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 낯선 세계를 건너는 초보자 응원 에세이
강이슬 지음 / 김영사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어떤 처음 앞에서 겁날 때마다 '나는 히어로다' 주문을 외요. 제가 히어로가 아닐 이유가 없거든요. 히어로란 본디 절망을 이겨내고 미래를 구하는 자를 일컫는 말이잖아요. 저는 제 앞에 닥친 막막함을 뛰어넘고 인류까지는 못 구해도 적어도 제 미래는 구할 거거든요. 그 과정에서 조금쯤 상처받고 다치고 번뇌하겠지만 고난이 있기에 히어로가 비로소 히어로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_242


사람은 죽기 전까지 몇 번이나 초보가 될까요?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은 <놀라운 토요일> <SNL 코리아>의 방송작가 강이슬의 운전, 수영, 책, 채식의 첫 순간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초반부터 웃겨서 책장이 안 넘어갔다. 첫 책의 에피소드부터 운전면허 수업의 순간들이 너무 재미있게 그려져있다.
처음은 정신없이 웃느라, 적응하고는 키득키득 거리며 읽어나갔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사이사이에는 일에 대한 진지한 듯한 그녀의 이야기도 함께 녹아있다.
내가 쓴다면 한 두 문장으로 끝날 것 같은 이야기가, 엄청나게 평범할 것 같은 이야기가 강이슬 작가님의 손을 거쳐서는 스펙타클하고,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방송작가라 그런가 글을 너무 맛깔나게 쓰시는 거 아닌가요?

읽으면서 나도 오래전 운전면허 따려고 학원을 다니던 모습, 첫 도로 주행하며 가슴 철렁이던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운전 면허를 따고 오랜 시간 장롱 면허로 있다 다시 운전을 시작하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제일 기억에 남는 강렬한 장면은,
제주의 한겨울 폭설로..... 운전하는 내내 눈물을 그렁이며 "아빠!"를 외치며 운전했던 그 날의 기억이다.
(엄마는 조수석에서 나와 함께 "아빠"를 외쳤다.)
공항가던 길이 어찌나 길고 멀게 느껴지던지, 중간에 빙판에 바퀴가 헛돌고, 눈발에 앞은 보이지 않고 스펙타클했다.

... 근데 아직 초보 운전이다. 새로운 길은 아직 두렵다. 
고속도로는 역시 무섭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ㅋㅋ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궁금함이랄지 후회보다는 '나랑은 맞지 않는 일이구나' 깨닫고 포기하는 쪽이 훨씬 명쾌하다는 걸 알았다. 후회를 안 하는 방법에는 '끝까지 잘하기'도 물론 있지만 '일단 해보고 미련 없이 포기하기'도 있었다. 나에게는 '포기'도 성과였다. 뭔가를 시도했으므로 얻어낸 결과인 것이다. 그만두는 일은 걱정했던 것만큼 두렵지 않았다. 포기나 실패일지언정 그거라도 하는 편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보람 있었다._106



이렇듯 운전 뿐 아니라 나의 초보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주르륵 스쳐지나가고, 점점 움츠러져가는 이 때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번뜩이는 문장을 만났다.
매번 하고 싶다는 말만, 점점 시도조차 해보지도 않고, 벌써부터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해서 포기를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두려워하며 이 핑계 저 핑계대며 외면했던 것을 조금은 시도해 볼 용기를 갖게 해준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해보고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도전인 것같다.
조금은 달리 생각해보게 하며, 아직 새해인 이 때, 희망과 용기를 복돋아주는 글을 만나 나의 다짐을 조금은 단단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많은 초보를 거쳐 지나왔고, 지금도 어떤 것에는 초보일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에 초보를 겪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낯섦' 앞에서 우리는 별수 없이 머뭇거리게 된다. 그것은 불투명한 장막처럼 진짜 세계를 가리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세계와 잘 모르는 세계를 가르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려면 크든 작든 용기가 필요하다. 배울 용기, 깨달을 용기, 바꿀 용기,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해보는 용기. 그러므로 낯섦은 반겨야 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낯섦이라는 건 뭔가를 처음 접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며 자신의 용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이므로. 그러니까 낯섦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아직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들떠도 괜찮지 않을까. _161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눈망울이 사랑을 담는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었으면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말을 두 눈 가득 담아 보여 주던 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_15 「산소통」

내일은 귀한 행복과 햇볕이 있겠죠? 내일은 오늘 심어 놓은 씨앗이 피어나는 일이겠죠. 세계가 저를 모른 척한 적은 있지만 저를 끝낸 적은 없으니까 그래도 지구는 둥그니까 걷다가 보면 제가 심은 꽃들이 피어나겠죠? 꽃들이 꼭 아는 척하면 좋겠어요. 제 손끝에서 피어난 거라고 꼭 아는 척해줬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엄마 제가 벌써 서른을 넘었어요. _51 「엄마 지구는 둥글잖아요」​


어쩌다보니 연속적으로 시인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세 명의 시인들의 각기 다른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다. 
이번엔 『6』, 『아네모네』의 성동혁 시인의 첫 산문집인 『뉘앙스』를 펼쳐보았다.

왠지 상상하던 느낌이 있었다. 시인이 일기를 쓴다면 이런 느낌일것 같다고 생각했다. 『뉘앙스』가 그렇다. 
짧은 글들은 시 같았고, 시보다는 편하게, 시같은 의미들이 녹아져 있다.
책의 판형은 작은 편이지만, 이 작은 책에 묻어난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릿느릿 읽힌다. 
시인의 스쳐 지나간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들로 인해 일상 속 소중함을 많이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새벽이 되면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긴 안부는 잠을 깨우고 생활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안부 없이도 또박또박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 많이 온다. 창을 열면 눈이 발등까지 떨어진다. 하늘이 온통 안부 같다. _17  「눈」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정말 예쁘게 내렸고
우주 같았고
중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천천히 별이 내리는 거 같았고
별이 내게까지 떨어져 슬프지는 않았고
하지만 눈물이 날 거 같은 기분이었고
(...)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고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주 헤픈 사람이 되고 싶고
(...)
안부가 돌아오지 않아도 다음 주말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고 _25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어제는 이 글이 생각났다.
어제는 눈이 펑펑 내렸고, 창가에 서서 펑펑 내리는 눈을 아득히 바라보며, 눈이 나에게 건네는 안부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시인과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건네는 진심에, 다정에, 사랑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들과의 소중했던 시간들을 머금어보는 저녁이다. ​

시인의 투명한 아픔이, 시인의 진심이, 시인이 건네는 따스한 다정이 나에게 와 잔뜩 묻어난다.
시인의 시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는데, ​『아네모네』의 검은 파도를 머리맡에 두고, 그 파도가 나의 꿈을 잔잔하게 해 주길, 헤엄쳐 나갈 수 있게 하기를 바라며 읽어보고 싶어진다. 
나의 건강을 비는 시인에게, 나도 성동혁 시인의 건강을 빈다. 진심으로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요.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정적 속에서 사뿐하게 상대를 이해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를 감싼 모든 것이 그의 언어임을 알고 풍경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
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뉘앙스, 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말.
당신이 쓰고 내가 읽는 마음. 뉘앙스. _67​

[수오서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불투명 인간이다. 불투명한 우리는 말을 통해 겨우 투명해진다. _7

내 말과 당신의 말이 만날 때, 우리의 말은 섞일 것이다. _313

나는 말을 만져보고 핥아보는 행위에 진심이다. 깨물어보고 터뜨려보는 과정이 짜릿하다. 천 개의 말에는 천 개의 맛이 있고, 천 개의 식감이 있고, 천 개의 향기가 있으니까. 감사하게도 나는 언제든 말을 맛볼 수 있다. 입술을 열고 목울대를 울리는 사소한 노력으로. _183 (맛보는 말)​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일상 속 언어들을 고르고 고른 말.

책 속의 통통 튀는 문장들, 따스함 가득 담긴 문장들, 마음에 품고 싶은 문장들, 위로·위안의 문장들, 깨달음의 문장들이 너무나 한가득 들어있다.

언어를 다루는 분이라 그런지 표현이 감각적이다. 그 언어가 억지로 꾸며내는 듯한 문장이 아니고, 편안하면서도 가슴을 다독여주는 문장들이라 읽으면서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특히 단어에 대한 느낌들이 좋았다. 작가님이 단어들을 관찰하며, 의미를 돌아보며, 단어의 이미지를 보는 시각을 확장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르고 고른 수많은 말들 속 나에게 다가온 말들이 너무나 한가득이라, 남기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도 많다. 

(+)
(격려의 말) 아직 멀었다는데 편의 '운동이 싫다. 자고로 육체는 고즈넉이 두는 것이 미덕이다. 수평적 삶을 추구해서 주로 누워 있다. (p.132)'의 문장이 너무나 공감이 가지만, 점점 체력과 몸이 삐그덕 거리는걸 느껴 운동의 필요성은 몇 년 전부터 느끼긴 했지만, 올해는 정말 실천을 할 때인 것 같다........ 과연..?


모든 사람은 본인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는 복잡한 층위의 인간이고, 단편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쾌활하면서도 외로울 수 있고, 조용하면서도 격정적일 수 있고, 평범하면서도 기발할 수 있다. 그뿐인가. 나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할 수많은 서사가 엉켜 있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내가 살아온 방식, 감춰온 상처,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 도식이 숨어 있다. 나는 다차원의 부산물이고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존재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그 고차원의 존재가 명랑, 행복, 대범 같은 단어 한두개로 규정될 리 만무하다. 
(...) 하지만 나만이 입체가 아니다. 내 옆자리 동료도 입체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입체고, 평평한 화면 속 인물도 모두 입체다. 그의 안에는 나만큼 복합적인 인격이 존재하고, 풍부한 서사가 존재하고, 어제와 다른 오늘이 존재한다. 해사하게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 고통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고, 씩씩하게 버티는 듯 보이지만 쓰러지기 직전일 수 있고, 매일 한결같아 보이지만 끊임없이 일렁일 수 있다.
당신이 그렇듯, 바로 내가 그렇듯 말이다. _146 (깨닫는 말)​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꼬치의 기쁨
남유하 저자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퍼플레인의 기대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았다! 
『양꼬치의 기쁨』 속 10편의 목차 중에 제일 기대가 되는 작품을 골라 기대평을 남기는 이벤트였다.

「닫혀 있는 방」, 「초신당」, ​「양꼬치의 기쁨」, 
「뒤로 가는 사람들」, 「상실형」, 「초대받은 손」, 「흉터」, 
「기억의 꿈」, 「내 이름은 제니」, 「두 시간 후, 지구 멸망」​

나는 제목만 봤을 땐, 10편 중 「닫혀 있는 방」을 선택했다. '방'이라는 공간은 매일 있는 공간이라 왠지 현실과 맞닿아 공포감을 줄 것 같아서 선택했다. 

​공포영화도 잘 안 보는데, 공포호러 소설이라니...
나에게 새로운 장르의 도전이었다.
첫 공포호러 소설이기도 하고 내가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펼쳐보았다. 하지만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가 더 궁금했나보다.

책 표지부터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일상 속 틈새의 두려움과 공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현실에 있을법한 다양한 갈등에 잔인함 혹은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해 공포감을 준다.
각 편마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나 기이한 분위기가 넘쳐난다. 
오히려 장편이었으면 흐름이 길어지고, 긴장감이 오래가 읽기에 내 심장이 힘들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잔인하고, 비위가 약하면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을 수도. 만약 영상으로 나온다면 난 영상으로는 못 볼 것 같다. 무서워!
잠 못잘까 나름 상상력을 제한하며 읽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듀나 소설가와 박현주 소설가의 추천사 중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와 "그 공포에는 슬픔이 배어 있지만, 승리감도 함께한다."는 문장에 나도 깊이 공감했다.

그로테스크한 카타르시스가 느끼고 싶다면, 『양꼬치의 기쁨』을 읽어보시길!

책을 다 읽고 나면 책 표지도, 작가님의 사인도 달리 보이게 된다. ​

제일 긴장감 넘치고 소름이 많이 돋았던 편은 「초신당」
분위기부터 심상찮고, 특히나 '머리카락'으로 소름주기 있기?! 읽으면서 소름돋고, 괜히 간질거리고, 나도 모르게 내 머리카락 만지작거린다.... 뿐만 아니라 끔찍한 장면들의 향연...

인상깊었던 소재는 「상실형」
상실형은 살인이나 강간, 방화 등 중죄를 저지른 피고에게 신체 일부를 '상실'하는 형벌로, 어느 부위를 상실할 지 모르며 끌려들어갔다 나오는데 속이 시원해지면서도 긴장감이 크흐!

표제작 「양꼬치의 기쁨」의 잔인함 속의 블랙 유머의 문장으로 리뷰를 마친다. ​


[퍼플레인 기대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정수리에 콱 박힐 줄 알았던 칼날은 남편이라는 해골이라는 단단한 장벽을 넘지 못하고 뚝 부러져 나갔다. 헨켈을 샀어야 해. 아내는 칼 손잡이를 쥔 채 마트에서 행사하는 중국제 칼을 산 걸 후회했다. -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혼은 애초에 2호 상자였거나 어쩌면 1호 상자로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크기였는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오빠가 "그럼 옛날엔 과대 포장이었던 거네?"라고 했고, 언니는 "그렇지, 다른 상자에 담았어야 했던 걸 굳이 결혼 상자에 담은 거지. 자리가 남으니까."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들을 굳이 결혼이라는 상자 안에, 거기 남아도는 공간에 넣은 거란 얘기였다. _94​


AS안심결혼보험.
지속가능한 결혼을 위한 지침서(보험 약관집)
결혼과 보험의 생각지 못한 조합. 
고독 항목, 지구공감특약, 사은품으로 주는 로봇청소기의 녹음기능까지.
읽다보면 정말 이런 보험이 있는 것 혹은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내 취향의 책은 아닌데, 묘하게 계속 술술 넘어간다. 아니, 취향인건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을 사회적 문제와 결합하여 풀어내는 느낌인데, 부담스럽지 않게 끌고 가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문장들이 울림이 있고, 첫 장의 시작점과 마지막 장이 참 좋았다. 

작품 해설에 「도서관 런웨이」 뿐 아니라 윤고은 작가님의 여러 책들과 연계해 설명한 해설에 윤고은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나도 느껴보고 싶어진다. 어서 윤고은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그렇다면" 하고 안나는 말했다.
"나는 살아야겠네, 더 열심히."

어느 밤의 도로에서 정우가 해준 말 위를 이제 안나는 흘러간다. 그 말은 겨우 한 문장 정도였지만 자꾸 불어나고 불어나 안나를 든든하게 채운다. 삶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알아. 먹구름에 가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도 생기고, 애써 준비한 마음이 오해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생기겠고, 삶의 타이밍이 늘 한 발 늦을 수 있고, 내 경우엔 미련도 품을 수 없을 만큼 열 발쯤 늦을 때가 많고. 시간 낭비 같은 산책도 많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일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아. 잔열이, 그 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_2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