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 아빠 백점 엄마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동시집, 6학년 2학기 읽기 수록도서 동심원 14
이장근 외 지음, 성영란 외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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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입가에 계속 미소가 감돕니다.
아프고 힘든 세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캐내는 광부들이 시인들인가 봅니다.

넘어져도 일어나 다시 뛰고,
친구와 크게 다투어도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같이 놀고,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새 세상을 선물받는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아이들의 지혜.
순수함에서 오는 그 마법 같은 지혜가 반짝입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걸까요?
어쩌면 이리 '아이다운' 시들인지......
시인들의 심장엔 타임머신이 장착되어 있나 봅니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너무나 달라요.
어른보다 더 맑기에, 더 정확히 보지요.

숙제 다 할 때까지 방에 갇혔지만,
실제로 갇힌 건, 심심해하며 문밖에서 계속 형을 부르는 동생이예요.(이장근<방에 갇힌 날>)

꼴지도 심심하지만, 정말 더 심심한 건 일등이지요.
꼴지는 앞 사람의 등에라도 대고 말을 걸 수 있지만,
일등은 그 자릴 지키려면 뒤 한번 돌아볼 수 없잖아요.
사실, 사람은 그렇게 일렬로 걸으면 모두가 외롭고 심심할 뿐인데...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줄 서는 법', 더 나아가 '무조건 줄 앞에 서는 법'만 가르칠 뿐,
서로를 바라보고 돌보고 끌어주는 것은 잊게 만들고 있죠.(이장근<혼자 가는 개미에게>)

<가족대상>은 저도 한번 따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이기에 남보다 더 마음 열어보이지 못하고, 가족이기에 더 칭찬에 인색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연례행사'가 아닐까 싶네요.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훌륭하지 않은 이 없는 우리 가족들...
한 명 한 명 박수 쳐 주고, 꽃다발도 주고, 포옹하고, 수상 소감도 듣고...
시와 함께 떠오르는 시상식 풍경에 저도 모르게 흐뭇해집니다.

이정인님의 시엔 평범한 가족의 모습들이, 너무나 익숙하게 그려져 있어요.
'아니, 우리 집 이야기잖아?'하고 깜짝 놀랐네요.
짧은 이야기를 참 길게도 하는 엄마(<긴 말 짧은 말>),
아파도 집안일을 놓지 못하는 엄마(<빵점 아빠 백점 엄마>),
집 나가겠다고 하고선 차 안에서 깜박 잠들어버린 엄마(<남자들의 약속>),
내 모습과도 겹쳐지는 이 '엄마'는 
바로 시인의 실제 이야기인 듯 생생해요.
만나지 않았는데도, 이 가족...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 같이 정답네요.
우리 집 이야기를 함께 나눈 듯 속이 후련해지네요.

안오일 시인의 <익어 가는 색깔>은 턱하니, 제 심장 한 부분을 쳤어요.

'그래, 이 색이 바로 우리 아이들의 색깔이잖아. 아직은 어떤 색이라 말할 수 없는...그저 참 묘하고 고운...'

'익어 가는 색깔'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색깔을 입힐 궁리로 끙끙대고,
어떤 색깔이 좋은지 순전히 나의 잣대로 고르면서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하지요.
아이가 다 익으면 어떤 색깔일지 기다려 주지도 않구요.
사실, '익어 가는' 자체의 아름다움도 얼마나 설레는 것인가요?
'어떤 색깔을 목표로 정해놓지 않으면, 사람은 평생 익어 가며 아름다울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대단한 나> 또한, 늘 마음에 되뇌이고 싶은 시네요.
누군가에게 보이는 '나'가 아니라, 무언가를 보는 '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
그 무엇도 아닌 '나'로 존재하는 대단함을 우리는 자꾸 망각하죠.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 이것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뭐 어때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이기에 가치가 있고 사랑받는다는 믿음...
저희 아이가 세계지도를 볼 수 있게 되는 날에 꼭 읽어주고 싶은 시예요.

'아이가 어른을 키운다'고 하죠.
아이의 눈이, 아이의 마음이 어른을 진정 어른답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한 권의 책에 담아 주신 '아이의 마음'...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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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9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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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마음 속으로 계속 되뇌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이 책이 SF였으면 좋겠다.
상상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독일 작가 귄터 아이히의 <꿈>에 나오는, 식용으로 자기 아이들을 파는 부부 이야기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끔찍한 일들이 이 땅 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눈 감고 귀 막아버리고 싶다.

가난은 지옥이 아니다.
인간이 지옥일 뿐.

라크슈미가 죽음보다 못한 삶에,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어진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 밖에 모르는 계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팔아치우는 자들,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자신을 속이는 자들.
그들은 '어른'이라는 이름의 악마다.

팔려가면서도 엄마에게 줄 코카콜라 한 병에 행복했던 라크슈미는
코카콜라 한 병 값에 매일 밤 팔릴 운명을 알지 못한다.
이어지는 흥정 속에 값은 높아져가고, 그녀를 멀리멀리 끌고 가는 이모와 삼촌들은 돈을 벌지만,
그녀에겐 갚아도 갚아도 쌓여만 가는 빚만 남는다.
상상할 수도 없이 끔찍한 '행복의 집'에서
그 많은, 더러운 어른들은 그녀를 '그것'으로 취급했지만,
그녀에겐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게 해 준 다른 이들이 있었다.
글을 가르쳐 주고 연필을 선물한 하리슈,
얻어맞을 줄 알면서도 차 한 잔으로, 코카콜라 한 병으로 라크슈미를 위로했던 차 파는 소년,
같은 운명을 겪으면서 상처투성이의 서로를 끌어안고 죽지 말라고 울어주던 소녀들...
그 지옥 속에서도 그들은 그녀에게 '천국'이 되었고 
'라크슈미'라는 이름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세상의 수많은 '라크슈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사죄할 수 있을까?
탐욕을 '행복'이라 부르는 세상...
이 거대한 '행복의 집'에서 어떻게 이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그 말만으론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건 '그들', 그 먼 네팔의 인도의 '나쁜 놈들'이 아니다.
내가 숨쉬고 웃고 있는 곳도 세상인 이상, 여기엔 나의 책임도 있다.


악몽들로 세상을 축약한 귄터 아이히의 <꿈> 속에 나오는 시로 그 답을 더듬어가려 한다.
이렇게 '천국으로 가는 길'이 찾아지기를 소망하면서....

                  생각하라, 모든 끔찍한 일에 당신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비록 그것이 당신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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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코 로드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0
멜리나 마체타, 황윤영 / 보물창고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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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야기 한 편이 있다.

자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길 위에서, 낙원으로 향하는 터널 같은 그 길에서
132분 동안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고,
엄마의 참혹한 죽음을 오빠가 볼까봐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던 소녀,
나니의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가...
어떤 설명도 없이 그 이야기에 섞여 든다.
테일러 마컴의 이야기이다.

무뚝뚝하고 좀처럼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으며 잔뜩 웅크린, 자신의 가장 큰 상처는 스스로 닫아 잊어버린 소녀.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 유일한 소속감을 주는 것은 꿈속의 소년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시작된 그 날,
소년은 속삭인다.
"이제 때가 됐어!"하고.
나니의 아버지가 마지막 여정에 오르며 딸에게 했던 말을 그렇게 그대로.
그리고, 그 밤 테일러는 젤리코 기숙학교의 지휘관이 되어 사관 생도들과 시내 아이들과의 영토전쟁을 주도하게 되고
며칠 후, 유일한 보호자인 해너 아줌마가 아무 언질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된다.
처음 우리를 맞았던 눈물 섞인 그 이야기는 해너 아줌마가 남긴 원고 속 이야기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일러는 '기도의 나무'에 새겨진 원고 속 이름들을 찾는다.
나니, 주드, 피츠, 웹, 테이트.
그리고, 그 이야기가 해너 아줌마의 이야기 그 이상임을 느끼고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간다.

가장 찬란한 삶의 시간에 너무도 큰 고통을 겪는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더 빛나는 그들만의 순수하고 강한 우정은 읽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적으로 만났지만
용기와 애정으로 함께 다섯 아이들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시내 아이들의 대표 샌탠젤로와 사관 생도 지휘관인 조나 그릭스.
엉뚱하고 둔하며 충동적이지만 신실하고 의리있는 벤, 감상적이고 충동적이지만 따스하고 세심한 라파엘라 역시
날카롭고 외롭고 차가운 테일러를 감싸안으며, 그녀의 빛과 온기가 된다.

그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과거와 엄마를, 행복한 기억을 찾은 테일러.

늘 아빠의 꿈을 꾸던 테일러가
아빠가 꾸었던 자신의 꿈, 그 땐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의 꿈에 대해 듣는다.

한숨섞인 안도와 안타까운 슬픔 속에 책을 덮으니,
내 눈 속에
나란히 꽃씨를 심는 아름다운 다섯 아이들이 젤리코 로드에 서 있다.
그들은 알았을까?
여행과 여정의 차이를...

여행은 시작과 끝이 있지만,
여정엔 시작은 있을지언정 끝은 없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그리고 삶은 계속되었다. '로 시작되고,
이 문장은 네 번 반복된다.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 문장이 나에겐 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문장은 이렇게도 들렸다.

'그리고 사랑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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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가야를 품다 푸른도서관 38
김정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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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나에겐 자부심이 있었다.
왕족이라는 자부심...
'김수로왕의 자손'이라는 자부심 말이다...
'공주'를 한참 좋아하던 시절이라 그랬을까?
시조가 왕이니, 나 역시 왕족이라고 너무도 확실하고 단순하게 믿어버렸다.

여기, 진짜 공주가 있다.
아유타의 공주 라뜨나.
그러나, 이 공주의 삶은 열 살의 어린 나이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약소국의 공주였기에, 시커먼 속내를 감춘 적국의 정략결혼 요구에
나라와 부모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삶을 그리워 하며 눈물만 흘리던 어린 라뜨나는
배를 집어삼키려 하는 폭풍에 맞서 싸우며
진정한 공주로 다시 태어난다.

'어떤 일이건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 거야, 두려워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

어머니의 말씀이 삶의 버팀목이 된 것이다.

한나라 변방 어촌으로, 사막을 건너 사천성 안악현으로, 거기서 또 쫓기며 떠돌아야 했던 라뜨나.
그러나, 그 모든 시간 동안 아유타를 강한 나라가 되도록 모든 힘을 다해 도우며
굳은 믿음과 용기, 지혜, 사려깊은 마음을 성장시켜 나간다.

오랜 방황을 끝내고 정착한 가야에서
생심새부터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아 '낯선 사람들'로
심지어는 '역병을 몰고 온 이방인들'로
가야 사람들의 경계와 미움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모든 순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며 한 발 먼저 다가서서 돌보는 라뜨나는
계산보다 앞선 온정으로, 진정으로 
왕후가 되기에 앞서 이미 스스로 '가야의 어머니'가 된다.

나에게도 수로왕후는
용기와 굳셈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러면서도 한없는 따스함으로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나도, 내 딸도 닮았으면 간절히 바라게 되는
저 높은 선조 할머니, 
'진짜' 공주를 드디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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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7
강숙인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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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이야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왕인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쳥대군의 옛날 집 수성궁이 그 배경이다.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이 곳에서도
풍족한 사람들의 마음은 모질고 차가워,
하인도 없이 겨우 술병 하나를 차고 오랜 숙원 끝에 이 곳을 찾은 가난한 선비 유영을 비웃는다.

부끄러움에 도망치듯 한적한 곳을 찾아 서쪽 정원에 이르러
홀로 외로이 술병을 비우고 잠들었다 깬 그는
그 곳에서 신선처럼 아름다운 두 사람을 만난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선비와 아름다운 여인은
사연을 묻는 그의 간절함에 긴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학문과 시를 사랑한 안평대군에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수성궁에 살고 있는 열 명의 여인들이다.
5년을 가르쳐 빼어난 문장가로 키워낸, 어리고 아름다운 궁녀들을
그는 몹시 아끼고 사랑하였지만, 
궁 안에 갇혀 숨은 존재로, 세상과 단절된 존재로
오직 그만을 위해 지저귀는 '새장 속의 새'들인 그녀들의 삶은 숨 막힐 듯하다.
그 중 가장 사랑받았던 옥영은 뜻하지 않았던 인연으로 젋고 재능있는 김진사를 마음에 품게 되고
그 역시 같은 마음임을 확인한다.
이루지 못할 인연으로 괴로워하는 옥영은 다른 궁녀들의 도움으로 김진사와 만남을 갖게 되지만,
결국 대군에게 발각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망과, 동무들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길로 죽음을 선택하며
김진사 또한 그녀를 따른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끊은 건, 사람이다.
수성궁 자체로 상징될 수 있는 안평대군과 그 시대의 제도는
그리도 화려하고 드높았으나, 어리고 고왔던 영혼들에겐 숨 막히는 감옥일 뿐이었다.
결국은 인적도 끊기고, 세월의 무상함 속에 재가 되고 무너진 폐허로 남고 마는.

어찌, 그 때만의 이야기일까?
어떤 시대에도 권력과 부로 이루어진 계급은 엄연히 존재해 왔으며,
이 시대의 특권 계층은 어쩌면 그 옛날보다도 더
자신이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겐 무섭도록 완고하며 잔인하다.

운영과 김진사는 원래 천상의 선인이었으나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서 이 고통들로 죗값을 치루었다고 한다.
그 고통들은 결국 가난도, 병도 아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시를 사랑하고 뛰어난 재인이었으나, 
그 시의 본질인 '인간'을 사랑할 줄 몰랐던 안평대군을
미워하다가는 동정하며,
나 또한 모질고 가엾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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