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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운 게 뭔데? ㅣ 창비청소년문고 43
저스틴 밸도니 지음, 이강룡 옮김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사내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돼, **떨어진다.’
는 말을 서슴지 않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오빠가 밥상이라도 들고 부엌으로 가서 주섬주섬 그릇을 개수대에 담을라치면 역정을 내며 여자기 몇이나 되는데 장손에게 부엌일을 시키느냐고 항변했다. 세 살 아래인 맏딸인 나는 속으로 그럼 남자는 밥 먹고 밥상머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게 옳다는 말인지 푸념하며 세제를 풀어 그릇을 씻는다. 때로는 설거지할 때 큰소리가 난다고 야단을 맞을 때도 있어 적잖이 억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산업화가 한창인 시대를 거쳐 인공지능이 밀려드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의 특권 의식은 곳곳에 자리한다.
모름지기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분석적 지능이 뛰어나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야하며, 멋있어 보여야 한다는 말을 따라야 한다는 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저자는 경험을 바탕으로 ‘남자다움’ ‘남성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양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상호 발전하는 관계 형성을 지향한다. 남성성이란 규칙이나 규범이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면서 전해져 내려온 메시지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한다. 더 나아가서는 남성적아거나 여성적이라는 이분법적인 범주로 나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받을 때 가치 있음을 확언한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몸이 느끼고 행동하려는 대로 움직이며 반응할 때 인간성 회복은 서서히 일어날 것이다.
남성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두려움을 인정하자는 요구를 묵살하고 무모한 일이라도 용기 있게 도전할 때 남자는 남자다워진다고 말한다. 남자라면 자신의 감정과 필요와는 거리가 멀어도 용감하게 덤빌 줄 알아야 한다는 관습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굳어졌다. 최초의 사회라고 불리는 가정에서부터 남자다운 역할 수행을 위한 지침을 따르며 보여 주기 두려웠던 부분을 감추며 가식적으로 행동하여 왔던 지난시절을 돌아보며 저자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열기 위하여 실천하였다. 여자애 같다는 말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용기 있게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해나갈 때 고착화된 남성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2014년 신어로 선정한 뇌색남은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고 정의 내렸다. 남자는 똑똑해야 한다는 말에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능력자 이면에는 분석적 지능 못지않게 실용적 지능, 감성 지능 등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물음을 던진다. 모든 측면에서 뛰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부족함을 채워가는 과정 속에 자존감을 키워나가면 더 좋을 것이다. 배우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시청자의 구미에 맞는 연기로 이름을 알려온 과거를 돌아보며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점이 눈에 띈다. 육체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할 줄 알고,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등을 실천하며 남성성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후천적으로 만든 성정체성인 ‘남자다움’이나 ‘여지다움’의 젠더적 성향의 궤도를 수정하여 신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남녀 서로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봐야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걷어낼 수 있다. 생활에 편한 혜택을 누리는 특권이 몸에 배여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혜택만 누린다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타인이 상처를 입었다면 이를 인정하는 걸음부터 뗄 수 있어야 한다. 이중 잣대를 대며 사느라 놓친 부분은 회한으로 남는다. 좋은 일만 있는 인생이 아니기에 슬픔과 과절, 기쁨과 성취 등의 경험이 어우러질 때 우리 삶은 더 풍성해진다. 보이즈 클럽은 없고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 감정을 나누는 남자들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