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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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야 더 좋은 사람이 오는 법이여.’

  이삐 할매의 말대로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이별은 본인의 죽음으로 갈무리된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만남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헤어나기 힘든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 고단한 일상을 낳기도 한다.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누군가와 이별하고 비통해하는 시간은 늘어난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사후에 알 수 있다는 말이 폐부 깊숙이 자리하는 것을 보니 어쩔 수 없는 중년이라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든다.


  가슴에 품고 사는 누군가에게 마음자리 하나 내어주고 사는 게 쉽지 않음은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이 본인 중심으로 흐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아낌없는 사랑을 전하며 대가를 바라지 않기도 쉽지 않음은 인간의 이기심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어서이다. 존재감 있는 개체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을 주입하며 성취를 높이는 일에 골몰하느라 지쳐가는 이들에게 외딴 섬은 서식처를 찾아 깃드는 철새들의 안식처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기 힘든 섬에서 나고 자란 연수는 섬 생활을 청산이라도 하듯 서둘러 도시 한복판에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그녀는 섬의 유지로 재력 있는 집안의 아들 태원과 사랑했지만 사랑은 성취될 수 없었다. 수전노로 부를 축적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영도의 눈에 비친 연수는 내세울 게 없는 하찮은 인물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며 힘을 냈던 기억이 없는 이들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는 방법을 익히기는 힘들다. 학습 면에서 정모에게 뒤처진 태원을 위로하기는커녕 질책하며 힐난하던 그의 아버지 영도는 태원의 마음에 좌절감과 모멸감을 심어줬다.


  실패한 사랑의 쓰라린 기억으로 들끓는 연수의 냄비는 냉각되어 온기로 채울 마음까지 앗아 가버렸다. 자신의 삶도 책임지기 힘든 스무 살, 아이를 길러낼 능력도 없이 엄마가 된 연수는 딸 이우와의 만남이 버겁기만 했다. 엄마의 정을 쏟으며 딸을 살뜰히 키우기보다는 이상을 실현하며 사는 예술인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무한 경쟁 시대에 다수의 경쟁자를 짓밟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고독한 경주에 나서야 했던 고등학교 생활에 마음이 통하는 태이가 있어 이우는 구멍 난 마음을 붙들어 안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운동장 한쪽 귀퉁이에 앉아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이우는 태이의 호응에 기대어 안정을 찾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둘이 떠나는 여행길 돌연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태이를 가슴에 묻고 방황하는 이우를 보다 못한 연수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섬으로 딸을 보낸다. 접점을 찾기 힘든 대척 상황에 놓인 모녀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갈라서야 했는지도 모른다. 한때 어울려 지내며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 정모가 깃들어 살고 있는 섬에 딸을 유폐시키고 싶은 연수는 자기중심으로 기울었다.


  정모는 방치된 소금창고를 도서관으로 만들어 누구든 도서관을 찾아 책과 뒹구는 모습을 그리며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연결망으로 삼으려 했다. 말문을 닫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생하는 삶을 잇는 판도는 이삐할매와 정모를 연결하는 시냅스로 사랑을 전한다. 머리를 무지개 색깔로 물들이고 나타난 이우는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태이가 줬던 희망의 메시지를 무지개빛으로 투사했다. 상실감으로 휑한 마음을 부여안고 살아온 이우에게 섬 생활은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갈 방법을 일깨워주었다.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반응하는 판도와 정모 덕분에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마음이 통하는 이우를 두고 고통 속에 스러져 간 태이

  아버지 그늘에 기를 펴보지도 못한 채 사인 규명도 분명치 않은 태원

  두 사람의 죽음을 봤던 이우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뱃속에 깃든 생명을 품고 살아갈 운명에 놓였다. 짠 내 나는 소금밭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할 때 소금 꽃은 슬프고도 찬란한 빛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생명이 다한 자리에 깃든 새 생명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살아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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