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정지음 지음 / 빅피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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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ADHD의 슬픔』의 정지음 작가님의 새로운 에세이.

전작이 전체적으로 작가님 특유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해서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다 뼈 때리는 문장에 중간 중간 멈칫하기도 했는데,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이 책도 마찬가지다.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은, 그 감정과 관계들에 대해 전작에서 느꼈듯이 작가님의 솔직하고 유쾌한 감성으로 풀어낸 책이다. 
가족부터 시작해 친구, 연인, 동료, 이웃들의 가까운 남에 대해 기록하고 싶었는데, 쓰면 쓸수록 '가장 가까운 남'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는 작가님.

때로는 나와 나의 거리가 타인과의 그것보다 훨씬 멀었다. 나는 나의 고향이자 타향이었고, 모국이자 외국이었으며, 그 어딘가의 경유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삶이란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현재는 집 밖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여행일지도 몰랐다. _6


여러 에피소드의 여러 관계 속에서 작가님이 직접 겪고 상처받으며 얻은 깨달음들이 담겨있다. 
유쾌한 와중에 슬픔이 느껴졌고, 글이 잘 읽히다가도 느리게 다시 한 번 곱씹어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키득거리며 웃다가도 진지해지면서 작가님의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찰떡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비유를 하는데, 작가님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읽으며 첫 직장의 기억들이 많이 쏟아져 많은 공감을 했고, 결정적인 정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힌트를 주며 생각하는 관계 속에서 작가님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며 위안을 받았다. 
자기 자신을 대면하며 노력하는 작가님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결국 가장 가까운 남인 나를 살피게 만들어 준다. 

어차피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미쳐있으니까!​​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 출간 준비 중이라 써있어 작가님의 유쾌하며 반짝이는 문장들이 소설 속에는 어떻게 녹아져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알지 못하니 가질 수도 없다. '나'와 '너', '우리'의 경계에서 빈손으로 헤맬 뿐이다. 이것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끝없는 가능성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의 빈손은 잠시 악수를 나누는 동안 충만해진다고, 두 손바닥의 냉기가 맞닿아 온기가 되는 거라고 믿는다. _8

실제로 나는 충고를 박살내는 식으로 세상을 배워갔다. 훌륭한 길보다는 직접 발굴한 진흙길로 걸으며 내가 되었고. 그런 식으로 특이하다 나답게 시시해지길 반복했다. 위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너무 많지만, 내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내가 되길 원하지 않을수록 나는 더 고유한 존재가 되었다. _18​

사랑이든 미움이든, 끓는 감정에는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었다. 사랑이었다가 미움으로 둔갑한 마음이라면 더욱 그랬다. 두고 본 후에도 끓고 있다면 그때 온도를 확정해도 늦지 않았다. 그제야 '시간의 힘' 옆에 '빌린다'라는 동사가 따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간은 내 것도 내편도 아니지만, 언제나 나보다 힘이 셌다. 그리고 너그러웠다. 내가 빌리고자 한다면 이자를 붙이지 않고 여유를 내어줄 것이었다. _31​


[빅피시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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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염장이 - 대한민국 장례명장이 어루만진 삶의 끝과 시작
유재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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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파가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받아줬다면, 염사는 한 인생을 갈무리하여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인생사에 꼭 필요한 일이다. _178


대한민국 장례명장이 어루만진 삶의 끝과 시작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보내주는 장례지도사 유재철 저자의 이야기.

36살 장례지도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30여 년간 무연고자부터 대통령까지, 이주노동자부터 재벌 총수까지 장례를 이끌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들어있다.
그 속엔 장례지도사의 직업에 대한 소개부터 장례지도사가 가져야 하는 태도, 마음가짐, 나아가 진정한 장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당시 염장이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던 시작부터 우리나라 장례 문화,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을 확인해볼 수 있다. 

직업으로 마음먹음과 동시에 전국을 돌며 공부하고 배우는 모습부터 잘못된 장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과 고인을 대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고인의 손, 발, 눈, 코, 입과 귀, 그리고 얼굴로 보는 그들이 삶에 남기고 간 질문들.
그 주변에 있었던 진심을 담은 염습 봉사자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함.
진정한 장례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모습 등.​
읽으면서 유재철 명장의 장례지도사로서의 사명감이 느껴졌고, 나에게 죽음과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책을 덮으며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책 속엔 유서가 아닌 살 날이 많을 때, 건강할 때 자신의 죽음을 들여다보는 '엔딩 노트'를 권하고 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며 어떻게 잘 살 것인지,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나의 마지막의 모습을 생각해보며 나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가져보는건 어떨까?


누군들 자신 있게 자신의 인생이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완성을 향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게 우리 인생이다. 엔딩노트가 인생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준다. 자기 삶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하는 것만큼 잘 산 인생이 있을까? 이제는 나의 엔딩노트를 쓸 시간이다. 고치고 또 고치더라도 정신 말짱할 때, 사지 건강할 때, 나의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보길 바란다. 다음 해에, 아니면 몇 년 후에 보고 다시 작성할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_246​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는데,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산다. 죽지 전에는 후회할 일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_249

'죽음'은 살아 있을 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주제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떻길 바라는지, 죽음 직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지 지금 당장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_260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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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시선 469
최백규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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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구절, 마음에 다가온 시를 이 노트, 저 노트에 옮겨 적어본다.

과거로의 쓸쓸하고 그리움이 가득했던 추억들이.
긴 장마의 끝에 사춘기(아픔)를 통과하며, 한 계절이 지나간 듯하다.
시리도록 흰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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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음은 장마에 가깝다
「여름의 먼 곳」 중,


비를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미래를 

사랑이라 믿는다
「숲」 중,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중,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지구 6번째 신 대멸종」 중,


빛은 그늘에서도 죽지 않고 자라는구나   _「시인의 말」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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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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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도 크기가 있을까? 행복에 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크고 무거운 행복이 아니라 작고 가벼워서 어디든 들고 갈 수 있고, 언제든 버릴 수 있고,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행복. 시시한 생각이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방바닥에 누운 채 생각에 생각을 잇다보면 '이거 꽤 행복한걸' 하고 어깨를 으쓱하게 되기도 한다. 행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이르노니. 엄청 근엄하게 말한다면, 그런 주제를 담은 무수한 글들처럼 듣는 사람의 맥이 탁 빠지겠지? 하지만 맥 빠지는 행복도, 있을 수 있는 행복. _90


시인 김현이 전하는 담백하며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 시인의 감수성이 녹아져있다.
문장 하나 하나에 담긴 진심.
꾹꾹 진심을 눌러담은 문장들.
한 문장 한 문장 느긋하게 읽히며, 천천히 마음에 스며든다.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꼬집어주며, 나의 생각을 확장시켜준다.
계절의 동사를 생각해보며, 행복이 무엇인지, 어른이란,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
"사랑, 하죠."
이 책은 사랑을 말하고, 표현하고, 전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어른은 이미 지나간 시간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지기도 한다. 그게 어른의 일 중 가장 어른다운 일. _139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삶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일임이 분명하다. _142

어릴 때는 알지 못했으나 어른이란 어디서든 울음을 터뜨릴 줄 아는 이라는 걸 커가며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이란 어디서든 웃음을 터뜨릴 줄 아는 이라는 걸 어릴 때는 알지 못했다는 걸 깨쳤다. _145​

어른은 타인의 얼굴에서 시간을, 시간에 힘입어온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_149​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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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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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죄도 없는 여자애가 그곳에 죽어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멋진 장래와 느닷없이 단절된 채, 그 자리에 죽어 있었다. _301


유키코는 문화센터에 간다며 딸 나오코를 언니 사토코에게 맡긴다.
집에는 치매걸린 시아버지와 나오코만 둔 채, 사토코는 자신의 딸 가요와 잠시 집을 비운다.
가요의 치과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오코가 사라졌다.
사라진 나오코는 집 안마당 능소화 나무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꽃송이 아래에서 발견된 4살 아이의 시체.
평범한 가정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진실과 거짓 사이 각자의 속마음이 하나씩 밝혀지며 나오는 섬뜩한 진실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중간에 범인이 밝혀지는 듯 하지만, 역시 쉽게 범인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속마음을 고백하며 진행되는데,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계속 범인이 바뀐다. 
화살표들이 제각기 엇갈려가는 느낌이 들면서, 역시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어른들의 숨겨진 비밀들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드러난 진실 속에서 씁쓸해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범인이 밝혀지며, 마지막까지 숨 막히며 봤다.
책을 덮어서도 한 여름 찐득찐득한 기분이 이어지며, 아이의 죽음에 다시금 마음이 묵직해진다. 

이 모든 건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소설 『백광』은 반전이 백미인 추리 소설인 만큼 지금 출판사 공식계정에서 "범인 정체에 놀라지 않았다면 전액 환불해드립니다" 환불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벤트 내용은 인스타그램 @studioodr 에서 확인해주세요.​​*


아직 재료가 고갈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과거뿐이다. 만세 소리와 아내의 미소로 배웅을 받으며 죽음의 길을 떠났던 전쟁 통의 그날 밤, 그리고 천신만고의 항해 끝에 도착한 남태평양의 섬, 허연 불꽃어럼 작열하는 태양 빛이 내리쬐는, 새파란 바다에 둥실 떠오른 듯한 원색의 섬. 그 두 가지는 몇 번을 떠올려도 처음과 똑같이 선명하게 내 머리와 몸을 온통 점령한다. 전쟁 끝난 뒤의 지난 몇십 년 동안의 내 인생은 그 두 가지 과거를 떠올리는 것뿐이었으니까. _14


[스튜디오 오드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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