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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퍼플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7
앨리스 워커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우리가 보라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가 날걸."
하느님에게 보내는 셀리의 편지 형식으로 시작한다.
첫 번째 편지, 14살 셀리는 아버지한테 강간을 당한다.
첫 페이지부터 뒷 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뒷 장을 넘기니,
두 번째 편지, 강간으로 태어난 두 명의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나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다시 한참동안 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았다.
세 번째 편지, 이제는 동생인 네티를 눈독들이고 있는 아버지.
네 번째 편지, 엄마가 죽은 후 새로운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온 아버지.
살림과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네티와 결혼하고 싶은 OO씨,
네티는 어리다며 셀리를 데리고 가라는 아버지,
OO씨에게 팔려가듯 결혼하고, 그의 큰아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다치는 셀리,
아버지의 폭력에서 이제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셀리.
첫 페이지부터 뒷 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지만, 속도감있는 전개와 중간중간 들어있는 반전들로 멈출 수 없었고, 무엇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셀리의 모습이 보고싶어 쉽게 덮을 수 없었다.
인종차별 뿐아니라 성차별까지, 당시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내용에 마음이 묵직해졌다.
네티는 자꾸 말해요. 싸워야 해.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싸우는 법을 몰라요. 제가 아는 거라곤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법뿐이에요. _39
아무런 힘이 없던, 폭력을 견디며 목숨을 부지하기만 했던 소녀 셀리에서,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아가며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셀리의 모습까지.
그 속에서 빛나는 여성들의 연대.
하느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지만, 보낼 수 없는 일기에 더 가깝다.
중간에 신에 분노하며 대상이 네티에게로 바뀌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네티에게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편지다.
편지 속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고통을 풀어내는 셀리.
편지의 대상이 네티에게로 바뀔 때도 뭉클했지만,
"하느님께. 별들에게, 나무들에게, 하늘에게, 사람들에게. 세상 만물에게. 하느님께." 로 시작하는 마지막 편지에서 피어나는 기대감과 그리움이 내게 전해져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
마무리인 "아멘"에서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로 단단해지고 당당해지고 강인해진 셀리와 그녀의 사람들인 슈그, 소피아, 네티, 메리 등 그녀들의 삶에 더욱 응원을 하며 책을 덮었다.
한 가지 질문을 하면 열다섯 가지가 생겨나. 나는 우리에게 왜 사랑이 필요할까 궁금해졌어. 우리는 왜 고통을 받을까. 우리는 왜 흑인일까. 우리는 왜 남자와 여자일까. 아이들은 정말로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그리고 자신이 왜 흑인인지, 남자이거나 여자인지, 아니면 숲인지 묻는다고 해도,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묻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알게 됐어. 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건 질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질문하기 위해. 묻기 위해. 그리고 큰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하다보면 우연처럼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알게 돼. 하지만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애초에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은 걸 알 수가 없어. 게다가 질문하면 할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돼. _364
슈그가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하지만 오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이게 내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인 것 같아. _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