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소녀 혹은 키스 사계절 1318 문고 109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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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선택할 수 없이 세상에 태어난 이들은 우연적 상황이 빚은 필연적 시간을 살아내느라 고단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진다. 위협적인 파장이 무탈한 삶을 지배하며 파고를 넘나듦은 자립하여 살 수 있는 힘을 얻기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사는 이들의 상흔은 살아온 만큼 가슴속에 자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본능대로 움직이며 학교 밖의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어 하소연하는 친구를 보면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사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의 방황이 멈추기를 바라며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사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니 마음이 타들어간다.


  겉으로는 별 일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각자 살아온 인생의 그림자가 삶의 영역을 지배하며 뜻밖의 인생으로 몰아갈 때도 있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홀로 살아내야 했던 절박함은 부족함과 외로움에 짓눌리면서도 같은 처지에 놓인 이와 정을 나누며 사는 이들이 있다. 슬프고 괴로웠던 기억들을 떨쳐내고 싶지만 쉽사리 떨쳐내기 힘들어하면서도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고 들려오는 바닷소리의 울림에 마음을 달래며 사는 무나와 이를 지켜주고 싶은 주인공은 흉포해진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를 발견했다.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남았기에 곁에 있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터득되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다양한 재능을 쌓아야 한다고 다그치며 살아왔지만 결실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지 못해도 세상 살아가는데 별 무리가 없는 것처럼 양팔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 물고기처럼 유영하기를 바라며 수영 강습을 할 필요도 없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주인공의 후회는 수영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갈비찜이 먹고 싶다는 식구의 말에 재료를 사러 갔다 돌풍에 떨어진 간판은 엄마의 머리를 가격하였고 목숨을 잃은 엄마는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가족을 잃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할 상처를 남겨 음울함을 더하였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망연자실하여 무심하게 지내던 남편이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난 뒤 할 수 있는 일이 대홍수에도 가족들을 살려낸 방주를 만들어 재해를 대비할 뿐이었다. 뭇사람들이 미쳤다고 소리 질러도 자기 방어로 아들과 자신을 지키고 싶은 삶의 희망이자 은신처로 지하 벙크를 떠올렸다. 불안감을 숨기려 웃으면서 다른 공간으로 소풍 온 것처럼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처연함이 더한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들은 상대의 이름만 되뇌어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머릿속에는 그 사람으로 채워지고 그 사람이 있는 공간으로 마음은 향한다. 책을 좋아하는 동아리 선배를 좋아하여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며 그가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선배 역시 밤거리를 헤매며 공원 벤치에 앉아 상념의 파고를 넘나들며 침잠하는 시간 서로의 사랑은 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비껴가는 사랑에 외로움은 녹아들어 상실의 슬픔을 더한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 쭈뼛거리며 용기를 내어 첫사랑에게 고백하던 시절의 추억은 몇 날 며칠을 뒤척거리며 썼다 지웠다 반복하던 사랑한다는 한마디의 헛헛함을 알아차린 뒤라도 따스함을 준다.


  잇따라 부모를 여의고 일찍 철이 든 전학생 오란디는 절망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하는 표본처럼 낙담과 포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학생이 오기 전 줄곧 1등을 도맡았던 주인공은 그녀에게 1등을 내주고 그녀를 향한 증오는 지키려는 것을 빼앗긴 자의 비굴한 감정이었음을 알아차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당한 사고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렸고 진통제에 의지하여 지내는 투병 생활에 길들여진 침묵은 이전의 자신과는 대별되는 모습으로 바꾸어버렸다. 겸손함과 배려로 자신을 무장해온 전학생은 정해진 시간 병실을 찾아 책을 읽다 가기를 반복하며 주인공의 마음에 자리한 증오를 조금씩 덜어주었다. 주인공이 건강을 회복하고 함께 그녀와 학교생활을 잇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미움 저편에 자리한 사랑은 소리 없이 가슴 속에 들어앉아 생활에 활기를 더한다.


  이성 교제와는 거리가 먼 4명의 동성 친구들은 청소년시기 성에 대한 호기심은 한 문장의 홍보 문구에 끌리게 했고 급기야는 여체 인형 지나를 주문시키게 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운 틈을 타 배달된 인형을 한곳에 두고 친구 넷이 돌아가면서 외로움을 달래보려 했던 일이 변태로 내몰려 정학 처분까지 받아야 했다. 성장 시기마다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제어하기 힘든 때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고 생각한 바를 감행하는 십대들의 모습에 가식 없는 용기를 읽는다. 표출하지 않고 음지에 숨어 갖은 욕망을 쏟고 배출하는 일보다 경험으로 자신을 바로 세워 중심을 잡아가는 과정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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