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아이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6
브록 콜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여기, 고트가 된 아이들이 있다.

고트... 희생양.

아무것도 없이, 심지어 몸에 걸친 것도 하나 없이 무인도에 버려진 소년과 소녀.

 

아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둘에겐 서로가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한번도 친구를 얻을 수 없었던 불운한 이 아이들은 그 순간부터 진정한 우정을 쌓아간다.

자신들을 그렇게 유린하는 잔인한 사회를 뒤로 함으로써.

 

소년에겐 단 하나의 계획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찾아도 우리를 찾을 수 없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겠지만 절대 모를 테지." (p.36)

자신을 한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

 

"그냥 우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열 몇 살의 아이가 품은 단 하나의 소망이...... 슬프기 짝이 없다.

 

소심하고 겁 많은 소년은 자신보다 더 약해 보이는 소녀를 이끌기 위해 매 순간 용기를 낸다.

그리고, 소년보다 현실성 있고 결단력 있는 소녀는 대담한 기지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빈 여름 별장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쉬고, 해수욕장 탈의실에서 옷을 훔치고,

다른 캠프의 아이들 속에 섞여들기도 하고,

숙박객이 떠난 모텔의 빈 방에 묵고.....

소년과 소녀는 오로지 자신들만의 힘으로 그들의 길을 간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몇 명의 묵인 하에 섞여든 다른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말 나쁜 아이'라는 파르도를 충동적으로 뒤에서 때린 후

자신이 맞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소년의 발 아래에서

파르도는 작은 아이처럼 울고,

그 집단의 우두머리 격인 캘빈은 소년의 비열함을 멸시하기는커녕, 옹호한다.

"사회랑 똑같은 거야. 모르겠니? 다들 따라야 하는 규칙이 있지.

하지만 그 규칙들이 우리 자신을 망가트리기도 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우리는 깡패가 되는 거지.

그 게임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 넌 똑똑한 깡패인 거야. " (p.108)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자신이 깡패도 아니고, 어쩌면 고트도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트였던 자신이 한 순간 깡패가 되는 어이없는 전환에

그것은 '한 떼의 무리'가 기분대로 유치하게 붙이는 낙인일 뿐,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같은 순간, 소녀는 자신을 겁에 질리게 했던 파르도에게 이성을 넘어선 살의를 느낀다.

바닥에 쓰러져 비참하게 울고 있는 파르도를 보았음에도 그 혐오는 가라앉지 않는다.

자신의 캠프에서 '진짜 개'라는 최하급으로 분류되었던 소녀 역시, 어떤 이에겐 더한 낙인을 찍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똑똑한 깡패처럼 구는 캘빈의 팔엔 어렸을 때 아빠가 담배로 지진 자국들이 남아 있다.

이상하고 음침해, 누구라도 멀리 하고 싶은 파르도에겐 마음 속 깊은 곳에 오래된 상처가 있다.

괴롭히는 이도, 괴롭힘당하는 이도 모두 상처투성이다.

약자에겐 깡패였던 이가, 강자에겐 고트가 될 뿐.

 

여정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소녀와 소년은 서로 이름을 이야기한다.

소년이 들어 알고 있었던 소녀의 이름조차 진짜 이름은 아니다.

소녀의 원래 이름인 '섀도(그늘)'은 이 작품 속에서 하나의 상징이 된다.

"엄만 내가 학교에 들어갈 때 내 이름을 바꿨어. 내게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우셨던 거야."

"그래도 여전히 네 이름이지. 조금 특별한 네 이름." (p.162)

 

조금 특별하다는 것이 곧 문제의 원천이 되는 사회.

태어났을 때부터 '섀도'였고 여전히 그 이름을 사랑하는 소녀는

(마지막, 노인에게 전화할 동전을 빌리고 쓴 차용증엔 분명히 '섀도 골든'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다.)

문제가 될까봐 그것마저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어두운 밤, 외딴 섬에 버려져 추위 속에 떨었던 두 아이는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는 오솔길을 함께 걸어간다.

앞으로 겪어내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지만, 두 사람은 두렵지 않다.

"우린 방법을 생각해 낼 거야. 언제나 그랬으니까." (p.216)

 

그리고, 작가는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하위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로라가 말했다. "놓치지 말고 꼭 잡아." '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소년은 뒤에서 양팔을 잡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숙였었다.

소녀가 소년에게 던진 첫마디는 "저리 가."였다.

완벽한 대치를 이루는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다.

'선(태양)'과 '섀도(그림자)'처럼.

 

소설은 달콤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돌아가고, 관련된 아이들이 처벌을 받고 규정이 엄격해진다 하더라도

아이들 사이에, 또한 인간의 사회 모든 곳에 존재하는 폭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년과 소녀 또한 스스로 발견했던 인간의 본성이니까.

 

단지, 내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깡패'도 '고트'도...... 난 아니다.

그리고 확신해야 한다.

우린 방법을 생각해 낼 거라는 걸.

어떤 상황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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