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어난 자는 죽음으로 가는 여정에 있음을 간과하면서 살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생명이 멸하여 감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속에 지낸다. 의료 기술이 발달되지 않고 식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마흔 살이 넘기기가 쉽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니 의구심이 들 정도로 수명은 연장되어 한 세기를 거뜬히 사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여건에 감사하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이 듦에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다가도 지인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어떻게 죽어가는 것이 가족들의 부담을 덜면서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지 물음을 던질 때가 많아졌다.


  저자의 형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불가지론자인 아버지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력함을 더 두려워했던 무신론자인 어머니의 절멸을 겪었고 지인들의 다양한 죽음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내세를 믿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밀쳐내려는 영혼들에게 종교는 혼란스러운 삶을 덜어주는 구원으로 이어진다. 이미 수십 년의 생을 살아왔어도 지금껏 살아왔던 그대로 계속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고,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가 드문 점을 감안할 때 자기중심주의는 삶에 대한 애착에 봉착하게 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어갈지 알 수 없는 유한한 인생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고통 없이 필멸의 길로 가기를 바라며 지낸다.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운명을 감당하며 지내자고 다짐하면서도 죽음을 목도하였을 때의 불안과 놀라움을 수반한 슬픔으로 오열할 때가 많다. 독서부터 죽음까지 모든 일은 학습을 요한다던 플로베르의 말대로 죽음을 맞닥뜨릴 때도 연습이 절실함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종국에는 혼절하였다 의식이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삶에 대한 집착을 드러낼 때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이들에게는 고통을 전가한다. 뇌졸중을 앓다 영면에 든 아버지를 지켜본 저자는 어머니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져 소진하여 멸해가는 과정을 목도하였다. 오롯한 정신으로 쓰는 글을 탈고한 뒤 죽음에 이르고 싶은 마음이 큰 저자는 표현의 욕구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그녀가 죽은 후,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는 버니 윌슨의 회한은 살아있을 때 상대의 자존감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이들을 대할 때 평온함 속에 인생을 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성격에 애착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죽을 때의 심적 고통이 크다는 심리분석가들의 판단을 견지하여 애착을 놓는 연습부터 시작할 일이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불멸의 존재인 양 생각하고 행동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때 순간의 삶을 가감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피가 멈추고 뜨거웠던 피부가 냉하게 식어 더 이상 소리 내어 소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다른 옷을 갈아입고 한 줌의 재로 화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태어나는 순서는 정해져 있어도 가는 순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예견조차 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부모가 죽어 가족의 보호막이 허물어져 갈 때 가족이 함께 하였던 시간 속 추억은 내면에 남아 죽음을 거슬러 올라 기억을 복원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회한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증조부의 생각을 따르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히는 기억을 보조하려는 기록은 오래 남아 망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삶을 살게 한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일상을 살아간다면 회한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 망상으로 치닫지 않게 가능성에 도전하는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며 이 세상을 등지는 날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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