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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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열일곱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 타의든 자의든 대학 입시를 위해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고 담금질하기 시작하는 때다. 미래에 대한 어떤 보장도 받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성실성을 전제로 희망과 비전을 부여잡고 속도전에 가담하게 된 열일곱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허랑한 시간을 보낼 자유를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앞만 보고 달리는 대열에서 낙오라고 할까 조바심 내며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마음과는 달리 뒤처져 심드렁한 생활에 일탈하는 이들이 자리한다. 폭염으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은 의식까지 혼미하게 만들어 긴장의 끈을 놓치게 하는 마력이 잠재해 걷잡을 수 없는 일을 벌이는데 일조한다.

   체육 특기생으로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한 채 생활하던 중 우발적인 폭력 행사로 학교를 나와야 했던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열일곱 나이에 아이를 잉태한 시발공주는 어쩔 도리 없이 학생의 삶 대신 엄마의 삶을 택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름이가 태어나 부모가 된 이들은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서로 화합하며 중지를 모아야 했다. 하지만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한아름은 생물학적으로는 젊지만 조로(早老)증으로 빨리 늙어가는 일을 감수하며 지내야 하는 숙명에 갇히고 말았다. 면역력을 높이고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약물 복용과 입원으로 점철된 절망적 상황이 소녀 앞에는 예정되어 있을 뿐이다.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는 한아름은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철없는 부모에게 제일 재미있는 자식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투병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은 그 나이에 걸맞은 행동으로 절망과 싸워 가려는 씩씩함이 희망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블랙홀처럼 조로증은 아름의 육체를 빠른 속도로 갉아먹어 갔다.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강퍅한 삶을 잇는 부모를 보면서 동정에 호소하는 일이 마뜩치 않았겠지만 일찍 철이 든 아름은 가족을 위해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지었다. 승찬 아저씨가 연출하는 프로그램 녹화를 앞두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덤덤히 말하며 희귀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누군가의 삶을 통해 새로운 인생길을 개척해 갔다. 절대안정을 취하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여 보이기라도 하듯 병원 곳곳을 쏘다니며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의 인터뷰, 의사들 소견, 아름의 일화 등을 늘어놓으며 진행된 프로그램을 보고 전자메일을 보낸 서하의 편지는 투병 중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투사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제일 멋지다는 서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소설 쓰기에 착수한 아름은 틈틈이 책을 읽고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10대 소녀답게 마음을 열고 교감하며 소통하고 싶은 상대를 만나 힘들지만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을 맛보는가 싶더니 아름의 조로증을 소재로 작품을 연출하려는 시나리오 작가의 거짓 앞에 아름은 고통 받아야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노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부모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작품으로 완성하려던 소녀의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간 어른의 이기적 욕망 앞에 상처받았을 아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 온다. 치매를 앓아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팩소주에 빨대를 꽂아 아름에게 건네며 위로하는 장 씨 할아버지를 보면서 아름은 할아버지처럼 아프더라도 오래 사는 게 효도인지 회의를 품기에 이르렀다.

   건강한 사람들은 생물학적 나이에 걸맞게 살아가는 일이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잘 모른다. 자신의 나이대로 살 수 없던 아름은 진짜 자신의 나이가 되어 살아가는 생생한 얼굴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주름투성이인 채로 수명이 단축되어 감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아름이는 투병 생활 중에서도 책을 읽고 부모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틈틈이 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 파일에 저장한 뒤 딸의 목숨이 다하기 전 저장된 글을 읽어서는 안 된다며 아빠에게 당부하고 중환자실에서 남은 생을 정리해 갔다. 심폐소생술 금지각서를 제출하고 천명대로 살다 자연스럽게 스러져가길 바라며 열일곱 해를 살고는 그동안 다 짐 지우지 못한 고통과 결별할 수 있었다.

   열일곱 감당하기 힘든 나이에 부모가 된 어른이 그만큼의 삶을 살다 간 딸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가슴 저리고 애 끊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위어가는 촛불처럼 부모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눈물을 뿌리며 스러져간 딸을 떠올리며 그녀가 남기고 간 소설을 읽고 철이 들대로 든 애늙은이 아름이를 추모할 것이다. 아니면 너무 일찍 부모가 된 죗값을 치르며 열일곱의 미망에서 조금씩 벗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디며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을 잃음은 다른 쪽을 채우기 위한 관문으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의 고리처럼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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