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자 클래식 보물창고 13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찰스 에드먼드 브록 그림,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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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소설을 쓰던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은 어느 날

"영국에는 귀족이 있는데, 왜 미국에는 귀족이 없어요?"

라는 아들 비비안의 질문에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첫 동화였던 이 작품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주인공 세드릭의 긴 곱슬머리와 레이스 옷깃이 붙은 벨벳 옷까지 대유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886년, 모든 엄마들을 설레게 했던 이 일곱 살 소년의 힘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매우 조용하고 싼 조그만 집에서 태어났지만 행운만큼은 타고난 듯한 세드릭.

누구라도 어리석다고 할 선택으로, 사랑을 위해 부와 명예를 버린 아버지와

가난하지만, 지혜로우며 선한 어머니가 곧 그 행운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잘 믿는 천성과 두려움 없는 태도, 모두를 편안하게 해 주고픈 상냥한 마음은

건강한 아름다움과 넘치는 생기와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기쁨이 되는 세드릭.

상냥하고 천민난만하고 따뜻한 감정들로 가득한 이 어린 영혼이 가진 힘은 실로 엄청나다.

 

 

늙고 완고한 변호사 하비샴 씨가 할아버지 도린코트 백작의 명으로 세드릭을 데리러 와서

그와 마주앉아 '백작'이 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장면은 실로 유쾌하다.

'유서 깊은 가문'이라는 말을 모르는 세드릭에게 '아주 오래된 가문'이라고 설명하자, 곧바로

"아! 공원 근처에 계시는 사과 파는 할머니처럼 그런 거군요.

그 할머니도 아마 매우 유서가 깊은 가문일 거예요.

나이가 워낙 많으셔서 서 계시는 게 놀라울 정도라니까요.......

그렇게 가난하고 유서가 깊은 사람을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할머니는 뼛속까지 유서가 깊고 비가 오면 더 나빠진다고 하셨어요."

하고 자신이 이해했음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말하는 세드릭.

하비샴 씨의 '막막한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마구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완고하고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늙은 백작이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숙지시키라고 하비샴에게 지시하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부자가 되면 맨처음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는 세드릭은

깊은 불신과 불안을 안고 찾아왔던 하비샴 씨마저 변화시켜 '소원 들어주는 지니'가 되게 한다.

그리고, '지금과는 크게 다를 거야.'라는 하비샴 씨의 확신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기대보다는 실망을 준비했던 도린코트 백작은 세드릭과의 첫번째 만남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낀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기심 없는 마음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살았던 백작은

천진난만하고 다정한 이 어린아이에게 당황하고 만 것이다.

착하고 순수한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세드릭에게는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인 이 냉혹한 백작조차 친절하고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다.

의심없이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세드릭과 함께 지내며,

가끔 남몰래 자신의 과거 삶이 좀 더 나은 것이었으면,

자신이 오랫동안 '사악한 도린코트 백작'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모르기를 바라는 백작.

결코 악한 생각을 할 수 없는 솔직하고 참된, 상냥한 본성, 애정 어린 진실함......

자신이 가져 보지 못하였기에 그토록 마음을 뺏기는 것들은 백작을 강하게 매료시키고,

결국 할아버지에게까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전인류에게 자선을 베푸는 고결함의 화신으로 존경받는' 그야말로 새로운 이 새로운 경험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고

"할아버지라면 하실 수 있어요."라는 말에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상냥한 행동'을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엔 세드릭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으니, 모든 것을 가졌지만 외롭다는 것도 못 느낄 만큼 외로웠던 백작이 더 크게 보인다.

이 늙은 백작처럼 타고난 부와 권세가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너그러운 행동, 친절한 생각은 잊은 채 그 힘을 휘두르며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을 것이다.

내 것을 지키느라 누군가를 전심을 다해 믿지도 못하고, 결국은 혼자만의 삶 속에 갇힐 것이다.

그가 가진 '사악함'은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합리적이란 말로 포장되는 계산적인 생각들, 이기심, 무관심들.

'사랑'이라는 약이 없으면 바로 우리를 휘두르는 불치병이다.

 

 

 

세드릭이라는 존재는 '사랑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한없는 믿음과 용기, 솔직함, 순수함, 상냥함과 배려......

세상이 주는 피곤과 상처를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웃게 만드는 우리 아이들이

엄마에게 늘 발라주고 있는 치료약들.

그 사랑에 대한 답으로 나 역시, 세드릭의 엄마처럼

언제나 착한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설령, 그것이 바보 같이 보이더라도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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