 모두 우리 삶에 변화와 개혁을 불러올 자기성찰의 철학을 지향했다. 일반적으로 키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극복한 니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분류된다. 실존주의 삼총사의 철학은 오늘날 정신의학과 임상심리학과 결부된 '철학 치료' 계보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니체 철학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푸코의 계보학, 데리다의 해체주의, 들뢰즈의 존재론 등이 대표적이다.

철학자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에 능숙하다. 플라톤은 현실세계와 이데아(이상세계)를, 칸트는 현상세계와 물자체를, 쇼펜하우어는 표상의 세계와 의지의 세계를 구분했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려면 쇼펜하우어 철학에 대해서도 알아두어야 한다. 『니체 읽기의 혁명』(철수와영희, 2024)에서 저자 손석춘은 니체가 어떻게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수정하고 보완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가령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우주의 본질이 '맹목적 의지'이고, 사람의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미적 관조나 연민, 금욕을 제시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허무한 '시계추 인생'을 삶의 모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영원회귀 우주론'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저자는 '영원회귀 우주론'과 '힘에의 의지' 같은 핵심 개념에 기대어 니체 철학의 혁명적 읽기를 제안한다. 그간 니체 철학을 반민주주의나 귀족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편향된 해석이 있어왔는데, 저자는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니체를 비루한 삶을 극복하고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는 주권자 개인으로서 창조적 삶을 권유했던 실천 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니체는 위대한 명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허무주의, 모든 가치들의 전도, 운명애, 힘에의 의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초인(위버멘쉬, 극복인) 등 '삶의 건강성 회복'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소개한다. (나는 저자의 '극복인'보다 기존의 '초인'이라는 번역을 더 선호한다.)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초인 개념은 우리 삶에 질적 혁명을 불러 일으키는 삼대 원동력이다. 초인은 건강한 주체성과 창조적 삶과 밀접하게 결부된 자기실현 개념으로, 니체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미래의 창조적 인간 예술가-철학자를 뜻한다. 저자는 초인을 창조적 삶을 발명하는 주권적 개인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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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관찰 - 곤충학자이길 거부했던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 지음, 김숲 옮김, 장 앙리 파브르 서문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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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앙리 파브르는 위대한 과학자다.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예술가처럼 보고 시인처럼 느끼고 표현하는" 위대한 자연과학자였다. 파브르는 곤충과 식물, 버섯을 사랑한 철학자, 화가, 시인이었다. 가령 파브르는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과 교류했고, 세리냥의 '아르마스'(파브르의 집이자 연구실)에서 은둔하던 말년의 파브르는 "초자연적인 특징, 유기물의 복사 에너지, 인광, 빛, 위대한 보편적 에로스의 살아 숨 쉬는 상징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올리브 재배 지역 균류에 대한 700여개의 세밀화를 남겼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파브르를 두고 '견줄 데 없는 최고의 관찰자'라고 예찬한 바 있는데, 파브르의 문장은 서정적인 자연주의 문체와 생태학적 비유로 '초록색 시학'의 경지에 달했다.

훗날 늘상 '곤충학의 아버지'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고, 당대에도 "곤충의 베르길리우스", "들판의 무수히 많은 작은 생물의 언어를 아는 훌륭한 마술사"와 같은 칭호를 받았지만, 파브르는 곤충학자 이전에 스스로를 박물학자로 여겼다. 맞다, 파브르는 소박한 취향과 야생의 자유로운 공간과 전원생활의 풍경을 사랑한 천재 생물학자였다.

『파브르 식물기』와 『파브르 곤충기』는 '자연의 경전'이다. 3년마다 한 권씩 출간, 도합 열 권의 『파브르 곤충기』가 곤충학의 성경이라면, 단행본 『파브르 식물기』 는 자연과학의 전도서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브르 곤충기』가 어린 동심을 곤충의 기묘한 세계로 이끈 친절한 안내서 성격의 과학 고전이라면, "식물은 동물의 자매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파브르 식물기』는 녹색 생명을 사랑하는 자연과학 꿈나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형태학적 지식을 넓혀준 과학 양서가 아닐 수 없다.

지구 환경 위기와 기후 재난이 극심한 요즘이다. 150년 전 평생 초록색 자연과 교감하며 지낸 파브르의 세심한 기록과 다정한 조언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어야 할 때다. 이 책 『위대한 관찰』(휴머니스트, 2024)은 자연주의자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을 담은 평전이자 회고록이다. 파브르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명윤리, 과학탐구의 정신을 서정적인 문체로 잘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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