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아흐레 대설 절기에 걸맞게 음산한 하늘에서는 눈발이라도 들을 것처럼 을씨년스럽습니다저녁 무렵에는 조용한 사위를 휘감아버릴 듯 바람이 일어나 오늘의 비보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 너머 처연함을 더합니다오전 수업 시간 묻고 답하기를 즐기는 반 아이들은,

  “오늘 아침 6시에 박숙이 할머니 돌아가셨다는데 혹시 아세요?”

  “그래이제 알았는데 오늘 퇴근길에 상가에 들러 조문해야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는 남해군 소재의 유일한 생존자로 학교에서의 초청 강연 때 할머니는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하여 이 나라가 다시는 제국의 야욕에 짓밟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였습니다할머니는 16세 꽃다운 나이에 바다로 조개잡이 나갔다 일본군에 끌려갔습니다일본 나고야로 끌려가 만주와 상해에서 7년 동안 성노예 피해를 당한 할머니는 해방 후 1948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할머니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남해의 학생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에 써달라며 매년 향토장학금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2015년 광복절에는 할머니 모습을 재현한 '숙이 공원'을 조성하여 할머니의 아픈 과거를 함께 기억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박숙이 할머니는 숙이 공원의 소녀상 아래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이승에서의 고통을 벗고 하늘나라로 향하였습니다일본의 진실한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가신 박숙이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토요일 5시면 집회 장소로 나가 비선 실세가 이끄는 대로 생각 없이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 버린 지도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50대 친구들이 늘고 있습니다유월 항쟁 때 서면 로터리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서 퇴근하고 나온 넥타이 부대들의 환호와 함성을 재현하는 듯 2016년 촛불 집회는 또 다른 양상을 띠고 흩어져 살던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내었습니다완경을 앞둔 나이 갱년기로 감정은 파도를 타고 널을 뛰는 친구들은 12월 10일 서면 광장에 모여 촛불 시위에 동참하기로 하였습니다노년까지 함께 하려는 30년 지기들은 연대의 힘으로 막 돼 먹은 정권을 끌어내리는 일에 동참하자고 뜻을 같이 할 것입니다.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을 덮어 호도하는 세력들 아래에 빌붙어 있다 권모술수를 동원해서라도 기회를 잡아 대중들 위에 군림하여 권력을 사유화하는 세력들의 극악무도한 만행이 떠오릅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은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생명을 구조하지 않은 인재로 분류될 정도입니다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하여 침몰하기까지의 7시간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있지만 실질적인 답은 없습니다진실을 인양하여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통해 책임자는 처벌받게 해야 합니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눈을 뜬 시민들은 연대하여 미완의 가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불량국가의 공권력 부재가 낳은 대참사로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하려들지 않는 제2• 제 3의 재난은 청춘들의 희생을 초래하였습니다투명한 법적 대응으로 바닥에 떨어진 공권력의 위상을 바로 세워 그래도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미래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희망을 노래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엄중한 시절을 보내고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아온 반평생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오롯한 정신으로 품위를 잃지 않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음을 느낄 때면 지난시간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집니다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지 않은 채 청춘 시절에 결혼한 게 회한으로 남을 때면 기억 속에 자리한 인물들을 그리움으로 융해해 불러 모읍니다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가슴 속 여울목에 자리하여 힘들고 지칠 때마다 뽀얀 얼굴처럼 떠오르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어 50+ 인생을 윤기 있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헛헛함과 무상감에 젖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에 기쁨을 발견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살피는 영속성으로 인생의 지혜를 발휘하며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의 이기심을 넘어 상대로 확장해 가는 넉넉한 마음을 지니지 못한 채 살아가는 어리석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생입니다그때 좀 더 잘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잘해주지 못한 인연에 미안함은 더합니다수많은 뱀들의 노기(怒氣)가 응집되어 지축을 흔드는 지진으로 숱한 목숨을 앗아가는 재해 현장에서 추억 속 연인을 불러내 실연의 아픔을 상쇄하려는 뱀들이 있어’ 이야기 속 정민철이 남편의 실종으로 혼비백산한 연인 영선을 다독거리며 슬픔에 잠긴 그녀에게 안아달라고 부탁하는 이기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큐레이터와 화가로 만나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명사를 잃어가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친밀감에 달뜬 이들의 만남과 소통은 지난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기대감으로 시작할 수도 있는 사랑을 담은 종이 위의 욕조는 엇갈린 시간의 교착점이 또 다른 사랑을 잉태할 수도 있음을 가늠합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이들과의 이별은 가슴 속 애증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채 그리움의 심연 속으로 이끌어 감내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로 감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사랑하던 여인의 이별 통보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 아픔보다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녀에 대한 반목을 키웠고 헤어나지 못할 늪지대로 그를 몰아넣어 회생불능의 지경으로 이끌었습니다산동네 변두리 마을인 <<해질 무렵>>의 달골은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공간으로 공동체 생활로 한곳에서 자란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곳입니다결핍과 가난으로 점철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몰입하여 변두리의 삶을 벗고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와 주류에 편승하는 삶을 살아온 박민우는 고향을 등지고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대부분의 동네 10대들이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생활인으로 살아갈 때 동네 유일한 고등학생인 박민우와 차순아는 책을 매개로 함께 도서관을 다니고 책 속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며 감응했습니다산동네에서 빠져나오기를 열망하며 안간힘을 쓴 덕분에 박민우는 목표를 이뤘고 후로 그가 탈출하고 싶은 그곳을 찾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세월이 흘러 달골에서 함께 하였던 이들을 하나 둘 떠나보낸 뒤 살아남은 그가 감당하여야 할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이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습니다.


  인생의 2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50세를 넘긴 중년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에게는 봉양 받지 못하는 불운한 세대라는 보도가 씁쓸함을 더합니다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나이 들어도 자율적인 개체로 새로운 것을 배워 앎의 영역을 확장하고살면서 겪은 문제 해결력으로 질 높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변수가 작용합니다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삭이기 위해 찾은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갈망인 동시에 한계를 인정하는 시발점이기도 합니다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홀어머니 아래에서 생존을 위한 담금질로 자신을 무장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애썼고 세속적 가치를 성공 기준으로 삼고 신분 상승의 꿈을 동경했던 청소년 시절이 소설 <<바다>>의 화자인 맥스의 삶에 녹아 아릿한 맛을 더합니다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라는 협정을 맺은 애나와 맥스 부부였지만 둘은 느끼기 위해 싸웠습니다아내를 떠나보내고 상실감에 젖기보다는 이 모든 것을 수렴하며 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보나르가 보석보다 더한 광채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인 마르트의 풋풋했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처럼 맥스 역시 답답함으로 투명한 미래를 꿈꿀 수도 없었지만 무언가를 갈망하며 지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을 바다에 담았습니다.


   으스러질 것만 같은 것들이

   눈송이처럼 불어나더라도

   지금은 미소 짓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충만함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웃음을 띠우렵니다.

   앞으로 다가설 삶의 무게들에

   짓눌려 신음하게 되더라도

   아직은 살아있으니 괜찮다고요.

   나를 지켜보는 햇살과 바람이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가을이니까요.

   잎들을 떨구고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흐르는 상념의 줄기를 붙들고

   머물고 싶은 가을이니까요.



#눈먼 자들의 국가 #가짜 팔로 하는 포옹 #해질 무렵 #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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