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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평점 :

내게 나눠 준 따뜻한 한마디와 그 말을 전달하기 위해 기꺼이 내준 몇 초 혹은 몇 분의 시간은. 선의를 베푸는 데는 대단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무심코 건넨 배려 섞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단비와 같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있어 누군가는 그날 하루, 혹은 더 긴 시간을 너끈히 버티기도 한다. (121)
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
작년 수상작인 『젊은 ADHD의 슬픔』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북 수상작들에 눈길이 갔다. 각기 다른 주제들 속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콜센터의 말』. 작년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책으로나마 이해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번 『콜센터의 말』은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 겹쳐져 공감이 많이 갈 것 같아 더욱 기대가 되었다.
나는 콜센터 상담원은 아니었지만, 카드 발급 업무나 협회 회원들에게 정보 수정 요청을 위해 전화 업무를 한 경험이 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카드를 신청한 혹은 협회 회원 이라는 특정한 사람들이라는 점이 다른 점이지만.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했던 일은 하면 할수록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런데 우습게도 콜센터에 들어온 뒤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숨 쉬듯 용서를 비는 인간이 되었다. 고객이 각양각색의 사연을 들고 마치 맡긴 물건을 찾는 양 사과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하자가 있었다면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고객의 착오에서 비롯된 문제이거나 전혀 미안할 만한 일이 아닐 때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심지어 목소리가 죄스러운 감정을 연기하는 능력까지 생겼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도망가기 바빴던 내가 죄송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기가 어디 쉬웠을까. (40)
이 문장에서, 나는 툭 치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예전의 경험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턱대고 소리치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왜 이 시간에 전화하냐고 따지는 사람들 등등. 물론 무난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 상처로 남아 오래갔다. 죄송할 것도 없지만, 의미없는 죄송합니다의 반복. 그보다 더 많은 평범하게 주고 받는 통화들. 무사히 한 통을 끝냈다는 안도감. 그러면서도 가끔씩 들려오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의 한 마디. 내 감정을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시간들.
작가님은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일본)에서 상담원으로 겪은 일들이라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읽으면서 나와 참 많이 대입하면서 읽어서 공감을 많이 했고, 더 폭넓은 경험의 글들은 나에게 위로의 손을 건네주었다.
당신의 말 한 조각을 드러다 보는 시간,
나의 말 한 조각을 들쳐보는 시간.
이 세상에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주려는 말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때로는 회상하는 일조차 버거웠던 기억을 모아 기어코 책 한 건을 완성한 것은, 단지 이 말이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196)
[민음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