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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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마법같은 단어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고, 그럼에도 살아 있다. _420​


베를린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도라.
코로나로 재택 근무가 시행되고, 파트너 로베르트와 집에서 계속 부딪치게 된다. 
점점 로베르트와의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고, 봉쇄령이 시행되기 전 도망치듯 마침 구입해둔 브라켄 시골집으로 반려견과 함께 떠난다.
브라켄 마을의 옆집 이웃 나치주의자라는 고테와의 만남 뿐아니라 하나같이 개성있는 이웃들.
전원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매일 땅을 삽으로 파고 파고 파는 일상. 
과연 도라는 브라켄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게 될까?


도시와 시골.
항상 바쁘게 살던 도시와는 다른 시골에서의 육체적인 노동의 반복적인 일상.
전원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고, 아무것도 없던 집에 물건이 하나 둘 씩 채워지고 음악으로 채워지고 페인트를 칠하며 점점 집의 모습으로 변하는 그 과정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도시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고독감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도라가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의 반복적인 일상들, 반려견과의 산책 시간, 고테의 딸 프란치와의 일상 등.
코로나로 단절된 도시 생활과는 달리 브라켄의 마을에선 코로나가 오지 않은 듯 도라의 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브라켄 마을에 점점 동화해가는 도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에 대하여』를 읽으며 타인과의 연대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개성있는 이웃들이 한때 유치원이었던 공간인 도라의 집에 모여들고, 도라를 살피고 보살펴주려는 행동들이 타인과의 연결과 소통에 위로받으며 따스함의 연대의 힘을 느꼈다.

도라는 로베르트가 자신에게 우월감을 느끼며 자신을 굴복시키려 하는 모습이 싫어 떠났음에도, 고테와 다른 이웃들에게 로베르트같은 우월감을 느낀다.
이 모순된 행동에 자신의 편협한 시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같다. 
도라는 정말 매치될 가능성이 없던 고테와도 결국은 좋은 감정으로 지내게 되었으니, 이제는 어떠한 만남이 와도 포용력이 생기지 않을까?​
고테로 인해, 브라켄 마을로 인해 도라의 작은 세계가 점차 확장된다.

책을 덮고 잔상이 남은 장면은,
화분을 놓아주는 고테.
오래 전 숨겨두었던 장난감을 도라에게 건네주는 고테.
딸과 도라의 얼굴에 페인트를 묻이려고 달려드는 고테.
도라와 프란치와 함께 식사하던 모습의 고테.
담장 너머 조각하는 모습의 고테.​
무엇보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도라는 의자 위에, 고테는 상자 위에 올라서며, 둘이 함께 담배를 피는 일상의 모습.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모습이 오히려 가슴에 남는 것같다. 
도라가 이사오기 전까지 고테가 도라의 집을 살피고 돌봤듯, 이젠 도라가 고테의 집을 살피고 돌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인간의 뇌는 공포의 조건에 익숙해지고, 그 공포를 사고와 통합하여 흔적을 지운다. 인간은 공포에 시달리지 않고 공포를 실천하고, 인간은 고통 없이 공포의 이면에 녹아들 때까지 변화된 상황에 적응해나간다. 이런 메커니즘으로 인해 세상에 끔찍한 일이 끊이지 않고 반복해서 일어난다. 이에 막을 방법은 단 하나다. 맞서 싸워야 하는 건 악이 아니라 인간의 비겁함이다. _216


그것의 본질은 삶이란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끝날 때까지 습관적으로 지속될 뿐이라는 거다. 계속된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유일한 해법이고 엄청난 운명에 순응하는 유일한 기회인 거다. _482


그는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어느 순간 도라는 그와 원래 있던 자리에 남는 게 의미있다는 걸 깨달았다. 공유가 가능하다. 고테의 존재가 도라에게 전달됐고, 그는 자신의 존재를 그녀와 공유했다. 결국 두 사람은 그들 사이를 가르는 담장으로 연결되어 공존했던 거다. _498​



[에세 서포터즈 활동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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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시선 472
최지인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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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일이 감당할 수 있는 일보다 많아서​
끝나지 않을 ​되풀이되는 서사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우리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나만 괜찮으면 정말 괜찮은 걸까​
세상이 우릴 집어삼키더라도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끝끝내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그런 믿음으로​​
우수한 여백과 무수한 여백
이 밤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구를 모아 섞어 표현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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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슬퍼지지 않는 것 따위는 삶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고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데
손끝이 닿았다
다음 생은 엉망으로 살고 싶어, 마음껏 엉엉 울고 그 누구도 되지 않는, 그럼 아쉬워도 태어나지 않겠지, 나뭇가지에 옷을 걸어두고 이제 여름으로, 여름으로


「섬」 중,


----------------------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

이것은 모두 이번 여름의 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과 얼마나 멀어진 걸까

폭우가 계속되는 계절


「이번 여름의 일」 중,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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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가능성 -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낯선 만남들에 대하여
윌 버킹엄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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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가지 문제, 즉 낯선 이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문제와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고립을 넘어서서 더욱 확장되고 타인을 환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낯선 이가 가져다주는 가능성에 더욱 마음을 터놓을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다시 연결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_20​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낯선 만남들에 대하여


저자는 아내의 죽음으로 상실을 겪는다. 아내가 떠나고 며칠 뒤 시내에서 유방암 연구 기금을 모으는 여자의 질문에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그분의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답을 하며, 그녀가 안아드려야겠다며 두 팔로 그를 꽉 안아준다. 그는 낯선 사람이 주는 위로의 포옹에 감정이 압도된다.
아내와 함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아내가 죽기 전 '다 정리되면 떠나야 해'했던 말을 실천하며 상실의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결이 필요했다는 저자의 울림이 느껴졌다.



그건 도피가 아니었다. 세상 속에 파묻혀 슬픔을 묻어버리거나 기억을 잊으려는 욕구가 아니었다. 그건 모든 기준이 전과 달라지고 낯설어진 상황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욕구였다. (...) 나는 내게서 도피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나를 다시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었고, 삶이 어떤 의미를 띨 수 있을지 다시 상상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_192​


우리는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는 동시에 호기심도 갖고 있다.
또한 낯선 공간에서 이방인이 되는 불안함과 자유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것을 인류학적 관점과 사회학적 관점의 시선으로 저자 본인의 경험과 함께 풀어 설명하고 있다. 

혼자가 된 집의 남는 방에 낯선 이를 받아들이며 활기를 채워나가고, 양곤이라는 낯선 곳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떠나 자신을 다시 형성하는 저자. 

읽으면서 나도 낯선 이들에게 받은 환대나 배려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낯선 이에게 받은 배려들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익숙했던 공간에서 받은 배려와 여행지에서의 이방인으로서 받은 배려는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랐던 것같다.
우선 여행지라는 낯선 공간에서는 경계심 가득했던 내 모습과 함께 낯선 이들에게 받은 배려나 환대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같다.

요즘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둔해진 내 모습이 보인다.
오히려 이럴수록 낯섦이 주는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만남으로 나의 확장될 세계를 위한 한 걸음이 필요한 때인것 같다. 균형감을 놓지 않으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방인이 친구가 되지 않을 때도 환대는 깊고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다. 환대가 가장 크게 탈바꿈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가장 큰 두려움이 실현되지 않은 모든 만남과 모든 출발에서 세계와 그 안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확장된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더 쉽게 넘을 수 있게 된다. _163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며 낯섦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 속에서 내가 전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어쩌면 새로워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_214​


[어크로스 A.B.C 활동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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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 무삭제 각본집
이용재 지음 / 너와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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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이 배우와 스태프가 각본을 해석한 결과를 시청하는 행위라면, 각본을 읽는 것은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독자 나름대로 풀어내어 재구성하는 일이다. 따라서 각본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연스레 배우나 감독 노릇을 하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_5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무삭제 각본집

신분을 감춘 채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학성과 수학을 포기한 학생 지우를 만나 그리는 감동 드라마.
지우는 학성에게 수학을 배우며,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걸 깨달아가고, 학성 또한 지우를 통해 변화를 겪게 되는데...


영화를 보기 전 각본을 읽는 경험은 처음이라 왜인지 신기했다. 이렇게 각본을 읽으며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되고 담겨졌을지가 너무 궁금해진다.

놀라웠던 점은 영화에 담기지 않은 장면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고, 영화와 다른 장면들도 있다는 점이었다. 
작가가 쓴 각본대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없다는 작가의 말이 새삼 느껴졌다.
아마 딸봉 역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을 때 뭔가 중요한 키를 들고 있는 역이라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 벌써 아쉬웠다.
영화에 담기지 않았어도 어떻게 잘 풀어냈을지, 각본집과 영화와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하며 느껴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줄 것 같다.

특히 명대사가 울려퍼질 때와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배우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장면들도 많아 나의 상상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영상을 즐길 수 있을 것같아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뒤에 실려있는 초고와 완성된 각본과 캐릭터나 배경부터 완전 달라 놀라웠다.
초고에서 각본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얼마나 여러번 고치고 생각을 거쳤을지, 작은 아이디어가 큰 나무가 되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얼마나 어려움이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배경을 만들어 나가고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스토리보드 모습을 보며 작가가 고민했던 흔적 또한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조차 작가 지망생들에겐 충분히 도움이 되고 공부가 될 것 같다.

수학과 인생을 연결해서, 수학으로만 바라보지 않아도, 인생으로 대입해서 봐도 충분히 느껴진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놓여져 있을까.
수학적 용기를 가지며 정답을 찾아가는 이 과정을 좀 더 즐기며 증명해보는 건 어떨까.

Q.E.D



맞히는 데만 욕심을 내니까 눈이 먼 거다. 답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질문이 뭔지 아는 거다. 왜냐하면! 틀린 질문에서 옳은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디. 그러므로!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게 수학이야. 알갔니? _53​


학성 : 수학 문제 보라우. 답은 하난데, 푸는 방법은 많디? 피타고라스 정리만 해도 증명법이 스무 개가 넘디 않니. 잘 알려진 것만 그래. 누구나 자기 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거디.
지우 : 그치만 인생엔 정답이 없잖아?
학성 : 으응. 아니디. 인생엔 정답이 있다. 다만 그 정답까지 가는 방법이 제각각인 거디. 
(...)
학성 : 풀다가 실수하기도 하고, 때론 돌아가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든 언젠가 정답을 얻는 거디. _188​ (초고)


[너와숲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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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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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느낌의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후덥지근한 한 여름. 
백일홍.
청색 방.
뚜렷한 계절감과 색채감. 하지만 몽롱한.

히사코의 분위기는 신비로우면서도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소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안개 속에 걷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과 함께 점점 더 모호해진다.

끝나도 뭔가 오묘한듯 확실한 답을 해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건가 하는 의문과 함께 여러 의문에 대한 잔상이 남는다.
일반 추리 미스터리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라 신선했지만, 뭔가 끊임없이 맴도는 느낌에 어질어질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새하얀 꽃이 잔뜩 피어 있었어요. 백일홍 꽃. 압도당할 것처럼 하얗더군요. 이렇게 꽃을 많이 피우는구나 싶을 정도로, 나무가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탐스럽게 피어 있었죠. 어쩐지 오싹했어요.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했어요. 실제로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때 느낀 그 한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군요. _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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