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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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신의 눈망울이 사랑을 담는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었으면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말을 두 눈 가득 담아 보여 주던 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_15 「산소통」

내일은 귀한 행복과 햇볕이 있겠죠? 내일은 오늘 심어 놓은 씨앗이 피어나는 일이겠죠. 세계가 저를 모른 척한 적은 있지만 저를 끝낸 적은 없으니까 그래도 지구는 둥그니까 걷다가 보면 제가 심은 꽃들이 피어나겠죠? 꽃들이 꼭 아는 척하면 좋겠어요. 제 손끝에서 피어난 거라고 꼭 아는 척해줬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엄마 제가 벌써 서른을 넘었어요. _51 「엄마 지구는 둥글잖아요」​


어쩌다보니 연속적으로 시인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세 명의 시인들의 각기 다른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다. 
이번엔 『6』, 『아네모네』의 성동혁 시인의 첫 산문집인 『뉘앙스』를 펼쳐보았다.

왠지 상상하던 느낌이 있었다. 시인이 일기를 쓴다면 이런 느낌일것 같다고 생각했다. 『뉘앙스』가 그렇다. 
짧은 글들은 시 같았고, 시보다는 편하게, 시같은 의미들이 녹아져 있다.
책의 판형은 작은 편이지만, 이 작은 책에 묻어난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릿느릿 읽힌다. 
시인의 스쳐 지나간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들로 인해 일상 속 소중함을 많이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새벽이 되면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긴 안부는 잠을 깨우고 생활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안부 없이도 또박또박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 많이 온다. 창을 열면 눈이 발등까지 떨어진다. 하늘이 온통 안부 같다. _17  「눈」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정말 예쁘게 내렸고
우주 같았고
중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천천히 별이 내리는 거 같았고
별이 내게까지 떨어져 슬프지는 않았고
하지만 눈물이 날 거 같은 기분이었고
(...)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고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주 헤픈 사람이 되고 싶고
(...)
안부가 돌아오지 않아도 다음 주말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고 _25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어제는 이 글이 생각났다.
어제는 눈이 펑펑 내렸고, 창가에 서서 펑펑 내리는 눈을 아득히 바라보며, 눈이 나에게 건네는 안부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시인과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건네는 진심에, 다정에, 사랑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들과의 소중했던 시간들을 머금어보는 저녁이다. ​

시인의 투명한 아픔이, 시인의 진심이, 시인이 건네는 따스한 다정이 나에게 와 잔뜩 묻어난다.
시인의 시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는데, ​『아네모네』의 검은 파도를 머리맡에 두고, 그 파도가 나의 꿈을 잔잔하게 해 주길, 헤엄쳐 나갈 수 있게 하기를 바라며 읽어보고 싶어진다. 
나의 건강을 비는 시인에게, 나도 성동혁 시인의 건강을 빈다. 진심으로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요.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정적 속에서 사뿐하게 상대를 이해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를 감싼 모든 것이 그의 언어임을 알고 풍경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
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뉘앙스, 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말.
당신이 쓰고 내가 읽는 마음. 뉘앙스. _67​

[수오서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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