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7
강숙인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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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이야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왕인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쳥대군의 옛날 집 수성궁이 그 배경이다.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이 곳에서도
풍족한 사람들의 마음은 모질고 차가워,
하인도 없이 겨우 술병 하나를 차고 오랜 숙원 끝에 이 곳을 찾은 가난한 선비 유영을 비웃는다.

부끄러움에 도망치듯 한적한 곳을 찾아 서쪽 정원에 이르러
홀로 외로이 술병을 비우고 잠들었다 깬 그는
그 곳에서 신선처럼 아름다운 두 사람을 만난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선비와 아름다운 여인은
사연을 묻는 그의 간절함에 긴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학문과 시를 사랑한 안평대군에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수성궁에 살고 있는 열 명의 여인들이다.
5년을 가르쳐 빼어난 문장가로 키워낸, 어리고 아름다운 궁녀들을
그는 몹시 아끼고 사랑하였지만, 
궁 안에 갇혀 숨은 존재로, 세상과 단절된 존재로
오직 그만을 위해 지저귀는 '새장 속의 새'들인 그녀들의 삶은 숨 막힐 듯하다.
그 중 가장 사랑받았던 옥영은 뜻하지 않았던 인연으로 젋고 재능있는 김진사를 마음에 품게 되고
그 역시 같은 마음임을 확인한다.
이루지 못할 인연으로 괴로워하는 옥영은 다른 궁녀들의 도움으로 김진사와 만남을 갖게 되지만,
결국 대군에게 발각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망과, 동무들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길로 죽음을 선택하며
김진사 또한 그녀를 따른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끊은 건, 사람이다.
수성궁 자체로 상징될 수 있는 안평대군과 그 시대의 제도는
그리도 화려하고 드높았으나, 어리고 고왔던 영혼들에겐 숨 막히는 감옥일 뿐이었다.
결국은 인적도 끊기고, 세월의 무상함 속에 재가 되고 무너진 폐허로 남고 마는.

어찌, 그 때만의 이야기일까?
어떤 시대에도 권력과 부로 이루어진 계급은 엄연히 존재해 왔으며,
이 시대의 특권 계층은 어쩌면 그 옛날보다도 더
자신이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겐 무섭도록 완고하며 잔인하다.

운영과 김진사는 원래 천상의 선인이었으나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서 이 고통들로 죗값을 치루었다고 한다.
그 고통들은 결국 가난도, 병도 아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시를 사랑하고 뛰어난 재인이었으나, 
그 시의 본질인 '인간'을 사랑할 줄 몰랐던 안평대군을
미워하다가는 동정하며,
나 또한 모질고 가엾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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