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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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이려는 사람은 드문 반면,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_149


토끼, 두더지, 까마귀, 팬더, 용 등 각기 다른 동물 모습을 한 로봇 '켄투키'.
켄투키 인형을 '소유'하는 사람들과 그 켄투키 인형을 조종하며 자신이 켄투키가 '되는' 사람들.
둘 사이의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서로의 일상과 세계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달라진다.


시작은 호기심이었겠지만, 점점 집착하게 되며 공포에 잠식되어가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첫 에피소드 제외) 첫 에피소드부터 노출과 협박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이 책에 깔려있는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소유'하는 사람은 애정을 갈구하고, '되는' 사람들은 점차 집착하고, 그리고 이때에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까지.

나라면 켄투키 인형을 '소유'할 것인가? '되기'를 선택할 것인가?

단순한 로봇 인형이 아닌, 그 로봇 인형을 조종하며 나의 일상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만해도 절로 섬뜩해진다.
반대로 몰래가 아닌 암묵적 동의로 누군가의 일상을 바라볼 기회가 생긴다면 호기심은 생길 것같다.
처음은 호기심으로 잠깐 볼 것같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타인의 삶을 계속 엿볼 수는 없을 것같다.
내 성향 상 귀차니즘도 강하고, 편집되어 짧게 응축해서 보는 걸 선호해서 아마도 금새 지루함을 느낄 것같기도..
하지만 이런 상상조차 읽다보면 거북함을 준다. 


왜 켄투키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소소하고, 사사롭고, 쩨쩨하고, 뻔한 것들뿐일까? 지나칠 정도로 인간사에 얽혀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뿐 아닌가. _297​


켄투키를 이용해 폭발 테러, 비행기 납치, 주식시장 붕괴, 엘리베이터 추락 사건 등의 상상도 못할 끔찍한 범죄 사건이 일어났다면 오히려 현실감이 사라졌을 것같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켄투키 사건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에서 시작한다. 정말 내 옆에서 일어날 것같은, 혹은 내게 일어날 것같은 일상에서 오는 두려움이 느껴져서 공포감을 절로 느꼈던 것같다. 
읽다보면 섬뜩해지고 불쾌한 끈적함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괜히 내 방의 인형들이 무서워진다.



온라인 세계에서 익명의 존재가 되는 것이 최대한의 자유이자 사실상 거의 바랄 수조차 없는 조건인 마당에, 타인의 삶 속에서 익명의 존재가 된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_167​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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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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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순한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을 죽은…… 예상도 못했어요." _377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5성급 캉티뉴스 호텔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호숫가 산책로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 캉티뉴스 호텔 사장.
산책로 입구 CCTV와 관리소에서는 다른 목격자 등의 단서가 없다.
신개념 밀실, 과연 호텔 사장은 누가 죽인 것일까?
여기에 숨은 진실은 무엇일까?


이 사건은 네 명의 추리가 하나로 뭉쳐지며 빛을 발한다.

ㅁ친구의 약혼식 참석으로 호텔에 투숙한 조류학자이자 범죄사건을 관찰하고 추리하는데 능한 탐정 푸얼타이.
ㅁ다른 살인사건을 쫓다 연결점인 캉티뉴쓰 호텔로 오게 된 전직 경관 뤄밍싱.
ㅁ호텔 사장의 아내이자 총지배인 란니의 친구 변호사 거레이.
ㅁ과거 떠들석했던 보석 도둑 인텔 선생.


첫 추리는 푸얼타이로부터 시작된다.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유일한 목격자이자 생존자인 새끼 매를 발견하고, 총이 발사된 숨겨진 장소를 찾아내고 범인까지 밝혀낸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끝나면 재미없지!
도주한 범인을 찾았지만, 그도 총에 맞아 죽어있다?
또 다른 범인이 있는걸까?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이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정보와 전체적인 흐름으로 중요한 얼개는 잡혔지만, 뭔가 작은 퍼즐들이 빠져있는데, 네 명의 정보들이 한데 모여 큰 줄기를 이룬다.

중간에 생각지 못했던 인물들과 함께 너무 많은 이해관계 속에 얽히고설킨 사건의 조각들이 엮이며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다.
등장인물들의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들도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이게 다 노림수인것 같다. 
알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게 다 의심이 간다.
정말 생각지 못햇던 인물들의 정체로 더욱 몰입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연관되어 있어 어떻게 이렇게 구성했을까 하는 놀라움까지 든다.

살인사건이지만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고, 중간중간 웃음코드와 함께 더불어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놓치지 않아 즐겁게 읽었다.
다 읽고 프롤로그를 다시 본다면 프롤로그가 더욱 새롭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명탐정들은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_65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고, 모든 동기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있다. 성인이라면 그 행동의 결과에 책임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_333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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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인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
찬 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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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기점으로 그는 머릿속에 웅대한 계획을 구상했다. 그것은 평생 읽은 소설의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더 읽고 난 뒤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이 책을 들기만 하면 한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끊기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존 자신도 휩쓸려 들어가서 외부의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_9


로즈 의류회사의 영업부 매니저 존과 그의 아내 마리아.
로즈의 사장인 빈센트와 그의 아내 리사.
거래처 고무농장 주인 레이건과 그의 연인 에다.

여섯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인듯 하지만 그들 각자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린 『마지막 연인』

첫 중국문학이라 조금 어색하며 펼쳐들었다.
사실 중국소설이라 중국의 분위기가 글 속에서 드러나겠다 싶었는데, 웬걸 소설 속 배경도 가상의 공간이라 중국의 분위기는 느껴볼 틈이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나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세계의 구석구석에는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_506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몽환적인 느낌이 그득하다.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글의 흐름에 나를 맡겨야한다.
초반엔 자꾸 문단을 되풀이하며 해맸는데, 이 책은 자연스레 분위기에 휩쓸리며 읽어나가야 한다.
소설 속 배경인 가상의 도시도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듯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상상이고 꿈인지 몽롱해진다.
난 그들의 그림자인 내면 상태를 쫓아가지만, 그들은 쉬이 알려주지 않으며 난 그들의 공간에 갇힌다.

그들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았을까?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해방했을까?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구축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로 엮어졌고, 나는 공교롭게도 책의 세계 속 풍경이 되었다.

찬쉐가 '중국의 카프카'라는데, 사실 카프카도 아직 도전해보지 못해서, 내공이 부족했다.
환상 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준 『마지막 연인』으로 조금은 나의 세계가 확장되었기를.
내공을 쌓고나서 다시 펼쳐들면 그들의 세계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거기에서 왔어. 하지만 그 길로 다시 가라고 하는 건 불가능해. 모든 건 시간과 함께 흘러가니까. 나는 길을 다시 새로 찾아야만 해. 너도 찾아야만 해." _166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죠. 그런 사람과 함께 살면 그 사람은 서서히 사라져요." _372

"대니얼, 평생 혼신의 힘을 쏟아 자신의 이야기의 숲으로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우리에게 속할까?"
"그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지만 날마다 우리와 함께 있어요." _503


[에세 서포터즈 활동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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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이야기
기 드 모파상 외 지음, 세레넬라 콰렐로 엮음, 마우리치오 콰렐로 그림, 박세형 옮김 / 미메시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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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짧은 단편으로 각색된 느낌이지만, 고딕 느낌을 맛보기로 보기 딱인것 같아요. 고딕 입문에 추천합니다. 유령을 소재로 중간중간 코믹한 편도 있어 흥미로웠어요. 무엇보다 삽화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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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퍼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7
앨리스 워커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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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라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가 날걸."


하느님에게 보내는 셀리의 편지 형식으로 시작한다.

첫 번째 편지, 14살 셀리는 아버지한테 강간을 당한다.
첫 페이지부터 뒷 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뒷 장을 넘기니,
두 번째 편지, 강간으로 태어난 두 명의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나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다시 한참동안 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았다.
세 번째 편지, 이제는 동생인 네티를 눈독들이고 있는 아버지.
네 번째 편지, 엄마가 죽은 후 새로운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온 아버지.
살림과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네티와 결혼하고 싶은 OO씨,
네티는 어리다며 셀리를 데리고 가라는 아버지,
OO씨에게 팔려가듯 결혼하고, 그의 큰아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다치는 셀리,
아버지의 폭력에서 이제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셀리.

첫 페이지부터 뒷 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지만, 속도감있는 전개와 중간중간 들어있는 반전들로 멈출 수 없었고, 무엇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셀리의 모습이 보고싶어 쉽게 덮을 수 없었다.
인종차별 뿐아니라 성차별까지, 당시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내용에 마음이 묵직해졌다.

네티는 자꾸 말해요. 싸워야 해.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싸우는 법을 몰라요. 제가 아는 거라곤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법뿐이에요. _39

아무런 힘이 없던, 폭력을 견디며 목숨을 부지하기만 했던 소녀 셀리에서,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아가며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셀리의 모습까지.

그 속에서 빛나는 여성들의 연대.

하느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지만, 보낼 수 없는 일기에 더 가깝다.
중간에 신에 분노하며 대상이 네티에게로 바뀌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네티에게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편지다.
편지 속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고통을 풀어내는 셀리.

편지의 대상이 네티에게로 바뀔 때도 뭉클했지만,
"하느님께. 별들에게, 나무들에게, 하늘에게, 사람들에게. 세상 만물에게. 하느님께." 로 시작하는 마지막 편지에서 피어나는 기대감과 그리움이 내게 전해져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
마무리인 "아멘"에서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로 단단해지고 당당해지고 강인해진 셀리와 그녀의 사람들인 슈그, 소피아, 네티, 메리 등 그녀들의 삶에 더욱 응원을 하며 책을 덮었다.



한 가지 질문을 하면 열다섯 가지가 생겨나. 나는 우리에게 왜 사랑이 필요할까 궁금해졌어. 우리는 왜 고통을 받을까. 우리는 왜 흑인일까. 우리는 왜 남자와 여자일까. 아이들은 정말로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그리고 자신이 왜 흑인인지, 남자이거나 여자인지, 아니면 숲인지 묻는다고 해도,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묻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알게 됐어. 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건 질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질문하기 위해. 묻기 위해. 그리고 큰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하다보면 우연처럼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알게 돼. 하지만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애초에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은 걸 알 수가 없어. 게다가 질문하면 할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돼. _364

슈그가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하지만 오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이게 내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인 것 같아. _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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