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200가지 - 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동화 보물창고 56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민예령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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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부터 세계는 '멘토의 시대'를 맞고 있다.

끝 간 데 없이, 어떤 불가능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긴 긴 시간을 달려온 인류는

어느 순간, 허무함과 혼란이라는 공통의 병을 앓게 되었고...

애타게 '스승'을 찾는다.

 

눈을 밝게 해 줄, 길을 열어 줄 빛을 찾는다.

 

'이솝'이라는 정다운 이름을 오랫만에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이

이 '멘토'라는 단어였다.

<탈무드>와 함께, <성경> 다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었다는 그의 우화들.

2,500여년 전의 이야기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전해져 내려온다는 사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을 발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지혜를 웃음과 함께 전해 주는 이 엄청나게 늙은(?) 멘토를

희한하게도,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만난다.

 

 

 

 

'단 한 장면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고 정평이 난 전설의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의 삽화가

이솝의 이야기들에 극적인 묘미를 더해 준다.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표정이 살아 있는 이 삽화들은

그의 우화들을 하나하나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이 책에 실린 이솝 우화들은 가장 긴 것들이 겨우 한 페이지 남짓하다.

짧은 것은 4,5줄에 지나지 않을 정도.

그렇지만, 하나하나 "아하!"하고 머리를 탁 치게 만든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많은 동물들이나 사람들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안일하거나 이기적인 마음, 욕심, 부도덕함을 꼬집는다.

 

 

 

픽 웃고선, 바로 그 다음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게 된다.

지혜의 시대, 고대 그리스에서 힘 없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어떤 귀족도, 현자도 무시할 수 없었던 이솝의 '촌철살인'의 무시무시한 위력이 이것이다.

 

 

이솝이 괴물처럼 흉측스러웠다고 전해져내려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이야기들 중 많은 부분이 '내적인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보이는 것, 가진 것, 외적인 아름다움, 피상적인 현실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그는 마음껏 꼬집고, 꾸짖고 있으니까.

 

 

 

눈에, 말에 속아

진실로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 시대에 이렇게도 우리가 힘들고 외로운 것은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 그만큼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즐겁게 웃기도 하고 통쾌해 하는 와중에, 마음 속 빛이 될 이 이야기들로

2500살 먹은 무지무지하게 늙고, 무지무지무지하게 지혜로운 이솝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

 아마, 나이를 먹을수록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 나날이 새롭게 귀에 들어오겠지.

 

'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이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꼭 읽어야 할' 이솝 우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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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클래식 보물창고 15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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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과 새, 그리고 아프락싸스...

이 셋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어설프지만 치열했던 첫번째 '방황과 고독'의 동의어인 듯

제목만으로 마음 한 켠을 건드려 싸르르 아파오는 이름.

 

이 책을 읽었던 것이 20년도 더 전이었다.

뭔가 멋있고 깊이 있다는 느낌,

잘 모르겠지만 끌리는...그런 책이었다.

 

'데미안' 같은 이를 만나고 싶어서

그 이후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나의 데미안 아닐까?'하며 설레였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피어나는 작은 꽃송이들이 하늘을 수놓은 표지이다.

하얀 꽃들이 약해 보이면서도 아름답다.

닮은 듯 저마다 분명히 다른 꽃송이들을 보며

'이 그림은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하는 고민이 든다.

다른 책이 아닌, '데미안'이기에 이런 것이겠지.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존재하는 어둡고 금지된 세계를 감지하고 끌리는 

열 살의 싱클레어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은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어 빛의 세상에서 멀어지고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악의에 찬 웃음으로 자신에게 속아넘어가는 아버지를 경멸하기도 하는 싱클레어.

내가 겪었던 사춘기도 이런 것이었던가?

 

 

  헤르만 헤세는 우리가 겪었던 이 혼란스러웠던 시간을

'죽음과 새로 태어남을 딱 한 번 체험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새로 태어남'은

우리가 사랑하게 된 모든 것, 우리가 속한 모든 것에 결별을 고하고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싱클레어가 되뇌이는 한 마디는

우리가 걷고 있는 삶이 왜 이렇게도 고통스럽고 공허한가에 대한 답인 것 같다.

 

'아, 오늘에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꺼림칙하고 마음 내키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두 세계 사이에 갇혀 있는 싱클레어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두 세계가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알려주는 데미안.

 

 

 

 

그리고, 데미안이 열어준 길로 걸어가기 시작한 싱클레어는

 두려움과 경외감 속에

'더는 어린아이의 상태로 있으면 안 되며 스스로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다시 허망하고 방탕한 생활 속에 자신을 몰아넣지만

그 속에서도 애써 외면할 뿐,

그 때의 깨달음을 잊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이상'을 찾고 그것이 길이 된다.

 

 

 

 

싱클레어를 구원한 것은 '빛'이다.

다시금 '빛'을 원하게 된 것.

그러나, 그것은 그가 그저 처음에 속해 있었던 '밝음'이 아니라,

스스로 내는 빛.. 스스로 만들어갈 길을 비추는 횃불이다.

 

 

 

오랜 시간 뒤 만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가 주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그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다.

 

 

'그 길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힘들기만 한 것이었을까?

아름답지는 않았던 걸까?'

 

 

'어머니'란 이름의 에바가 주는 이 이야기는

끝없는 탄생을 거듭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 모든 인간에게 주는

신의 메세지일 것이다.

'꿈'이라는 열쇠가 우리의 길을 힘들지만 아름답게 할 것이라는.

 

 

다시금 '데미안'을 읽는 순간 순간, 싱클레어가 겪는 그 시절들로 함께 돌아가는 것 같았다.

헤르만 헤세는

우리가 살아왔으면서도 지나쳤던 '삶'을

어쩌면 이렇게 맑고 날카로운 눈으로

거울에 비춘 듯 다시 펼쳐낸 것일까?

 

데미안의 눈에, 우리는 대부분 아직 어린아이일 것이다.

아니, 영원히 어린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세계는 무엇일까?

나는 과연 '나'로서 살고 있는 것일까?

 

 

끝없이 꿈꾸고 찾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그러니, 절망도 방황도 당연한 것이며 아름답다고

데미안이 다시 한번 나에게 말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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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동화 보물창고 55
마크 트웨인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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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와 '마크 트웨인'을 전혀 연결짓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신랄한 풍자와 날카로운 지성, '언중유골'의 대명사인 그가 허클베리와 톰 소여의 아버지인 줄은 알았지만,

'왕자와 거지'의 작가인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상위 0.000001%의 삶을 사는 왕자와 저 밑바닥 인생을 사는 거지 소년이 맞바꿔지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거의 '전래동화'처럼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수많은 버전의 변주에도 녹슬지 않는 재미를 간직한 채로, 늘 우리를 동화시키면서 말이다.

그것은, '지금의 내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문학 자체'의 전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닮았다 한들, 그저 옷을 바꿔 입었다는 것만으로

몇 년을 한결 같이 보아온 왕자의 위엄을 못 알아본다는 사실은 조금 억지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외면에 속는 것이 인간의 약점임이 더 진실에 근접한 것이리라.

 

한 순간에 왕자로 오해받고 당황하며 한사코 자신이 거지 소년이라고 주장하는 톰에 대한 의혹을

"그가 사기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스스로를 왕자라고 주장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그래, 그게 타당하겠지.

하지만 왕을 비롯해 궁중의 모든 이들이 왕자라고 불러주는데 왕자로서의 위엄을 거부하고 아니라고 반박할

그런 사기꾼이 어디 있겠어? 전혀 없어!" (p.61)

하고 스스로 털어내며 장담하는 왕족 하트퍼드 경의 논리는 참으로 현실적이면서 아이러니해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왕자'이기를 거부할 인간은 없다고 단언하는 고귀한 세계의 논리.

 

어릴 때 동화책으로 읽었을 때엔 거지로 갖은 고난을 겪는 왕자의 불행이 '올리버 트위스트' 못지 않게 가련했건만,

지금 다시 읽으면서는 '왕자'로 환골탈태하는 톰의 고초 또한

그 품격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왕자에 못지 않은 '고통의 여정'이다.

마크 트웨인이 두 페이지에 걸쳐 극사실적으로 서술한 '옷 입히는 의식'은

읽는 사람까지 온 몸이 근지러울 정도로 넌더리가 난다.

 

이 작품에서 실로 거지의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진정한 '왕자'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이는 귀족 헨든이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의연함, 용기는 그와 마주치는 내내 나를 감동케 한다.

왕자 에드워드에게 이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한 여정을 감수시킨 작가가 마련한 위로이며 '평생의 선물'이

이 '꿈과 그림자 왕국의 유령 기사'가 아니었나 싶다.

한편으론, 마크 트웨인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다시 맑게 걷힌 진실을 만나는 것이다.

꿈과 그림자 왕국은 사라진다.

아니, 꿈과 그림자가 사실은 꿈도, 그림자도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젊은 왕이 된 왕자는 궁중 밖의 삶과 진실을 알았기에 지혜롭고 따뜻한 성정을 베풀게 된다.

두 소년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것도, 무사히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실은 별 대단한 환상은 아니다.

현실을 사는 나에게 이 '왕'이야말로 엄청난 환상이다.

스스로 태양이면서도, 그림자를 알고 보듬는 왕.......

'거지'로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아는, 그저 행운으로 '왕자'로 태어난 것임을 아는 통치자.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왕자와 거지'는 또다른 새로운 꿈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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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아이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6
브록 콜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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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고트가 된 아이들이 있다.

고트... 희생양.

아무것도 없이, 심지어 몸에 걸친 것도 하나 없이 무인도에 버려진 소년과 소녀.

 

아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둘에겐 서로가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한번도 친구를 얻을 수 없었던 불운한 이 아이들은 그 순간부터 진정한 우정을 쌓아간다.

자신들을 그렇게 유린하는 잔인한 사회를 뒤로 함으로써.

 

소년에겐 단 하나의 계획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찾아도 우리를 찾을 수 없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겠지만 절대 모를 테지." (p.36)

자신을 한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

 

"그냥 우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열 몇 살의 아이가 품은 단 하나의 소망이...... 슬프기 짝이 없다.

 

소심하고 겁 많은 소년은 자신보다 더 약해 보이는 소녀를 이끌기 위해 매 순간 용기를 낸다.

그리고, 소년보다 현실성 있고 결단력 있는 소녀는 대담한 기지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빈 여름 별장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쉬고, 해수욕장 탈의실에서 옷을 훔치고,

다른 캠프의 아이들 속에 섞여들기도 하고,

숙박객이 떠난 모텔의 빈 방에 묵고.....

소년과 소녀는 오로지 자신들만의 힘으로 그들의 길을 간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몇 명의 묵인 하에 섞여든 다른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말 나쁜 아이'라는 파르도를 충동적으로 뒤에서 때린 후

자신이 맞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소년의 발 아래에서

파르도는 작은 아이처럼 울고,

그 집단의 우두머리 격인 캘빈은 소년의 비열함을 멸시하기는커녕, 옹호한다.

"사회랑 똑같은 거야. 모르겠니? 다들 따라야 하는 규칙이 있지.

하지만 그 규칙들이 우리 자신을 망가트리기도 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우리는 깡패가 되는 거지.

그 게임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 넌 똑똑한 깡패인 거야. " (p.108)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자신이 깡패도 아니고, 어쩌면 고트도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트였던 자신이 한 순간 깡패가 되는 어이없는 전환에

그것은 '한 떼의 무리'가 기분대로 유치하게 붙이는 낙인일 뿐,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같은 순간, 소녀는 자신을 겁에 질리게 했던 파르도에게 이성을 넘어선 살의를 느낀다.

바닥에 쓰러져 비참하게 울고 있는 파르도를 보았음에도 그 혐오는 가라앉지 않는다.

자신의 캠프에서 '진짜 개'라는 최하급으로 분류되었던 소녀 역시, 어떤 이에겐 더한 낙인을 찍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똑똑한 깡패처럼 구는 캘빈의 팔엔 어렸을 때 아빠가 담배로 지진 자국들이 남아 있다.

이상하고 음침해, 누구라도 멀리 하고 싶은 파르도에겐 마음 속 깊은 곳에 오래된 상처가 있다.

괴롭히는 이도, 괴롭힘당하는 이도 모두 상처투성이다.

약자에겐 깡패였던 이가, 강자에겐 고트가 될 뿐.

 

여정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소녀와 소년은 서로 이름을 이야기한다.

소년이 들어 알고 있었던 소녀의 이름조차 진짜 이름은 아니다.

소녀의 원래 이름인 '섀도(그늘)'은 이 작품 속에서 하나의 상징이 된다.

"엄만 내가 학교에 들어갈 때 내 이름을 바꿨어. 내게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우셨던 거야."

"그래도 여전히 네 이름이지. 조금 특별한 네 이름." (p.162)

 

조금 특별하다는 것이 곧 문제의 원천이 되는 사회.

태어났을 때부터 '섀도'였고 여전히 그 이름을 사랑하는 소녀는

(마지막, 노인에게 전화할 동전을 빌리고 쓴 차용증엔 분명히 '섀도 골든'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다.)

문제가 될까봐 그것마저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어두운 밤, 외딴 섬에 버려져 추위 속에 떨었던 두 아이는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는 오솔길을 함께 걸어간다.

앞으로 겪어내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지만, 두 사람은 두렵지 않다.

"우린 방법을 생각해 낼 거야. 언제나 그랬으니까." (p.216)

 

그리고, 작가는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하위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로라가 말했다. "놓치지 말고 꼭 잡아." '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소년은 뒤에서 양팔을 잡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숙였었다.

소녀가 소년에게 던진 첫마디는 "저리 가."였다.

완벽한 대치를 이루는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다.

'선(태양)'과 '섀도(그림자)'처럼.

 

소설은 달콤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돌아가고, 관련된 아이들이 처벌을 받고 규정이 엄격해진다 하더라도

아이들 사이에, 또한 인간의 사회 모든 곳에 존재하는 폭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년과 소녀 또한 스스로 발견했던 인간의 본성이니까.

 

단지, 내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깡패'도 '고트'도...... 난 아니다.

그리고 확신해야 한다.

우린 방법을 생각해 낼 거라는 걸.

어떤 상황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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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이야기 - 시와 그림으로 보는 백 년의 역사 Dear 그림책
존 패트릭 루이스 글, 백계문 옮김,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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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인노첸티'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기심으로 그의 모든 책들을 찾아 보았지만 한 권도 실망스러운 책은 없었다.

들여다 볼수록,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속삭여 주는

은밀한 그림들.

옛날 이야기들 속에 나오는 마법의 책이 이러할까?

 

이 책 속에 담긴 것은

1901년부터 1999년까지의 어느 집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가 보고 들었던 어느 삶들의 이야기이다.

 

2만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는 집은

한정된 글자 수 안에 정제된 고대의 정형시처럼

단 네 줄로 한 시대를 읊조린다.

숨결 한 번에도 너끈히 실릴 듯,

한숨 같은 노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역병의 시대에 태어나

오랜 세월 버려졌다가

다시 '집'이 된 이 무언의 존재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지켜보고

전쟁과 폭력 속의 피신처가 되고

끝나는가 하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소유되지 않으면 그저 폐허일 뿐인 집은

고요히 인간을 바라보고,

가엾어 하며,

사랑한다.

인간이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잔학하였으며, 숨가쁘게 달렸던

20세기를 담아낸 이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나를 찾는 햇살과 빗물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과연 그 집만의 독백일까?

 

그 시대를 지나며  점점 더 외로워지는 인간을 위로하는 말로 들림은

나만의 착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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